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침 햇살이 내리쬔 그때, 미풍이 풍차 광장을 스쳐 갔다.
그러나 이곳의 긴장감을 조금도 풀지 못했다. 멀리 바라보니, 광장의 주위는 경계가 매우 삼엄했다.
아이라의 작품을 주력으로, 예상한 것처럼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가 승리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양측이 대치하는 상황이 됐다.
미론이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라는 컨스텔레이션의 로봇이 아니니, 예술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잠깐, 멈춰. 우리는 아이라를 예술 리더로 세운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라가 아니면 누군데? 설마 너야?
그다지 위대하지 않은 마크는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
그럼, 도대체 그 신 다차원 무슨 입체 로봇파의 마스터는 누구라는 거야?
"신 다차원 무슨 입체 로봇파"라고? 환상 로봇파는 우리를 비꼬는 거야? 젠장.
두 로봇의 대화가 끝나자, 물에 잉크가 번지듯 로봇들 속에서 다시 말싸움이 일어났다.
삐삐삐삐...
바로 그때, 광장 근처에 매복한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터져 나오자, 마지못해 로봇들이 조용해졌다.
테스트~ 테스트~ 완료.
다음은 우리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신임 보스, 아니지, 리더 등장!
가세요, 둘시네아 님.
네...
둘시네아는 무대 뒤에서 나와, 무대 앞에 섰다.
둘시네아 님? 왜 그러십니까?
관리자가 중재한다는 방안이 거부됐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둘시네아는 관리자 권한을 제거하면, 더 이상 수시로 데이터베이스를 동원할 수 없었기에, 이 새로운 교류 방식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우선, 저는 관리자의 신분으로 여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적어도 지금, 관리자 권한은 본 기계의 시스템에서 제거됐어요.
다음으로, 이것 또한 관리자가 결정할 방안이 아니에요.
그럼 누가 결정한다는 겁니까?
팔레트 전쟁의 승부에 의해서 결정돼요.
3대 파벌의 마스터들이 이미 도전을 받아들였으니, 실패한다 해도 승리는 당연히 신 다차원...
여기까지 말한 둘시네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곧이어 말을 바꿨다.
승리는 당연히 저희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것이에요.
……
광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각 파벌의 각성 로봇들은 다 자신의 마스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저흰 단지 당신들이 아이라를 앞장세울 줄 몰랐기에, 도전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나저나 그것도 도전이 아닌, 어떤 도발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라가 참전한 게 팔레트 전쟁의 규칙상 부적절한 부분이 있나요?
그건...
팔레트 전쟁에 규칙 같은 건 없었다. 컨스텔레이션에 있는 관리 조례의 한계를 지키고, 다른 로봇의 인정을 받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후자와 같은 낭만주의의 각 로봇에겐 암묵적인 규정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일치된 인식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둘시네아는 그 규정을 깨트리는 걸 원치 않았다.
아이라가 팔레트 전쟁에 참여한다는 거, 전에 모두 인정했었죠?
아니면 전에 아이라에게 했던 말들은 모두 아이라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것뿐인가요?
그런 게 아닙니다!
팔레트 전쟁은 아이라를 영원히 환영할 것입니다.
응, 고마워!
스피커에서 아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라도 그렇게 한다고 했으니, 각성 로봇들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인정한 것은 아이라와 아이라의 예술입니다.
둘시네아가 아이라의 도움으로 예술 리더라는 칭호를 얻는다면, 모든 파벌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예술 리더는 컨스텔레이션의 예술을 미래로 이끌어야 합니다." "둘시네아, 보여줄 만한 작품이 있습니까?"
삐삐삐삐...
또 한 번의 노이즈가 들려와, 난폭하게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현장을 정상적인 궤도로 이끌었다.
테스트~ 테스트~ 완료.
테디베어, 이런 것 좀 그만 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그들이 둘시네아의 말을 끝까지 듣냐에 달렸어.
둘시네아는 카레니나가 가르쳐 준 것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며, 침착함을 유지한 채 어떤 결심을 내렸다.
예술 리더는 컨스텔레이션의 예술을 미래로 이끌어야 하니까, 이곳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할게요.
여러분은 이 제안을 듣고, 저를 예술 리더로 인정할 건지 결정해 주세요.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 제안만큼은 여러분이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다음 제 예술 리더의 칭호는 여러분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
처음엔 침묵이 흘렀지만, 어느 각성 로봇부터 시작한 건지 알 수 없이, 광장에서 의논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임 예술 리더인 세르반테스 님의 마지막 제안은 뭐였지?"
"예술 파벌을 설립해, 각성 로봇들의 예술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으셨지."
"그 제안 덕분에, 로봇의 예술이 최근 몇 달 내 빠른 속도로 발전했어."
