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판테온의 존재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해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거대한 둥근 천장에 화려하고 거대한 크리스탈 램프가 여러 번 굴절돼 그 위에 그려진 <종말의 심판>을 비추었다.
그것이 진짜 행적과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문헌의 기록과 부합하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거기에 있으면 <신곡>의 한 장면을 새긴 기둥처럼 그 절정의 찬란함과 웅장함에 힘을 보탰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화려함이 널려 있는 이곳이, 이 세상의 마지막이자 동시에 가장 환상적인 오페라 극장이 아닐까 싶다.
이런 곳이 공중 정원에 존재했고 인류의 마지막 에덴에 있었다.
안녕, 내 사랑하는 동포여.
그대들의 미래에 사랑과 빛이 가득하길.
병사 역을 맡은 오페라 배우는 피투성이가 된 채 마지막 대사를 천천히 내뱉으며 먼 길을 떠나는 전우들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전한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진홍색 벨벳 커튼이 내려오면서 오페라 <아카디아의 대철수>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불빛이 차례대로 꺼졌고 빈자리가 없는 오페라 극장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천둥과 같은 갈채가 극장을 휩쓸었다.
옷차림이 단정한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방금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한줄기 빛이 어둠을 뚫고 무대를 환하게 밝혔다.
둥근 천장에 <종말의 심판>의 정중앙에는 한 구멍이 있었고, 인공 '하늘의 빛'이 바로 그곳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 빛은 어느새 무대 한가운데 우뚝 선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이 오페라의 손색없는 핵심 인물이자, 인류의 찬가라 할 수 있는 이 오페라를 창작한 세레나였다.
그녀는 눈앞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지었고, 시선은 돔, 벽화, 기둥을 차례로 훑으며 객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본 듯 시선이 관중석 한곳에 닿자 전기처럼 빠르게 거둬 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향해 조금의 흠도 없이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다.
장황한 폐막 인사와 감사 인사 없이 금빛 꽃가루가 떨어지고 모든 관객이 퇴장할 때까지 그녀는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마지막 관객이 자리를 뜨자 그녀는 허리를 펴고 다시 한번 사방을 둘러본 뒤 망설임없이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잠시만요——
그녀의 외침을 들은 구조체는 서서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관객들과 달리 반짝이는 구두도 하얀 자수 셔츠도 정숙한 예복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구조체였다. 제식 구조체 복장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모든 것이 그 웅장한 오페라 극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이번 오페라에 특별 초청된 관객 중 한 명이었다. 오페라 극장은 일반 시민 외에 가끔 군부대 장병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차원에서 티켓을 증정했다.
제작자 세레나의 요청으로 이번 오페라의 일부 티켓은 구조체 병사들에게도 보내졌다.
무슨 일이지?
존칭은 없었고 거친 질문에 가까웠다.
그의 눈앞에는 공중 정원의 유능한 최연소 오페라 제작자가 아니라 무명의 하찮은 사람이 서있는 듯했다.
혹시 방금 공연에 대해 불만을 느낀 부분이 있으신가요?
내 견해를 천재 오페라 제작자가 예의를 갖춰 물어볼 가치가 있었다니 설마 모든 관객이 예술가 당신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할 때까지 모두의 피드백을 물어보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방금 왜 박수를 치지 않았는지 궁금할 뿐이에요.
그녀가 지금 내뱉은 말은 옆에서 들르면 방금 상대방이 말한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오만한 것 같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상대방의 두 눈만 똑바로 쳐다봤다.
방금 그 어처구니없는 상상에서 나온 오페라에 대한 박수를 말하는 거야?
구조체가 경멸의 웃음을 피식 터뜨렸다.
왜 웃으시는 거죠?
군대에서 내게 준 표창장이 무슨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이런 모욕을 자초하는 끔찍한 곳의 티켓이었다니.
그리고 지금 그 모욕을 자초한 사람이 내 눈앞에 서있지. 왜 나더러 화가 났냐고 물어보면 이보다 비아냥거리는 건 없을 거야.
무슨 말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저는 당신에게 어떤 실례도 하지 않았는걸요.
당신이 선보인 그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페라는 이미 충분히 실례했어.
오페라의 어디가 당신을 불편하게 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내가 물어보고 싶어. 그 오페라를 통해 뭘 표현하려 했던 거지?
영웅의 용감함을 노래한 건가? 아니면 전쟁의 위대함을 찬양한 건가? 그게 아니면 고인을 내려다보며 느낀 자신의 슬픔과 동정을 토로한 건가?
