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외전 스토리 / 말을 놓는 자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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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이 스미스 저택에 다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는 묘한 그리움을 느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적이 없던 그는, 구조체가 되면서부터 거처가 차징 팔콘 소대의 휴식실로 바뀌었다. 요한과의 연락은 대부분 통신에 의해 이루어졌다.

집안에 장식품은 그가 떠나기 전과 다름없었고, 심지어 꽃병과 그림조차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과 이곳 사는 사람이 함께 차가운 저택에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서비스형 가정용 로봇 R2

안면 스캔 완료. 신분 인증을 진행합니다. 신분 인증 성공. 구조체, 크롬.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

다녀왔어.

서비스형 가정용 로봇 R2

스미스 님께서 크롬님을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 알겠어.

크롬은 로봇에 미소를 지었다. 서재로 가기 전 그는 로봇의 동그란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스미스 씨.

특화 기체에 관한 일은 니콜라로부터 들었다.

특화 기체의 리스크는 통제하기 어렵고, 배후가 복잡하기 때문에 해당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기 전까지 네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신차리고 내가 항상 너에게 말했던 것처럼 쓸모 있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터득해야 한다.

제가 오늘 온 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저는 특화 기체 실험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너도 언제까지나 척후 소대의 구조체 대장으로서 남에게 관리받고 싶지는 않겠지.

너는 내 아들이다. 언젠가 너도 경영진에 오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의 어느 날 구조체의 정체성을 지우고 실권을 장악해야 한다.

크롬이 눈을 아래로 향하고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키자 체스판 홀로그램이 서서히 나타났다.

실례하지만 스미스 씨, 저와 체스 한 판 두시겠습니까?

왜 그래야 하지?

실제로 제가 작전하는 모습을 아직 보신 적이 없으시죠.

중요하지 않은 임무라면... 작전 브리핑들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나는 결과만 보기 때문이지.

더군다나 넌 나와 체스를 뒀었는데 나에게 두 번이나 졌지.

그 이후로 정진하려고 계속 노력하였으나, 제게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만약 제가 이것이 우리가 두는 첫판이라고 한다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 당신에게 대국을 신청한 것은 랭스턴이 아니라 크롬입니다.

당신에게 지금의 저의 생각과 지금까지의 진정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 대한 많은 의문도 이번 대국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굴욕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란다.

크롬은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그리고 요한에게 흰색을 선택하고 먼저 두라는 사인을 보냈다.

요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폰, e2에서 e4로 이동.

체스 말의 허상이 체스판 위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건...)

(아버지와 처음 대국했을 때, 그가 사용했던 시작이다.)

폰, e7에서 e5로 이동.

아직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군.

당신과 했던 모든 대국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크롬을 주시하면서 체스 말에게 계속 지령을 내렸다. 크롬은 마주 보며 여유 있게 대응했다.

검은색 폰은 d6으로 전진하여 방어 체제를 구축했다.

플레이 스타일은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군요.

너도 마찬가지야.

바뀔 줄 알았는데.

당신이 원하는 대로요?

……

(아직 때가 아니다.)

술잔이 오가며 화려한 옷을 입은 인간들이 음식과 꽃이 놓인 원탁 사이를 누비며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메마른 웃음과 비위 맞추는 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와 청각 시스템에 울려 퍼졌다.

옛 풍경이 다시 현실로 다가온 듯, 이곳에 모든 것은 황금시대의 연회와 다를 바 없었다.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때, 일부 사람들은 에덴의 정상에서 지구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지옥에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 너무나 큰 낙차에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기 있어선 안 된다.

탄창에서 탄약이 나갈 때의 냄새, 흙투성이인 참호, 칼날과 맞닿아 찢어진 피부야말로 지금의 그에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이처럼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호화로운 호텔 연회장에 서 있으며 심지어 손에 와인까지 들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구조체로서 식사를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

랭스턴.

사고가 돌아왔다. 그는 요한·스미스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크롬

죄송합니다. 스미스 씨.

요한

따라와라.

