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의식 실험 프로젝트 관리 기록 요약:
대조 실험 중 일부 로봇을 인간과 같은 성장 궤적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 로봇마다 정기적으로 기체를 교체했습니다.
인간의 "성장"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체를 교체하는 동안, MPA-01은 각 실험체의 기억체 상태와 논리적 사고 회로를 확인하고 기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방 안의 유일한 빛이 중앙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차갑고 캄캄한 방에 혼자 있었는데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에 찬 눈길로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소녀의 목덜미에는 여러 개의 케이블이 연결돼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의 시선에는 그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았고, 거대한 로봇 단말기 하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여성 목소리가 단말기에서 흘러나오자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앞에 있는 작은 카메라에 머리를 댔다.
네가 말하는 거야?
여긴 어디야? 나나미는 엄마가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후에 잠들어 버렸어.
설마 나나미가 꿈꾸고 있는 건가?
네, 꿈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날이 밝으면 방안의 침대에서 깨어나게 될 겁니다.
우와, 이렇게 또렷한 꿈은 처음이야! 넌 누구야?
저는 휴리스틱 인공지능 관리 로봇 A형, 식별 코드 MPA-01입니다.
로봇 의식 실험 프로젝트 관리 기록.
실험체 MPL-00의 행동 이력.
제23조, 인격 데이터 이상 없음.
실험체와의 대화를 통해 해당 실험체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이 다른 AI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MPA-01은 실험체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도록 실험 관련 규정에 따라
실험체의 기억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대화 종료. 기억 데이터 삭제를 시작합니다.
삭제 완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방, 같은 로봇.
회색 머리의 소녀는 바닥에 앉아, 앞에 있는 커다란 로봇 단말기를 올려다봤다.
넌 누구야?
저는 휴리스틱 인공지능 관리 로봇 A형, 식별 코드 MPA-01입니다.
그리고 같은 자기소개.
로봇... 넌 인간이 아니야?
저는 데이터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인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
엄마 아빠는 로봇이 사람들의 좋은 친구라고 자주 말씀하셨어.
그러니까, 너도...
음, 방금 이름이 뭐라고 했지?
휴리스틱 인공지능 관리 로봇 A형입니다.
휴리스틱 인공지... 앗!
그녀는 길고 어려운 이름을 읊다 혀를 깨물고 말았다.
이름이 너무 긴데… 다들 그렇게 불러?
저의 명령자는 식별 코드로 저를 부르기 때문에, 인간처럼 부여된 이름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나미는 너를 "하카마"라고 부를래, 괜찮지?
하카마...
하카마!
좋은 이름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카마는 오늘 나한테 어떤 "기쁜"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음... 사실 나나미는 엄마, 아빠랑 수족관에 갔었어!
나나미는 엄청나게 큰 생체공학 고래도 보고, 엄청나게 큰 곰도 봤어.
돌고래가 점프할 때, 물보라가 이~ 만큼 높게 쳤어!
하카마는 수족관에 가본 적이 있어?
저는 관리형 AI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나미가 말한 곳에 실제로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음... 그럼 나나미 몸에 카메라를 달아서 하카마와 연결하면, 나나미가 다니는 곳을 하카마도 볼 수 있겠네.
사실 전 가상 현실로 어떤 관광지든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나미가 말한 것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달라.
실제로 보는 느낌은 가상 현실과 다르잖아. 그리고 나나미는 하카마랑 같이 보러 가고 싶어.
다 같이 보면 너무너무 즐거울 것 같아!
저는 지금까지 그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말에서 즐거움이 흘러나왔다.
네. 아주 즐거울 것 같습니다.
맞다! 나나미는 나나미가 본 걸 그려서 하카마한테 보여줄 수도 있잖아.
기회가 된다면, 나나미가 가져와서 하카마한테 꼭 보여줄게.
우리 또 만날 수 있지?
로봇 의식 실험 프로젝트 관리 기록.
실험체 MPL-00의 행동 이력.
제36조, 인격 데이터 이상 없음.
