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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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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하늘에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다. 한 여인이 태양을 몸에 걸치고 달을 밟으며 12개의 별이 달린 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사방이 막힌 우리를 깨뜨리듯, 빛줄기가 두꺼운 구름을 뚫었고, 이어서 거센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자 텅 빈 교회 위로 새떼가 날아올랐다.

광풍이 불어오는 가운데 땅 위에서 포복해있던 인간들, 분투하던 구조체들, 그리고 적조 속에서 태어나 살육을 해대던 생물들까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멈춰 서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먼저 눈으로 보았고, 잠시 후 그녀의 기체가 퍼니싱을 감지했다. 퍼니싱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형태로 구조체의 의식의 바다와 적조의 데이터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소란스러운 수많은 데이터와 뒤얽혀 있었다. 그녀가 그 바이러스를 느꼈을 때 무수한 영혼의 고통과 절규를 함께 느꼈다.

그녀가 손을 들고 지팡이를 휘두르자, 퍼니싱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휩쓸어 그녀의 의식의 바다속으로 들어갔다.

댐의 홍수와도 같은 데이터 흐름이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무너뜨렸고, 반대로 그녀의 의식의 바다는 무한으로 확장되었다. 그녀는 우주 속에 떠다니게 되었고 우주의 모든 위성과 퍼니싱은 그녀의 눈이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곳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녀의 행동은 더 이상 자신의 사고와 의식에 의존하지 않았고, 본능과 사명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특화 기체가 엄청난 출력으로 작동했고, 그녀의 몸에서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만약 퍼니싱을 가시화할 수 있다면,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퍼니싱은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았고, 무수한 퍼니싱이 공중에서 모여 파도의 모습을 이루었다. 그녀는 마치 바다를 관장하는 신령처럼 파도를 조절해 자신을 에워싸게 했고, 끝내 퍼니싱은 그녀의 빛에 의해 소멸됐다.

그녀의 의식의 바다가 순식간에 붉은 퍼니싱에 휩쓸렸다.

고통, 절망, 분노. 퍼니싱이 이 행성에 가져온 모든 감정과 기억은 마치 심연에서 들려오는 포효처럼 데이터가 붕괴할 때의 왜곡과 비틀림을 뒤섞어 놓은 것 같았다.

그것들은 가시덤불이 되어 그녀의 의식의 바다 속으로 퍼져 나갔고, 말뚝을 박는 것처럼 그녀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그녀의 가슴에서 대량의 순환액이 쏟아져 나왔고, 인공 심장의 박동에 더 많은 액체가 그녀의 입과 코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그것이 순환액인지 적조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점차 흐려졌지만, 의식은 우주에 뚜렷이 존재했다. 그녀는 형틀에 올려진 신자처럼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녹슨 가시에 찔려 나온 심장의 피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그 순간 마치 영원의 강에 빠져버린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몸에 박힌 가시에는 여러 기억들이 담겨 있었고, 그녀는 순식간에 그 모든 데이터를 읽어냈다.

서로 다른 영혼의 인생들이 그녀 눈앞에 펼쳐졌고, 퍼니싱과 무관하게 모든 데이터가 그녀의 의식의 바다를 차지했다.

구조체는 한때 동료였던 침식체에 가슴을 찔려 죽었고, 떠돌던 청소부는 적조에 뛰어들어 사랑하는 그리움에 응답했다. 태양의 원수는 설산의 정상에서 불에 타 죽었고, 길을 잃은 아이는 포연이 자욱한 숲 속에서 나를 부르며 팔로 자신의 몸을 찌른 인간형 변종을 껴안았다.

1초는 1,000밀리초로, 1밀리초는 1,000마이크로초로 나뉘며 각 측정 단위에서 그녀는 여러 긴 일생을 거쳐 지구 만물 그리고 모든 영혼과 함께했다.

고개를 젖히자 점차 희미해진 시야에서 그녀는 붉은 하늘빛과는 다른 색깔인——잿빛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곁에 있는 나뭇가지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식의 바다 속 다른 왜곡된 데이터처럼 현실 세계에서 잘못 들어와 살아있는 동물 같았다.

품종을 분간하기 어려운 그 어린 새는 갑자기 울음소리를 냈고, 날개를 퍼덕이며 그녀를 데이터 흐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했다.

