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파...
알파?
그래, 그 무리들은 지금 너를 이렇게 불러.
...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진정한 본체라면 알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데.
확실히 복제품과 같은 이름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동료들의 토론 소리에 "루시아"는 고개를 들어 아직 낯설고 텅 빈 도시를 바라보았다.
... 또 다른 나.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으니...
과거와 단절해야 해.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알파 아가씨.
...
이런 타이밍에 옛날 일이 생각나다니.
알파는 고개를 들어 텅 빈 지하 도시를 바라보았다.
비록 이 지하 도시에 대한 소속감은 전혀 없지만, 누구나 오랜 시간 이곳을 오가면 익숙한 느낌이 들 수 있었다.
녹슨 연결 다리는 안개 속으로 뻗어 있었다. 설령 그것이 시선의 범위를 벗어나도 알파는 그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원래의 이름을 버렸다.
... 과거를 끊기 위해서.
외출에서 돌아온 루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루나.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삼키고 멀지 않은 곳에 엉망이 된 지면을 바라보았다.
... 어디에 있는 거야.
마지막 날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취서체의 심연으로 가는 길에 오르자, 롤랑은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가브리엘...
가브리엘이 어두운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변함없이 예의 바른 모습이었지만, 광기에 가까운 위험한 기운이 휘감고 있었다.
그럼 그는 부탁할게.
롤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파를 지나치면서 무언가를 속삭였다.
난 가브리엘의 "비상용품"을 해결할 거야. 그래야지만 루나 아가씨가 코어를 벗어날 수 있어.
그는 사슬검을 이용해 코어의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가브리엘이 롤랑을 저지하기도 전에 알파는 칼을 뽑아 그를 맞이했다.
넌 루나를 배신했어.
제가요...? 아닙니다. 루나 아가씨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루나 아가씨가 배신하게 된 원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 때문에 루나 아가씨는 승격 네트워크에게 버림받고 대행자의 힘을 잃게 된 겁니다!
루나는...우리를 배신한 적 없어!
알파의 칼날이 가브리엘의 가슴을 스쳐 지나가며 순간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브리엘이 찢어진 망토를 벗어 던지자 거대한 기계 신체가 드러났다.
역시... 승격 네트워크의 가장 큰 위협은 당신입니다...
루나 아가씨는 이미 취서체의 양분이 됐습니다. 구하지 않으셔도 됩니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어. 가브리엘, 네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하지만 여기서 널 놓쳐버린다면 루나의 위협만 늘어날 뿐이겠지.
내가 달려가기 전까지 그레이 레이븐이 잠시만 버텨 주기만 하면 돼.
설마 그 쓸모없는 구조체들을 믿는 걸 선택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쉽게도 그들은 이미 취서체의 양분이 되어버렸을 겁니다.
아니.
이번에는 "나 스스로"를 믿기로 했어. 그리고 가브리엘...
내가 지금 할 일은 바로 널 처리하는 거야.
루나를 해친 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알파가 태도를 들었다. 그 눈에는 분노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바짝 다가가 연이은 공격으로 가브리엘이 틈을 보이도록 만들고자 했다. 가브리엘은 공격에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면서 지팡이로 알파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의식의 바다 속에서 큰 상처를 입었는지 잘 모르지만, 가브리엘은 알파의 공격이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발견한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방어 동작을 공격으로 전환했다.
... 좋아.
한쪽이 수비를 포기하면 전투는 금방 결판이 난다.
승격 네트워크에 숭고한 이상을 부여 받기 위해, 가브리엘은 모든 것을 이 전투의 승리에 걸었다.
그러나 전투를 계속하는 동안에 알파의 의식의 바다가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
더 끌어 봤자 이득이 없으니 이 일격으로 취서체의 양분이 되어 주시지요!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가브리엘은 곧바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알파가 있는 지면으로 아머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을 휘둘렀다.
그러나 연기가 사라진 뒤 찢어진 바닥 위엔 가브리엘만 있었다.
가브리엘의 공격은 불규칙적으로 이동하는 알파를 명중시킬 수 없었다. 자랑할 만한 힘일지라도, 명중률 제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알파——!
이 일격으로 가브리엘은 알파의 공간을 갈라놓을 수 있는 칼날에 완전히 노출됐다.
