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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실패.
실험 실패.
실험 실패.
취서체의 구상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대행자의 힘 앞에서는 불면 날아갈 듯한 허약한 힘일 뿐이다.
역시 '코어'가 없으면 설정한 힘을 모두 발휘하기 어렵다.
절대적인 힘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통제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내 온몸의 파츠가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코어가 필요한 것 같다.
필요하다면 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지만 승격 네트워크가 내 손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라미아는 무능하지만 롤랑은 아직 이용 가치가 있었다. 그의 행동 덕분에 알파는 아직 우리의 계획을 의심하지 않다.
……알파.
대행자의 의지를 흔들 수 있는 불안 요소. 그 자체로도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적합했다.
루나 님께 내가 창조한 이합 생물의 힘을 보여드리면, 그분은 분명 내 계획에 찬성하고 내 방식을 인정해 주실 것이 틀림없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미 예비 계획까지 세웠다.
제……제발 죽이지 마세요! 어쩔 수 없었어요……
진흙투성이의 난민이 두려움에 떨며 벽 한 켠에 몸을 웅크리고, 그를 향해 다가오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완전무장한 청소부 세 명이 그를 둘러싸고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어. 도둑놈이 감히 우리 몸에 손을 댈 줄이야. 우리가 그리 쉽게 당해줄 것처럼 보이나?
조심해. 몸에 붕대가 감겨있는 걸 보니 침식됐을지도 몰라.
서두르자. 쓸만한 게 있는지만 보고 어서 가는 게 좋겠어.
가장 가까운 보육 구역까지 앞으로 4, 5일은 더 걸릴 거야. 어두워지면 위험하니까 여기서 시간 낭비하면 안 돼.
잠시만요. 저, 저한테 물건이 있어요. 전부 다 드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망토를 찢으려던 청소부의 손을 피한 뒤 난민은 몸을 떨면서 자신의 배낭 속 내용물을 땅바닥에 털어놓았다.
배낭 안의 물건들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통조림과 압축 비스킷 몇 개가 청소부들의 발 옆으로 굴러갔다. 그 외에도 사용하지 않은 작은 붕대, 알코올, 몇 개의 탄환 그리고 흐릿한 액자와 파손된 무전기가 있었다.
오호, 생각보다 물건이 꽤 많잖아?
‘수염’은 액자를 걷어차고 음식과 붕대, 탄창을 간단히 체크한 뒤 하나씩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고 자크에게 눈짓을 했다.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낭을 필사적으로 안고 있는 팔을 힘차게 내리쳤다. 난민은 고통스러운 소리와 함께 배낭에서 손을 뗐다.
수염은 단도로 배낭을 들었는데 예사롭지 않은 무게가 느껴졌다. 그가 차갑게 웃으며 배낭을 땅바닥에 내리치자, 천으로 꽁꽁 싸인 철제 케이스가 보였고 그 위에는 갈색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윽!
숨기려고 했던 물건이 드러나자 난민은 덜덜 떨며 머리를 더 숙였다.
이 자식이, 이 와중에 물건을 숨겨?
이게 뭔데? 네가 와서 직접 열어.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
그 말을 들은 난민은 곧바로 상자를 집어들고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양손에 더러운 붕대가 감겨 있는 바람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잘 열리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난민의 모습에 자크는 언짢다는 듯이 혀를 찼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손을 다쳐서요. 금, 금방 열겠습니다.
봉인 테이프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딸깍 소리와 함께 철제 케이스가 열렸다.
냉기화된 하얀 연기가 걷히면서 이윽고 철제 케이스에 담긴 세 개의 혈청이 보였다. 그 옆에는 주사용 바늘도 있었고 위에는 세계 정부의 로고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럴 수가……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혈청이잖아. 자크, 너의……
시끄러워.
……게다가 이건 일반적인 혈청이 아니야. 세계 정부의 로고가 있는 걸 보면 이건 군에서만 배급되는 혈청일 거야. 민간용 혈청보다 더 효과적이겠지.
……희귀해서 우리조차도 이런 보급을 얻을 방법이 없었는데.
하,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는데 우리 보급을 훔치러 왔다고? 욕심이 사람 잡는다더니.
……
그 말 한마디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뜨끔하게 했다. 하지만 ‘수염’은 그대로 감탄하면서 혈청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모자란 동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크는 자세를 낮춰 덜덜 떨고 있는 난민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말해. 이 물건들은 어디서 얻은 거지?
여과탑?
난민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조용히 바깥쪽으로 몸을 옮겼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삼림 공원에 아무도 없는 여, 여과탑이 있어요.
그 안에 보급이 엄청 많이 있었어요…… 엄청 큰 상자가 있었는데 그런 상자가 아직도 많이 있어요. 위에는 전부 세계 정부 로고가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더는 가져갈 수 없었어요……
마치 오랜 시간 사막을 헤매던 여행자에게 멀지 않은 곳에 희망의 오아시스가 있다고 알려주듯, 그 매력적인 소식에 청소부들 사이에서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누군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
수상하군. 보급 물자가 그렇게 많은 곳이라면 지금 이런 상황에선 진작에 털렸을 거야.