관목 숲에 멈춰 선 까치는 자신의 시선 속에 손 하나가 흔들리자 푸드덕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난 허리를 굽혀 풀숲 사이에 떨어진 머리띠를 주워들고 한숨을 쉰 후 소리쳤다.

아가씨? 어디 계세요?

내 부름에 관목 숲에서 털이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

칼리!

내가 걸어가자 아가씨가 초원에 앉아 미니정원삽을 잡고 힘차게 흙덩이를 퍼내고 있었다.

난 그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뺨에 묻은 흙을 닦아 주었다.

아가씨 뭘 심고 계신 거예요?

인동화……

아가씨는 그럴듯하게 대답했다.

겨울이 지났으니까, 겨울을 보낸 기념으로 이곳에 인동화를 가득 심을 거예요.

부인

□□, 어서 오렴. 식사 시간 때마다 칼리오페가 널 정원에서 이렇게 찾아야겠니?

정원 밖에서 들려오는 부인의 목소리에 아가씨는 부인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고, 난 서둘러 그녀에게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은 아가씨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또 몇 마디 꾸짖을 것이었다.

나 또 시계 보는 거 잊었네…… 고마워요. 칼리.

부인의 교육으로 아가씨는 항상 예의가 발랐다.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내보이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서 가서 식사하세요. 제가 아가씨를 대신해서 이 새싹들이 양에게 먹히지 않도록 지키고 있을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가씨는 약간 망설였다.

칼리는 우리랑 같이 밥 먹어야 되는데…… 벨이 제 꽃을 먹으면 벌로 저녁밥을 주지 않을 거예요!

아가씨가 원예에 열중하자 부인은 정원 뒤에서 갖가지 식물을 심도록 내버려 두었다. 벨은 아가씨가 나와 시장에 갔을 때 마음에 든 양이었다. 아가씨는 도축될 양을 불쌍히 여겨서 데려오라고 부탁했고, 부인은 정원 뒤에서 양을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이 늙은 양과 내 운명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할머니는 신자였는데, 그녀는 생체공학 로봇의 선진적인 과학 기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시고 그저 경건한 마음이 모든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셨다. 가문은 시대의 물결 속에서 점차 몰락하며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가족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경건한 믿음은 결국 해체될 위기에 처한 거대한 가정을 구할 수 없었다. 거처를 잃은 우리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 오래된 장원을 나온 후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기계들을 마주했다. 나는 심지어 내게 맞는 직업을 찾기도 어려웠다. 누구도 현대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려 하지 않았다.

‘기계가 점차 인력을 대체할지는 몰라도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은 영원히 대체할 수 없단다.’ 그때 엄마는 내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나는 부인을 만나고 나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부인은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몇 달 전 겨울, 부인은 시장에서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나를 만났고 집으로 데려와 일자리를 줘서 지금 이 장원에서 집사로 일하게 했다.

원시적인 설비에 단아한 이 장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시간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난 가끔 주님을 향해 중얼거리던 할머니가 방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고, 내 아이 때의 이름을 불렀던 때가 생각나곤 했다.

매번 정신을 차린 뒤 그곳에는 추억 속의 가족이 아닌, 미소 짓는 부인이 서 있었다.

칼리?

아가씨는 매번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그녀를 정원 밖의 부인 쪽으로 데려갔다.

이번엔 진짜야——벨, 내 꽃 먹지 마!

아가씨의 말에 들려온 대답은 양의 울음소리여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원 밖에는 긴 치마를 입은 부인이 녹색 식물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초봄의 햇살이 은백색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봄이 왔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내가 아가씨를 찾았을 때 그녀는 풀숲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달빛을 통해 나는 아가씨가 팔을 벌려 간신히 벨을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차올랐고,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난 황급히 다가가 웅크리고 앉은 뒤에야 벨이 예상치 못하게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물어뜯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머리카락이 뜯겨 아픈 것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꼼짝도 하지 않고 양이 긴 머리카락을 건초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 녀석! 그만해!

난 급히 양의 입을 떼어 한쪽으로 몰았다.

아가씨, 왜 저를 부르지 않은 거예요?!

……흑……

벨이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요…… 머리카락이라도 먹으면 괜찮을까 싶어서……

아가씨가 눈을 비비자 그녀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였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벨은 너무 늙었다. 여름에 더우면 동물의 식욕도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게다가 벨은 황혼에 접어든 늙은 양이었다. 요 며칠 아가씨는 벨이 걱정돼 줄곧 정원에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에게 생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침묵하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수밖에 없었다.

