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었다. 말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들에게서 그 모습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속박된 로봇들은 에너지가 소진됐다는 듯이 나란히 앉아, 자신의 앞만 바라본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캔버스가 있었고,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도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이 그림에 대해선 지휘관 또한 "감상을 강요"받은 로봇들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졌다.
그럼에도 리는 인내심이 넘치는 교사처럼 연설대를 거닐며, 부지런히 해설을 했다.
이곳에서 표현하려는 걸 알아볼 수 있겠어?
[삐이이], 알아보기는 무슨.
결국 한 로봇이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구속 도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수영장 로봇은 애초에 전투 성능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기에, 그의 몸부림은 헛수고일 뿐이었다.
저기... 파벌 리더. 못 알아보겠다면 나에게 질문해 줘.
저기, 리, 이분은 환상 로봇 인상파의 리더입니다. 자신의 입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상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삐이이], 상처는 무슨!
저 각성 로봇의 머리엔 연기가 나려는 듯했고, 뒷면에 있는 소형 모니터엔 문자 부호가 끊임없이 나타나는 게, 기체의 프로그램이 화를 주체하지 못해 오류가 난 것 같았다.
당신이 뭘 그렸는지 알기는 하는 겁니까?
리가 의혹을 품은 눈빛으로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제 시각 센서는 아직 멀쩡합니다!
리는 다시 마크를 쳐다봤고, 그제야 상대방이 끝까지 캔버스를 등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고개를 돌려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에 리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그린 그림이야.
아닙니다. 이건 프로그램의 잘못이 아닙니다. 무작위로 이 캔버스에 픽셀을 생성한다 해도, 이 지옥의 광경 같은 그림은 그려낼 수 없을 것입니다.
각성 로봇에 장착된 거리 측정기가 가시광선을 발사해, 캔버스의 우측 상단을 가리켰다.
이 삐뚤삐뚤한 날개와 외모가 흐릿하게 그려진 존재는 뭡니까?
환상 로봇 인상파의 화법으로 그린 마크야.
마크는 뒤돌아보려는 충동을 애써 참으며,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했다.
침식된 것 같은 꼭두각시 세 개는 뭡니까?
초 현실 로봇 야수파의 화풍으로 그린 나랑 두 로봇이야.
그럼, 여러 큐브가 뭉쳐져 있는 것 같은 고깃덩어리는 뭡니까?
그건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화풍으로 그린 지휘관님이야.
도대체 왜 이 화풍들을 섞은 겁니까?!
……
예술로 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각 파벌의 스타일을 다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모든 파벌과 싸운다고 할 수 있고, 정정당당하게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어.
실례하겠습니다.
얼굴 모니터에 "노이즈"가 일어난 각성 로봇이 이제 막 숨을 돌린 듯, 상체를 일으켜 리에게 질문했다.
전투를 위해 설계된 그의 신체는 구속 도구로 손발이 묶여있었음에도 위력을 뽐냈다.
드디어 이 그림이 빈 껍데기처럼 보이는 원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결국엔 프로그램이 그린 그림인 겁니까?
그래선 안 됩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이런 영혼이 없는 그림이 승리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리는 잠시 주저하다 뭔가 생각난 듯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너희들의 창작 작품도 프로그램이 만든 거잖아.
……
……
내가 물어보면 안 될 말을 한 건가?
삐삐삐...
각성 로봇의 얼굴인 모니터엔 픽셀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면서, 빠르게 우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금속으로 된 몸뚱이를 끊임없이 지면에 부딪혔고, 구속 도구에 속박된 다리는 수면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이 몸뚱이 안에도 여러 사물이 있습니다! 크윽... 당신은 그림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당신 인간들도 단백질, 물, 무기염 같은 것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겁니까!
잠깐만. 그럴 의도는 없었어.
당신도 분명히 이 "전쟁"이 소꿉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 아닙니까?
프로그램도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크윽...
저희는 절대 이런 그림이 승리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봇들이 이상한 자세를 한 채, 서로 부딪히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런, 이런, 리더. 왜 다 어린아이처럼 난동을 부리는 겁니까?
어? 환상 로봇 인상파는 왜 제압된 겁니까? 이래선 안 됩니다.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각 멤버들이 재빨리 앞으로 나가, 구속된 각성 로봇들을 하나씩 난동 속에서 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충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아, 누가 내 안테나를 찬 거야."
"내 모니터에 부딪히지 말라고 [삐이이]."
이래서는 승패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네, 그만 말하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
밤이 되어서야 이 분쟁 속의 분쟁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제때 도착한 주둔 부대의 대원들과 도움을 주려는 로봇들이 함께한 덕분에, 일이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커지진 않았다.
와, 와, 와...
마크는 소동으로 분해된 자신의 팔을 대체할 새로운 팔을 얻었다.
그러자 위대한 마크는 공중 정원의 창조물인 팔을 돌리며, 신기하다는 듯 훑어봤다.
정비 부대의 대원들도 바삐 움직여, 도시에 파괴됐던 기본 시설들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
리는 잠시 주저했고, 자기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리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한숨을 쉬고는 죄송하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죄송해요. 지휘관님, 제가 망쳤어요.
제가 그런 말을 해선 안 됐어요.
진심을 다해 상대방과 대화하려 했지만, 이런 결과로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휘관님?
지휘관님은 지금 저를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
아, 아니. 리의 진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각성 로봇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집착은 공중 정원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
리, 이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때, 마크도 팔에 대한 연구를 멈췄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리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리의 "모두를 그림에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지 않았습니까?
위대한 마크는 컨스텔레이션의 모두를 한 그림에 담아낸 걸 아주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 함께 다시 그림을 그려봅시다. 이번에는 우리의 두 손으로 말입니다.
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이 그림에 위대한 마크의 흔적을 남기로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 멤버들이 말아져있는 캔버스를 들고 리의 옆으로 왔다.
이건...
저희가 난전 속에서 지켜낸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이번엔 저희도 도와드릴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리더.
마크의 자랑 때문인지, 안료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많은 각성 로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리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휘관이 격려의 의미로 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지휘관님은 당연히 빠지면 안 되죠. 지휘관님은 신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예술 리더잖아요.
지휘관이 연설대에 서서 예술에 대해 연설하는 장면은 재미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 도시는 이렇게까지 예술을 중요시하는데, 관련 기능을 갖춘 전시 시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전시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컨스텔레이션의 전시회는 24시간 내내 열립니다. 바로 위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각성 로봇들의 예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요.
그들은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또 다른 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그들에게 인간은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도시와 이 세계도 뭘 의미하는지까지.
조사해야 할 게 많아요. 제 생각엔 그 작품들이 답을 줄 것 같아요.
지휘관님도 같이 가시겠어요?
지휘관님이 함께해 주신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의견을 제시해 주시겠죠.
리의 눈엔 결의가 가득했고, 이번 "분쟁"은 다른 수단을 써서 강제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리는 그 그림을 완성해, 전달하고 싶은 것들을 그림에 담고 싶어 했다.
지휘관은 개인 단말기를 꺼내, 편지를 작성하고는 예술 협회에 보냈다.
당분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서로 솔직해지려 노력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갈등이라는 높은 벽을 허물고 서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고.
그전까진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됐다.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라도 그들에게 보내주면.
그 마음은 조금씩 쌓여 언젠간 소리 없이 한곳에 모여들게 돼, 수많은 여정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는 모닥불이 될 것이었다.
누군가 이 빛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춰 서고 바라보며,
과거의 먼지를 털고,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들에 가볍게 인사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