요한은 멍 때리고 있는 크롬을 탓하지 않았고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크롬은 요한의 뒷모습을 주시하다가 와인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뒤따라 갔다.

이쪽이 공중 정원의 사무관, 그리고 의회 의원이다. 너를 계속 만나고 싶어 했다.

양복을 입은 두 중년 남성은 요한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옆에 서 있는 크롬을 바라보았다.

랭스턴·스미스——당신 이름을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엘리트 소대를 이끌고 23곳의 침식체 밀집 지역을 추적해 파괴하고 5개 거점을 탈환하는 뛰어난 군사 업적을 쌓으셨다고 들엇습니다. 이전에는 파오스 군사 지휘 학교의 학생 수석, 성적도 1등... 역시 요한·스미스 씨의 아들이시군요.

이렇게 훌륭한 후계자가 있으니 스미스 씨도 안심할 수 있으시겠죠.

... 과찬이십니다.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겸손도 미덕이죠. 다만 예전의 스미스 씨에게서는 없었던 것 같았지만요.

사무관은 크게 웃으면서 크롬의 어깨를 툭툭 쳤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방황했다.

군중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스미스의 아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었는데, 정말 소문처럼 도망쳐서 구조체가 됐군.

구조체가 되었으니... 아마 실권을 장악하기 어려울 거야.

보아하니 "스미스"는 이미 운이 다한 것 같은데, 설마 구조체에 희망을 걸진 않겠지?

인간이 없다면 이 구조체들은 주인 없는 꼭두각시야.

……

봤나?

구조체로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너는 똑똑하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거다.

전쟁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사명을 다한 구조체들을 기다리는 있는 것은 어떤 결말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나는 너에게 항상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네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 후의 일이다.

"스미스"는 누구보다도 먼 미래를 내다본다. 이것이 바로 "스미스"가 재난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중요한 것은 혈연이 아니라 이름의 계승이지. 구조체든 인간이든 너는 이 요한·스미스가 선택한 후계자라는 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너는 오로지 전진하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완성하여, 나에게 너의 답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구조체가 된다는 길을 선택한 이상...

너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어려움과 선택을 마주할 것이다.

075호 도시 주변의 전투를 네가 훌륭하게 해냈다고 니콜라로부터 들었다. 너의 지휘 아래 구조체 사상자도 제일 적고 위협 배제율은 최고로 높으며 방해 신호를 받는 상황 속에서 적조의 정보를 공중 정원에 보냈다지.

……

지금까지의 모든 임무를 너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완수했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승리를 거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건가?

저는 구조체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 지금의 동료는...

구조체들을 접하더니 너도 순진해진 거냐?

요한은 먼 곳에 있는 연회장을 보면서 계속 말했다.

크롬, 이것이 진정한 세계다. 과거든 현재든 권력이 가장 중요하다.

대철수 시기에 귀중한 보급함과 엘리트 병사들이 의미 없는 물건을 운반하는데 사용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윗분들"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윗분"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구조체 계획을 진행하기는 커녕 공중 정원은 이륙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에서도 권력이 가져오는 이익을 무시할 수 없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네가 해야 할 의무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무의미한 소꿉놀이는 이제 그만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라.

마지막 말을 마치자 요한은 곧바로 크롬의 곁을 떠났다.

"과거의 모든 것을 다 버려라. 너에게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때 아버지가 남겨주신 것도 뒷모습 뿐이었다.

"승리 이후의 일이라... 확실히 생각해 본 적 없다."

누군가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카무이라면 정말 그의 말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그것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만약 반즈라면 그가 어떤 미래를 계획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휴가 하나는 제대로 자고 있는 도중에 휴식실에서 끌려 나와 임무를 수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마 이전 부서로 돌아가 전쟁 전에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는 항상 잘해왔다.

그가 보기에 모든 사람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긴 후의 미래가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울까?

연회 속 권력자의 얼굴이 다시금 크롬의 의식의 바다 속에 떠올랐다.

"진정한 세계"...라고?

그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불안정한 환영이었다.

제가 있는 곳은 이런 세상이 아닙니다.

크롬은 빠르게 연회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신경 쓰이는 이상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