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중:
오셀럼이 멈춘 역에서 5km 떨어진 곳에서 이중합 코어 조각을 회수했다.
그 조각은 전에 회수된 조각보다 더 강력한 활동성을 보이며 다른 조각과 합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중 정원의 네 번째 이중합 코어 제거 소대를 처치한 후 나는 상당한 수의 조각을 모았다.
‘놀랍게도’ 그것들을 합쳐보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특성을 드러냈다.
실험 중 분리된 유동적인 붉은 혼탁액은 이중합 코어 현장에서 발견된 물질과 거의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삼키고 충돌하면서 변화했다.
이중합 코어는 늪의 파도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과 해체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 안에서 일반 침식체와는 다른 신호 패턴을 감지했다.
그 느낌을 아직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현상은한때 해체되기 직전에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이 붉은 늪에서 나는 승격 네트워크의 미래를 보았다.
여러 차례 고민을 한 끝에 나는 이것에 내 힘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풀리아 삼림 공원 유적 전투 발생 일주일 전.
한 여행자가 도시의 폐허를 걷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거리는 이미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몇몇 이합 생물들이 폐허를 떠돌아다니며 때때로 꿈틀거리고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황량과 혼돈, 지금 이 별의 모습이다. 우뚝 솟은 마천루는 쇠로 된 고목 정글로 변했고 모든 생명체는 어두운 숲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그네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다가온 이합 생물은 탁한 소리와 함께 나그네에게 찢겨지고 말았다.
가브리엘이 남긴 불량품이 여기까지 왔다니.
여행자는 천천히 체인검을 거두고 저 멀리 높은 건물에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보았다.
그늘 밑에서는 몇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낡은 조리기구로 요리를 하고 있다.
보아하니 우리 ‘배우’들이 도착한 것 같네.
그렇다면 준비를 해야겠지.
이번이 마지막 공연이야.
다시 한번 환영의 뜻을 표할게요. 롤랑.
인사치레는 생략하죠.
자신의 몸에서 변화를 느낀 롤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수수께끼의 힘으로 뒤덮인 순백의 대행자가 그에게 부여한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가느다란 실 같았지만 여전히 루나의 존재가 느껴졌다. 분명 지금 이 세계 어딘가에 그녀가 있다.
그 신비한 ‘자비로운 자’는 그의 몸을 개조할 때 루나와의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지우지 않았지만, 눈앞의 이 수수께끼의 대행자는 그것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아시겠지만 제가 남에게 승격자 권한을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같은 목표라도 저와 루나는 선별 기준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의 힘을 당신과 공유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이 가격을 세게 부른만큼 제대로 이용할 줄 알았는데.. 이런 수박 겉핥기 수준이라니.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저는 지금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 그것에 좀 더 의지하거든요.
그렇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자신을 망칠 수도 있을만한 강한 힘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희미한 연결고리가 남아 있다면 그의 최종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만히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본·네거트는 눈썹을 올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충성스러운 ‘기사’에 경의의 박수를. 여전히 ‘왕’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싶지 않은 것 같군요.
말을 듣지 않는 부하를 만나면 기분이 나쁜가요?
물론이죠.
그게 바로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점입니다. 롤랑, 당신은 집착이 심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죠.
롤랑은 피식 웃었다.
칭찬은 됐어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예를 들어……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죠? 이 너덜너덜한 몸을 복구하고 있는 동안, 당신들이 공중 정원과 재밌는 연극을 하는 것 같던데요.
거기에 참여하지 못해서 정말 유감입니다.
‘실험품’의 행방을 일부러 숨기려 하진 않았지만 공중 정원이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기 상조이지만, 아무래도 공중 정원도 한 눈치 하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자질의 ‘씨앗’을 찾았습니다.
기분 좋은 일을 떠올리듯 본·네거트의 눈에 미소가 떠올랐다.
새로운 발견과 비하면 ‘실험품’을 하나 잃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귀찮은 적이 늘었다’라는 말을 그렇게 우아하게 표현하다니 놀랍군요.
적어도 공중 정원의 어느 소대가…… 다양한 의미에서 보면 좀 까다로웠죠.
어떠한 대립도 영원할 수는 없으니까.
또한 영원한 동맹도 존재하지 않죠.
어쨌든 우리 둘 다 이익을 추구하는 거니까. 안 그런가요?
제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저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면, 언젠가 그들은 제 제안을 고려할 것입니다.
‘실험품’이 파괴된다 해도 다음에 더 강력한 실험품 2호를 만들 생각이시죠?
이전의 ‘동료’도 같은 전철을 밟았는데…… 아쉽게도 그는 실패했죠.
정말 중요한 ‘모체’는 여기에 없습니다. 하이디가 이미 한발 앞서 그 상황을 조사하러 갔습니다.
가브리엘은 이합 생물의 부화에 있어서 뛰어난 선구자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의 미완의 연구를 계승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조와 이합생물의 출현은 승격 네트워크의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취서체'는 이미 이중합 코어 진화의 한계를 보여주었죠.
그 생물들은 생존 본능만 있을 뿐, 지능도 없고 판단할 줄도 모르죠.
침식당해서 이성을 빼앗긴 불량품이랑 뭐가 다르죠? 아무리 강력해도 그것들은 그저 꼭두각시입니다.
그런 생물과 함께 신세계로 갈 수 없습니다.
가브리엘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힘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공에 대한 간절한 열망 때문에 퍼니싱의 의지를 간과했습니다.
그리고 '모체'는 ……마치 길을 벗어난 가브리엘에게…마음씨 좋게 조언하는 것 같았죠.
저는 '모체'야말로 퍼니싱 의지의 결정이며, 매혹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미래가 정말 기대됩니다.
말을 들어보니 당신도 ‘모체’에서 무엇이 부화되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요?
당신 같은 사람은 손안에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린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모체’의 부화를 지켜보고 퍼니싱 의지의 진정한 결합을 맞이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그건 약간의 촉진이 필요합니다.
촉진?
그전에 당신에게 먼저 보여줄게 있습니다.
아직 완전한 ‘모체’를 본 적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