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너희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고요?
그래. 너희들은 탄탈-193 공중합체에 대한 적응성이 아주 좋아. 이 말은 구조체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구조체, 구조체가 뭔가요? 우리를 로봇으로 개조하려는 건가요?
신체는 새로운 재료로 완전히 교체되지만,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사고 의식은 보존된다.
구조체가 되면 더 이상 연약한 몸이 아닌 퍼니싱에도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너희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얻게 될 것이고, 불꽃이 되어 마지막 희망이 될 거다.
니콜라는 꼭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그래야 너희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어. 아니면 이런 환경의 압력 속에서 너희들의 몸부림은 연명에 불과할 뿐이다.
구조체가 되는 건 저 하나로 충분해요.
전 루나를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그것만 할 수 있으면 돼요.
잘 생각해 본 거니?
생각...
네. 생각해 봤어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니콜라의 시선은 루시아를 넘어 뒤에 숨어 있던 루나를 향했다.
루나는 루시아의 뒷모습을 지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언니?
루시아는 루나가 그 어둠 속에 한 발짝도 더 들어가지 못하게 손을 내밀어 루나를 꽉 잡았다.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을 거고, 루나를 떠나보내지도 않을 거예요.
……
니콜라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니콜라 뒤로 사람을 집어삼키는 어둠이 작은 두 개의 그림자를 향해 덮쳐왔다.
이건 추억이 아니라 루시아가 항상 두려워했던 악몽이었다. 비극의 쇠사슬이 족쇄가 되어 루시아를 운명의 궤적에 단단히 묶었다.
하지만 이번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을 때...
이미 늦었어요.
루시아, 처치해요. 그녀는 이미 침식체로 변해서 살릴 수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고통을 빨리 끝내는 것뿐이에요.
앞에 있던 구조체는 침식체에 의해 사지가 찢기면서, 근처에 있던 고농도 퍼니싱에 침식돼 버렸다.
애초에 공언했던 "육체도, 의식도 더 이상 퍼니싱의 침식을 받지 않을 거야."라는 말은 실전에서 "고농도 퍼니싱에 일정 시간 동안 저항할 수 있어"가 됐다.
루시아와 헤론이 구조 신호를 따라 그녀의 근처에 도착했을 땐, 모든 것이 이미 늦어버린 상태였다.
남은 팔다리로 땅바닥에서 비틀거리며 루시아를 향해 기어 오는 그녀는 입에서 비명을 냈다.
생체공학 코팅이 지면과의 마찰 때문에 조금씩 벗겨지면서 은백색의 탄탈 몸통을 드러냈다.
인공심장은 과부하 상태로 뛰고 있었고, 반쪽만 남은 순환액 관에서는 순환액이 흘러나와서 바닥에 끌린 흔적을 남겼다.
루시아는 손에 들고 있던 태도로, 그녀의 고통을 끝내주려 했다.
언... 니...
……!
네 동생은 개조에 실패했다.
루나는 이미 폐기 처리됐다.
개조 마지막 단계 테스트 중, 루나의 몸에서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퍼니싱 반응이 나타났어. 그리고 순식간에 루나의 전신을 침범했다.
그렇게 루나는 침식체가 돼버렸고, 우린 그녀를 버릴 수밖에 없었어.
유감스럽지만, 이제 루나는 없어.
칼 빛이 번쩍이자, 침식체는 비명을 멈췄다.
몇 번이라도, 전 다시 그녀를 찾을 거예요. 이게 그녀의 마지막이 아니에요.
그날은 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어.
언니, 그들이 말한 것 중 하나는 정확해. 구조체의 신체와 의식은 확실히 퍼니싱의 침식에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구조체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을 통과해야 해.
승격 네트워크의 선별?
선별을 통과해야 퍼니싱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어.
이게 우리의 유일한 출구야.
인간의 유일한 출구다.
이 행성의 유일한 출구야.
소원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야.
이번엔 그녀를 보호하기에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 말은 이미 귀가 닳도록 들었어.
공중 정원, 레븐쉬, 너... 다 똑같아.
루시아는 천천히 눈앞에 있는 자신을 향해 태도를 겨눴다.
이번엔 속지 않아.
윽, 이거 놔! 라미아는 그녀의 상태를 보고 싶을 뿐이야.
외부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루시아는 눈을 떴다.
그리고 라미아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롤랑의 체인검에 꽁꽁 묶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가 그녀를 방해하게 놔둘 순 없어. 섣불리 이 승격자에게 다가갔다가 무의식적인 반격에 맞기라도 한다면 네 목숨은 끝날 수도 있어.
자질이 있는 이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네가... 잠깐, 얘도 승격자야?!
근데 왜 이러는 거야? 진정한 승격자가 되면 고통스럽지 않다고 했잖아?
라미아는 끓는 물에 던져진 개구리처럼, 반사적으로 루시아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방향으로 뛰려고 했다.
아야... 아파.
하지만 라미아는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잊은 듯했다. 거대한 꼬리지느러미가 묶인 라미아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꼬리지느러미를 흔든 라미아는 뭍에 버려진 물고기처럼 발버둥 치면서 항의했다.
