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는 거리 중심에 우뚝 서서, 그녀의 그림과 함께 석양빛을 받고 있었고, 이는 누가 봐도 승자의 자태였다.
아아아~ 드디어 끝났네.
아이라는 기지개를 켰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로봇을 보며, 조금의 짜증도 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승부가 났다고 할 수 있겠지?
어찌 보면 그렇긴 한데, 아직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라 님. 팔레트 전쟁을 체험하면서 즐거우셨습니까?
응!
이렇게 재미있는 예술 축제를 참여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그렇습니까? 그럼 정말 다행입니다.
인간 중에도 이렇게나 예술을 추구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뿌듯합니다.
각성 로봇들에게도 나이가 있다면, 앞에 있는 온몸이 구식 부품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분명히 노인 중 한 명일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라는 노인을 대하는 태도로 겸손하게 웃었다.
아이라는 왜 저희가 이 전쟁을 시작했는지 물어보지 않으실 것입니까?
당신들이 말하고 싶다면, 물론 나도 듣고 싶지.
음...
아이라는 얼떨결에 이 전쟁에 휘말려도 상관없다는 뜻입니까?
당신이 지금 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고, 결국 팔레트 전쟁이 계속된다 해도 말입니까?
당신들의 예술에 대한 집착과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내 직감이 틀리지 않는 이상, 난 계속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이 각성 로봇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또 한편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이번 전쟁의 승자라도, 저희는 당신에게 예술 리더의 칭호와 권한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상으로 제가 최대한 당신의 요구를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세요. 컨스텔레이션의 예술 소장품이든, 인간 황금시대의 유산이든, 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물품들입니다.
……
그런 건 딱히 필요없고... 마침 부탁하고 싶은게 하나있어.
……
아무리 마크에게 물어봐도, 마크는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를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마크.
지휘관의 앞으로 걸어온 각성 로봇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복고 스타일 그 자체였다.
미론, 정말 인간에게 말하려는 겁니까? 저는 다소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괜찮아. 아이라가 이 인간분을 이렇게 믿으시니, 나도 아이라의 판단을 믿고 싶어.
마크는 삐진 아이처럼 의자에서 뛰어내려, 같은 파벌의 다른 로봇을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저를 미론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입니까? 구조체들이 말하는 그 인간 영웅 말입니까? 그래서 아이라가 당신을 그렇게 신뢰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위대한 선현이 너무 눈부셔서 그런지, 두 종족의 차이를 잊게 될 때가 많습니다.
천천히 말입니까? 흐음...
이 한숨이 받아들인다는 건지, 반대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미론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인간이 팔레트 전쟁에 참여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인간의 취약함으로 보면 확실히 더욱더 기본 시설이 정상적으로 가동돼야 할 것 같습니다.
미론은 이전의 각성 로봇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줬다. 어쩌면 세르반테스가 남긴 도시 관리자와 관련된 로봇인 걸까?
관리자 말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단지 세르반테스 님을 오래 따라다녔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걸 잘할 뿐입니다.
미론은 자신의 안료 발사기를 들었고, 그것은 그가 가진 부품 중 유일하게 낡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항상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왜...
왜 미론은 팔레트 전쟁을 막지 않는 건가요?
……
둘시네아도 예술이 컨스텔레이션의 정상 운영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그렇게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도시의 상황이 변하고 있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에요.
그저 여러분이 왜 이렇게까지 예술에 대해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이에요.
도시 밖의 로봇들이 가진 냉정하고 객관적인 이성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닙니까?
……
아, 둘시네아. 당신은 운이 좋은 겁니다. 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프로그램과 기체는 모두 인간이 청사진을 기반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당신은 만들어졌을 때부터 대부분의 로봇이 부러워할 자유를 얻었습니다.
전... 부러움을 받을 게 못 돼요.
그러나 미론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녹슨 팔을 들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님. 제 기체가 무엇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지 맞혀보시겠습니까?