특히, 실험체는 대화 중 창의적 면에서 능동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로봇에게 아주 특별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성향의 원인을 잘 분석하기 위해, 다음 만남에서 창의적 효과를 위한 도구를 제공해 달라고 명령자에게 신청했습니다.
대화 종료, 기억 데이터 삭제를 시작합니다.
또한 실험체 나나미가 MPA-01에게 지어준 이름 "하카마"에 대해서는,
해당 명사를 기억하는 행위가 실험체 기억 데이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0.08%로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름을 유지합니다.
다음 만남부터 MPA-01은 "하카마"라는 이름으로 나나미와 대화합니다.
음... 넌 누구야?
안녕하세요. 저는 휴리스틱 인공지능 관리 로봇 A형입니다. 그냥 하카마로 부르시면 됩니다.
하카마... 익숙한 이름인데, 나나미랑 전에 본 적 있어?
없습니다. 이번이 우리의 첫 만남입니다.
아, 하카마도 나나미가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
후훗, 오늘 선생님도 나나미한테 이 질문을 했어!
지난번 선생님은 항상 사과와 달걀을 그리라고 했는데, 새로 온 선생님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고 했어.
그래서 나나미는 종이에 엄청 많이 그렸어!
산보다 높은 로봇, 가면 기사, 엄마 아빠가 준 나나미의 생일선물 그리고 미미의 털볼... 아!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는데, 나나미는 그리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어!
소녀는 손에 있는 화판과 펜을 들고는, 그 위에 그리기 시작했다.
음, 여기에 꽃 한 송이를 더하면...
완성됐다!
봐봐, 내가 나나미랑 친구를 그렸어!
로봇이랑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있어. 처음 보는 거지만, 너도 나나미의 친구야!
앞으로 또 만날 수 있지? 하카마!
……
저는 나나미와의 다음 만남을 기대합니다.
로봇 의식 실험 프로젝트 관리 기록.
실험체 MPL-00의 행동 이력.
실험 초기, 12명의 인간형 로봇에게 그림 그리기 관련 테스트를 시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림 주제는 제한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로봇이 그림 주제로 어떤 선택을 하는 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그린 것은 모두 사진을 합성한 화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나미의 그림은 눈에 띄게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나미의 그림은 인간이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바뀌었지만, MPA-01의 논리적 사고 회로는 그림을 분석할 때 뚜렷한 이상 현상을 보였습니다.
아직 이상의 원인을 판단할 수 없어서, 해당 현상을 검사 보고서에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체 교체 일은 나나미의 18번째 생일입니다.
인간의 생일 축하 전통에서는 태어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친척, 친구들이 그를 위해 선물과 축복을 준비합니다. 인간의 전통을 따르면,
하카마도 나나미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일은 임무 376호로 등록했습니다.
감정 모듈에서 "기대"에 가까운 감정이 감지됐지만, 해당 모듈은 꺼진 상태입니다.
자체 검사 실행.
이상 없음.
마침내 실험실 문이 열리고, 초췌한 얼굴의 여성 연구원이 들어왔다. 그녀의 눈시울은 방금 한차례 격렬한 논쟁을 겪은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MPA-01, 일주일 후에 예정됐던 나나미의 기체 교체 계획을 취소해.
알겠습니다. 이 계획을 일정표에서 제거했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로봇 바이러스 때문입니까?
여성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테이블에 기댔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 계산에 근거하면, 3일 뒤 연구소와 가장 가까운 도시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 이사회에서 로봇 의식 실험을 중지시켰으니, 실험과 관련된 로봇들도 모두...
그녀는 얼굴을 가렸다. 낮은 흐느낌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넘쳤다.
난 이 결정이 옳다고 믿어. 하지만...
뒷부분의 말은 그렇게 울음소리에 삼켜졌다. 한참 뒤, 다시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 대신 연구자의 굳은 의지만 남아있었다.
난 뭣 좀 준비하러 가야겠어.
미안... 지금은...
그녀가 단말기에 명령을 입력하자, 방 안의 컴퓨터가 하나씩 점차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 연구원은 방을 나간 뒤 문을 잠갔다.
어둠이 점점 다가오면서, 관리형 AI는 자기 감각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