다음 순간,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하... 역시 루나 아가씨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십니다.
가브리엘은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폐허 사이로 기어갔다. 하체도, 날개도, 이 순간 부서진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알파는 부러진 그의 사지를 밟고 그에게 다가가 손에 든 태도를 들었다——
팅! 휘두른 칼날이 보이지 않는 벽에 세차게 부딪쳤다.
알파
뒤에서 잔잔하게 부르는 소리와 함께 사방의 벽도 겹겹이 늘어났다. 알파는 돌아서서 태도를 휘둘렀지만 완전히 베어버릴 수는 없었다.
당신의 힘이 좀 약해진 것은 대행자 루나의 영향이겠죠.
... 당신은...
대행자 본·네거트라고 부르면 됩니다.
너는......본·네거트?
알파는 칼을 거두고 눈앞의 칠흑 같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저를 이미 알고 계시나 보군요?
물론이지. 네 밑에 있는 승격자만 없었더라면, 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저는 그저 그에게 인간이 원래부터 바랐던 일을 유발시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 지휘관 이름이 레븐쉬라고 했던가요? 그는 그렇게 생각한 첫 번째 사람도 아니고, 그 때문에 죽은 마지막 사람도 아닙니다.
이점에 관해서는, 저는 당신이 이미 충분히 봤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쓰레기를 안타까워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 일로 죽은 것은 그 사람뿐만이 아니야.
모든 것이 승격 네트워크와 대선별을 위해섭니다. 알파.
저의 본의는 사람을 죽이거나, 구조체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인 선별을 위한 실험일 뿐입니다.
아무리 공중 정원 시절, 동료들의 희생에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고 해도 지금 승격자로서 선별을 정하는 건 아니겠죠?
...
그럼 됐습니다.
여기엔 왜 왔지?
당연히 "복음"을 위해서죠.
퍼니싱이 보여준 생물화의 특징과 새로운 생명들에 저는 몹시 감탄을 했습니다.
이 별은 현재 갱생 중입니다. 대행자로서 당연히 당신이 와서 이 모든 것을 보셔야하지 않겠습니까.
……………………!
당신이 바로 적조와 취서체의 부화자입니다.
퍼니싱 바이러스의 갱생을 받아 승격 네트워크가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죠, 아주 잘하셨습니다.
네거트님... 이 모든 것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죠.
이것은 승격 네트워크가 내디딘 진화의 한 걸음입니다.
본·네거트는 감상하는 시선으로 아래에서 흐르는 적조를 응시했다.
아쉽게도 내가 너무 늦게 왔군. 취서체는 이미 루나에 의해 파괴됐어. 그리고 공중 정원 사람들도 이 땅에 왔으니, 곧 이곳을 정리하려고 할 거야.
저도 이번 재앙을 막고 싶지만 "벌집"인 공중 정원은 저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벌"만 치운다고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적조를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려 거대한 바위 밑에서 기어서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가브리엘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습니다. 부화한 자의 학식이 있는 한 만회할 여지가 있으니까요.
그가 손뼉을 치자 가브리엘의 몸을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가 부서졌다.
본·네거트...!
알파, 지금 당장 당신들 사이의 방어막을 풀어버릴 수는 있지만, 그전에 또 하나의 소식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루나는 이미 취서체로부터 구조됐습니다. 지금은 공중 정원에게 끌려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죠?
그때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그녀에게 재연되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그가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알파 앞을 가로막았던 방어 역장이 사라졌다. 그녀는 무기를 움켜쥔 채 가브리엘 잔해를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을 째려봤다.
그러나 결국 그는 돌아서서 취서체가 있는 심연으로 향했다.
일어나세요, 부화한 자여.
당신이 승격 네트워크에게 충성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강력한 힘을 갖고자 하는 갈망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새 생명과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 대가로......
두 사람의 대화는 무시한 채, 알파는 전속력으로 취서체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구조하러 온 공중 정원 부대 뿐이었고, 그들과 교전을 벌이거나 계속 찾아다녔을 때에도 루나의 행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인간에게 끌려간 걸까?
불안함은 점점 커졌기에, 알파는 그녀의 행방을 끊임없이 찾았다.
왜냐면 그녀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