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조금 죽은 것 같네. 다시 해봐야겠어!
어디선가 옮겨온 구식 스크린이 깜빡였다. 시작을 상징하는 화면이 나타나자, 나나미는 다시 컨트롤러를 잡았다.
어느새 기계 교회에 있는 나나미의 방엔 "관객"이 많아졌다.
……
아르카나는 나나미를 방해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나미의 모습과 행동을 최대한 자신의 기억체에 기록했다.
아르카나는 나나미의 모든 표정과 동작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분석했다.
아르카나는 조금이라도 기계 선현의 경지에 가까워지길 바랐다. 아르카나가 로봇 각성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충분히 나나미와 나란히 설 또 다른 "선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아르카나의 연산 능력은 미래를 어느 정도 계산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나나미의 행동은 예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나나미는 단지...
선현님은 단지 게임을 하시는 겁니다. 여기 모여서 뭐 하는 겁니까? 다들 바쁘신 거 아녔습니까?
신임 "전차"도 전투에 모든 연산 능력을 쏟아붓는 바보일 줄은 몰랐네요.
제로라는 로봇이 옆에 있는 큰 로봇을 놀려댔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스크린에 집중하는 소녀를 떠나지 않았다.
선현님의 모든 행동... 존재 자체에 저희의 연산 능력을 뛰어넘는 깊은 뜻이 있어요. 저희의 각성 수준으론 선현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뿐이죠.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아르카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 제로는 기계 교회에 가입했을 때부터 선현의 가장 독실한 신자였다.
일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각성 수준이 정말 높아진 겁니까?
제로는 선현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정말로 다른 로봇에 비해 각성 수준이 높을지도 몰랐다. 심지어 제로의 사고 회로는 아르카나보다 선현의 경지에 근접해, 중요한 참고 가치가 있을 수도 있었다.
각성 수준이 높아진 건 몰라도, 선현님에 대한 사랑은 깊어졌죠.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신나게 놀고 있는 선현님... 아~~~~~~~! 정말 너무 귀엽지 않나요!?
저를 흔들지 마십쇼. 위험합니다.
제로 쪽의 소동을 눈치챈 나나미는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게임 공략에 집중했다.
아~~~~!!! 봤어요? 선현님이 제게 손을 흔들어주셨어요!
"당신"이 아니라 "저희"에게 손을 흔드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만 흔드십쇼. 이러다간 미사일이 발사될 겁니다.
……
아르카나는 묵묵히 아카이브에 다음 데이터를 기록했다. 제로 (연인): 사고 회로의 참고 가치는 0으로 판정됐다.
저 네빌은 광휘군의 "단지 게임을 하시는 겁니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왜 당신마저 저를 그렇게 부르시는 겁니까?
쯧쯧쯧, 선현님이 단지 "평범한 게임"을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을 거예요.
"마술사" 네빌은 로봇 구조와 원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교회 멤버다. 또한 그가 선현의 행동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 가장 이성적이란걸, 아르카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보통 게임이 아니에요. 그 게임기는 제너럴 토이 컴퍼니에서 황금시대 말기에 생산한 섀도 TR-1200이에요!
섀도 TR-1200이 출시된 그땐 더 이상 전통 게임기가 출시되지 않았어요. 그건 구시대의 완강한 반항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수량이 적을뿐더러, 제너럴 토이 컴퍼니의 개발 부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됐어요.
게임기에 관한 일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좋은 질문이에요! 게임기 본체는 저희의 몸과 같은 껍데기일 뿐이에요. 정말 소중한 건 따로 있죠.
선현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지만, "소중한 마음"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려는 겁니까?
로봇의 "마음"을 수치로 정밀 분석할 수 있다면, 로봇 각성의 진리를 파헤칠 수도 있었다.
No no no. 광휘군, 그게 아니에요. 제가 말하려는 건 선현님이 하고 계신 이 게임이에요!