내려다보며 느낀 슬픔과 동정... 아니요...
변명하려 하지 마. 창작자의 진의는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마련이야. 당신이 나 같은 군인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게 제가 여기 서 있는 이유예요.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당신이 그 후퇴의 직접적인 경험자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는 단지 당신의 인정을 받고 싶을 뿐이에요.
병사는 또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왜 내가 박수를 치지 않냐고? 왜 당신이 만든 무대를 보러 돌아가지 않냐고?
당신은 으리으리한 오페라 극장 무대에 전후의 폐허를 만들고 싶어 석고에 총알 구멍을 조각하고 망치로 갈라진 틈을 만들었지. 나는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열심히 꾸며서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맞아, 완벽했지.
그 폐허는 너무 아름다웠어. 당신이 만든 건 파르테논 신전의 파손된 모습이지 전후의 폐허가 아니었어.
당신이 그 폐허를 장식하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은 불길로 타버린 흔적과 피로 물든 얼룩 그리고 쌓여있는 사체인지 몰랐겠지...
당신의 폐허는 아주 깨끗했어. 당신의 머릿속의 새하얀 상상처럼 말이지.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어.
전선에서 세상이 공중 정원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갈 줄 알아? 당신 공연의 그 성대한 추모회는 전선에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추도사를 읽고 장례 음악을 연주한다고? 우리는 산 사람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죽은 사람을 위로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그런 형식적인 것들만 있었다면 여기서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 거야.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질문했다.
마지막 장면은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
세레나가 한발 물러섰다.
분명 자신이 직접 그 오페라의 대사 모든 구절을 썼고 그 오페라는 방금 막을 내렸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는 모든 것의 윤곽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마지막에 지구상에 남은 병사들이 죽기 전, 이미 지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축복을 보내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후회 없는 죽음, 후회 없는 헌신, 미래에 대한 기원, 그것은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떳떳하고 완벽한 커튼콜이었다.
——'안녕, 내 사랑하는 전우여.'
——'그대들의 미래에 사랑과 빛이 가득하길'
병사는 오페라 배우가 대사를 읽을 때의 가락을 한 자 한 자 흉내 내며 억양까지 따라 했다. 마치 놀리는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웃긴 오페라였어.
들어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버림받은 자들이 고향을 탈출한 겁쟁이들에게 축복을 보낸다는 게 이게 무슨 신세대의 우스갯소리지? 이보다 더 모욕적인 게 있을까?
공중 정원에서 태어나 부유한 생활을 누리며 사는 당신 같은 사람들만이 그렇게 웃긴 '코미디'를 쓸 수 있겠지.
잘 들어. 당신이 공연한 우스꽝스럽고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배꼽 잡게 만드는 코미디 그리고 당신이 설명한 모든 것은 전부 당신의 환상이야.
난 당신과달리 가혹한 시간을 보내왔어. 자신의 육체와 인간성, 존엄마저 버린 대가로 겨우 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포상으로 주어진 것이 이 에덴의 티켓이야.
난 구조체가 되었지만 눈을 감으면 의식의 바다에서 지난날 망령의 울부짖음이 여전히 떠올라.
내 가족은 땅바닥에서 죽었어.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없었지.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눈길에 축복이라는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어. 그저 원한만 남아 있을 뿐.
버려진 사람은 증오 뿐이고 떠난 사람은 후회 뿐이었어. 그 에덴은 원한과 수많은 시신에서 태어났지.
전쟁에서 사람은 짐승과 같이 무의미하게 죽을 뿐이야.
신앙도, 명예도, 최후의 용서와 축복도 존재하지 않아.
오직 끝없는 증오와 분노르만이 있지.——젠장, 우린 왜 모든 걸 직면해야 하며, 왜 하필 우리가 거기에 서 있어야 하고, 왜 우리는 그렇게 모든 것을 소멸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 거지?
생명력이 차가운 숫자로 변할 때 전쟁의 공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인간이 인간도 될 수 없을 때 전쟁의 무력함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우리는 사람들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버렸지만 지금은 이렇게 우리의 고난을 마음 편히 소비하며 제 딴엔 감정 이입과 허영심을 채우고 있지.
지옥을 본 적 없는 사람이 나 같이 삼도천을 다녀온 사람과 이런 곳에서 전쟁과 평화를 노래한다고? 그리고 내 앞에 서서 왜 박수를 치지 않냐고?