벨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일 거예요…… 그리고 새로운 여정을 준비 중이라 푹 쉬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여정이요……? 벨이 어디 가요? 제 곁을 떠나야 해요?

벨은 영원히 한곳에 머물 수 없어요. 아가씨, 지금은 밤이 너무 깊어서 이렇게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부인님이 많이 걱정하실 거예요. 우리 우선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엄마 일어났나요?

아가씨는 손을 내려놓았다. 눈물은 여전히 속눈썹에 매달려 있었고, 그녀는 양의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인의 상태를 물었다.

어떻게 엄마가 계속 자고 있을 수 있죠? 그렇게 졸린가요?

……부인께서 요즘 피곤하셔서 푹 쉬셔야 할 거예요.

난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인께서 지금 깨어나셨고 아가씨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부인 침실에 있던 의료진은 이미 떠났을 것이다.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벨이 밥 먹기 싫어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한테 물어봐야 돼요! 엄마는 분명 아실 거예요.

아가씨가 또 껑충껑충 뛰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아가씨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경건하게 기도했다. 신이시여, 일생의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디 세상의 착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모든 것이 처음처럼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비보는 침울한 가을날에 들려왔다.

부인은 여러 해를 버텨왔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녀를 데려간 것은 질병이 아닌 사고일 거란 건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선생님은 맥없이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선생님과 부인의 결혼 생활은 불처럼 정열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이 집에 머물면서 이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 얼굴의 눈물 자국과 그의 표정을 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내 마음은 갑자기 고통으로 가득 차며 현기증을 느꼈다.

난 슬픔을 꾹 참고 비틀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병실에 앉아 흰 천 밑에 있는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을 잡고 있었다. 바로 그 손이 나를 추운 겨울에서 봄날로 데려갔지만 지금은 가을에 나를 내던졌다. 고통은 나를 괴롭혔고 나는 울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 써야 했다.

하지만 내가 아가씨의 얼굴을 본 순간, 또 다른 더 강한 마음이 나를 때렸다.

나는 아가씨가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부인을 깨우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한편으론 자기 때문에 깰까 봐 걱정했다.

그녀의 입술은 창백하고 떨렸다. 눈 밑에는 마른 눈물의 흔적이 있었고, 망연자실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영혼을 잃은 아이처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부인이 아가씨를 모시고 병원에 가던 중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아가씨를 보호하려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고, 착하고 순수한 그 아이가 이게 무엇을 뜻하고 그녀를 어떻게 바꿀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소리를 내어 내가 왔다는 걸 아가씨에게 알렸다. 아가씨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칼리……

그녀의 입꼬리가 떨리면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그녀는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신이시여, 이 강하고 불쌍한 아이를 제발 보살펴 주십시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몸을 떨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엄마는 벨처럼 다시는 깨어나지 않아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울음이 터진 난 입을 열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하얀 침대 시트 위에 놓인 두 손으로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칼, 리…… 미…… 미안…… 해요…… 제가 엄마를…… 잘 보살피지 못한 바람에……

아가씨는 소매를 들어 눈을 닦았는데 그 속에서 우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이게 어떻게 아가씨의 잘못이에요……

난 너무 놀란 나머지 비통함을 돌볼 겨를도 없이 반박했다. 그녀는 울먹이며 얼굴을 들어 내게 억지로 입꼬리를 잡아당기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칼리…… 제가 아빠랑 칼리를…… 앞으로 잘 보살필게요……

그 속에 담긴 강렬한 슬픔과 조심스러운 만류의 의미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신이시여, 전 절대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 아가씨를…… 그녀에게 수많은 약속을 하고 싶었고, 다가가 안아줘서 슬픔에 잠긴 통곡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눈물로 흐려진 시선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아가씨가 슬픈 미소를 지은 것이 부인과 겹쳐지는 것이 보였다.

내가 환각을 일으킨 건지 아니면 신이 정말 강림한 건지 모르겠다. 곧이어 난 부인을 다시 보았다——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처럼 그 위대하고 아름다운 여성은 하늘에서 온유한 빛을 뿜어내며——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여 아가씨를 안았고, 이마에 다정하게 키스한 후 공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가씨는 숲을 보호하는 사람이 되어 각종 작은 동물들을 키우는 꽃집을 열고 싶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초원에 가서 양을 방목하거나 비가 온 뒤 양털이 물에 잠겨 일어나지 못하는 양들을 일으켜 세우는 희한한 꿈을 꾸기도 했다.

