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조용해졌네.
다른 소대가 처리하고 있어. 별다른 일은 없을 거야.
……
각성 로봇이 그저 멍하게 서서, 지면을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안료, 분사기 그리고 아직 색깔을 입히지 않은 캔버스.
여러 가지 사물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부러진 팔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 "전쟁"은 점차 끝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예전부터 이곳에서 색채를 흩뿌리며, 윤곽을 그린 것 같았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자랑스럽게 자기의 그림을 설명하던 것처럼,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이전에 했던 말들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아수라장이 됐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각성 로봇이 갑자기 몸을 숙였다.
각성 로봇은 널브러져 있는 병과 캔 사이에서 무언가를 주워, 시각 센서에 가까이 가져다 대 확인했다.
찾았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흘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각성 로봇이 환호하며, 안료 한 통을 높이 든 채, 기뻐하며 자신의 이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각성 로봇은 익숙하게 통을 열어, 준비한 저장 용기에 안료를 부었고, 그 후 계속 그림을 완성하려는 듯이 팔을 한 번 움직였다.
……
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다 끝나갑니다.
위대한 각성 로봇인 마크가 곧 그처럼 위대한 작품을 완성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완전히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똑같이 행동할 거야.
그렇게 쳐다보지 마. 놀랄만한 일이 아니야.
감상에 젖을 필요 없어. 미리 정해진 목표만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집행 부대에선 일반적으로 이런 구조체를 모범이라고 하지 않아?
어쨌든, 이 소란은 거의 끝이 났네.
사후 보고는 지휘관이 알아서 처리할 거지?
베라가 기지개를 켜자, 갈기갈기 찢어진 커튼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렸고, 석양의 빛이 베라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어느덧, 컨스텔레이션은 다시 한번 밤을 맞이했다.
어?
내가 저 로봇들을 불러 모아 처음부터 다시 해볼까?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냥 지금 방법대로 다시 처리하자.
한번 발생하면 또다시 제지하는 거지. 나도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아.
에휴,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은 원래 이렇게 한가해? 참모장에게 한 가지를 더 제안해야겠어.
컨스텔레이션의 입주 작업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중합 탑의 영향 범위에 있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2차 정찰 계획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휘관도 왜 이럴 때 도시 주둔 임무를 맡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마음대로 해. 그때 울면서 내게 구해달라고 하지만 않으면 돼.
완성했습니다!
갑자기 울려 퍼진 외침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 각성 로봇이 팔을 흔들며 지휘관을 부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으로 봐선 방금 손에 들고 있던 도구로 캔버스를 완전히 말려, 조심스럽게 이젤에서 떼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휘관과 베라는 양옆에서 함께 머리를 내밀고 그림을 살펴봤다.
두 분이 주신 영감으로, 위대한 각성 로봇 마크가 이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의 이름을 <진격의 발키리>로 지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몸의 한계를 생각해서, 인간의 위치를...
그러니까 대화나 이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베라가 화판의 가장자리를 손으로 치며, 각성 로봇의 설명을 끊었다.
베라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그림은 매우 괴상했었다.
짙은 적색의 무언가가 캔버스 중앙에서 흉악한 학살을 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 모자라, 등에서 팔이 여러 개 뻗어 나와 있었고, 팔 하나하나가 장검을 꽉 쥔 채, 뿌려진 붉은 안료 속에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흉악하고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어, 머리만 봐서는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남겨둔 머리띠처럼 생긴 역원 장치는 광적인 붉은빛 속에서 너무나 눈에 띄었다.
"휙" 소리와 함께, 베라가 각성 로봇이 떼어낸 캔버스를 빼앗았다.
조심하세요! 위대한 마크가 드린 위대한 작품이지 않습니까. 잘 보관해야 합니다.
베라는 말을 잇지 않고 몸을 돌려, 구석에서 타고 있는 화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각성 로봇은 베라가 뭘 하려는지 눈치챘다는 듯, 이를 막기 위해 빠르게 달려갔다.
하지만 베라가 칼집의 한쪽으로 살짝 밀어내자, 각성 로봇은 더 이상 베라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내 물건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 작품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 작품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말을 마친 베라는 캔버스를 잡은 손을 화로 위로 옮기고, 그림에서 검지를 뗐다.
알겠습니다. 위대한 마크가 알겠다고 했습니다. 당장 수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베라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녀는 또다시 손가락 하나를 뗐다.
위대한 마크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저 그림은 죄가 없습니다.
지금 내 물건을 가지고 협상하려는 거야?
좋아. 네가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베라가 캔버스를 다시 각성 로봇에게 던져줬고, 각성 로봇은 얼른 두 팔을 뻗어 받았다.