……하지만 정말 그놈이 말한대로 그 안에 보급 물자가 남아 있다면 한 번 가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이쪽 보급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글쎄, 정말 그렇게 좋은 곳이 있다고 해도, 지금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보급 물자뿐이 아니야. 이미 그곳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과 쿵짝거릴 수도 있어, 알고 있어?
벌써 잊었나? 전에도 어느 조직이 재건 물자를 잃어버렸다든가 하는 비슷한 이야기로, 그때도 가자고 우겼잖아!
그래서 갔더니? 그 망할 놈의 적조와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미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잖아. 그때 동료도 잃고 자크도 하마터면……
하지만 자크는 무사히 살아있잖아. 게다가 덕분에 우리가 075호 도시를 지날 때 공중 정원에서 난민들을 대피시키고 보육 구역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만약 네가 우물쭈물하지 않았다면 마지막 수송기를 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느릿느릿 꾸물댔다고?!
하, 내가 마지막 보급물자를 찾지 않았다면 여기 오기 전에 우리 모두 진작에 죽었을 거야!
그만해.
자크가 언짢은 듯 입을 열자 반박하려던 ‘수염’도 자크의 표정을 힐끗 보고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힘없이 내려진 손은 단도를 더욱 힘껏 움켜쥐었다.
……
자크는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땅바닥에 펼쳐 놓았다.
네가 말한 그 여과탑, 구체적으로 어디지?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맹세할게요!
자크가 난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지도에서 손을 그으니 ‘풀리아 삼림 공원’이라고 표시된 곳에서 멈췄다.
……40호 여과탑. 우리 이동속도와 도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걸어서 대략 3~4일 정도 걸릴 것 같아.
그는 탑의 존재와 위치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설마 정말 가려는 거야?
우리가 가진 보급 물자로는 보육 구역까지 버틸 수 없어. 코데스, 우리 의료 보급 물자가 얼마나 남았지?
코데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제 막 마지막 혈청을 다 사용했어.
……이번 주에 고농도 침식 구역을 피하려고 너무 먼 길을 돌았어. 그만큼 소모도 많았고.
여과탑 안에 보급이 없더라도 이 방향으로 공원을 통해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보육 구역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거점에서 떠날 때부터 어차피 우리에겐 퇴로는 없었어.
자크는 지도를 가방에 넣고 일어섰다. 그리고 총을 들고 몇 미터 떨어진 난민에게 겨누었다.
네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총구가 자신을 겨누자 난민은 번개에 맞은 듯 두 손을 번쩍 들었지만, 자크의 말을 들은 뒤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빨리 안 가고.
그, 그곳에……
괴물이, 침식체가 있,있습니다. 너무 위험해요……
난민은 횡설수설하면서 먼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도시 밖 머나먼 지평선 너머에 보일 듯 말 듯 한 긴 녹색 선이 있었다.
그 공원 안에…… 침식체가 엄청 많이 있어요.
그럼 넌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온 거지?
저는……
쓸모없는 녀석…… 우리가 이 녀석의 보급을 가져갔으니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 차라리 여기서 이 녀석의 목숨을 끊는게 어때?
‘수염’은 단도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면서 씩 웃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 제가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어요! 여러 번 가봐서 안전하게 가는 길은 저만 알아요!
허튼수작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수염’, 짐 챙기고 출발하자. 그리고 보급 꺼내. 다 봤으니까.
아, 그래.
‘수염’은 가방에서 탄약과 의료용품을 꺼내 자크와 코데스에게 건넨 뒤 다시 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자크에게 보여줬다.
자, 나는 다 준 거다? 규칙대로 내가 식량 보관하는 거 알지? 이만큼이야. 나중에 몰래 가져갔다고 하지마.
됐어. 출발하자. 저……
자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이 뭐지?
예?
너 이름이 뭐냐고.
좀도둑의 이름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서인지 난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난민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롤모, 롤모라고 합니다.
그래, 롤모. 네가 앞장서서 걸어.
네가 도망친다면 내 총알이 빠른지 네 다리가 빠른지 알게 될 거야.
떠밀려 앞장서게 된 난민은 몸을 구부리면서 걸어갔다. 청소부로부터 등을 돌리는 순간 난민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비굴한 표정이 사라졌다.
……
어둠 속에 가려졌던 오드아이가 희미하게 빛나면서 ‘롤모’는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으로 그룹으로 행동하는 청소부들은 물자와 보급을 균등하게 분배하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보급 물자를 나누어 각각 보관하고 있다. 한 사람은 의료 보급 물자, 한 사람은 음식, 한 사람은 무기 탄약을.
이건 보이지 않는 사슬이다. 그룹을 떠나 단독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자기 물자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이 말세에서 음식은 전진을 위한 에너지이고 의료품은 상처와 침식을 대처할 수 있는 수간, 무기는 침식체를 회피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면 죽고 만다.
각자 그룹의 생명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등을 돌리거나 단독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어리석은 건지 똑똑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를 믿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함께 행동해야 했기 때문에 서로를 견제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너무 고전적인 방식에 롤랑은 이 그룹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결말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