미론의 몸은 마치 거대한 구에 팔다리가 부착된 것 같았으며, 구의 중앙엔 가끔 불빛이 반짝이는 대형 시각 센서가 있었다.
음... 정말 그렇게 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여린 몸이 발사한 총알이라도 같은 살상력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나사 볶음을 요리해 드리길 바라는 겁니까?
역시 로봇과 자주 어울리시는 지휘관님답게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제 기체는 금속으로 된 물품을 가공 및 용접 등에 가장 적합한 공업용 기체입니다.
작업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고, 재료를 절약하기 위해,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설계됐습니다.
제 프로그램에 기록된 18자리의 생산 넘버로 봐, 저의 창조자는 자신의 설계에 매우 만족했을 것입니다.
예정된 일을 위해 만들어지고, 예정된 일을 위해 죽습니다.
제가 다른 일을 하려고만 하면, 이 기체가 제 생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려줍니다.
정밀 용접만 하면 되기에, 지지력을 최대한으로 줄인 팔은 무기조차 생각대로 휘두르지 못합니다.
미론은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 팔을 한 번 흔들었고, 그는 지지력뿐만 아니라 행동반경과 같은 많은 제한이 더해져 힘겹고 서툴러 보였다.
미론을 설계한 사람은 황금시대의 인간이었으며, 인간은 직접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최소한의 대가를 치러 로봇에게 떠밀었다.
원래라면 이상한 게 없었겠지만, 이는 퍼니싱의 존재와 같이, 의도치 않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로봇이니까 자신을 개조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미론은 둘시네아를 바라봤다. 미론에게서 끊임없이 깜박이는 불빛은 어떠한 부러움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었다.
둘시네아. 당신 같은 존재는 그냥 더 강하거나 가벼운 팔로 교체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두 다리를 잘라내 캐터필러로 바꾸고, 그것을 가동하기 위해 당신의 프로그램이나 의식 속에 이상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넣어도 괜찮으십니까?
……
이런 생각이 실현되길 바라는 건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의 로봇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같은 세상에선, 온전하면서 편리하고, 때마침 방치된 부품은 매우 드뭅니다.
선현이 제 눈을 뜨게 해주신 그때, 전 다른 단체와 어울리려 해봤습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로봇을 도와 금속을 처리했습니다. 안식처가 생긴 후, 효율을 위해, 저는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기계 교회에 가입해도, 전 단순히 공업 모델이기에, 다시 금속 처리로 배치됐습니다.
제 프로그램도 끊임없이 제게 말해줬습니다. 공업용 모델 로봇은 금속 처리만 할 수 있고, 금속 처리밖에 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미래의 어느 날 코어가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계속 금속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든, 마크든, 다른 파벌의 로봇이든, 저희의 운명은 모두 저희를 만든 청사진에 구속돼 있습니다.
저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무대에 올랐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연기합니다.
이 점에서 저희는 자연이 만든 생물보다 더 비참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신조차 없을뿐더러, 저희의 탄생은 그저 인간이 만든 도구에 불과하고, 인간의 시나리오에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잔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겪는 것에 비해, 운명은 저희 로봇들을 더 잔혹하게 만들었습니다.
미론은 힘겹게 어깨를 흔들었고, 그는 이렇게 해야만 손등에 있는 안료 발사기를 자신의 시각 센서 앞에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희는 운이 좋게도 어둠 속에서 예술을 접했고, 세르반테스 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창작할 때만, 가치가 없는 공업 모델 로봇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제 가치를 느낍니다. 저는 뭐든지 생각하고 그릴 수 있습니다.
살육, 공업, 심지어는 길거리를 청소하는 기체까지, 어떤 타입의 로봇이더라도 모두 자유를 만끽할 자격이 있습니다.
구속도, 운명도 없고, 아무리 하찮은 로봇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로 마음껏 표출할 수 있습니다.