"둘시네아 님도 그 정도의 제안을 제출해서 대항할 것이라고 생각하실까?"
둘시네아는 무대 앞에 서서, 다시 숨을 크게 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제안은 지금부터 컨스텔레이션엔...
"설마 팔레트 전쟁을 강제로 취소하는 건가?"
"농담하지 마."
지금부터 컨스텔레이션엔... 예술 리더라는 칭호가 사라질 거예요.
또다시 수많은 로봇의 침묵이 이어졌고, 감정이 더욱 격해진 목소리의 파도가 밀려왔다.
삐삐삐삐...
테디베어가 다시 소음을 틀었지만, 이번에는 아쉽게도 효과가 없었다.
조용! 모두 조용히 해!
오히려 각 파벌의 마스터들이 나서서 제지했다. 그들의 외침으로, 상황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둘시네아 님, 그건 세르반테스 님께서 계실 때, 컨스텔레이션의 내부에 있었던 암묵적인 규칙들을 깨뜨린다는 걸 아십니까?
알고 있어요.
세르반테스 님께서 동의하지 않아셔도 그렇게 하실 겁니까?
전 이것을 판단할 수 없지만, 세르반테스 님께서 지금 제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제 제안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거예요.
둘시네아의 의지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마스터는 몇 초 동안 둘시네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둘시네아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이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둘시네아 님께서 전에 하신 말을 기억하십니까? 이 제안의 통과 여부는 각성 로봇들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제안에 찬성하는 자가 있나?
마크!
……
다른 로봇들은 손을 들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오직 마크만 덩그러니 그의 팔을 들었고, 마크는 광장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즐길" 수 있었다.
……
마크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누구도 그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마크는 점점 초조해졌다. 침묵은 소리 없는 판결 선고 같았고, 저번에 있었던 전시관 사건처럼 계획의 실패를 예고했다.
정말 이렇게 되는 걸까?
"나도 찬성해!"
스피커 안에서 갑자기 로봇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각성 로봇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야?
그 인간처럼 카페를 운영하며, 요리 예술을 연구하는 그 로봇인 것 같아.
그 각성 로봇이 말을 이어가기도 전, 점점 더 많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광장에 울려 퍼졌다.
"찬성이야." "난 만화 단체를 대표해 둘시네아의 제안에 찬성해." "밀랍 인형의 집은 둘시네아의 제안에 찬성해."
그들은 이 팔레트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도시의 구석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각성 로봇들이었다.
그들은 예술엔 리더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예술은 애초에 자유롭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단지 팔레트 전쟁에 질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로봇들이 예외 없이 둘시네아의 의견을 지지하기 위해 나섰다.
컨스텔레이션 도시 내의 네트워크입니까.
텐트 안에선 모두가 단말기를 조작하고 있는 리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칭찬했다.
큰 결정을 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모든 각성 로봇들이 함께 참여해야겠죠.
이 결정이 틀릴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
저는 세르반테스 님이 아니기에 이 의견이 올바르다고 보장할 수 없어요.
그러나 미론은 컨스텔레이션의 각성 로봇들이 예술로 잔혹한 운명에 맞서, 자신만의 영혼과 자유를 쟁취한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또 한 명의 예술 리더를 뽑아, 컨스텔레이션에 또 다른 세르반테스 님이 나타나길 바랄 필요는 없겠죠?
……
오늘 이후론 로봇 여러분이... 음, 그리고 인간까지, 함께 컨스텔레이션의 미래라는 두루마리 그림을 그리도록 해요.
적어도 둘시네아는 그렇게 생각해요.
……
이번에는 둘시네아가 먼저 마스터의 눈을 마주 봤다. 관리자 권한이 없는 둘시네아는 자신의 의지로 상대방을 초대했다.
이 제안은 정말 위험합니다. 컨스텔레이션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입니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둘시네아 님은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고 싶으신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느 날 컨스텔레이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저는 가장 먼저 둘시네아 님을 책문할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이 마스터는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주도로 점점 더 많은 각성 로봇이 그를 따라 했다.
2시간 후, 컨스텔레이션 내, 공중 정원의 임시 주둔지.
둘시네아는 머리 위에서 빛나는 광환을 보며, 카펫을 따라 천천히 로비 안으로 들어왔다. 양옆에 꼿꼿이 서 있던 부대의 대원들은 동시에 질서 정연하게 경례했다.
옛날 생각이 나게 하네. 이런 격식들은 오랜만이군.
리스트 님.
둘시네아는 인사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그 대신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본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둘시네아가 리스트의 앞에 선 그때, 머리 위에 있는 광환이 갑자기 사라졌고, 그 대신 손바닥에 열쇠의 투영이 떠올랐다.
둘시네아, 이건?
