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광장, 그라피티가 가득한 벽 앞.
이곳을 포위하고 있던 수많은 로봇에게 사방이 둘러싸였으며, 이로 보아 3대 파벌이 협력 관계를 맺어, 지휘관 일행을 기습한 것 같았다.
로봇 파벌의 마스터도 적을 유인해 포위하는 전술을 아는구나?
헤비 해머가 그라피티 첨병 하나를 마크의 옆으로 날려버렸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폐기된 전술 모듈을 수집했었습니다. 우악!
마크는 먼저 날아온 로봇을 피한 후, 또다시 곧이어 날아온 안료를 피했다.
왜 모든 공격을 혼자서 받아야 하는 겁니까? 둘시네아는 뭘 하는 겁니까? 게으름을 피우는 겁니까? 어서 나와 그들을 통제하세요.
마크는 둘시네아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확실히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오히려 앞서 세운 행동 방안에 따라, 이젤에서 그림들을 하나씩 뜯어내고 있었다.
둘시네아가 그런 행동을 했음에도, 의외로 로봇들은 그녀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우선 이 수배 전단의 배신자를 잡고, 다른 일은 나중에 하자고!
왜! 너희들의 작품이 다 도둑맞게 생겼잖아!
지휘관. 아직이야?
좋아. 폭파 준비! 모두 그라피티 벽에서 떨어져!
마크는 포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었고, 덕분에 마크가 로봇들의 주의를 끌어, 모두 그라피티 벽으로부터 멀어졌다.
지휘관님, 이 회수 장치를 저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제가 당신들과 합류할 때까지 못 버틸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전 각성 로봇이라 괜찮습니다!
대부분의 로봇은 이미 마크를 쫓아 어느 정도 멀어졌고, 지휘관의 뒤에 있던 로봇들도 지휘관을 따라 안전 구역으로 왔다. 마지막으로 둘시네아의 위치만 확인하면 됐었는데...
지휘관!
통신기에서 카레니나가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쾅!
뒤편에서 일어난 폭발로 로봇들은 추격을 멈췄고, 그들은 몸을 돌려 바라봤다. 하지만 거품으로 둘러싸인 벽은 결국 그라피티로 뒤덮여 있지 않은 하층부부터 시작해, 두 조각으로 폭파됐다.
이번엔 지휘관이 직접 장치를 설치한 벽 양쪽에서, 또 두 번의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라피티 벽 양쪽에선 두 개의 동그란 풍선이 빠르게 부풀었고, 거품으로 둘러싸인 벽이 천천히 떠올랐다.
여기는 정비 부대의 "피구르드"호. 목표가 하늘로 올라간 것이 확인됐어. 공중 회수를 시작할게.
이 장치의 작동 원리는 원래 이런 겁니까? 잠깐... 그럼 내 머리 위에 이건...
요란한 폭발음이 마크의 말을 끊었고, 길 건너편엔 다른 풍선이 줄을 끌어당기며 천천히 상승했다.
마크는 그 벽에 비해 현저히 가벼워, 가속 장치가 작동되자마자,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한정 범위를 벗어나, 통신기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저녁 무렵, 컨스텔레이션의 조명 시스템이 작동돼, 일부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도시 내 정비 부대 모두의 동원으로 거의 복원됐다.
바로 그때, 지휘관 일행은 드디어 추격을 벗어나, 임시 주둔지로 돌아왔다.
이 각성 로봇들은 정말 집착이 심하네. 우리를 쫓아 거의 도시 전체를 가로질렀잖아.
수고했어.
테디베어는 의자에 앉은 채 단말기를 조작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인사를 했다.
그때의 그녀는 계속 명령을 입력하고 있었고, 카레니나는 장비를 해제하며, 힐끗 스크린을 바라봤다.
의회에서 보낸 메시지야?
이번 행동은 많은 물자를 소모했어. 80여 대의 비행체가 출동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고학 부대가 사용하는 "보호용 거품 발사기"도 결국엔 회수에 성공한 수량이 운송한 것에 반도 안 돼.
명목상으론 예술 협회의 소유지만, 사실상 공중 정원의 귀한 물자야. 의회엔 이것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지키는 자들도 매우 많아.
이 계획은 외교부와 참모부 그리고 예술 협회가 공동으로 추진했었지만, 쿠로노 내부의 영향력이 큰 리스트가 주도한 계획이었기에,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의원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쿠로노가 예전에 벌인 여러 악행까지 더해져, 쿠로노에 대립하는 주요 인물인 니콜라 사령관도 확실하게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퍼니싱은 한동안 잠잠하겠지만, 인간 쪽은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그 승격자나 대행자들이 살아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화약통에 앉아 갑자기 생겨난 이웃과 인사를 하는 기분이네.
테디베어는 이 말을 하면서, 틈틈이 둘시네아를 힐끗 쳐다봤다.
리스트 그 녀석이야. 니콜라 사령관님도 동의했어. 둘시네아를 통해 각성 로봇과 접촉하겠다고 했어.
둘이 뭐라고 귓속말을 하는 거야?
지휘관과 테디베어는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며, 그와 함께 둘시네아의 감정 변화를 계속 지켜봤다.
아쉽게도 인간이 쓰는 이 방식은 둘시네아에겐 효과가 없는듯했으며,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구석에 서 있었다.
