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11-1 개막
>소녀는 절뚝거리며 연기가 자욱한 전장을 걷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들, 철근 구조물들, 그리고 온갖 생물의 사지가 이 폐허 속에 뒤엉켜 널브러져 있었다.
상황 보고해.
송전탑 고장으로 지상 전체의 약 76%가 단전되었으며, 5번 거점의 전력 네트워크는 붕괴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이비그라 불리는 소녀의 시각 모듈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시야를 잃으며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뚝" 부러진 다리 부품이 잔해 속으로 떨어졌고, 끊어진 면에서 순환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더 있나? 왜 이렇게 늦게 연락한 거지? 그것도 내 개인 채널로 말이야?
통신 단말기에서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 기지가 완전히 파괴되어 공용 주파수가 마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채널 전환과 통신 시도에 10분 23초가 소요되었습니다.
기반 시설 손실은 표준 보급 단위로 환산 시 약 537단위입니다.
아이비그는 폐허 위에 누운 채 기계적인 말투로 보고를 이어갔다.
좋아. 또 좋은 소식을 가져왔구나!
통신 너머의 거칠고 낮은 목소리가 차가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비그가 시각 모듈을 통해 폐허를 둘러보자, 손상을 입은 소녀들이 서로를 부축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지가 끊어지고, 아머가 찌그러졌으며, 인조 피부 아래의 케이블마저 튀어나와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시커먼 그을음으로 뒤덮여 폐허 아래의 잔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소녀들은 움직일 수 있어 시각 모듈 속 생존자로 식별된다는 것이었다.
남은 전투 유닛은 5기이고, 4기는 소진되었습니다. 표식 번호는 17호입니다.
소모품 손실 상황을 보고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인간형 전투 유닛, 전력, 통신 시설은 모두 회사의 자산입니다.
회사 규정상 전투 후 손실 보고는 중요도에 따라 정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요도 최하위에 있는 소모품의 가치 따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라고.
그리고...
통신 너머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은 어디 있지?
그녀는 위치 추적 신호 범위 내에 없어서 현재 4번째 수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17호가 소진된 후, 기체는 다른 전투 구역에 남아있었습니다. 아마도 17호를 찾으러 간 모양입니다.
그녀가 명령에 따랐더라면, 최소한 안테나탑 하나는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최고 가치 개체의 행동 전략은 인간형 전투 유닛 보호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녀가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경우, 예상 손실은 전투 유닛 7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그만하지!
전투 유닛 손실이 날 때마다 반복해서 보고하고 말이야. 회사 측에서 쓸 만한 무기 몇 개 없어졌다고 신경이나 쓸거라 생각해?
……
게다가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전투 시간만 늘어난 데다 기반 시설까지 파괴됐잖아.
누구도 무기들에 책임을 묻지 않아. 그럼,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는 줄 알아? 너희를 지휘하는 바로 나라고!
너희는 그냥 전투 유닛 몇 기 잃은 것뿐이지만, 난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고!
뚝. 통신이 끊겼다.
아이비그는 무심하게 시선을 위로 돌렸다.
한 소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더니, 폐허의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조용하게 폐허 속으로 녹아들어, 그 잔해 중 하나가 되었다.
신규 손실 개체 표식: 11호. 남은 전투 유닛 4기, 손실 5기.
아이비그는 묵묵히 보고서의 숫자를 수정했다.
회의실
공중 정원
공중 정원, 회의실.
네. 임무 지점은 대서양 연안의 141호 도시입니다.
그 일대에 최근 탈환한 보육 구역이 있는데, 새로 파견된 보육 구역 병사들이 그곳에서 이상한 "부대"를 발견했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한 무리의 소녀들이 같은 복장을 입고 침식체에게 대항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개인 전투 능력과 협력 능력이 모두 뛰어났지만,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세력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황금시대 말기에 사라진 대형 세력들과도 비교해 봤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지휘관님께서 단독 잠입 임무를 수행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세리카가 책상에서 기밀 임무 자료를 꺼내 건넸는데, 왠지 그녀도 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외부 수송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고용 전문가로 위장해... 단독으로... 141호 도시에 잠입한다고요?
어째서 단독 잠입 임무인 거죠? 이런 임무는 보통 구조체에게 할당되잖아요.
게슈탈트 연산 결과에 따른 겁니다.