<노르만의 영웅>은 노르만 광업 그룹이 홍보용으로 제너럴 토이 컴퍼니에 의뢰해, 개발한 상업 게임에 불과했죠. 하지만 제작진이 쏟아부은 정성으로 엄청난 완성도를 자랑했고, 그렇게 시리즈로 계속 개발됐어요.
그러나 고전 게임은 시대의 변화를 당해낼 수 없었고, <노르만의 영웅> 시리즈의 판매량은 갈수록 떨어졌죠. 최신작인 <노르만의 영웅 11>은 당시에 기념으로 TR-1200 게임기에서만 아주 소량 발매됐는데, 이렇게 희귀한 보물을 찾으셨다니! 역시 선현님이십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선현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
아르카나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아카이브에 이하의 내용을 기록했다. 네빌 (마술사): 사고 회로의 참고 가치는 0으로 판정됐다.
기계 교회의 핵심 멤버라고 해도, 기계 선현과의 높은 벽이 있었다. 이는 각성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여러분, 선현님을 너무 방해하진 마세요.
로봇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사고와 기나긴 기다림뿐이었다. 다행히도 로봇에겐 기다릴 시간이 넘쳐났다.
신자인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미래를 위해, 저희의 일을 잘 끝내고, 선현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거예요.
아르카나의 지시를 들은 로봇 대부분이 나나미의 방 앞에서 해산했지만, 한 로봇은 끝까지 시선을 떼려 하지 않았다.
왜요! 어머니! 전 계속 선현님 곁에 있을래요!!!
다른 로봇이 제로의 어깨를 툭툭 쳤음에도, 제로의 시선은 방 안의 나나미를 향하고 있었다.
선현님은 싫지 않다고 하셨지만, 저희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선현님을 다른 이와 똑같이 대한다면, 분명 더욱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이게 바로 밀당이라는 거죠?
제로는 깨달았다는 듯, 마지막으로 나나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 없이 손키스를 한 뒤 아쉬워하며 방을 나갔다.
"은둔자" 하카마, 이제 정말로 교회의 일원이 된 것 같네요. 제로도 당신을 믿는 걸 보니 정말 기쁘네요.
하카마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아르카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현님 덕분에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이런 느낌을 설명하는 건 아직 서툽니다. 죄송합니다.
선현님 곁에만 있으면, 저절로 사고 회로가 서서히 채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군요. 하카마의 감상은 참고할 가치가 상당히 높아요.
하카마는 아르카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아르카나가 결론을 내리면, 교회의 모두에게 알려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두 시간이 다 돼갑니다. 오늘의 게임 시간은 여기까지라는 걸 선현님께 알려드려야 합니다.
선현님을 간섭하려는 건가요?
하카마는 아르카나의 석연치 않은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선현님께서 게임 시간이 2시간을 넘기면 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사고 회로에 저장된 보육 자료에 따르면, 적당한 게임 시간은 어린아이에게 도움이 되지만, 너무 게임에 빠지면 성장에 좋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요?
아르카나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로봇을... 혹은 기계 선현을 어린아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 걸까?
그렇다면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선현님께 말씀드릴게요. 당신과 스프너는 정찰 임무를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하카마는 고개를 숙이고는 떠나기 전에 덧붙여 말했다.
고민이 있으시다면 선현님께 말해보십시오. 어머니께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알겠어요.
하카마가 떠나고 아르카나가 조심스럽게 나나미의 뒤에서 입을 열려던 그때, 나나미에게 들켰다.
시간이 다 됐네! 아르카나는 시간을 알려주려 온 거야?
나나미가 기지개를 켜자, 그걸 본 아르카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화려한 스크린을 바라봤다.
아르카나도 게임에 관심 있구나? 이게 무슨 게임인지 알아?
네. 화면과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데이터를 비교했어요. 방금 네빌도 말했었죠. 이 게임의 이름은 <노르만의 영웅 11>이며, 당시에 기념으로 TR-1200 게임기에서만 소량 발매됐고...
나나미는 이 게임의 내용을 묻는 거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같이 한 판 하지 않을래?
