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번외 기록 / ER06 첨탑 위의 서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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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06-15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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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탐사를 거듭한 끝에, 브리이타는 비교적 온전한 갱도 앞에 멈춰 섰다.

맞아.

브리이타가 렌치로 눈앞의 암석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 카레니나 일행과 확인한 위치가 이 근처야. 다만 장비가 없어서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어.

우리가 이 위치에서 붕괴된 암석을 치우면, 정비 부대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말기에서 알림이 울리더니, 카레니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튀어나왔다.

야? 야! 잘 들려?

……

안 들린다면서 대답은 어떻게 한 거야. [삐-].

됐어. 지금은 따질 시간 없으니까 나오면 두고 보자!

계산했던 그 위치 근처에 도착했어?

도착했어. 갱도가 조금 붕괴됐으니, 추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안쪽에서 보강 작업을 시작할 거야.

브리이타니까 걱정은 안 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통신 상태가 안 좋은 건지, 카레니나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쉽게 말해서, 구조 통로를 뚫어 물자를 운반하거나 대구경 드릴로 구조 작업을 하거나, 어느 쪽이든 엄청난 소음이 발생할 거예요.

카레니나는 광정 아래가 불안정해서 침식체들이 몰려들 것을 걱정하고 있어요. 더군다나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연구원들도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누군가가 후방에서 광정 내 구조체의 습격을 막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할게!

이건 따질 필요도 없어. 위험한 건 전후방이 다 마찬가지야. 붕괴된 갱도 안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너와 루시아가 최전방에서 길을 열어야 해. 혹시 모를 상황이 일어나도, 그레이 레이븐 소대라면 모두를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을 거야.

보강 작업은 대원들이 알아서 할 수 있으니, 내가 따로 지휘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후방은 내가 맡는 게 맞아.

지휘관님.

이상 신호를 쫓던 루시아가 갱도 반대편에서 달려왔다.

상대가 이곳의 구조를 훤히 알고 있어서 따라잡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났더니 여러분을 발견하게 됐어요.

봐. 사람인지 뭔지 모를... 뭔가가 있잖아.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투력이 없는 연구원들을 보호하는 거야.

전투력이 가장 높은 둘이 전방에 있는 게 맞아.

다 정하셨나요? 그럼, 이제부터 구조 계획을 설명해 드릴게요.

통신 너머에서 실랑이가 벌어진 듯했고, 카레니나가 뭔가 중얼거린 뒤 곧이어 테디베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비 부대는 원래 계획대로 정해진 위치에 구조 통로를 뚫어서, 여러분의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거예요.

그전에 광정 내부의 지원 부대는 계획된 위치 주변 갱도를 보강해 주셔야 해요. 작업 도중 갱도가 2 차 붕괴하면 안 되니까요.

상황 보고에 따르면, 광정에 작동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 같아요.

가볍게 단말기 스크린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외부에서 엘리베이터 사용 권한 확보를 도와드릴게요. 그럼,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정비 부대가 내부에서 계속 갱도를 보강할 수 있도록 구조 통로로 물자를 보급할 거예요. 그 후 지층 상태가 확인되면, 대구경 드릴로 구멍을 뚫어, 구조 작업을 시작할 거예요.

듣고 계신가요?

어. 응! 듣고 있어!

지원 부대가 보강 물자를 일부 가져왔으니, 구멍을 뚫을 위치 주변부터 붕괴 방지 보강 작업을 시작할게.

좋아요.

자, 작전을 시작하자. 카레니나, 그 대구경 드릴은 만질 생각도 하지 마. 내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부럽다. 나도 그 드릴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그치? 손맛이 장난 아닐 거야.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써봐야겠어.

쿨럭. 얼른 표시만 하고 복귀하자.

임시 주둔지의 텐트들은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지원 부대 대원들이 남은 물자를 분주히 점검하는 가운데, 셰릴이 브리이타 옆에서 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퍼니싱 농도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에요. 통로의 침식체들은 대부분 실험에 실패한 구조체들이고요.

노르만 그룹이 내부에 여과탑과 비슷한 퍼니싱 여과 시스템을 설치한 것 같아요. 채석장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만 재개된다면, 수리해서 다시 가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이 뭐야?

채석장을 다시 가동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대장.

보고서로 정리해서 공중 정원으로 보내줘. 탐사한 지도도 첨부해서 말이야. 나중에...

