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물든 광야에서, 대형 운송 장비가 거친 지면을 헤치며 달렸다. 뒤로는 엔진 소리와 함께 주황빛 먼지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차 안의 낡은 라디오에서는 잡음 섞인 불안정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콘스탄틴...(지지직) 광산 사고 유가족 여러분... 이제는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지지직)
퍼니싱이 폭발한 지금도...(지지직)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받아야 할...(지지직) 설명과... 보상을...
운송 장비가 크게 흔들리면서 전기회로를 건드린 듯, 라디오가 마지막 소리를 힘겹게 내뱉고는 침묵해 버렸다.
쳇... 방금 고쳤는데 또 이러네.
갈색 머리의 소녀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운전대를 잡은 채로 대시 보드를 쾅쾅 내리쳤다.
치지직...
오늘(치지직) 오후... 다섯 시 반에... 집합...
라디오가 긴 잡음을 내뱉더니 기적같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브리이타는 역시 이런 걸 잘 고치네.
곧 퇴근 시간이네. 방금 라디오에서 나온 소식, 또 네가 주도한 시위는 아니지?
노르만 광업에서는... 자세한 사고 보고서를 아직 주지 않은 거야?
어. 그들이 뭔가를 숨길수록 의혹만 커져가.
엄마 아빠는 최고의 구조 대원이셨어. 구조체가 아니더라도 끝없는 잔해 속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해내셨는데...
그 정도의 소규모 광산 사고로 그분들이 "희생"됐다고? 말이 안 되잖아!
브리이타가 핸들을 세게 내리치자, 라디오가 불평하듯 지직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내리지? 딴생각하다 정류장 놓치지 않게 조심해.
아... 맞다. 고마워. 브리이타.
네 대형 운송 장비 덕분에 저쪽에서 식량도 구할 수 있었어. 내일 봐!
내일 봐!
소녀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시리긴 했지만, 그래도 밝은 미소로 승객의 귀갓길을 끝까지 배웅해 주었다.
좋겠다. 가족들이 배식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겠지?
황야 너머로 석양이 기울었다. 그렇게 하늘은 마지막 빛마저 태워버리듯 짙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갔다.
콘스탄틴 채석장의 그 사고만 없었더라면, 부모님의 옛 친구가 위험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그날 부모님을 말렸더라면...
브리이타도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받아 놓은 배식을 먹고 있을 터였다.
휴! 됐어!
이미 지난 일이야. 생각이 많아져봤자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이번에는 반드시 사고 보고서를 받아내고 말 거야!
브리이타는 마른세수를 하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그러자 라디오에서 잡음과 함께 그녀가 달달 외우고 있는 말들이 다시 흘러나왔다.
퍼니싱이 폭발한 지금도, 우리는 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광정이 붕괴된 후, 수많은 광원이 실종되었고, 구조에 나선 구조 대원마저 종적을 감췄습니다.
노르만 광업은 퍼니싱 폭발을 변명거리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콘스탄틴 광산 사고 유가족 여러분, 이제는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정당한 보상을 반드시 쟁취합시다!
허...
순진하긴, 저 말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퉁이를 돌자, 광정 건물 앞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리고 허술한 피켓을 든 그들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당연히 믿는 사람이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믿어야 하니까요.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때맞춰 왔군요. 트로이. 이제는 도망가지 않네요?
도망가면 급여도 없잖아요. 그리고 돈은 쿠로노 그룹이 지불했으니까요.
파란 머리의 여성 구조체가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헤이드, 당신이 제 기체에 손을 댔다는 걸 모를 줄 알았나요?
오호, 제 이름도 기억하고 있네요? 전 당신에게 그저 "연구원A"인 줄 알았는데요.
……
헤이드의 비꼼에 트로이는 코웃음을 친 후, 눈을 가늘게 뜬 채 광정 입구의 시위대를 바라봤다.
저 시위대는 언제까지 계속되려나요. 당신도 이제 정문으로는 못 들어가겠네요?
음... 곤란하긴 해요. 그래도 관제실 직행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신청만 하면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요.
그녀 또한 같았다.
트로이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쿠로노 그룹의 덫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콘스탄틴이란 불구덩이를 피했더라도, 결국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재난이 끊이지 않는 지상에서 평온한 삶을 사는 이는 드물었으니까.
헤이드는 관제실 직행 엘리베이터를 신청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반면 트로이는 느긋한 걸음으로 콘스탄틴 채석장 관리자와 대치 중인 군중을 향해 걸어갔다.
