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체 정비실 문 앞에 선 크롬은 정비실에 켜진 등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나는 동료가 내 앞에서 죽게 하지 않는다.
우린 버려질 운명입니다.
당신이 지금 저를 구한다고 해도, 저는 미래에 인간에게 버려질 겁니다.
왜 그곳에서 죽게 두지 않았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 거다.
왜? 우리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손상되면 공중 정원의 이익이 손상되니까?
당신은 구조체 정비실 사람들의 태도를 한 번 봐야 됩니다... 그들이 부상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내 팀원이 한때 그곳 의사였다.
그는 예전에 "너는 너니까, 중요해."라고 말했다.
내가 너를 구하는 것은 네가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개체로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라도 우리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건 구조체가 되었어도 마찬가지지.
신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든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
나는... 동료가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구조체가 버려지는 미래 또한 받아들일 수 없고.
……
이봐.
너는...
갑자기 눈앞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오른팔은 지지대로 가슴 앞에 고정되어 있었다.
2분대 리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크롬의 눈이 자신의 팔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 구조체 대장은 웃으며 다른 손을 흔들었다.
팔이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습니다. 다행히 내 총이 빨랐지만.
이건... 지금 구조체 정비실이 만원이라서 우선 응급처치를 받은 겁니다. 그들이 한가해질 때 점검받아도 늦지 않습니다.
근데 당신은 왜 여기에?
나는...
머뭇거리다가 크롬은 그때 구조체가 자폭하여 임무를 완성하려 했던 일을 대략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그 녀석은 아직도 안 나왔습니다.
그를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크롬, 그가 무사히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
아직 부족해.
지금 구조체 한두 명의 생명을 구해도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날 거다.
제대로 해결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도 그들을 절망으로부터 구할 순 없다.
침식체의 무리에서 끌어낼 수는 있어도 그들을 심연에서는 끌어올릴 수 없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대단하네요. 저희는 그런 생각 한 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끝이 없는 전투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지쳤으니까요.
어휴... 그는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죠. 옛날에는 매우 상냥했고, 실없는 농담도 좋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전에 속해 있던 소대가 어떤 정찰 임무 중에 전멸되었죠.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마침 그가 적조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겨우 그를 막았는데 그 이후로 그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그 임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비가 끝나고 기지로 돌아와 보니 그들 원래 소대의 지휘관은 승진해서 새로운 부대로 전근됐으니까요.
구조체 대장의 이야기를 듣고 크롬은 자신의 가슴이 갑자기 조이는 것 같았다.
버려진 건가...
아마도 그가 이미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도구"일 뿐이니, 쓰고 버려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지구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우리의 사명을 다하면 인간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도구...
그래서 그처럼 전투 의지를 잃고 모든 것을 빨리 끝내려고 한 것도...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은 아닙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이 없었던 건가.
구조체 대장은 혼자 중얼거리는 크롬을 쳐다보았다.
오래전 저희 소대는 침식체에 의해 공격당한 주둔지의 난민 철수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었죠.
근데 저희의 이동 계획에 문제가 생겨서 대량의 침식체가 매복해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난민들이 안전 구역에 도착하도록 엄호했고, 또한 침식체의 방해를 뚫고 주둔지에 갇힌 아이들을 구출했습니다.
총알이 쏟아지는 와중에 아이를 안고 안전 구역으로 돌아왔는데,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자 그 아이는 나를 보고 펑펑 울었죠.
"괴물"이라고 소리치면서요...
강가의 비친 모습을 보고서야, 제 온몸이 파편에 찢기고 포화로 인해 화상을 입은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얼굴의 경우, 머리를 스쳐 지나간 유탄 파편의 온도가 너무 높아 오른쪽 얼굴의 인조 피부가 거의 벗겨져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이미 일어서지도 못했었겠죠.
저는 금방이라도 침식체 대군에 합류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 아이 앞에 서 있었던 거죠.
... 그것을 깨달은 순간, 제 의식의 바다가 격렬하게 한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이곳으로 보내졌죠.
그 때 당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의사가 저를 치료해 줬습니다.
그는 정신이 혼미해진 저의 불평을 진지하게 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인내심 있게 저를 위로해 주었죠.
그 순간 저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저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사람과 구조체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라고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래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린 원래부터 동료잖아요.
인간은 미지의 물건에 대해 먼저 공포심과 경계심을 품는 법이지.
그들이 이러는 건, 한 번도 구조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험담으로 인해 구조체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은 구조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조체이니까 전장과 구조체 정비실을 오가며, 임무를 받고, 임무를 완료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이나, 윗분들은 공중 정원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으니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요.
퍼니싱을 피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다행이니, 인간과 구조체의 관계를 생각할 여유가 없죠.
침묵하는 크롬을 보고 구조체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의사가 부르네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연합 작전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고, 침식체가 점령한 대형 공장은 파괴됐으며 임무에 참가한 지휘관은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 중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잃은 구조체의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전자 스크린에서는 지휘관 승급 정보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연설이 흘러나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크롬은 주먹을 쥐었다.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도, 그들을 절망으로부터 구할 순 없어."
"침식체의 무리에서 끌어낼 수는 있어도, 그들을 심연에서는 끌어올릴 수 없어."
"설령 구조체가 되는 선택을 했어도 그저 규칙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업적을 획득하는 건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아."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너는 과거 동료의 행방조차 묻지 않았다."
뭘 망설이는 거지?
넌 누구지?
난 너야.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너는 네 결정이 잘못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 또 너의 선택이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왜냐하면 너는 아직 스스로 결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 너의 모든 행동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인간이라면 네 팀 동료들을 위해 그들이 가진 본래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버려지기만 했던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너는 생각하고 있어.