네 친구들에게 전해, 다시는 이 도시에서 이런 멍청한 분쟁을 일으키지 마.
예술을 위한 전쟁은 멍청하지 않습니다!
베라가 보기 힘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럼에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럼 계속해 봐.
계속 너희들의 미친 축제를 계속해. 인간과 로봇이 함께 만든 이 도시를 계속 파괴해 봐.
그러면 다음으로 이곳을 찾는 누군가는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아닐 거야.
각성 로봇은 속으로 이것저것을 따져보고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베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 문밖에 서 있던 백발의 소녀와 부딪혔다.
베라가 순식간에 무의식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베라가 손에 든 태도를 백발의 소녀에게 겨눴음에도, 소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
베라는 그 소녀가 위협이 되지 않는 일반 로봇임을 확인 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불안은 매우 무서운 감정이며, 특히 남몰래 커져갈 때 더욱 무서워지지.
컨스텔레이션에 주둔한 인간을 말하는 건가요?
흥, 모두는 아니야.
……
지휘관이 뒤쫓아갔을 때는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베라가 개인 단말기를 들고 표시된 파일의 내용을 확인했다.
"전투"? 그냥 칼로 파이프의 분사구 같은 것들을 파괴할 뿐이야.
다시 보니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네.
저 로봇에게 지휘관과 도색 기계가 안료로 "장난을 치는" 광경을 엄청나게 큰 유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해, 케르베로스 소대의 휴게실에 걸어놔야겠어.
장난이라니... 구속 도구 발사기로 일부 도색 기계를 무력화하는 정도긴 했지만, 그래도 힘겨운 전투였어.
아무튼, 이곳에서의 내 임무는 끝났다고 할 수 있겠네.
마지막엔 내가 귀찮은 일을 미리 해결해 주기도 했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안 들어?
베라가 미소를 거두고, 손에 든 단말기를 끄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 로봇들이 들고 있는 게 안료 분사기가 아니라 다른 물건이었다면, 그들은 방아쇠를 당겼을까?
난 당겼을 거라고 생각해.
베라는 지휘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들의 부품을 기체에서 뽑아내지 않은 건, 로봇이 아직도 예술의 감정적인 부분에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었어.
통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이 규칙을 깨트리고,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면, 이후의 모든 것은 완전히 통제를 잃을 거야.
그 로봇, 세르반테스라고 했나? 적어도 그 로봇들에게 있어선 이 도시를 유토피아 같은 존재로 만들었잖아.
아쉽지만, 동화 같던 때는 이제 끝났어.
세르반테스가 떠났을뿐더러, 컨스텔레이션의 존재도 완전히 노출돼, 고요한 구석에 있는 이 도시는 세상의 파도를 마주하게 됐다.
그렇기에, 이 도시에선 더 이상 "언제든지 한바탕해도 돼."라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됐다.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내가 받은 명령은 그저 최대한 빠르게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라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지휘관도 아직 이 도시에 있잖아. 내가 잘 못하는 이런 일들은 네게 맡기면 되지.
아니면 서로 바꿔볼까? 나는 이 도시에 남아 저 로봇들과 천천히 놀아도 상관없어.
멀지 않은 곳에서 도시 중앙에 있는 풍차가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뒤에서 희미하게 그 로봇의 외침이 들렸다.
"아, 내 그림, 내 그림이!"
모르겠다. 고민하는 것보단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지휘관은 베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예방책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참고할 가치가 있었다.
베라는 먼 곳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베라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보자, 풍차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이 도시는 공중 정원의 제한적인 공간보다, 훨씬 더 황금시대의 느낌이 들었다.
불빛으로 장식된 건물들은 어두운 밤을 한결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도시에 도착한 각 부대의 대원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로봇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은 컨스텔레이션에 있는 각 건물의 기능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
베라는 뭔가를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휘관이 기억하기론 베라는 내일부터 다음 임무를 시작한다고 했었다.
오, 그래?
그럼 잘 가. 지휘관.
지휘관이 무슨 세 살짜리 애야?
……
결국 베라는 개인 단말기를 집어넣고, 길을 안내하려는 듯 지휘관을 흘겨봤다.
아무래도 베라는 약 한 달 전부터 지원 부대로서 컨스텔레이션에 있었기에, 이 도시의 상황을 더 잘 알았다.
지나갔던 곳과 베라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광경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빠짐없이 선별하곤 이를 나열했다.
해가 완전히 지자, 멀리서 보이는 달이 달빛으로 언덕을 뒤덮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베라와 함께 저 멀리서 불빛이 환하게 빛나는 그곳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