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이 종료됐습니다. 필터에 부합하는 선택 항목이 없어, 새로운 변수를 추가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현재 조건을 저장하시겠습니까?"
"시뮬레이션 기록을 초기화했습니다. 언제든지 나가실 수 있습니다. 둘시네아 님."
문이 천천히 열리자, 백발의 소녀는 자신과 연결된 데이터 전송선을 뽑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지듯 수면 캡슐에서 나왔다.
공중 정원 "신속 대응팀", 베라, 리, 아이라, 카레니나, 지휘관님.
둘시네아는 일부러 함께한 기억을 분리했고, 순서대로 이 거대한 "리허설" 로봇에 입력해,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이런 방식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했으며, 진행할 때마다 일정 시간을 소모해야 조정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연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네 번 진행했었다.
"둘시네아 님, 당신은 시뮬레이션 결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음 회차의 시뮬레이션에서 당신의 시스템을 조정하시겠습니까?"
시뮬레이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방관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어째서...
아니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 일에 비해, 컨스텔레이션의 문제는 바로 눈앞에 있어.
몇 시예요?
"팔레트 전쟁 3일 차. 밤 9시 30분입니다."
검사를 완료했어요.
본 기체에 저장된 시뮬레이션 기록을 로딩하세요.
"로딩 성공, 네 분의 구조체와 동행한 연산은 예상과 맞는 결과가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컨스텔레이션은 아직도 팔레트 전쟁의 충격을 받는 건가요?
"관련 명령이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인 목소리가 실내에 울렸고, 둘시네아는 그제야 자신이 시뮬레이션 중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렇기에 아무도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로딩된 시뮬레이션 기록을 초기화하세요.
"로딩된 시뮬레이션 기록을 초기화했습니다."
시스템이 만들어졌을 때의 초기 설정에 따라 대답하고는 바로 조용해졌고, 곧이어 어떤 발언이나 의혹, 질문 심지어는 농담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남기로 한 이상 그분의 도리가 있으신 거예요. 이 로봇은 컨스텔레이션의 미래에 대해 한 가지의 답을 알려줄 수 있어요.
필터를 초기화하고, 본 기체의 기억을 다시 로딩하세요.
둘시네아는 그 인간들과 구조체가 함께 어울렸던 기억을 이 안에 입력했고, 그 안에서 최적해를 찾을 때까지 하나씩 다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래? 그럼 계속해 봐.
계속 너희들의 미친 축제를 계속해. 인간과 로봇이 함께 만든 이 도시를 계속 파괴해 봐.
불안은 매우 무서운 감정이며, 특히 남몰래 커져갈 때 더욱 무서워지지.
베라의 말이 맞아요, 시간이 없어요.
둘시네아가 수면 캡슐에 내디딘 발을 다시 뺐다.
둘시네아가 시뮬레이션에서 인간에게 접근해, 답을 찾는 동안, 외부의 시간 또한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첫 만남의 불안부터 상대를 이해하려 다가가는 것까지, 지금까지 인간은 서로를 받아들여 공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테디베어의 말처럼, 인간 내부엔 갈등이 있기에, 이렇게 가다간 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지휘관, 그들도 영혼이 있어. 그래서 아이라는 그들을 한번 믿어보려고.
……
어쩌면 둘시네아는 자신도 인간을 믿고, 그들의 곁에서 답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광환이 침묵 속에서 떠올라, 수많은 데이터가 응집돼 형성된 실체처럼, 둘시네아의 머리 위에서 자리를 잡았다.
"관리자 권한을 확인했습니다. 환영합니다. 둘시네아 님."
컨스텔레이션 도시 내의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다음 목표에 연락해 주세요.
……
왜 그래?
이상해, 왠지 도시에 설치된 시각 센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전송된 화면이 예정된 관찰 범위와 일치하지 않아.
이거 봐. 원래라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어봐야 하는데, 거의 하늘을 보고 있잖아.