전 제가 외형만 각성 로봇과 비슷한 프로그램의 집합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죠.
컨스텔레이션의 절대적인 관리 권한은 자신만의 감정과 자아를 가진 로봇에게 맡겨선 안 돼요.
말을 마친 둘시네아는 주먹을 쥐었다. 새하얀 다섯 손가락이 순식간에 투영된 열쇠를 조각냈다.
이러면 아무도 컨스텔레이션의 도시 내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이 세운 각종 시설을 쉽게 뺏을 수 없을 거예요.
이게 바로 각성 로봇의 모두가 선택한 "한 발짝 후퇴"인 건가?
서로 마찬가지예요.
둘시네아는 정말 직설적이네. 이렇게 되면, 우리 외교부가 밤새 쓴 원고는 쓸모가 없겠군.
적어도 컨스텔레이션의 각성 로봇들은 직설적인 걸 더 좋아해요.
인간과 각성 로봇이 서로의 존재에 익숙해지기까진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네.
컨스텔레이션의 밖, 황야의 초원.
계획이 성공한 것 같네요. 둘시.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 팔레트 전쟁의 힘을 빌려, 인간과 각성 로봇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어요.
이렇게 되면, 컨스텔레이션의 미래도 한층 더 보장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최고 관리 권한은요? 정말 제거된 건가요?
완전히 제거됐어요. 이제부터 컨스텔레이션의 운명은 이곳에 사는 각성 로봇과 인간이 같이 결정하게 될 거예요.
본 기체도 그중 한 명으로 그리고 둘시네아의 신분으로 컨스텔레이션을 계속 지킬 거예요.
음... 마지막까지 못 봐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축하해요. 소원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둘시네아 님! 둘시네아 님!"
통신기에서 갑자기 마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반테스 님까지 같이 그립니까?"
자세히 들어보니, 희미하게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시네아는 어떤 시끄러운 환경에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리의 그림을 완성하는 걸 도와주고 있어요.
<컨스텔레이션>이요? 그 그림은 정말 과한 것 같아요.
네, 아이라는 이 일로 머리 아파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토론했음에도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죠.
아이라의 이름을 들은 아리사는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시...
네?
둘시와 지휘관님은 약속을 잊지 않았겠죠?
……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에 관한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마크 쪽도 의외로 입이 무겁고요.
그래요. 그럼 안심이 되네요.
……
아리사, 제가 준 데이터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둘시.
아리사는 둘시네아의 말을 끊고, 슬쩍 검지를 단말기의 옆면으로 옮겼다.
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
서로 적이 될 수 있어도요?
둘시가 컨스텔레이션을 위해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당신... 당신들의 선택이 가져올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없어요.
다음에 만날 땐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졌기를 바랄게요.
"둘시네아 님! 리스트 님과의 대화는 아직 안 끝났습니까?"
아... 아, 금방 갈게요!
……
"띠" 소리와 함께, 아리사가 통신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리사는 소리 없는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아리사는 단말기를 조작해, 기록을 하나둘씩 삭제했다.
곧이어 단말기의 화면에서 옅은 적색의 불빛이 반짝였다.
세르반테스의 계획은 성공했어요.
최초에 세르반테스가 만든 둘시처럼, 각성 로봇들은 다른 로봇을 각성 로봇으로 만들지 못해요.
하지만 예술은 그에게 새로운 답을 줬어요. 운명과의 항쟁에서 의지는 점점 성장했고, 그 의지는 손쉽게 각성 로봇이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줬어요.
그 의지는 거절이에요. 다른 이의 마음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걸 거절했어요.
어느 곳을 간다고 해도, 거절하는 걸 알게 된 로봇은 모두 자유로워요.
음... 언니의 말은 항상 이해하기 쉽네요.
하지만 저희는 자신이 선택한 운명뿐만 아니라, 과거의 선서까지도 짊어지고 있어요.
이제 기체는 안정됐으니, 출발할게요.
"실버 콘도르, 지옥으로 갈게요."
아리사가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서인지, 완전체인 에코의 뛰어난 원거리 관찰 능력에도 컨스텔레이션을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손에 든 단말기에선 불꽃이 튀기 시작했고, 자폭 프로그램이 발화시킨 테르밋은 이 모든 걸 소각시키기 시작했다.
단말기를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은 조금씩 힘을 뺐고, 타오르는 단말기는 그렇게 지면에 떨어졌다.
불빛은 소녀의 얼굴을 비췄고, 그녀는 미소와 함께 마지막으로 등 뒤에 있는 도시를 봤다.
하늘에서 울리는 매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미소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여기는 에코예요. 컨스텔레이션 관리형 AI의 데이터가 확인됐어요.
명령을 하달할게요. 임무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