아르카나는 데이터베이스로 "게임"이라는 행위를 분석할 수 있었음에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요. 전 이미 데이터베이스로 이 게임의 모든 코드와 자료를 파악해, 실제로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르카나가 고개를 젓는 걸 본 나나미는 다소 실망한 것 같았다.
그렇구나. 아르카나는 게임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르카나는 하카마의 조언을 떠올리며,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의혹을 털어놓으려 했다.
선현님, "게임"을 하시는 목적이 뭔가요?
게임? 당연히 즐거움을 위해서지!
나나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이 당연한 대답이 로봇인 아르카나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이 <노르만의 영웅 11>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임에서 전쟁과 전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황금시대에 문명이 발전해, 인간은 지혜를 가진 유일한 종족이 됐죠. 결국 인간은 전쟁과 전투에 관한 문화로 즐거움을 얻는 건가요? 그렇다면 왜 허상인 용, 로봇, 좀비를 적으로 삼고, 심지어는 인간끼리 싸우는 걸 좋아하는지 알겠네요.
아르카나가 여러 번 미래를 연산했는데, 그 결과는 항상 인간이 전쟁을 멈추지 않은 걸로 검증됐다.
그 결론에 대해 의심이 들 수도 있었지만, 방대한 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인간에겐 전쟁을 벌이려는 본성이 있어요. 이는 선현님께서 예언하신 로봇과 인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근원이기도 하죠.
아르카나의 진지한 질문에 나나미도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나미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아르카나가 맞을지도 몰라.
인간은 확실히 강해. 뛰어난 창의력으로 다양한 문명을 이루었고, 이런 가상의 물건까지 만들었지.
나나미가 웃으며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자, 화면 속의 캐릭터가 점프했다.
하지만 인간은 겁이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 그들은 자신처럼 강한 종족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도, 적이 되진 않을까 두려워하거든.
나나미는 인간이 게임에서 전투의 쾌감을 쫓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도전하는 거라고 생각해.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에 도전하려 하잖아~
컨트롤러를 집어 든 나나미는 다시 진지해졌다. 그녀는 능숙한 조작으로 적의 공격을 피한 후, 화려한 연계 공격으로 보스를 쓰러트렸다.
한계 말인가요...
로봇인 아르카나가 생각한 자신의 한계는 기계 선현으로서 완전히 각성한 나나미였다. 아르카나는 어떻게든 나나미의 경지에 이르길 원했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그녀의 "도전"인 걸까?
인간은 게임에서 지혜와 기술을 얻어, 끊임없이 미지를 탐색했어. 결국엔 이길 수 없는 적을 하나씩 물리쳤지. 심지어는 원래의 적과 친구도 됐어.
스크린에 결산 화면이 나타났다. 나나미의 점수는 높았지만 5위에 불과했다. 다만 상위 4위도 나나미의 점수였으며, 모두 "NANAMI"라고 적혀있었다.
아깝다...
아르카나는 나나미가 게임을 할 때 인간처럼 컨트롤러를 사용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나나미는 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선현님, 더 높은 점수를 원하신다면, 전자두뇌에 연결해 직접 조작해 보세요. 선현님의 연산 능력이라면, 어떤 게임이든 손쉽게 높은 점수를 달성할 수 있어요.
그렇긴 한데, 그러면 재미없잖아!
게임은 제한 조건이 있어야 재밌는 거야.
아르카나는 뭐가 다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높은 순위를 원한다면, 당연히 모든 수단을 동원해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재미"는 유효한 판단 기준이 아니었다.
아르카나랑 얘기하다 보니 또 한판 했네. 휴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어.
나나미가 게임을 종료하려던 그때, 새로운 ID가 랭킹에 올라왔다.
[온라인 랭킹 업데이트 중...]
[1st NANAMI]
[2nd NANAMI]
[3rd NANAMI]
[4th NANAMI]
[5th NANAMI]
…………
…………
[21st OA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