구조체로서, 소대의 리더로서는 절대 권력은 없어. 인간의 완고한 편견과 오만함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을 거야.
"랭스턴"으로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자원, "크롬"으로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힘...
이 모든 것을 조합할 수 있는 조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반드시 해낼 거야.
기억은 물에 빠진 돌처럼 잔물결과 함께 퍼져나갔다.
작업자한테 들었을 거야. 나는 요한·스미스다. 오늘부터 네 아버지다.
……
왜 그러지? 이제 가야 한다.
아직...
금발머리의 남자아이는 어두운 방을 보았다. 책상 위에는 그가 반밖에 치우지 않은 짐이 있었다.
오늘부터 너는 랭스턴·스미스다.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는 거야. 이제 저것들은 필요 없어. 여기서 뭔가를 가져갈 필요도 없다.
필요 없다고요...?
네가 예전에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앞으로 무엇이 되느냐다.
앞으로 내가 너에게 남겨야 할 것과 버릴 것을 선별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겠다.
... 알겠어요.
스미스... 씨.
문이 닫히고 낡지만 줄곧 소중히 여겼던 이야기집이 영원히 책상 위에 남겨졌다.
"스미스"...
왜 저는 스미스가 되어야 하죠?
왜냐면 너는 이 요한·스미스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가장 완벽한 조물이 되어 나의 모든 것을 이어받아야 한다.
"완벽한 조물"이란 무엇인가요?
모든 스미스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 네가 진정한 "스미스"가 되면 자연히 이 문제의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 찾아서 스미스가 되어라.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
구조체?
여기가 네가 다음으로 가야 할 장소다.
너는 구조체의 원리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겠지. 개조로 병사가 되어 지구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존재.
랭스턴, 너는 그들을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조체는 "영웅"인가요?
……?
너는 왜 이런 무의미한 문제들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지? 기만을 목적으로 생겨난 허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면 의장님이 구조체는 "희망"과 "불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영웅"이란 것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다. 만약 지도자가 대중이 자신의 모든 것을 무상으로 바치는 것을 필요로 한다면 대의명분은 무엇보다 좋고 저렴한 도구이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야 한다.
지휘관이 되어 공을 세우고 실권을 손에 넣은 뒤 더 높은 곳으로 가라.
이것이야말로 네가 "스미스"가 되어 해야 할 일이다.
정말 그런 걸까요?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 알겠습니다.
당신의 아들인가? 요한.
처음 뵙겠습니다.
자네 아들이 시뮬레이션 테스트 기록 중 최고 점수를 냈다고 들었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답군. 역시 미래의 스미스 계승자다워.
때가 되면 잘 부탁하네.
……
스미스 저택에는 손님이 자주 찾아온다.
대부분 시간에 그는 공부를 했고 가끔 수업을 가거나 귀가하다 방문한 손님과 마주치면 그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매일 반복되는 "스미스"로서의 수행과 "랭스턴"으로서의 일상이었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손님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스미스에게 훌륭한 계승자가 생겼다고 칭찬했다.
다만 그에게는 "스미스"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 아부와 칭찬은 "스미스"에게 하는 것으로, 그는 아직 "스미스"가 되지 못했다.
계속 반복하고,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시간 낭비다."
"육체로 불리는 신체를 내던진 후 네가 남은 그 부분."
"설령... 전쟁에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미래 따윈 없을 것이다."
"당신의 존재는 윗분들이 단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장식품이다."
"승리는 인간의 것이다."
랭스턴은 리더로 길러졌다.
그때의 그에게 있어서 "구조체"는 점차 시뮬레이션 전투에서의 아군 데이터이자, 필요한 자원이자, 전투를 좌우하는 카드로 변했다.
그러나 구조체가 되어 전쟁터에 나간 뒤에야 그는 구조체가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도 아프고 힘들고, 기쁜 일에 웃고, 슬픈 일에 울기도 했다.
경멸, 시기, 심지어 경계, 두려움까지. 평소에는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 존재했고 전사들의 의지를 좀먹고 마음을 마비시켜 갔다.
인간은 늘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특히 고위직에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구조체에 대한 인식은 그들은 그저 지구를 되찾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구조체와 인간의 차이는 분명 신체의 구성만 다르다는 데 있었다.
비록 더 이상 피와 살로 구성된 몸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인간이며, 그들은 마땅히 동일한 미래를 가져야 한다.
언젠가 인류가 지구를 되찾았을 때, 역사에 새겨지는 것이 인류의 이름뿐이어서는 안 된다.
만약 구조체와 인간이 공생하지 못하고, 간극이 깊어지며, 시기가 가득하면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인간으로서 그 연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는 전투를 역전시킬 수 있는 정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구조체가 되지 않았다면 그는 구조체가 받는 불평등 대우조차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과 구조체는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필요하다.
어쩌면 인간과 구조체의 양쪽 시각을 동시에 가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발언권을 얻으려면 우선 충분히 강해져야 했다.
그것이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단이라면 그는 "자신"을 이용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통신 채널을 켜고 통신 요청을 보냈다.
여기는 차징 팔콘 소대의 크롬.
아시모프 씨.
벌써 특화 기체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우연히 아버지와 연회에 참석했을 때에 관련된 소문을 들었습니다.
뭐, 네가 날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내가 초대했을 거야.
의심할 필요없이 너는 확실히 이 항목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야.
하지만 특화 기체의 대가를 알아본 적 있나?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관련된 리스크도 이미 알고 있고요.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그럼 내가 이 기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이야기할 테니까 들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