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때문인지 낮의 컨스텔레이션은 인파로 북적이며 활기가 넘쳤고, 곳곳에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로 가득했다.
수많은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따가운 햇볕조차 축제를 즐기려는 이들의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한 그늘진 구석에서 시작된 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줄의 맨 앞에는 흑백 머리의 청년 구조체가 이젤 앞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가 손에 쥔 연필이 도화지에서 바쁘게 움직이더니, 불과 몇 분 만에 생동감 넘치는 만화 스케치가 완성되어 모델에게 건네졌다.
그늘에 있는 구조체 청년은 꽤 오래 그린 듯했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보며 이마의 땀방울을 닦았다.
원래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과 함께 컨스텔레이션 축제에서 스케치하기로 약속했는데, 일찍 도착한 노안은 할 일이 없어서 화구를 펼치고 먼저 손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노안을 공식 가판대의 화가로 착각하고는, 노안이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가판대 앞에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손님이... 생각보다 많네.
손님, 죄송하지만 줄 좀 서주시겠어요? 사람이 많은 건 이해합니다만... 어? [player name]?
인간이 건넨 전해액을 받자, 구조체 청년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노안은 끝없이 이어진 줄을 보며 인간에게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는 다 그리겠지. 그나저나, 축제 구경은 안 갔어?
그렇긴 하네. 지난 축제까지만 해도 나도 구경하는 손님이었는데... 그럼, 손님.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구조체 청년의 말에 인간은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이젤 앞에 앉은 구조체 청년은 단말기를 들어 인간의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었다.
실컷 놀다가 저녁에도 이 스케치가 생각나면, 그때 와서 받아 가.
그러고는 노안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물론... 잊어버려도 내가 오늘 밤 네 휴게실로 가져다줄 거지만 말이야.
뭐, 한 장 정도는 괜찮아. [player name], 너도 축제 다른 데 좀 둘러봐. 재미있는 이벤트 같은 거 있으면 나한테도 알려주고... 어차피...
구조체 청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가판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을 인간에게 넌지시 가리켰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며 장난기 섞인 무기력한 어조로 말했다.
난 오늘은 구경 못 할 것 같아.
청년 구조체는 인간에게 축제를 즐기러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인간을 보낸 후, 그는 다시 연필을 들고 지친 듯한 얼굴을 가볍게 치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
이젠 손님을 맞이할 시간이네.
스케치 잘 받으세요. 네, 다음 분이요.
만족한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도, 줄은 좀처럼 짧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종말의 시대에 보기 힘든 만화풍 스케치가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또 서너 명의 손님을 보내고 나니, 마치 청년의 고군분투를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듯 단말기가 때맞춰 울렸다.
노안은 마지못해 손에 쥔 연필을 내려놓았다. 단말기의 "긴급 임무" 통신은 오늘의 가판대 영업이 여기서 끝났음을 알리는 듯했다.
긴 줄이 인간의 외침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줄은 마침내 "한참 기다렸는데.", "아쉽다." 같은 불평과 아쉬움 속에서 흩어졌다.
화판 앞에 앉아 있는 노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끝없는 스케치 지옥에서 구해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player name], 방금 긴급 통신을 받았어. 네 긴급 임무에 협력해야 한다고 하더군. 내용을 알려줄래?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가판대 앞에는 인간과 구조체 화가 둘만 남았다. 구조체 청년은 이젤 앞에서 일어나 임무를 물었지만, 평소 임무를 받을 때처럼 진지한 모습은 아니었다.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듯했다. 임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노안은, 평소라면 심각하고 긴장해야 할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조차 자신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우리의 긴급 임무인가 보네?
구조체 청년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 "긴급 임무"가 사실은 자신을 도와주려는 인간의 속임수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허위 임무 정보 전달"이라는 죄목으로 인간과 공범이 되는 걸 은근히 즐기는 눈치였다.
인간의 지시대로 노안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의자에 앉았다. 인간이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구조체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내가 도망가고 싶어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할 법한 말이긴 한데...
역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건 다른 사람이 기도를 들어서였구나?
내가 아는 만화가들은 다들 그런 소원을 빌더라고.
잡담을 나누는 사이, 구조체 청년은 원래 손님에게 준비한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그러자 명성이 자자한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은 진지한 척 연필을 쥐고는, 노안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player name], 너 그림 그릴 줄도 알아?
그럼 이번 임무 목표는 나인가 보네... [player name], 이런 자세는 어때?
구조체 청년은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조금 과장된 포즈를 취했다.
<가면 기사>의 클래식한 변신 포즈야... 이게 그리기 어렵다면, 다른 <가면 기사> 포즈도 많이 알고 있거든.
근데, [player name], 좀 빨리 그려야 할 것 같아. 이 자세 생각보다 힘드네.
사실 구조체한텐 그렇게 어렵진 않아. 그냥 살짝 놀리고 싶었을 뿐이야.
이거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않겠지?
구조체 청년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더 이상 과장된 포즈를 안 해도 돼서 한결 편해 보였다.
종이 위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들려왔다. 이젤 앞에 앉은 인간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수차례의 수정 작업을 거친 끝에 드디어 연필을 내려놓았다.
여기 이 선 처리랑... 사선으로 떨어진 그림자, 내 흰 머리카락의 질감까지... 잘 살렸네.
이렇게 정성껏 그려줘서 고마워.
근데...
구조체 청년의 말에 인간은 혹시 그림에 문제가 있나 싶어 다시 연필을 들었다.
동료가 빠져 있네. [player name]도 가면 기사가 정의의 동료라는 걸 알고 있지? 내가 정의의 동료의 포즈를 한 이상, 혼자서 싸우면 안 되지.
구조체는 몸을 숙여 인간이 연필을 쥔 손을 잡고, 부드러운 힘으로 인간의 손을 이끌어 종이 위를 움직였다.
거친 종이 위로 연필이 스치며 그림이 완성되어 갔다. 축제 한구석의 이젤 앞에서 구조체는 인간이 선을 하나하나 그릴 때마다 세심하게 거들었다. 둘의 담소도 연필 자국과 함께 종이에 담긴 듯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가면 기사 포즈를 취한 구조체의 옆에 인간 지휘관의 모습이 더해졌다. 그 지휘관의 어깨에는 날개와 방패로 이루어진 문장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하니까 좀 낫지 않아?
오늘 가판대의 마지막 그림으로 딱이네.
뭐? 이 "긴급 임무"에 2단계도 있다는 거야? 내용이 뭔데?
마침내 이 거짓 임무 공범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노안은 인간이 제시한 2단계 "긴급 임무"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