또 누가 게으름을 피워서,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닐 것 같아. 일단 프로그램을 먼저 확인해 볼게.
어떻게 됐어?
누가 몰래 침입했는데, 경보가 전혀 발동되지 않았어.
우리 공중 정원의 수법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컨스텔레이션의 도시 네트워크로 침입했어.
상대는 뭘 하려는 건데?
남긴 흔적으로 봐선, 시각 센서로 조건에 맞는 대상을 검색한 것 같아. 이따가 그들의 목표 모형을 만들어 볼게.
……
잠깐, 이 사람.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
……
……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고, 또다시 밝아지자마자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머리에 있는 포대가 벗겨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지휘관님, 이런 식으로 이곳에 모셔서 죄송해요.
……
익숙한 목소리엔 조금 낯선 숨결이 섞여 있었으며, 눈이 빛에 적응한 후에야, 겨우 앞에 있는 구조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구조체???
처음 뵙겠습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
좋은 목소리는 적대시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쉿, 소리 내지 마세요.
저희를 따라오세요.
그러자 시야가 어두워졌으며, 포대를 뒤집어쓴 내가 강력하게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전신을 샅샅이 확인했다.
심지어 구룡 야항에서 납치당한 이후, 지휘관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긴급 신호 발생기까지 그녀들이 가져갔다.
어째서인지 장치를 숨겨둔 곳도 잘 알고 있었다. 역시 공중 정원의 구조체도 이 일에 함께한 것이었다.
음, 이 표정을 녹화 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조금만 진정하세요.
그런 말로 누구를 진정시킬 수나 있겠어? 도대체 어떤 상황인데! 아무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을 거야?
지휘관님의 목소리가 저를 얼어붙게 하지만 않았다면, 저도 이렇게 손쉽게 속박되지 않았을 거예요. 둘시는 이 말을 하려는 거예요.
지휘관님, 아리사는 적이 아니에요. 적어도 지금은 말이죠. 저는 단지 아리사에게 팔레트 전쟁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에요.
어느 부대의 대원이든, 이유 없이 지휘관을 납치하면, 군사 법정에 서야 했다. 그러므로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지휘관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건 지휘관님이 알아서 맞혀야죠.
하지만 지휘관님이 둘시와 협력한다면, 컨스텔레이션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휘관님이 원하는 답을 조사해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예상과 달리, 그 보라색 머리의 구조체는 아주 명쾌하게 가져간 물품을 모두 돌려줬다.
확인해 봤을 때,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그것으로 보아, 지휘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지휘관님, 전에 베라가 한 말을 아직 기억하세요?
베라가 각성 로봇에 대해 경고했던 걸 말하는 거겠군. 둘시네아는 공중 정원이 전략을 바꿀까 봐 걱정했구나.
하지만 불만은 소리 없이 누적되죠. 외교부의 주도로 각성 로봇과 유리성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아무리 공중 정원이 한 발짝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눈에 띄지 않는 균열이 생겨, 모든 것이 조각나는 걸 막을 순 없어요. 오래 끌수록 균열이 많아질 거예요.
미래에 각성 로봇과 함께 지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대부분은 이 행동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
아리사의 관점은 반대하는 일부의 의견과 같이, 피할 수 없는 문제였으며, 결국엔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날이 밝기 전에, 이 팔레트 전쟁을 끝내보려고요.
둘시네아가 손을 펼치자, 한 열쇠의 투영이 손바닥 위에 떠올랐다.
컨스텔레이션의 최고 관리 권한의 상징이에요.
저를 보지 마세요. 전 둘시가 시킨 일을 했을 뿐이에요.
지휘관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듯, 그녀들은 동시에 고갤 돌려 지휘관을 봤다.
각자 알맞은 역할이 있는 법이죠. 지휘관님도 저희 팀에 가입한다고 약속하셨으니, 잘 써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