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정원
예술 협회
자, 김치.
예술 협회의 문을 넘자마자,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소녀는 카메라에서 나온 필름을 들고, 그 위의 이미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음... 이 사진 잘 나왔네요. 초점도 잘 맞고, 표정도 아주 잘 잡혔어요. 그래서 지휘관님이 깜짝 놀란 모습도 또렷하게 나왔어요.
죄송해요. 사진이 잘 나오나 테스트해 보고 싶었어요. 아이라가 이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고쳐 달라고 부탁했는데, 2주나 끌었거든요. 아이라가 노발대발하기 전에 얼른 갖다줘야 해서요.
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의 사인이 담긴 사진을 덤으로 준다면 제때 납품하지 못한 걸로 문제 삼지 않겠죠?
음... 보통은 안 그래요. 하지만 제가 신형 거리 측정기, 스캐너와 스펙트럼 분석기를 제때 납품하지 못한 이후로는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어요.
청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구조체의 이름은 레오니, 예술 협회의 수석 기술자이다.
레오니는 고고학 소대 구조체 전체의 시설과 장비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 이사회나 정비 부대에 기술 협력을 제공한 적이 있었고, 최초 수행 지원 유닛의 디자인도 그녀의 작품이라고 했다.
지휘관과 레오니는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이라를 도와, 햄릿으로 지상에서 "고래의 노래"를 찾을 때도 레오니가 옆에서 햄릿의 외부 파라미터를 조정해 주었다.
레오니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그동안 밀린 일들이 많아서, 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됐어요.
기간이 촉박해서 원하는 기능을 다 구현할 수는 없는데, 기능을 빼자니 너무 아까웠거든요.
연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안 그래요? 저도 그렇게 아이라한테 말했어요. 근데 아이라가 바로 건랜스의 냉각제를 제 얼굴에 부어버리더라고요. 으... 그 기능도 제가 추가해 준 거거든요.
아. 맞아요.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네요.
지휘관님을 "햄릿" 후속 기기의 테스트 인원으로 제가 대신 신청했어요.
프로토타입인 "햄릿"은 상당히 발전된 가상 현실 기술을 사용했어요. 탑재된 AI 덕분에 심층 학습 능력도 갖추고 있죠.
그걸로 "고래의 노래"를 여러 번 탐색한 후, 햄릿 자체에도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초기화해 봤지만, 일부 소프트웨어 기록은 어떻게 해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흥미로운 현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플랫폼"으로 사용하려던 목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될 거예요.
마침 저도 그 점에 흥미가 생겨, 2세대 기기 개발 작업을 맡아서 하게 됐죠.
2세대라고는 하지만, 사용된 하드웨어는 여전히 이전 규격 그대로예요. 언더레이 구조를 간소화하고, 편집기와 교감 도킹 스테이션을 추가했을 뿐이에요.
이렇게 하면 단순히 극을 체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창작자들이 더 많이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엔진 내부에 사용자가 직접 작성한 수정 내용 또는 강화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 공간을 충분히 남겨뒀어요.
장면 모듈, 음성 모듈, 물리 법칙, 미술 렌더링 스타일, 사용자 지정 NPC, 사회 형태와 경제 시스템...
해당하는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우주 대식민 시대의 우주 사회를 체험하든, 300만 년 전 석기 시대의 원시인들과 함께 생고기를 먹어보든, 이론적으로는 모두 가능해요!
정식 버전이 출시되면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베타 버전이라... 아직 3천 개가량의 패치를 더 적용해야만 그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어요.
게다가 "햄릿"이 사용하는 기술이 꽤 특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장시간 접속했을 때 의식 동기화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이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예요.
지휘관님은 프로토타입을 사용한 경험이 있고, 공중 정원에서 지휘관님의 마인드 표식만큼 안정적인 사람은 없으니까요.
간단해요. 그냥 "게임" 하나를 플레이하시면 돼요.
새롭게 추가된 교감 기능과 기존의 언더레이 구조가 완전히 호환될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제가 기존 자원을 활용해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었어요.
스크립트가 매끄럽게 실행되면 좋겠지만, 중간에 버그가 발생할 경우, 어떤 코드와 기능이 충돌했는지 확인해야 해요.
복잡하게 들리시겠지만, 지휘관님께서는 그냥 게임을 플레이하시면 돼요.
레오니가 외부 단말기에서 그녀가 만든 화면을 불러냈다. 그러자 입체적인 체스판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재료 라이브러리를 복사한 거예요. 맘에 드시는 아바타를 골라보세요.
레오니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사전에 설정된 수십 개의 아바타가 화면에 나타났다.
보통 인간부터 구조체, 의인화된 동물과 로봇까지 너무 다양해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이 됐다.
그때, 소녀 아바타가 지휘관의 시선을 끌었다.
검은색 장검과 대포를 들고 있는 소녀는 길이가 다른 트윈테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며, 등에는 커다란 별 모양의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다른 아바타들은 단순히 "인간01", "구조체02"와 같은 코드네임이 붙어있었지만, 유독 이 아바타만 "BLACK★ROCK SHOOTER"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지휘관은 속으로 특이한 이름을 되뇌었다. 분명 낯선 이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 지휘관님도 눈치채셨군요?
이 아바타는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어느 날 편집기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누가 올렸는지, 패치 기록도 확인할 수 없었어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죠.
처음에는 버그나 장난인 줄 알았는데, 실행 오류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기본적인 파라미터도 다른 아바타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어요.
아니요! 이렇게 멋진 아바타를 굳이 삭제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세요! 이 장검과 대포의 조합, 트렌치코트와 트윈테일의 매치, 차가운 표정과 포즈 그리고 눈에서 나오는 불꽃까지... 황금시대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을 완벽하게 재현한 것 같지 않나요?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만든 이는 분명 황금시대 애니메이션 문화에 정통한 천재일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녀에게 300개가 넘는 특수 효과와 동작 모듈을 연결했다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삭제하면 정말 아깝잖아요!
어쨌든... 지휘관님께서 이 아바타를 사용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그러면 좀 더 극단적인 상황을 테스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추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서 좋고요.
헤헤... 제가 전용 스킬도 만들어놨어요.
그럼, 이 장치를 쓰신 뒤, 링크 시스템에 누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