선생님의 가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그동안은 부인이 아가씨의 순수한 꿈을 줬지만 이제는 떠나고 없다.

아가씨는 밤새도록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부인의 희생이 그녀에게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잃은 선생님은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일을 마친 뒤에는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바쁜 일’ 때문에 함께 식사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아가씨는 가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난 그녀의 부탁으로 자주 하는 요리를 가르쳐 주었고, 서투르지만 직접 서재로 가서 선생님께 식사하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나와 같은 대우인 ‘거기 두면 돼’라는 말뿐이었다.

아가씨에게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가씨는 지금까지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가씨의 눈을 봤을 때……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엄마를 꼭 닮은 눈동자를 보고 내 설득이 소용없을 거란 걸 알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아가씨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가씨에게 부인께 편지를 쓰도록 제안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아가씨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내가 한 제안이 도움이 되었다는 게 너무 기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이 장원도 겨울의 한기가 물들인 것 같았다.

그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오랫동안 설경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그녀를 데리고 정원에 가서 눈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침내 아름답고 천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선생님께서 나를 서재로 불렀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장원을 위해 최첨단 스마트 관리 AI를 구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난 문득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얼른 대답했다.

선생님, 전 임금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여기서 선생님과 아가씨를 돌보는 걸로도 만족해요.

과학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달한 지금, 굳이 옛 시대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순 없잖니……

하지만 부인께서 살아 계실 때, 선생님도 이런 생활 방식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까?

다급해진 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선생님의 안색이 흐려진 걸 보고 나서야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경솔했어요. 전 선생님과 아가씨가 걱정돼서……

나와 그 아이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어. 게다가 우리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선생님의 눈빛은 계속 반대편에 머물러 있었고 나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요즘 선생님께서 귀가가 자주 늦으셨고, 난 세탁물을 정리하다가 발견됐던 회갈색 머리카락이 갑자기 생각났다…… 여러 가지 징조가 있었다.

난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알겠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래층 정원에서 아가씨가 눈으로 양의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난 아가씨의 그런 웃음이 너무 그리웠다.

벨이 바로 저곳에 묻혀 있는데, 저 묘비는 부인과 아가씨가 함께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곧 새로운 여정을 떠나려 한다.

선생님, 아가씨는 참 착한 아이입니다.

멍청한 나는 이런 말밖에 할 줄 몰랐다.

부디 아가씨를 잘 보살펴 주세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마치 무거운 짐을 벗은 것과도 같았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난 선생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지금 내게 유일한 위로였다.

그럴게. 고맙다. 칼리오페. 그동안…… 수고 많았다.

죄송해요…… 아가씨. 제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가씨와 선생님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난 다시 추운 겨울 속으로 돌아갔다.

난 장원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저임금 일용직을 찾았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걱정된 나는 이렇게라도 머물러서 가끔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반인에게 생존은 언제나 힘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나니 이미 한 계절이 지나있었다.

어느 봄날 새벽, 일을 시작하려고 일어났는데 길거리에 인동화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아가씨를 향한 그리움이 극에 달해 난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은 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온 지역을 가로질러 아가씨의 집으로 갔다.

단지 멀리서 아가씨를 한 번 보고 싶을 뿐이었다. 아가씨는 지금 어떨까? 잘 지낼까? 겨울은 잘 지냈을까?

장원 밖에 도착했을 때, 날은 완전히 밝아 있었다. 난 정원의 난간을 통해 아가씨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머뭇거리며 기다렸다.

신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아가씨가 화분을 들고 정원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을 때, 흥분된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어…… 아가씨, 우리 아가씨. 그새 살이 많이 빠지셨네……

내 마음속은 쓰라림으로 가득 찼다. 난 정말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잡고, 얼굴에 묻은 흙을 닦아주며, 껴안고 싶었다.

아가씨는 이제 혼자서 머리띠를 단정히 묶을 줄 알았다. 그리고 더는 껑충껑충 뛰지 않았고 매우 차분해 보였다. 이런 변화는 불과 몇 달 만에 일어났다…… 그녀는 순진한 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했다.