라미아를 놔줘!
롤랑, 라미아 놔줘.
……
이번이 날 처음으로 부르는 거지? 이거 영광인데.
롤랑이 쇠사슬을 풀자, 라미아가 벌떡 일어섰다. 방금 전 자신을 도와준 루시아한테 다가가려던 라미아는 루시아의 아우라에 겁먹고 있었다.
라미아는 한동안 두 승격자 앞에 서서 답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너 왜 승격자가 되고 싶은 거야?
방금 전, 롤랑과 라미아의 대화를 통해 루시아는 라미아가 예전부터 롤랑과 만난 적이 있다고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구조체가 승격자를 찾는 목적은 말 안 해도 뻔했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만약, 실패하면 너도 저 침식체들과 똑같이 될 거야.
뭐? 실패할 수도 있어?
라미아는 말없이 옆에 있던 롤랑을 노려봤고, 롤랑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본 라미아는 뭔가 무서운 일이라도 생각난 듯, 공기 빠진 풍선처럼 목을 움츠렸다.
됐어. 어차피 이런 결과도 나쁘지 않아. 그래도 승격자가 되면, 살아갈 희망은 보이니까.
라미아가 힘없는 어조로 말했다.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살 수만 있다면...
최후의 막이 내릴 때까지 결과가 비극일 거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지.
공중 정원 사람들이 또 찾아올지도 모르니 일단 돌아가.
롤랑은 루시아의 말투에서 차가워진 변화를 곱씹으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되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네가 복귀하면 루나 아가씨가 기뻐할 거야.
의상을 전시하는 쇼윈도를 지나갈 때, 알파는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다.
숨이 막힐 정도로 두툼한 군복은 여기저기 해져 있었고, 인공 합성 섬유 머리카락은 이미 퇴색된 상태였다. 루시아를 아는 사람이 앞에 있다 해도 이제 그녀를 알아보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
루시아가 옷 가게의 썩은 나무 문을 밀자, 문에 걸린 복고 방울이 울렸다.
그날 이후, 루나의 승격자 단체는 네 번째 멤버를 맞이했고, 루시아도 무거운 군복을 벗었다.
알파는 추억 속과 비슷한 방울 소리에 눈을 떴다.
고개를 숙이니 하얗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알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에 걸린 방울은 머리의 흔들림에 따라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리 가. 여기엔 너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어.
하지만 고양이는 오랜만에 살아 있는 생물을 봤다는 듯, 알파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발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살며시 그녀의 다리를 문지르면서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알파가 다리를 반대편으로 옮기자 하얀 털 뭉치가 함께 움직였다.
몇 번의 시도에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고양이를 본 알파는 고양이가 어떤 게임으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파는 주머니를 더듬어 미끼를 찾았다.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 미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야옹~
방울 소리와 함께 머리를 알파의 손바닥에 갖다 댄 하얀 고양이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알파 손바닥에 있는 미끼를 핥았다.
알파는 작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려고도, 고양이가 얼마 남지 않은 미끼를 다 먹은 뒤에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알파는 고양이가 자신의 금속 손바닥을 핥게 내버려 두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웠던 눈썹도 서서히 내렸다.
승격자는 대체로 강한 감정이나 숙원에 의해 움직였다.
이런 감정과 숙원을 마음속에 묻거나 숨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런 감정과 숙원은 그들이 선별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럼, 그녀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루시아, 곧 여동생이 생길 거야. 언니로서 동생을 잘 보호해야 한다.
루시아, 어서 루나를 데리고 떠나. 동생을 지키고 꼭 살아남으렴.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보호하고 싶다면, 내가 선택권을 주마.
언니, 언니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
일어난 알파가 다시 오토바이에 몸을 기대자, 알파의 몸에서 맹렬한 아우라가 나타났다.
가.
눈앞에 있는 이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아니면 상대방의 날카로운 아우라에 놀랐는지,
하얀색 고양이는 가로수길의 끝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알파의 소원은 변한 적이 없었고, 루나는 알파의 유일한 가족이다.
구조체가 되기 전에 알파는 공중 정원이 루나에게 안정된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인간들은 자신의 계획을 위해 루나를 버렸고, 알파는 한동안 루나를 잃었다.
구조체가 된 후, 알파는 레븐쉬의 지휘 아래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븐쉬의 착한 가면 아래에 있었던 건 악독한 마음이었고, 알파도 그 비극의 일부가 됐다.
레븐쉬의 팔은 정말로 침식된 대원의 공격을 받아서 잘린 걸까?
알파는 진실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파는 더 이상 루나를 지키려는 희망을 다른 사람에게 걸지 않을 것이다.
설령 상대방이 루나에게 힘을 준 승격 네트워크라고 해도 말이다.
다시 한번 먼 곳의 푸른 첨탑을 바라본 알파가 몸을 돌려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루나, 기다려.
엔진의 굉음과 함께 일어난 모래 먼지가 그림자의 뒷모습에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