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이 느낌은 지휘관이 수없이 경험했던 것이었다.
깨어났어?
얼음같이 차가운 손이 얼굴을 스치게 느껴졌다.
이봐.
케르베로스 소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지휘관은 원래 보육 구역에서 출발해 컨스텔레이션으로 가려던 참이었고, 케르베로스 소대는 마침 다른 임무를 마친 상태였다. 베라에 따르면, 컨스텔레이션 근처를 조사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곤란하다고 하여 지휘관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21호가 운전하고 싶어.
이번에 내 차례 아니었어?
방금 순서를 수정했어.
갑자기 왜 아부하지?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케르베로스 소대와 몇 번 협력한 적이 있는 지휘관은 21호에게 운전을 맡기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겪은 일이든, 가끔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얻은 정보든, "케르베로스"가 운송 장비와 엮이면 항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이 기사를 자처하겠다는데, 너희 둘도 즐기도록 해.
좋아. "운전 순번" 명단 업데이트했어. 새로운 순서는 지휘관, 21호, 대장, 녹티스 순이야.
난 왜 또 뒤로 밀린 건데!
녹티스는 운전을 못 해서 항상 문제가 생기잖아.
21호, 너도 그다지 나을 건 없을 텐데?
이론상 이번 여정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고, 내비게이션도 오늘 날씨는 좋을 거라고 예보했다.
하지만 지휘관은 출발하기 전에 운송 장비의 운명을 케르베로스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출발하지. 지휘관.
21호와 녹티스가 다투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 속에 맴돌고 있었다. 지휘관이 이런 상태라는 건 단 하나의 사실을 의미했다.
이 점을 깨닫게 된 지휘관은 본능적으로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눈 떴다. 눈 떴어.
다행이네. 내가 손대기 전에 깨어나서...
"사고 현장"이야.
21호의 말투는 여유로웠고,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지러움은 서서히 가시고 있었지만, 몸을 완전히 제어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이건 지휘관에게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깨어난 뒤의 정례 검사야. 이게 몇인지 알아보겠어?
베라는 손가락 하나를 폈다.
베라는 힘차게 지휘관의 뺨을 때렸다.
다시 잘 봐.
입 벌려.
베라는 힘차게 지휘관의 뺨을 때렸다.
다시 한번 해봐.
악수.
아주 잘했어. 네 이름이 뭔지는 기억해?
착하네. 검사 끝.
베라는 지휘관을 일으키며 지휘관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사고가 났어.
21호가 가리킨 곳에는 구식 운송 장비가 있었는데, 크기로 보아 다른 쪽에서 오던 지프차가 나무에 부딪혀 들이받아 파손된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현장을 둘러보니, 충돌한 두 차량 외에도 몇몇 로봇이 진흙 속에 빠져 있는 게 보였다.
그렇다는 건 방금 이 운송 장비를 운전한 것이 인간이나 구조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지휘관도 승용차가 이런 길을 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키드 마크를 따라가자, 드디어 이 사고의 원인이 보였다.
이 운송 장비를 피하려다가 미끄러지면서 나무에 부딪힌 것이었다.
어. 방금 지휘관이 21호에게 만 블랙카드를 빚졌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저기에 부딪힌 거야. 지휘관은 이제 빠져나갈 수 없어.
응. 지금 차용증을 쓰고, 신호가 잡히면 곧바로 송금하도록 해.
내게도 좀 나눠줄 수 없을까?
너에게 빚진 것도 아니거든.
지휘관이 단말기를 통해 외부에 연락을 시도하는 것을 본 베라가 다가왔다.
소용없어. 확인해 봤는데 여기는 신호가 안 잡혀. 다행히 21호가 지도를 다운로드해 놔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어.
이 녀석들한테서 찾은 거야.
녹티스가 땅에 있는 로봇을 가리켰다. 땅바닥에 쓰러진 로봇은 기절한 건지 아니면...
이 녀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로봇들은 긴급 상황에서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휴면 상태로 들어갔어. 수동으로 다시 가동하면 돼.
손상이 심해 보이는 인간형 로봇이 땅에 쓰러져 있었고, 다른 로봇에 비해 손상 정도가 꽤 심했다.
이 로봇이 어디에서 온 건지 확인하려고 21호가 로봇의 데이터를 읽어냈어.
읽을 수 있는 자료는 출고 모델과 이 파일뿐이다.
녹티스는 "ST-100"이라는 번호를 가진 로봇의 데이터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지휘관도 단말기를 통해 그 이야기 사본을 얻을 수 있었다.
유감이지만, 예술 협회는 이런 로봇을 개발한 적이 없어. 그리고 이 로봇은 컨스텔레이션에도 속해 있지 않아.
신호도 잡히지 않는 이곳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출발 전에 받은 조사해야 할 구역이야. 한번 맞춰볼래? 그때 당시 이곳 개발권을 받은 게 누군지?
베라는 "쉿" 손짓했다. 답은 명백했다.
독특한 취미를 가졌는지도 모르지. 그 사람들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이곳은 컨스텔레이션과 가까우니 눈에 띄지 않게 조사하려면 위장해야 할 것 같아.
너도 우리가 임무를 위해 몇몇 로봇을 "실수"로 없애는 모습은 보고 싶진 않을 거지. 뭐, 그때 발생하게 될 연쇄 반응은 아주 재미있을 것 같지만 말이야.
방금 문제 있는 로봇으로 테스트해 봤는데, 그들은 대부분 감시기로 서로의 신분을 판단했어.
이건 고대 로봇의 특징에 맞는 것 같은데, 의식과 관련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케르베로스가 각성 로봇에 입히는 피해는 전적으로 옆에 있던 지휘관 네 책임이지. 그리고 네가 한 "나쁜 짓"은 공중 정원의 책임이기도 해. 결론적으로 나와는 상관없어.
당연하지.
공연에는 몰입감이 필요해.
베라의 미소가 조금 미묘했다.
맞춰볼래?
사실 몇몇 인식 부위만 바꿔도 돼. 옷을 바꿔 입으려는 건 즉흥적인 결정이었거든. 어차피 지금은 돌아갈 수 있는 차도 없잖아?
옆에서 회색 연기를 내뿜는 지프차를 보니,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네가 받은 "대본"을 잘 숙지해 둬. 너만 읽어보지 않았으니까.
필요하다면, 우리가 같이 대사 맞춰줄게.
그나저나, [player name], 언젠가 내가 널 "나리"라고 부르면 어떤 기분이야? 기쁠 것 같아?
21호에게 빚진 블랙카드는 생명의 별에다 써.
네가 좀 더 흥미로운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베라는 옆에 있는 상자에서 삿갓을 주워 지휘관의 머리에 똑바로 씌워줬다. 그런 뒤, 지휘관 일행은 차의 바큇자국을 따라 산을 향해 걸어갔다.
녹티스, 상자.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