인간은 컨스텔레이션의 로봇이 뭘 해주길 바라는 건가요?
뭘 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아무래도 외교부의 결정이니까...
네?
이게 불평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 뻔한 거짓말이었다. "인간이 원한다"라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으며, 결정을 내리는 자든 반대하는 자든, 지금은 그런 호칭을 사용할 자격이 없었다.
그냥 누군가가 사용된 자원이 너무 많아서, 계속되길 바라지 않다는 뜻이지.
누군가요?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머지 바보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인간도 다른 예술 파벌로 나뉘는 건가요. 전 인간이 좀 더 단결돼 있을 줄 알았어요.
맞아. 그럴 때가 있긴 있어.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은 진작에 멸망했을 거야. 하지만 아닐 때도 있지. 그래서 인간이 오늘까지 올 수 있는 거고.
연구로 예를 들어보지.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강요한다면, 인간은 영점 에너지 엔진은커녕, 증기기관도 만들 수 없었을 거야.
……
컨스텔레이션의 로봇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인간같이 하는 게 더 좋을까요?
이 문제는 내가 대답할 게 아니야. 아무래도 결정권은 각성 로봇의 모두에게 달렸으니까. 우리 같이 관련이 없는 이들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요?
둘시네아가 의혹을 가졌던 그때, 테디베어는 투영 기기를 켜, 그녀의 눈앞에 개조 후의 웅장한 예술 전시관을 보여줬다.
지금의 예술 전시관은 이전의 규모에 비해, 여러 방면으로 확장됐다.
이 건물은...
팔레트 전쟁에 참여하길 원치 않던 도시에 있는 각성 로봇들과 힘을 합쳐 개조한 거야. 도시의 시설과 장치의 작동에 걸림돌이 되던 예술품은 모두 철거해 이곳으로 옮겨놨어.
"보호용 거품 발사기"가 있어서, 거의 손상을 주지 않을 수 있었어.
왜 이렇게 한 건가요?
워낙 쉽게 만들 수 없는 작품들이니, 이렇게 파괴되면 너무 아깝잖아.
네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이해할 수 있거든. 그러니까 이쁜지 안 이쁜지 알아볼 수는 있다고.
그러나 둘시네아는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강경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 않았나요? 어째서 방향을 바꾼 거죠?
이렇게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래. 음... 이렇게 말하면 점점 더 복잡해질 수도 있어.
의회가 불안을 겪고 나서, 인간이 처음으로 한 발짝 후퇴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
한 발짝... 후퇴요?
내가 대장이 적당히 모자란다는 장점에 이끌려, 대장의 더 많은 모자란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테디베어!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지금은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간이잖아.
시끌벅적한 둘과 달리, 둘시네아는 어떤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받아들인다...
그녀는 이것이 말로는 쉬워도 하기 어려운 일이며, 방금 그 말속의 단점은 그저 갈등 속에서 탄생한 오만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인간은 확실히 힘이 닿는 곳까지 노력했으며, 어쩌면 컨스텔레이션도 함께 어떠한 변화를 이뤄내야 했다.
그러나 그전에...
전시관 동남쪽의 구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아요.
……
전시관 근처에 있는 대원은 응답해라. 전시관 근처에 있는 대원은 응답해라.
여기는 전시관 C 구역의 1팀입니다.
무슨 일이야?
도착한 각성 로봇들이 지금 전시관 안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레니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예술 협회 멤버에게 다시 보고하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각성 로봇을 저지할 생각은 없는 거야?
각성 로봇들의 팔레트 전쟁에 과도한 간섭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게 어딜 봐서 팔레트 전쟁과 관련돼 있다는 건데. 그나저나 각성 로봇들은 도대체 왜 갑자기 싸우는 건데?
환상파가 야수파의 전시 구역이 자신들의 구역보다 넓다고 했습니다. 입체파는 환상파의 역작들이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있다고 했고, 야수파는 입체파가 왜...
……
하아. 또 바빠지겠네.
조금만 더 버텨. 우리가 지금 현장으로 갈게.
통신이 끝나자, 카레니나는 다시 도구들을 집어 들었고, 이번엔 "잘 다녀와"라고 손짓하려는 테디베어를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일손이 부족하니, 너도 와서 도와.
알았으니까 잡아당기지 마. 가면 되잖아!
그리고 쇼핑몰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다 같은 곳에 몰려갈 순 없잖아.
일리가 있어. 그럼 두 팀으로 나눠, 앞뒤로 포위해 공격하자.
자, 그럼 조를 짤게. 가위 바위...
테디베어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가위바위보의 구호를 외쳤지만, 카레니나가 곧이어 한 말이 그녀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테디베어는 마크와 한 팀으로 뒷문에 가고, 난 지휘관과 한 팀으로 갈게.
누구 맘대로?
나랑 지휘관은 하루 종일 외근을 나가서 합이 더 잘 맞거든.
쳇. 마크도 같이 행동했었잖아.
카레니나는 테디베어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다는 듯, 몸을 돌려 도구의 일부를 자신의 품에 쑤셔 넣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던 손이 지휘관의 팔을 잡았다.
가자, 지휘관.
멀리 바라보자, 각 부대의 대원이 연이어 다양한 도구를 든 채 전시관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며, 대부분은 연기가 나고 있던 구역을 향해 달려갔다.
정말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그때까진 아직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