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는 성결, 정의, 애인, 자비, 적에 대한 사랑, 금식, 기도, 광명으로의 진입, 금전에 대한 무욕, 편견없는 판단, 성실함, 교리에 대한 충성을 지키라고 하셨지.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로봇에게...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 경서들도 나에게 알려줄 수 없었지.
——그러다 난 망망설원에서 아이를 하나 주웠지. 인간, 인간의 아이였어.
아이의 작은 몸은 덜덜 떨고 있었어. 대충 포대기에 싼 탓에 피부는 보라색으로 얼어버렸지만 금빛 눈동자는 조용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지.
내 신경 네트워크는 정밀한 계산을 통해 결론을 얻어냈지. 경서 속 인간세상에 사랑을 전달하려고 온 천사도 별것 아니란 걸.
난 그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로봇에게 567648000초는 한순간일 뿐이었다.
비앙카, 나의 아이, 그 아이는 착하고 친절하고 강하고 용감하지. 그 아이는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신앙심으로 가득하지——
이 신앙은 진작 사라져 버렸어. 로봇이 교리를 가르치는 시대라니. 하지만 난 비앙카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지.
난 모든 명작들을 해석하고 모든 교리를 외울 수 있지만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건 아이들이었지.
만약 내가 인간이었다면...만약 내가 아버지의 신분을 가질 수 있었다면...
만약 내가 비앙카...나의 아이가 무사히 커가는 걸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면...
내가 만약...
밀이 돌아왔을 때 이미 알았어. 이미 알았다고.
난 비앙카를 보내 버렸어. 비앙카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한 뒤 난 교회의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두었지.
난 십자가 목걸이를 벗어 스스로를 단단히 속박했다. 단단한 조임에 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던 피부 아래 로봇의 구조가 드러났다.
신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보살피시지.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나는 더 이상 보살핌과 가호가 필요하지 않구나...
만약 낮과 밤 동안 계속되는 기도와 독실한 신앙이 천 만분의 일만큼의 가여움을 바꿀 수 있다면...
제발 제 아이 비앙카 그리고 비앙카와 같은 수많은 인간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저건 당신이 인간세상에 보내신 천사입니다...
신이시여, 만일 제가 이미 자신을 잃은 거라면 기꺼이 모든 심판과 판결을 따르겠나이다.
비앙카...나의 아이야. 부디 잘, 잘 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