난 아가씨의 모습을 간절히 바라보며 그녀의 지금 모습을 기억하길 바랬다. 하지만 난 절대 그녀가 나를 보게 할 수 없었다. 아가씨가 내 초라한 모습을 본다면, 틀림없이 또 자신을 탓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작별 인사 때 했던 말, ‘더 좋은 곳이 생겼다’라는 거짓말을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셈이었다.

아가씨는 화단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의 미니정원삽으로 흙을 퍼올리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나는 정원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에 아가씨가 심었던 그 이상한 꽃들은 전부 사라지고 가지런한 정원 녹색 식물과 자동화 기계 원예사가 대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열심히 흙을 퍼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예전과 똑같았다. 다만 얼굴에 흙이 묻지 않을 뿐이었다.

난 그녀가 화분 속의 인동화를 화단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

야——아침 준비는 다 됐어?

2층 창가에 낯선 소녀가 나타났다. 아가씨는 당황한 듯 고래를 들었다.

네, 다 만들었어요…… 부엌에서. 아빠가 오늘 아침에 출근한다고 해서 3인분 밖에 안 했는데……

너 아직도 흙 파고 있는 거야? 그럼 우리 먼저 먹는다?

아가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네, 언니, 그럼 먼저……

창문이 무겁게 닫혔다.

난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바로 뛰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왜 아가씨가 아침을 준비해야 하는지, 저 여자아이는 누구인지......

아가씨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새싹을 심었는데, 표정이 좀 쓸쓸해 보였다.

……

어떡하지? 외부인의 신분으로 저 장원의 주인에게 따질 수 있을까? 내가 아가씨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깊은 무력감과 부인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고, 몇 시간 동안 철책 밖에서 주저하며 배회했지만 장원에 발을 들여놓을 용기가 없었다.

난 꿈속에서 아가씨의 그런 쓸쓸한 표정을 볼 때마다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난 다시는 정원에서 아가씨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선생님의 우편함에 넣은 편지에도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난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꽃집을 차렸고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었다.

아가씨의 회신을 받지 못한 죄책감과 불안함에 나는 좀처럼 난 그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새로운 가족과 동반자가 생겼을 수도 있고, 그 순간에 내린 성급한 결론이 내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꽃집 문을 연 날이면 진열창에 아가씨가 좋아하는 꽃들로 잔뜩 진열해놨다. 언젠가 아가씨가 이곳을 지나칠 때 들어오기를 기대하면서.

생활이 점점 좋아지면서 이제는 돌아가서 아가씨를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커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종말이 찾아왔다.

내가 ‘퍼니싱’이라는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일상 속의 기계들이 전부 사람을 죽이는 괴물로 변한다는 것뿐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모두 피난을 갔고, 기계는 길거리에 버려져 산더미로 변했고,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계속 정부 발표가 흘러나왔고, 내 꽃집은 이때 정말 농담하는 것처럼 변했다.

아가씨는 부자 집안인데다가 재산도 많으니 선생님이 분명 그녀를 안전하게 보호할 거.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난 짐을 싸서 피난처로 향할 때 마지막으로 아가씨의 장원으로 갔다.

멀리서 군용차 한 대가 아가씨의 집 앞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를 보호하러 온 장교일까? 아가씨는 분명히 안전할 것이다.

난 정원을 자세히 바라보았다——정원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오랫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은 어둡고 허름한 모습이 되어 있었고——화단 구석에는 아가씨가 심은 인동화를 볼 수 있었다.

식물은 이미 완전히 말라서 회색 흙벽에 마치 표본처럼 휘감겨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비둘기 한 마리가 시든 식물 옆에 멈춰 서서 힘차게 울부짖더니 빙빙 돌며 날아갔다.

오랜 방황 속에서 나는 시간관념을 잃었다. 종말의 고난은 내 감각을 흐리게 했고, 그리움만이 내가 한때 인생을 살던 인간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인간으로서의 고난은 견딜 만했지만, ‘퍼니싱’이 찾아온 뒤로 인간은 더 이상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었다. 모두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야수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 주둔지에 적조가 덮쳐올 때, 그 안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주위의 청소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칠 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환각을 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신이 강림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난 갑자기 부인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흐릿하고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마치 성녀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녀의 포옹을 맞이했고, 그건 내 일생 최후의 해탈이었다. 그때, 기적처럼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그 얼굴은 부인이 아니라 어른이 된 아가씨였다.

아가씨가 분명 세상 어딘가에서 그녀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난 기쁨에 겨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