난 지금껏 그것보다 더 오만한 '노래'를 들어본 적 없었어. 난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여기서 당신에게 예의를 갖추며 얘기하는데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내 모든 교양을 다 쏟아부었거든.
병사는 미련 없이 돌아서 그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세레나는 텅 빈 광장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얼굴에는 모욕을 당한 뒤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고개를 살짝 젖힌 뒤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레나는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부모는 딸의 첫 번째 오페라 공연의 성공을 축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족 전체가 기쁨에 겨운 가운데 그녀만이 세상을 떠난 외딴 섬처럼 자신을 방 안에 단단히 가두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고막에 전해졌다.
그 병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며 한번 또 한번 그녀의 심장을 눌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큰소리로 털어놓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의 친구인 아이라가 이런 초라한 자신을 받아들일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은 스스로 천천히 삼켜 소화해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만했어.
오만했어...
그녀는 입으로 씹어 다 삼키는 것처럼 그 말을 되뇌었다.
세레나는 눈을 감았다.
그때 왜 그렇게 길게 멍하게 있었을까? 폐막 감사 인사도 잊은 채 말이야.
그녀는 생각이 났다.——긴장해서가 아니라 부끄럽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심판의 '하늘의 빛'이 둥근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며, 모든 사람의 죄악은 그 빛 아래서 숨을 곳이 없었고, 그녀가 천장 위의 그 <종말의 심판>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이미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뼛속까지 파고드는 오만함.
그녀는 자신이 대본을 썼을 때의 심경을 왜 떠올릴 수 없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심경이란 건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고 깊은 생각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녀가 처음으로 어떤 과거의 기존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쓴 각본이었다. 그녀는 낯선 시대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뒤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훌륭함을 오만하게 묘사했다.
글을 쓸 때 이미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는 마지막에 그랬던 것처럼 박수를 받을 때 안절부절 못하며 무대에 섰다.
그것들은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그 우뚝 선 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차갑게 둘러보며 기립 박수를 치는 구조체 병사들에 닿았을 때, 안절부절못하던 그 불안함이 부끄러움이 되어 폭발해 그녀의 등을 내리눌렀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오페라와 음악을 사랑한 그녀는 처음엔 작은 무대에서 로봇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 오페라 공연을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 그녀는 자신의 오페라가 나중에 진정한 무대에 올라 진정한 배우가 연기할 것이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꿈이 실현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무대에 서서 찬사를 받을 때는 끝없는 막막함과 공허함 뿐이었다.
왜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걸까? 왜 그들은 모두 갈채를 보내고 있는 걸까? 그들은 도대체 이 텅 빈 오페라에서 어떤 감동을 받은 걸까?
그녀는 아무것도 주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엇을 더 생각했을까?
...알 수 없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바깥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공중 정원인데 안은 이렇게 복고적인 오페라 극장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그것은 현대 인류의 고전과 우아함에 대한 모든 환상을 충족시켜 주었고, 그 극장에서 파란만장한 역사의 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 시대의 마지막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대가 진보할수록,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복고를 고귀함의 상징으로 삼았다.
희소한 것은 언제나 소중하다는 이 법칙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으로 만든 화려한 것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녀도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이곳을 동경해 왔었다. 그때는 그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기둥 위 신곡에 관한 부조에 닿았을 때, 그녀는 마침내 그 때의 두근거림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갈채 소리에 숨어 있는 짐승의 낮은 울부짖음을 들었다.
암컷 늑대와 사자 그리고 치타였다.
그건 그녀 마음속의 짐승이었다.
알고 보니 그때부터 그녀는 이런 화려함 뒤에 담긴 진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었다.
마지막 인사는 감사가 아닌 '기도'였다.
아니, 그것은 '기도'가 아니었다. 그건 단순히 '기도'에 그치지 않았다.
종교의 예법과 상관없이, 그것은 가장 독실한 신자이자 자신의 가장 순수한 신앙에 대한 마지막 작별 인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페라 극장을 뛰어나가 그 병사에게 향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원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손목의 단말기에 불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생각이 뚝 그쳤다.
그건 비밀 메일이었고, 자신이 각본을 쓰기 전에 봤던 테스트에 대한 답장이 온 것이었다.
의미 없는 인사말을 대충 넘긴 뒤 세레나의 담담한 눈빛은 마지막 결론 위에 멈췄다.
——탄탈-193 공중합체 상성 정도 양호, 구조체 수술 성공 확률 최종 판정: 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