반갑네, 벗이여.
관두지, 벗라는 단어는 너무 구린데다가, 당신도 이제는 알겠지. 이는 단순히 미친자가 상상해낸 벗과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죽을 그 날을 맞게 된다면, 그 날은 어떤 모습일까?
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난 '그 곳'과 충분히 가깝게 있으니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으니 말이야.
근데 이상하게도 난 어떠한 느낌도 없어.
그 놈들에게 쫓길 때 난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어.
연구 시설이 롤랑에게 의해 잿더미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난 두려움에 온 몸이 굳어버렸지.
나를 배신한 자가 나의 '대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오히려 아무런 생각도 없었어.
혹은 '그 녀석들'의 리더——그 여자 애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나약하고, 비열하고, 신뢰할 가치가 없는 존재이지. 아마 그렇겠지.
——이제야 '끝난다' 라는 느낌을 들어. 드디어.
미안하네 내 벗이여. 이건 결코 가슴 뛰는 모험 스토리가 아니야.
이제서야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을 죽일 때 누군가 내 손에 칼을 직접 쥐어주지 않으면 할 수 없지.
나의 벗이여, 이젠 안녕이네.
난 예전부터 누군가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해 본 적 없으니, 적어도 내가 '상상의 친구"인 너에게는 인사할 수 있게 해줘.
한편, 비밀 통로의 다른 한 켠의 메인 광장...
...최후의 식사는 잘했어?
아, 인간이 아니였지... 식사 따윈 필요없겠네.
……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는 작별인사 잘 했어?
농담이야. 너에게 가족이나 친구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아.
……
아무것도 없는 너라지만 최후의 수면은 잘 잤겠지?
……
루나는 쇼메의 침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가여운 아이.
인생의 최후의 날까지 이토록 비참하다니.
역시 네가 원하는건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구나? 네가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나를 잡으려고 했던건, 그것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였지.
넌 진작 알았겠지. 처음부터 너의 목표는 날 죽이는 것이라는 걸.
……
맞아. 아무래도 좋아.
...왜지?
...그러게. 왜일까?
자비로운 대행자가 너에게 '승격자'라는 이름을 줬는데, 넌 어렵게 다시 얻은 생명으로 발을 들여서는 안되는 영역까지 흙 묻은 발로 어지럽혔으니까… 일까?
너의 죽음으로 지상의 대행자들이 인간은 구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 수 있으면 좋겠지만...
루나 아가씨, 이 자가 유원지 곳곳에 둔 백업 정보를 이미 찾아내어 소각했습니다.
편하신대로 처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단지 그것 때문에?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승격 네트워크' 혜택을 혼자 독점하는 것이었나?
너 따위가 멋대로 루나 아가씨의 뜻을 추측하려 들다니!
하, 역시 가브리엘이야.
슬슬 손님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네. 그들은 이미 근처까지 왔습니다.
그럼. 넌 할 말이 더 남았어?
... 대체 무얼 기다리는 거야?
그러게. 내가 무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 마. 네가 기다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니까.
라미아?
한 X형 그림자가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루나에게 접근하더니,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 여기 있어요.
내가 지시한 일은 모두 했겠지?
하...하나도 빠짐없이.
착하지.
칭찬인건지, 비웃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루나는 손을 뻗어 가볍게 라미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루, 루, 루나 님...
수고했어. 아주 잘해줬어. 저쪽에서 모든 게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이제 막 메인 광장으로 들어서자 눈앞에는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 구조체의 잔해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광장에 널려져 있고, 한 형체가 등지고 서서 거대한 조각상을 감상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듯, 그림자는 방향을 틀어 돌아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도착하기 얼마 전...
...시간이 됐어.
명을 내려주시죠.
응, 좋아.
공중 정원의 손님들은 참으로 늦게도 오네.
이것도 아가씨의 계획 중 하나인가요?
당연하지.
우리들의 문제는 당연히 우리가 해결해야지.
루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의 등 뒤에 있던 커다란 인형 조각상에 변하기 시작했다.
...빌?
마지막으로 여기로 오게 된 것은, 그 조각상 때문일 뿐...아니, 그 조각상의 투영 아래 있는 '샥스빌' 때문이지...
——네가 어린 시절에 디자인하여 제작한 방위 로봇이야.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네가 그랬잖아? 네가 아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나도 하고 싶을 거라고, 아니야?
네가 황천길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랬을 뿐이야.
한 그림자가 조각상 속에서 날아 오르더니, 천천히 쇼메의 앞으로 다가온다.
아... 아.
아니, 아니, 빌...
그림자가 허리를 끊을 듯한 기세로 쇼메를 물어뜯었다.
으악!
검은 그림자가 쇼메를 조각상 안으로 끌어들였다. 너무 순식간이여서 검은 그림자가 어떻게 조각상으로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어 조각상으로부터 난잡한 기계 소리, 부수고 자르는 소리, 심지어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도, 절규도 없었다. 오직 씹는 소리만이 들렸으며, 조각상 발 아래로는 액체와 부품들이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