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05-18 파트너
그럼, 나이젤의 시체는 못 찾은 거야?
그래. 마을 주민들이 반나절 동안 땅을 팠는데, 이것밖에 못 찾았어.
베라가 품에서 꺼내든 건 두 동강 난 선글라스였고, 녹티스는 그게 나이젤의 물건임을 알아봤다.
역시 쉽게는 안 죽는 녀석이군...
수상한 일이 한 가지 더 있어. 나이젤한테 독살당했다던 그 정화 부대 대원 말이야... 그의 시체도 사라졌어.
사라졌다고? 말도 안 돼.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그의 기체는 완전히 멈춰 있었단 말이야.
녹티스는 과거 정화 부대에서 수행했던 마지막 임무를 떠올렸다. 그때 밸러드의 시체도 사망 확인 후에 사라졌다.
설마 나이젤의 "독" 때문인 건가? 살인 목적으로만 쓰이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안 되겠어. 내가 직접 찾아낼 수밖에!
지금 그 상태로 뭘 어떻게 하려고?
칫. 내 기체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거든.
오. 그래? 21호...
21호가 갑자기 침대 밑에서 튀어나오더니 녹티스의 배 위로 뛰어올랐다.
!
어때?
녹티스의 안색이 점점 파랗게 질렸지만, 억지로 굳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 하하! 전혀 문제없는걸!!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거든. 21호. 어때? 앉아있는 게 편해?
불편해. 녹티스... 너무 딱딱해.
됐고, 최근에 화상 단말기로 원시 부족의 춤을 배웠다고 했지? 녹티스 배 위에서 한번 춰볼래?
연습을 엄청 많이 했지!
!?!?!?
21호는 순순히 녹티스의 몸에서 뛰어내렸다.
[player name]. 괜찮아?
응, 다행이다. 지휘관, 빨리 나아야 해.
야. 어떻게 된 거야! 삼칠아, 지휘관과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거 아니야!?
헤헤, 별거 아니야, 너에게 약속했잖아. 어떻게든 이 모든 걸 끝내고 널 구할 거라고.
그렇게 순순히 말을 들을 거면, 멋대로 돌아다닐 생각 말고 치료나 제대로 받아.
베라는 준비해 둔 나노 복원 재료를 꺼내 녹티스의 상처에 힘줘서 주사했다.
야! 살살 좀 해!!
지금 이 상태로 네가 또 싸움을 벌인다면, 난 니콜라한테 새 대원을 하나 더 요청해야 한다고.
어? 근데 난 정화 부대로 전출됐잖아?
쳇, 이번 일을 겪은 이후로 다른 부대에서 널 받아줄 것 같아? 정화 부대 측이 감사원에 사정해서 널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한 거 모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베라가 뒤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화 부대 애들이 드디어 공중 정원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냈고, 집행 부대의 증원을 요청했어. 그래서 우린 그 기회를 이용해서 지원 인력으로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던 거야.
녹티스가 정말 탈영한 걸로 밝혀졌다면, 내가 이 녀석을 가장 잘 아니까 직접 처리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야. 참 아쉽군.
베라는 녹티스를 보며 싸늘한 미소를 보냈다.
대장. 장난이지. 진심 아니지?
응. 대장이 특별히 구조체를 상대할 수 있는 특화 기체로 교체하기까지 했잖아.
쳇. 내가 무슨 수로 배신을 하겠어...
하지만 케르베로스로의 복귀 여부는 네 마음이야. 네가 없으면, 난 조용하고 좋지만 말이야.
그 순간, 여관 방문이 벌컥 열리며 불청객 몇몇이 몰려 들어왔다.
형! 진짜 공중 정원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 [삐!] 같은 구석이 뭐가 좋다고 돌아가. 차라리 지상에 남는 게 어때?
그러니까 그 말은... 음... 여기가 형한테 더 어울린다는 거지!
맞는 말이긴 하지. 여서 매일 싸움도 벌일 수 있고, 재밌는 일도 많잖아. 공중 정원엔 사소한 일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일상인데, 여기가 훨씬 자유롭긴 하지?
녹티스는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파트너와 약속했어. 당당하게 케르베로스로 돌아가겠다고.
그러니까 보고서든 시말서든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한 노인이 청년에게 부축받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럼, 우리도 더 이상 붙잡지 않겠다. 하지만 너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군.
저도... 고마웠어요.
녹티스, 너희들이 없었다면, 나와 반은 이미 죽었을 테지. 그리고 공중 정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마을도 모두 파괴되어 사라졌을 거다.
흥... 실제로 너희 둘은 이 마을 주민들보다 더 이 마을 주민 같아.
너희들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 너희들 눈에 비친 건... 훨씬 더 먼 곳이야.
하지만 어쨌든 오늘은 추수절의 마지막 날이니까, 별일 없으면 여기서 끝까지 함께 했으면 해. 다른 마을 주민들도 분명 기뻐할 거다.
이 두 녀석은 물만 마시면 괜찮을 것 같아.
베라는 21호를 곁으로 부른 후, 다른 주민들을 방 밖으로 쫓아냈다.
자, 우리도 나가자. 좀 쉬게 해야지.
모두가 방을 떠난 후, 녹티스는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이, 파트너... 자냐?
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어제 있었던 일들 때문에 마음이 전혀 안정이 안 되네.
녹티스는 웃다가 또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젤... 결국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나랑 생사를 걸고 싸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르겠네.
마지막에 나이젤이 너에 관한 이상한 질문을 했었어.
인간과 구조체의 차이가 대체 뭘까, 너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한데?
나이젤이 주점에 왔을 때도 이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
구조체와 인간이 함께 협력 작전을 펼치는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또 서로 생사를 걸었던 전투도 떠올랐다.
굳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따진다면, 그건 단지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헤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역시 난 널 참 잘 안다니까.
뭐!? 혹시 내가 취했을 때, 이상한 짓을 한 거야!?
야! 빨리 말해줘...!!
보아하니 녹티스는 한동안 잠을 설칠 것 같았다...
우리 진짜 이렇게 돌아가는 건가요?
케르베로스의 문제는 그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죠. 우리에겐 더 중요한 임무가 있잖아요.
예기치 못한 일들로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제한 시간 내에 그 실험 구조체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이 헛되게 될 거예요.
그 소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쿠로노는 왜 그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거죠?
이사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격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임무의 이유는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로잡자면, 우리가 추적하는 건 소녀가 아니라 위험한 실험품입니다.
만약 우리가 방심한다면, 그녀의 사냥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사루스의 단말기에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다. 이사루스는 잠깐 살펴보고는 다른 정화 부대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목격 보고가 들어왔는데, 임무 목표의 추적 범위가 좁혀졌습니다. 목적지는 109호 보육 구역 주변 지역입니다.
정화 부대 소속의 수송기가 이사루스 앞에 착륙했고, 강력한 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출발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