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정 깊은 곳
괴물의 거대한 몸이 쓰러지며,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브리이타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무기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녀에겐 이미 힘이 전부 빠져나간 후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스카이처의 두 눈에는 광기가 사라지고, 맑은 빛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실패했군요... 직무 유기네요.
아니. 생각해 보니 그보다도 더 전부터였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노르만의 집사로 있으면서 쿠로노의 음모를 눈치채지 못했을 때부터 이미 실패는 시작되었던 것 같네요.
전 그저... 가문의 문장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철컥.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브리이타는 무기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스카이처에게 다가갔다.
헉... 허억... 더러운 걸 품 안에 숨기려 하면, 옷만 더럽혀질 뿐이야.
진정한 깨끗함은 감추는 게 아니야.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빛이 나는 거라고. 잘못을 땅에 묻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당신이 한 일은 어쩌면...
브리이타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다시 한번 무기를 들어 올리려 했다.
직업윤리에는 맞을지 몰라. 하지만 당신도 집사이기 전에 인간이고... 이곳의 피해자야.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뿐이야. 그러니 당신이 진심으로 후회한다면, 제발 양심의 경계를 더 이상 넘지 말아 줘.
…………
스카이처가 고개를 돌려 브리이타를 흘깃 보더니,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허공을 응시했다.
정말 닮았네요.
뭐가?
브리이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끝내주세요. 당신 말대로 저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조된 후, 의식의 바다에 혼란이 일어난 거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 병적인 집착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이것들을 가져가세요.
마지막 숨을 길게 내쉰 스카이처는 이내 잠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