미론의 손에 있던 용접 토치가 갑자기 켜졌다. 하지만 이는 누군가를 해치려는 것이 아닌, 뿜어져 나오는 불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려는 것뿐이었다.
예술은 저희가 찾은 답이며, 적어도 컨스텔레이션에선 모든 로봇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컨스텔레이션에 있는 로봇 예술의 기원이자, 이 도시에 있는 로봇의 영혼이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외침이자 운명에 대한 반항이었으며, 황량한 종말 속에서, 조각난 의식을 다시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버팀목을 찾기 위함이었다.
각성 로봇들은 절대로 예술이 없으면 안 됐기에 그렇게 집착한 것이었다.
참모부의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예술과 이 도시의 관계는 보기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지휘관님은 아이라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신 겁니까?
미론은 지휘관이 던진 질문의 의도를 오해한 것 같았다.
아이라는 승리를 거머쥔 후, 지휘관님에게 이 사실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입니다.
지휘관님도 직책이 있지 않습니까.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하면, 당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지 않습니까.
아이라는...
내가 미론 님한테 말했거든, 나한테 알려주지 말고, 지휘관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이렇게 하면 나도 마음 편히 할 수 있거든!
그렇게 예술 협회의 임시 텐트가 공터에 세워졌고, 동시에 배달되는 물품도 점점 많아져 갔다.
아이라는 지휘관의 손에서 수납함 하나를 받아 들고, 대답을 하며 그것들을 다른 위치에 놓았다.
아이라는 고민이 있다는 듯,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 앞으로의 창작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아무래도 그들은 아직 예술 리더를 뽑지 않았으니, 당연히 계속되겠지.
그들은 엄청 진지한 태도로 창작을 대한다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런 것 같아.
하지만 미론이 이 모든 것은 이후의 일이며, 당분간은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아이라는 한 수납함을 뒤집어 안에 들어있는 것을 꺼냈고, 그것들은 모두 그림과 조각에 쓰이는 도구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라가 각성 로봇이 예술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른다면...
그 말을 들은 아이라는 하던 일을 멈추고, 미소를 지은 채 지휘관을 바라봤다.
지휘관, 그들도 영혼이 있어. 그래서 아이라는 그들을 한번 믿어보려고.
그 웃음에 더없이 진지한 감정이 감춰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지휘관도 있잖아.
그러자 무거운 감정들은 다시 활발한 나비가 돼, 불빛 아래에서 나풀나풀 날아다녔다.
그와 함께 아이라도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앗, 첫 작품의 주제는... 그걸로 해야겠어!
응? 걱정하지 마. 지휘관. 아이라는 꼭 이길 거야.
그들이 몇 번의 팔레트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아이라는 그들이 인정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게.
지휘관은 아이라의 실력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라는 캔버스의 끈을 풀며 지휘관을 바라봤고, 그녀가 열심히 듣고 있는 걸 본 지휘관은 마음을 내려놓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 엉망진창인 사고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대해주시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팔레트 전쟁을 인정해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컨스텔레이션의 축제는 언제나 아이라를 환영할 겁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쉽게 승리를 거머쥐실 수 없을 겁니다."
캔버스를 펼치던 손은 공중에서 멈췄고, 곧이어 활짝 핀 작약꽃 같은 미소가 나타났다.
선전포고를 받았네. 지휘관. 우리도 파이팅 해야 해!
당연하지? 아이라는 지휘관까지 포함시켰어. 그렇지 않았다면 일부러 이렇게 많은 물건을 여기로 옮기지 않았을 거야.
어쩐지 수납함의 수량이 엄청났고, 형형색색의 각종 도구가 있었다.
기대에 가득 찬 아이라의 눈빛을 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지휘관의 주둔지는 한바탕의 환호와 함께 이 텐트로 옮겨졌다.
아이라는 영감 폭발의 상태로, 앞으로 한동안은 엉뚱한 사고와 함께하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