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며, 코끝에서 풀의 향기를 맴돌게 했다.
손에 든 단말기로 부채질을 했지만, 뒤에 있는 큰 장치에서 나오는 열기를 조금도 상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건물 안에서 꼭대기로 올라가는 플랫폼이었고, 그 위엔 공중 정원이 설치한 탐측 장치가 있었다.
평소엔 위협이 그들을 깨우기 전까진 항상 건물에 숨어있었다.
본체에 가동 기록이 없고, 냉각 시스템도 없는데, 그럼, 전에 우리 수송기를 목표 고정을 한 건...
리가 수리 포트의 덮개를 제자리에 놓자, 그제야 탐측 장치의 냉각 시스템이 다시 작동됐고, 등 뒤에서 전해져오던 구워지는 듯한 감각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앗, 리. 제 안료를 다 떨어뜨렸습니다.
장치의 반대편에서 그라피티를 그리던 각성 로봇이 팔을 뻗어 항의했다.
미안해, 미처 보지 못했어. 혹시 만회할 방법이 있을까?
음... 당장은 괜찮습니다. 이런 상황은 위대한 마크 혼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각성 로봇 마크가 분사구를 조정한 후, 다시 장치의 측면에 안료로 열렬히 그라피티를 그리기 시작했다.
불과 수십 분 전, 지휘관과 리는 수송기를 타고 컨스텔레이션에서 영문도 모르게 벌어진 로봇의 분쟁을 해결하러 왔다.
하지만 도중에 도시에 배치된 탐측 장치에 목표 고정을 당했다.
비록 근처에서 스스로를 "위대한 마크"라고 부르는 각성 로봇을 만났지만, 그는 누군가가 이 탐측 장치를 건드리는 걸 본 적 없다고 했다.
분명해요. 당시의 상황과 저희 수송기가 지나간 공역으로 추측해 보면, 이 탐측 장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동됐다고 미루어 볼 수밖에 없어요.
어쩌면... 무언가가 시스템에 침입했고, 아주 깔끔히 뒤처리를 한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침입했든, 입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탐측 장치는 컨스텔레이션의 도시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어요. 상대는 거기서부터 시작했을 것 같아요.
공중 정원에서 컨스텔레이션에 배치한 모든 관련 인원과 원래 여기에 존재했던 로봇들이 의심 대상이라 할 수 있어요.
맞아요. 각성 로봇...
리는 이런 호칭이 익숙하지 않아 잠시 주춤했다.
바로 그때, 통신기에서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정비 부대. 방공 무기엔 가동된 흔적과 접속 정보 모두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탐측 장치에서 로봇의 네트워크를 제거할 수 있냐는 말이 나온 겁니까? 외교부는 정말이지... 인간의 성의를 보이기 위한 겁니까? 말도 안 됩니다.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작은 사고일 뿐이야. 사령부의 지휘를 따르도록.
그리고 방공 무기의 방아쇠는 아직 우리 손에 있잖아.
……
완성했습니다.
조금 흥분한 목소리가 사고를 멈추게 했고, 지휘관이 고개를 돌리자, 각성 로봇 마크가 부르고 있었다.
위대한 마크는 이 작품을 <먼 곳을 바라보다>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지휘관이 리와 함께 탐측 장치의 측면으로 가보자, 평평했던 아머 모듈은 그라피티의 화판으로 변해있었다.
작은 로봇이 낮은 벽 위에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인간과 구조체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조금 숙인 채 모여, 망원경같이 생긴 로봇의 머리를 각자 한 쪽씩 사용해 멀리 내다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이 그림 속의 세 명은 조금 눈에 익네요.
"저기요!"
???
거기 투톤의 머리색, 흑과 백의 조화 속에 적색과 청색이 조금 섞인 것이 조각하다 만 것 같은 로봇!
무슨 일이지? 회색의 두 발로 움직이고, 안료 스프레이 총을 휴대하고 있으며, 한번 접힌 듯한 선반같이 생긴 로봇아.
혹시 운영되고 있는 공방을 아십니까? 전 이동 모듈을 전체적으로 검사하고 싶습니다.
아직 운영되고 있는 공방이라. 도시의 시설이 이 정도까지 마비됐다니.
회색의 두 발로 움직이고, 안료 스프레이 총을 휴대하고 있으며...
마크, 위대한 마크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주문 같은 별명을 부르지 마세요.
미안해, 여기선 다른 이들을 이렇게 부르는 줄 알았어.
같은 로봇으로서 로봇의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별명은 만날 때 한 번만 쓰면... 뭐 하시는 겁니까?
이 인간은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계속 마크의 주위를 도시는 겁니까?
사냥 본능이 깨어난 겁니까? 아쉽게도 마크는 먹을 수 없습니다.
그렇군, 이게 바로 마크가 원하는 형태인 거야?
이것은 예술적인 표현입니다. 예술적인 표현! 사고를 유연하게 가져야 합니다. 유연한 사고!
어째서 인간임에도 예술적 조예가 이렇게 부족한 겁니까.
하지만 이 장치는 사실 예술과 딱히 관계가 없잖아. 마크.
탐측 장치는 컨스텔레이션의 내부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언제든 도시 구역에 있는 임의의 물체를 목표 고정할 수 있었다.
탐색 장치에 연결된 방공 무기의 "방공"은 사실상 대공의 의미가 더 적합했다.
이 장치에선 더 이상 쓸만한 단서를 찾을 수 없어요. 지휘관님.
리가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지휘관에게 개인 단말기를 건네줬다.
그나저나 지금 이 "전쟁"의 전황은 어때?
전황 말입니까? 당연히 저희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놀라운 대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차원 로봇 입체파의 문제부터 처리해야겠네.
리가 지휘관에게 눈빛을 보내 지휘관과 생각이 같음을 확인한 후, 몸을 돌려 플랫폼을 제어하는 제어 단말기로 갔다.
공평하게 대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다차원 로봇 입체파만 차별하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