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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격의 영향으로 적조의 범위와 농도가 급격히 감소되었다.
하지만 이런 손실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것’은 초토화된 지하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이전 이중합 코어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에 못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계시처럼 내가 오랫동안 버텨온 것에 대한 긍정이었다.
이합 생물을 부화하는 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모체’라고 불렀다.
그분은 이 새로운 발견에 대해 매우 큰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관대한 그분으로부터 거래의 보상으로 유능한 조수를 얻었다.
그녀는 이합 생물의 지식에 대한 이해 속도가 매우 빠른 똑똑한 승격자 후보였다.
그녀의 지혜를 이용해 나는 ‘모체’가 모든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부화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 어머니의 유아에 대한 강한 보호 본능을 보고——
하이디는 이를 ‘모성애’라고 불렀고, 이어서 ‘어머니’의 데이터를 ‘모체’에 이식했다.
‘모체’는 부화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인간의 감정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설정했던 예전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를 위해 나는 특정 개입을 시뮬레이션해 ‘감정’이 ‘모체’ 내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이디가 제공한 데이터는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샘플이 필요했다.
——온전하고 위험도가 낮은 인간을 전투 외의 다른 방식을 통해 실험품이 있는 구역으로 유도했다.
이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근처는 이미 초토화돼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껴 피해 가려는 곳이었다.
롤랑이 이런 행동을 더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게도 취서체 1차 대전 후 나는 롤랑의 활동 신호를 잃었다.
그는 아마 적조의 양분이 되어 우주 공격과 함께 파괴되었을 것이다.
이 실험은 ‘고연화 개체’를 통해 진행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적조의 ‘복음’을 퍼뜨리듯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을 이용해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으로 데려가려는 의도였다.
아직도 땅 위에서 발버둥치는 저 인간들에게 퍼니싱의 의지를 보여줘야겠다.
청소부들은 밖으로 드러난 환풍구를 뚫고 들어간 후, 좁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롤모를 따라 모퉁이를 얼마나 돌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환풍구에서 기어 나왔다.
천장에서 드문드문 비치는 빛이 이 거대한 탑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었다.
대철수 시기부터 방치된 이 지상의 웅장한 시설도 자연의 침식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어 보였다.
연결 통로는 부드럽고 촉촉한 풀로 덮여 있었고 이름 모를 넝쿨과 식물 가지는 철벽과 계단 사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선실 문을 폐쇄하는 데 사용됐던 것을 밀어 젖히자, 탑의 가장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청소부들은 맨 밑에 층에 있는 상자들에 세계 정부 로고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보급 상자다! 저쪽이야!
내려가는 계단이 무성히 자란 식물에 의해 파괴되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바깥에 노출된 넝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맨 아래에 도착하려던 순간, 넝쿨이 힘에 못 이겨 끊어졌고 ‘수염’이 쾅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수염’이 잡아당긴 넝쿨은 잘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고 붉은 식물은 단면에서 빠르게 증식하다가 잠시 비틀거린 후 녹색 표피가 다시 전체 가지를 덮어버렸다.
그 기괴하고 뒤틀린 것들은 넝쿨이나 식물의 가지라기보단 연체동물의 팔다리처럼 보였다.
‘수염’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식물을 버리고 가방 옆에 달린 총을 재빨리 들어 올렸다.
이 이상한 것들은 또 뭐야!
보니까 숲에 있던 그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전부 변이가 된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다면 저걸 파괴하면 퍼니싱 괴물을 죽인 것처럼 주변의 퍼니싱 농도가 올라갈 거야.
침식체에 이어서 이런 게 또…… 지긋지긋하다 정말.
롤모.
네, 저, 여기 있어요.
이 탑 안에도 전에 그 숲에서 만난 괴물들이 있나?
자, 잘 모르겠어요……
만약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쉿——!
앞서 보급 상자를 향해 걸어가던 ‘수염’이 갑자기 머리를 돌리더니 소리를 내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소리 내지 마 봐. 여기에 우리뿐만이 아닌 것 같아.
‘수염’을 따라 쌓여 있는 보급 상자 주위를 둘러봤고, 구석에 있는 상자 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죽었어.
그 시체의 머리는 식물 가지에 관통되어 있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비어 있는 보급 상자 앞에 기대고 있었다.
이미 썩은 손은 죽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꽉 잡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붉은색을 띤 식물 가지가 몸에 감겨 있었는데 마치 주변 환경과 거의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모두들 이 광경을 지켜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지만, ‘수염’만큼은 쯧쯧거리며 시체 쪽으로 향했다.
어이, 그 식물들 조심해!
‘수염’은 짧게 대답한 뒤 손에 든 총으로 시체와 주변의 식물 사이에 간격을 두고 찌른 뒤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 별 반응이 없어.
식물이 기습 공격을 하지 않을 거란 걸 확인한 ‘수염’은 시체 옆에 웅크린 채 능숙하게 물건이 들어있을 만한 위치를 수색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한 ‘수염’은 한쪽에 떨어진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던져버렸다.
이 이름 없는 시체에는 ‘유용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우리가 오기 전에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세 번 이상은 여기에 왔던 것 같아.
그는 보급 상자의 얼룩덜룩한 탄흔을 가리키며 입을 히죽거렸다.
세 종류의 다른 탄흔이 있어. 상태를 보니 여기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은데 이 녀석은 거기서 불행하게 참패를 당한 거겠지.
이 주변에 뭐 가져갈 게 없는지 더 찾아보자.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들고 서로 다른 방향을 탐색했다.
……여기에 책이 있다니.
코데스는 불행하게 죽은 시체 앞에 멈춰서 허리를 굽혔고, 먼지투성인 상태로 시체의 손 주위에 떨어져 있는 책을 주웠다. 누렇게 변한 책은 오염된 붉은색 피로 얼룩져 있었고 코데스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쳤다.
이건 어떤 종교의 경전처럼 보이는데……
창세 신화, 에덴, 생명의 나무——
너는 왜 그런 이상한 물건에만 관심을 가지는 거야?
유용한 물건만 챙겨. 코데스, 우리의 규칙을 잊지마.
……알았어.
이쪽은 다 봤는데 쓸만한 게 없어. 그쪽은 어때?
전투식량 두 개와 탄알 한 상자를 찾았어. 지상군의 보급인 것 같은데 꽤 깊숙이 숨겨져 있어서 자세히 찾지 않았으면 찾을 수 없었을 거야.
자크, 넌 뭐 좀 찾았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자크는 주위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듯 여과탑 안 어딘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크? 괜찮아? 뭐 찾은 거라도 있어?
‘수염’이 다가가 툭툭 치고 나서야 자크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지켜보고 있던 구석을 가리켰다.
그건 탑 밑의 가지와 넝쿨에 의해 파손되지 않은 환풍구 시설이었고, 난잡한 덩굴은 환풍구의 날개를 피해 뻗어 있었다.
환풍구 안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 소리와 함께 대형 기계의 작동 소리도 들렸다. 소리가 매우 규칙적이어서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내 생각이 맞다면……
비록 아주 낮은 출력이지만……
이 탑은 아직 작동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