채석장의 철제 울타리 앞에는 갈색 머리 소녀를 중심으로 시위대가 모여 있었다. 보아하니 저 소녀가 이 소동을 이끄는 "주동자"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난 광산 사고 생존자의 유가족이지! 구조 대원이셨던 부모님이 한 달 전에 노르만 광업의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그대로 실종되셨다고!
구조 대원 규정상, 구조 대원에게 사고가 났을 때, 책임자가 반드시 사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사고 책임은 노르만이 의뢰한 실험실에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저희도 모르는 일이라...
그건 이유가 안 돼!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고!
광산 사고의 진짜 원인이 뭐지? 퍼니싱 폭발한 뒤로 광정의 모든 로봇을 철수시키고 인력 작업으로 전환했다면서!
왜 광정에서 퍼니싱이 갑자기 폭발한 거냐고! 정말로 퍼니싱이 폭발했다면, 퍼니싱의 전파 속도로 봤을 때...
콘스탄틴 광정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채석장 대부분이 아직도 돌아가고 있잖아!
그, 그건...
말을 잇지 못한 관리자는 철제 울타리 뒤편의 출입문을 쾅 닫고 내부로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지겹지도 않나!
브리이타가 잔뜩 화가 난 채 세게 문을 내리쳤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이제 우리가 무슨 수를 쓸 수가 있겠어.
저 사람들이 또 몰래 다른 유가족들과 교섭하고 있대.
말을 이어가던 유가족이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전 구역 영구 거주권에 6개월 치 물자 배급권까지 준다고 하니, 흔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대.
동요하는 사람은 그냥 받으라고 해.
그들도 부양해야 할 노인과 아이들이 있잖아. 지금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하니 보상을 받을 수밖에 없지.
너는 어떡할 거야?
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갈색 머리카락을 날리는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분노 어린 눈빛은 저 무거운 철문마저 녹여버릴 듯했다.
계속 이러다간 방법이 없을 텐데...
다음 달이면 공중 정원에서 적응성이 높은 인간을 선별해서 구조체로 개조 한대.
그래서 신청해 뒀어.
구조체 개조? 사망률이 엄청 높다고 하던데...
우리가 지상의 평범한 인간이라서 콘스탄틴 채석장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얕보는 거야. 그러니까 저들 마음대로 우리 가족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겠지.
내가 구조체거나, 공중 정원 상부 지도부와 접촉할 수 있다면, 저들이 이렇게 횡포를 부릴 수 있었겠어?
지금은 실종된 사람들의 생사도 모르잖아. 절대 그들을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두진 않을 거야.
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 거라고.
……
별생각 없이 맨 앞에 선 갈색 머리 소녀를 쳐다본 트로이의 눈빛에는 평소와 달리 비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지가 대단하다 못해 넘치는군.
눈을 가늘게 뜨던 트로이는 브리이타에게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 영향으로 트로이는 감각 모듈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는 착각이 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이 밤에.
됐어. 너무 열정적이어서 시체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네.
한숨을 내쉰 트로이는 격앙된 군중 속에서 빠져나왔다.
행동이 느리네요. 헤이드.
여기서는 당신의 권한이... 예전만 못해진 것 같군요.
대우와 급여도 많이 줄었겠네요? 하하.
적응 기간이라고나 할까? 이직하자마자 모두를 내려다볼 순 없으니까... 물론, 그날은 언젠간 오겠지만 말이야.
내 성과가 이토록 빛나고 있는데... 안 그래?
그 자신감이 끝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죠.
연구원의 주머니에서 통신 기기가 짧게 울렸다.
좋았어. 승인이 떨어졌어. 이쪽으로 가지.
헤이드는 근처의 작은 언덕을 가리키며, 공손한 척 안내하는 시늉을 했다.
훗, 교활한 토끼 같네요.
신중한 건 연구원의 천성이지.
트로이는 의미 없는 말을 하며, 헤이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갈색 머리의 소녀가 어떤 통신이라도 받은 듯, 트로이 쪽으로 달려왔다.
트로이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발걸음을 늦추었다.
그렇게 트로이는 갈색 머리 소녀와 스쳐 지나갔다.
도망가려는 건 아니겠지?
헤이드의 귀신같은 목소리가 트로이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제가 지금 도망간다면, 절 막을 수 있으세요?
트로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암석 속에 숨겨진 엘리베이터가 깊은 어둠을 가르며 급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