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한 어둠이 걷히고 난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지금 내 육체는 더 이상 잠이 필요하지 않지만, 난 여전히 인간일 때의 생활 리듬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지하까지 관통하는 터얼를 통해 나는 황금시대에 사라졌어야 할 익숙한 도시에 도착했다.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는 구룡 상회의 벽돌과 기왓장으로 누구도 모르는 "무덤"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구룡 순환 도시 바로 밑에 편안히 누워, 자신의 긴 수면을 어떠한 존재에게서도 방해받지 않았다.
인공 태양이 지하 건물 위를 비춰주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밤과 낮을 만들어주었다.
푸른 허상이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이곳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한 무리씩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복도를 천천히 누볐다. 주위의 경치가 왜곡되고 익숙한 누군가가 내 곁에 나타났다.
곡님, 정말 그 제안을 받아들이실 겁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 우린 각자에게서 얻을 게 있으니까.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만약 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곳을 출입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들이 사라지는 거니까. 그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
물론 별일 없을 거야. 내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건...
내 백성들에게 대피처를 제공하고 백성을 대신해 위험을 부담하는 게 왕의 직책이니까.
곡 님은 항상 그러셨죠...
말을 마친 백규는 푸른색 빛으로 변했고 그녀 곁에서 사라졌다.
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말을 마치자 백규의 목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압니다. 구룡의 모든 백성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백규와 헤어진 뒤 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복도를 걸었다. 시각 모듈은 수많은 건물을 스캔했고, 난 손을 복도의 난간에 올려두었다. 난 눈을 감고 난간을 따라 걸어갔다. 추억이 내 의식의 바다를 헤집는 걸 받아들이면서.
좌측 어깨, 가슴, 복부, 유효 득점. 우승자, 곡.
역시 곡님이십니다. 1주일 사이에 용창을 쓰는 법을 마스터하시다니. 이제 저희 중 누구도 곡님의 상대가 될 수 없겠군요.
다 스승님이 잘 가르치신 덕분입니다.
아이참, 포뢰파에서 은퇴한 뒤에도 대인의 위탁을 받을 줄이야. 형제자매 분을 가르치는 건 저희 도관의 영광입니다...
으악!
그만하세요! 팔 뼈가 이미 부러졌습니다! 이미 항복했는데 왜 계속 공격하시는 거죠?!
옆방의 고함소리에 곡과 스승은 대화를 멈추었다. 소리를 들은 스승이 먼저 방문을 뛰쳐나갔고 곡은 사용한 장비들을 정리한 뒤 스승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서 곡은 비리야가 옆방에서 나오는 걸 바라보았다. 그는 걸으며 옷을 가볍게 털었다. 마치 더러운 게 묻은 듯 말이다.
염유, 307번 훈련실.
30초 후 엘리베이터가 울리고, 흰 도포를 입은 염유 의료 요원이 여러 의료 설비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307번 훈련실로 향했다.
청색 장포를 입은 노년 남자가 휠체어에 앉은 채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노인의 피부톤은 아시아인의 평균 피부톤보다 조금 창백했고, 장포가 덮은 부위를 넘어 온몸이 상처투성이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상처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위기들을 넘겼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염유들이 훈련실의 문을 닫은 뒤, 비리야는 곡의 옆으로 다가가 곡과 함께 남자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제 탓이 아니에요,
대,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낡은 천이 바람에 찢어지는 듯 쉬어버린 목소리가 남자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소리가 인간의 성대에서 날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대라고 부르지 말라니까요! 지금 제 이름은 비리야에요!
하하하.
네가 포기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야.
칫.
그래, 이만 가보렴.
오늘은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온 거란다. 온 김에 다음 수업을 진행해도 된다는 것도 말해주고.
네.
곡과 비리야가 말을 마친 뒤 인사를 마쳤다. 그들이 휠체어를 넘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그때 쉬어버린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저번 수업에 가르쳐 준 걸 기억해?
제왕 학술이잖아요. 전부 외워줘요?
아니.
기나긴 문장에서 중점은 하나 뿐이죠. 제왕 학술은 인간들이 사용했던 정치 도구일 뿐이라고요. 자신을 통제할 필요가 없어요. 그 무엇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니까요.
감정에 좌우하지 않고 제때에 목적성 있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
곡과 비리야의 답을 들은 남자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휠체어의 버튼을 누른 뒤 복도 끝을 향해 사라졌다.
최근 대중 연설에서 두 사람 모두 적극적으로 그 점을 실천하고 있더구나.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부여하고 반대하는 자는 제지하고. 계속 유지해. 가문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너희 두 사람이 역대 가문 사람 중에서 가장 적합한 후보야.
곡과 비리야는 도관의 대문을 통해 나왔다. 곡은 자리에서 묵묵히 수송기가 다가오길 기다렸고 비리야는 고개를 돌려 도관을 바라보았다.
여긴 몇 번째지?
수를 세는 건 의미 없어. 소란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가문의 요구를 완수했어.
그래, 우리 두 사람을 이용했잖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하라. 우린 그렇게 배웠잖아.
흥, 역시 짜증난다니까.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건 결국 이익 뿐이야.
서로 이용만 하는 추악한 사회 집합체가 이 별을 이렇게 오랫동안 점령했다니.
수송기의 쿠르릉거리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오고 비리야는 말을 멈추더니 수송기가 하강하는 지점을 바라보았다.
짜증 나.
하지만 곡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멀어져가는 비리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이라...
짜증나는 건 어떤 느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