브리이타?

응?

안젤은 설치돼 있는 텐트 뒤에 서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망설이고 있었다.

날 암살하려는 속셈으로 여기까지 쫓아온 건 아니겠지? 성공하긴 힘들 거야. 이건 지원 부대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신형 기체거든.

그럴 생각 없어요.

철수하시는 거죠?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짐 싸는 모습이 보여서요.

맞아. 정비 부대가 지원 계획을 세웠어. 루시아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이 너희 철수를 도와줄 거야.

노르만 연구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건...

지원 부대가 지금 저희를 신뢰하지 않다는 거 알아요.

아, 하하...

브리이타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렇게 떠나면,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겠죠.

안젤은 미련이 남는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탄탈-이형 공중합체는 정말 좋은 연구 주제예요. 모든 면에서 193 공중합체보다 더 우수한 결과를 보여줄 거고요.

……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아무튼, 이건... 제가 목숨값으로 남겨둔 마지막 정보예요.

안젤이 종이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지도에는 지하 광정의 길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고, 노르만 그룹 제공 지도에는 없는 새로운 요소들이 다수 추가되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일부 실험실과 가장 아래층에 위치한 "존재하지 않는" <color=#ff4e4eff>관제실</color>까지 그려져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교수님께서 우리의 무사를 바라시며 이 지도를 주셨어요. 그러면서 최하층 관제실이 이 광정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셨죠.

아마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예상하고 계셨나 봐요.

안젤은 한숨을 쉬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만... 만약 가능하다면, 나중에 이형 공중합체의 연구 자료를 찾아봐 주셨으면 해요.

또다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겠다는 거야?

죄송해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죠.

전에는 연구 과정에서의 희생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안젤은 실험에 "실패한" 생물의 최후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안젤은 수많은 실험실 내부의 갈등을 겪으면서, 실패한 파벌이 숙청될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광정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연구원들의 시신을 보고도 혼란스럽기보다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배양기로 도망쳤을 때, 침식된 구조체들이 캡슐 문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배양기를 덮치는 모습까지 보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어떤 기술 발전도 생명의 희생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어요.

교수님께서는 항상 제게 "아직 마음이 약하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봐요. 어쩌면 이번에 절 버리신 이유일지도 모르고요.

브리이타는 안젤을 위로하지 않았다.

살아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직서를 낸 뒤, 노르만 그룹의 연구실을 떠날 거예요.

그 다음엔...

그 후의 일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교수가 이런 지도를 준 것으로 보아, 그녀의 죽음을 바란 것은 아닐 수도 있었다. 과학 이사회에서 입지를 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과학 이사회가 그녀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지만.

이 지도가 도움이 되길 바라요.

안젤은 조용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지도를 건네받은 브리이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안젤이 이런 비장의 카드를 숨겨둔 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철수 계획이 없었다면, 그녀는 끝까지 이 지도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쿠로노 그룹이 얼마나 많은 "잠복자"를 심어두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안젤의 교수가 노르만 연구실에 잠입한 쿠로노의 조직원이었다는 사실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다만... 다만 뭔가 아쉬웠다.

지도를 넘기던 브리이타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다.

[player name]? 너희는 정리 다 끝났어?

하긴, 너희는 늘 가볍게 움직이니까 짐도 별로 없겠네. 하하.

아니야. 그냥... 갑자기 뭔가가 생각나서...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번째인데도, 아직 부모님의 실종에 관한 진실을 밝히지 못했네.

단순히 찾지 못한 걸까? 브리이타도 사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광원A처럼, 구조 과정에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들은 탓에, 쿠로노의 구조체들에게 끌려가 살해되거나 개조되거나...

높은 확률로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지휘관의 눈빛을 느낀 브리이타는 억지로 눈을 깜빡이며 평소처럼 밝게 웃으려 했다.

괜찮아. 콘스탄틴 채석장이 다시 열렸으니까,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럼, 난 느림보 녀석이나 재촉하러 가볼게. 더 늦었다간 카레니나의 대형 드릴이 들이닥칠지도 몰라.

브리이타가 임시 주둔지의 중앙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이~ 다들 준비는 끝났어?!

끝났습니다!

며칠간의 물자 부족에도 불구하고, 지원 부대원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준비됐으면, 짐 챙겨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