……
게슈탈트 연산에 따르면, [player name] 님의 개인 전투 성공 확률이 93.14%입니다. 이는 2위인 정화 부대 구조체의 성공 확률 15.11%와 큰 차이를 보였죠.
이상하긴 합니다. 그래서 여러 번 검증했고, 심지어 다른 지휘관들의 데이터도 게슈탈트 시뮬레이션에 입력해 봤지만, 지휘관님의 데이터만이 유일한 예외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게슈탈트에 재문의해 봤지만, 게슈탈트는 기밀로 표시된 임무 자료 하나만 제시했습니다. 그건 지휘관님께서 예전에 감사원과 함께 수행했던 임무인데... 혹시 기억나십니까?
분명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수행했던 임무와 협상을 진행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어느 것이 정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감사원 소속 직원들은 늘 신비롭죠. 하산 의장님에게만 단독으로 보고하고, 제가 그중 일부 임무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도 답변을 거부합니다.
어쨌든, 대략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단독 임무는 너무 위험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만큼 충분한 준비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육 구역이 이 도시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구조체의 속도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리는 적 정찰 범위 밖에서 [player name] 님의 근접 지원이 가능한 위치에 기다려 주세요.
리브와 루시아는 현재 배정된 임무를 수행하면, 즉시 141호 도시 주변으로 배치하여 대기하도록 할게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거리가 너무 멀어요.
상황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141호 도시 잠입을 해도 좋아요. 단, 절대적인 안전과 비밀 유지를 최우선으로 해주세요.
이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여전히 불분명하며, 현재 파악된 정보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어요. 부대 규모, 존재 목적, 세력의 성향 등 주요 정보가 모두 불확실한 상황이에요.
그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후에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육 구역 병사들의 정찰 보고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외부 수송차량이 141호 도시를 출입한다고 합니다. 이를 이용해 지휘관님을 고용 전문가로 위장시켜 시설에 잠입시키려고 합니다.
본 임무의 목적은 목표에 대한 정보 수집입니다. 다만 지휘관님의 안전 확보가 최우선 과제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회의실을 나서자, 지휘관과 리의 단말기로 임무 설명이 전송되었다.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지휘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단말기의 임무 설명을 읽어보았다.
지휘관은 이런 잠복 임무를 오랫동안 수행하지 않아 확실히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요청으로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세리카의 힌트로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봐도, 떠오르는 건 누군가의 짧은 말뿐이었다.
임무 수행자로 지휘관님이 지명되셨고, 저는 단지 시스템을 대신 조정할 뿐이에요.
침입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지휘관님께 있어요.
흐릿한 기억과 게슈탈트의 이상한 행동은 이번 작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암시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휘관님의 총기를 새로 개조하고, 특별 장비 지원도 일부 신청해 드리겠습니다.
저희와 계속 연락을 유지해 주시고, 돌발 상황이 예상되면 최소 한 시간을 확보해 주십시오. 제가 잠입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네. 임무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리의 말은 축복이 아닌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기정사실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수시로 연락을 유지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공중 정원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보육 구역에 먼저 도착한 집행 부대 대원들은 수송차량 한 대를 성공적으로 가로챈 뒤, 고용 전문가를 제압했다.
이건 고용 전문가의 특별 ID 카드입니다. 그들의 신분을 인증하는 표식이니 잘 보관해 주십시오.
ID 카드의 재질은 특수했고, 카드 왼쪽 위에는 선명한 표식이 하나 있었다.
레보비츠
레보비츠요?
세리카는 다소 놀란 듯했지만, 곧 관련 자료를 찾아냈다.
레보비츠는 황금시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마트 기기 제조사였으며, 대서양 경제 공동체의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황금시대에 공동체 리더 카퍼필드와 빈번하게 사업 및 기술 교류를 진행했으며, 특히 생체공학 기계 분야에서 활발한 협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카퍼필드는 동물형 생체공학 기계 연구 제조로 유명했고, 레보비츠는 생체공학 인간 제조로 유명했습니다.
윌리엄 레보비츠는 양자 컴퓨터 제조공정 메커니즘의 창시자이자, 게슈탈트 물리학 기초를 확립한 인물입니다.
그가 이 회사에서 일했었습니다. 아니. 이 회사는 원래 레보비츠 가문 소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그들이 왜 여기서 활동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보육 구역의 허술한 방호벽 외곽으로 141호 도시가 희미하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