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한 데이터를 저장한 후에야, 하카마의 임무도 종료됐다.
하카마는 스프너와 약속한 집합 좌표에 서서 스프너가 이곳에 도착할 시간을 계산해 봤다. 임무 중에 실수로 소량의 적조와 접촉한 하카마였지만, 다행히 뚜렷한 침식 반응은 없었다.
하카마가 눈을 감았다.
시스템 정비 중.
논리 사고 회로 검사: 정상 실행.
기억체 장치 확인: 이상 없음.
감정 시뮬레이션 모듈 상태: 종료.
환경 감시: 정상 실행
중복 데이터 정리 중.
하카마가 기계 교회에 가입한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기계 교회는 조직적이며, 질서정연한 로봇 군대로, 교회 멤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체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카마는 그들에게 모든 정보가 다 공유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점차 눈치채게 됐다. 그말인 즉, 오로지 "어머니"만이 기계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일과 최종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카마는 기계 교회 소속인 "코그휠"과 다를 바 없이, 이 거대한 기계의 또 다른 바퀴 부품일 뿐이었다.
바퀴 부품으로써 작동하던 시간 동안, "전차"는 추락하였고, "퍼니싱"의 형태도 변해, 기계 교회는 큰 타격을 받았다. 하카마는 현재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작동 메모리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진지하게 자연을 관찰한 건,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지금 하카마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녀의 기억 데이터 속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만약 나나미라면, 이 풍경을 보고 무엇을 그렸을까?
이러한 의문이 느닷없이, 하카마의 프로그램에 나타났다.
연산 능력 재배치.
시뮬레이션 연산 프로그램 실행 중.
데이터 검색.
연산 진행 중.
……
정답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하... 하카마!
작은 소리가 하카마의 자체 검사 프로그램을 중단시켰다.
하카마가 눈을 떠보니,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언덕 아래 선홍색 액체 위에서 안개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아리잠직한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떠올랐다.
나나미?
응, 나나미 맞아. 하카마, 나나미가 그림을 엄청 많이 그렸어. 하카마도 한번 와서 구경할래?
나나미... 왜 "적조"에 있는 건가요?
하카마의 프로그램 논리가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알려줬다. 하카마가 마지막으로 나나미의 좌표와 상황을 확인한 것은 119시간 26분 32초 전으로, 나나미가 이곳에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오기에 충분한 동기나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나나미는 그녀의 초기 기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나미는 깔깔거리면서 웃으며, 웅덩이에서 물장난이라도 하려는 듯 붉은 물결을 일으켰다. 하카마는 예전에도 나나미가 보존액에 담긴 상태에서 검사했을 때, 이렇게 장난을 쳤던 것이 기억났다.
당신은 나나미인가요? 아니라면 누군가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하카마, 나나미가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절 기억하시나요?
물론 하카마를 기억하고 있지. 왜냐하면 하카마는 나나미의 첫 번째 절친이고, 나나미도 하카마의 첫 번째 절친이니까.
나나미는 여정 중에 재밌는 일들이 엄청 많았어. 나나미가 하카마에게 모두 말해줄게.
소녀가 하카마를 향해, 포옹해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의 친구, 하카마. 뛰어내려서 이리로 와. 네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나나미가 알려줄게.
어디선가 어렴풋이 전자음의 경고가 들려왔지만, 하카마의 청각 모듈은 고장 난 듯 잘 듣지 못했다.
예전에, 하카마는 나나미가 뻗은 두 손에 응하려 했지만, 하카마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어서 와. 하카마.
어서.
안돼!
하카마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뭐 하는 겁니까?
저는...
하카마는 손을 뻗은 채로, 강으로 들어갈 뻔함을 깨달았다. 발 쪽에 있는 붉은 적조가 "내키지 않는다"라는 듯, 핏자국처럼 번져, 힘차게 땅을 치고 있었다.
"적조"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일어난 상황은 마치 그녀의 시각 수신 모듈에 오류라도 난 것 같았다.
제 프로그램에 허점이 생긴 거 같아요. 어서 검사해야 해요.
하카마는 손을 거뒀다.
이상합니다. 하카마도 임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니, 이 "적조"라는 거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겁니까?
스프너가 말한 게 맞을 수도 있어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하카마는 적조를 향해 뻗을 뻔한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그냥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을 뿐이에요.
하카마는 관측자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하카마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이 관측, 기록 및 분석을 통해 나나미의 행동과 동기를 연산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나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나나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하늘이 더 이상 푸르지 않고, 꽃도 더 이상 피어나지 않게 된다면... 또 땅 위에 죽음과 피비린내만 가득하다면 이것을 본 여자아이는 그래도 행복해할까? 아니면 슬퍼하거나 분노할까?
하카마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난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프로그램 알고리즘이 그녀의 사명을 다하도록 뒷받침하기에 부족한 것일까?
하카마는 생각했다.
하카마는 가동된 이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항로 이탈"이라는 착각이 어떻게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졌고,
그런 이상한 감지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디에 편차가 생겼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문제를 발견, 조사, 분석, 해결한다.
이것이 하카마의 프로그램 작동을 유지시키는 본능이었다.
"적조"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하카마는 처음으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분석하지 못했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돌아가서, 아르카나님께 분석을 요청하시죠.
"적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