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다차원 연출 / 극지의 서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여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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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달그락...

눈밭을 밟는 말발굽의 맑고 규칙적인 소리가 표층의 꿈에서 깨어나게 했다.

머릿속에 아직 환상의 기억이 맴돌고 있었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파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생존 본능이 위험을 감지했다. 의식마저 앗아갈 듯한 극한의 추위 속에서, 이성을 지키기 위해 즉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시야 가득 끝없는 순백의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순백의 세계는 모든 생명의 빛깔을 삼켜버렸고, 약한 자들의 침범을 용납하지 않는 금지 구역이었다.

이 순백의 풍경은 잊힌 기억을 한순간에 되살리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차가운 설원에서 살아남으려면 끝없는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차가운 설원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발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그렇다. 이토록 명백한 생존의 법칙을 어찌 잊고 있었던 것인가.

이 끝없는 설원이 환상이든 실재든,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생존의 칼날을 움켜쥐고 마지막 순간까지 싸워나가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깨어났어?

키가 큰 여성 구조체는 달리는 마차 위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여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출혈은 멈췄지만, 우리는 어서 발을 붙일 곳을 찾아야 해.

곧 해가 저물 거야. 그때가 되면 기온도 떨어질 텐데, 그녀가 마차에서 버티기 힘들 거야.

또 다른 숲을 지키는 자는 오른쪽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급하게 감은 붕대 사이로 끊임없이 피가 스며 나왔다. 상처의 위치와 출혈량으로 보아 주요 혈관이 다친 게 분명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몇 분 전, 차량 행렬이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육지로 향하던 그때, 작은 침식체 무리가 갑작스레 들이닥쳤다.

숲을 지키는 자들은 충분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으나, 공포에 질린 국경 협회원들이 무작정 설원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들의 뒤를 쫓는 과정에서 이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침식체의 습격을 피한 것은 다행이었다. 이 상처는 전투 중 무기가 스친 것뿐이었으니, 침식체에게 당했더라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 멀리 오지는 않았는데, 쇄빙선으로 돌아가는 건 어때...

그럴 필요 없어.

타티아나는 고통을 참으며 손목에 감긴 천을 풀어 동맥 혈액이 흐르는 방향의 심장 쪽을 세게 묶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고.

얼음 먼지로 가득 찬 폐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말 한마디도 천천히, 또렷하게 해야만 했다.

앞으로 8km쯤 가다 보면 눈 덮인 큰 산이 보일 거고, 그곳에 야영지를 치면 밤사이 몰아칠 눈보라를 피할 수 있을 거야.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돌아가는 것보다 더 가까워.

하지만 네 몸 상태가...

날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가.

타티아나는 걱정스레 말을 꺼내려는 다이아나의 말을 끊었다.

여기서 돌아간다면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이 낭비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쌓인 눈의 두께와 하늘색으로 봤을 때, 며칠 후면 또 폭설이 내릴 것 같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맞닥뜨릴 시련은 가벼운 부상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앞으로 나아가자, 난 아직 버틸 수 있어.

그래... 그럼 네 의견을 따를게.

로제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채찍을 들었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타티아나가 제시한 곳을 향해 달렸다.

마차가 다시 일정한 박자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눈 위를 밟는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심한 출혈로 세상이 다시 흐릿하게 흔들렸다. 점점 차가워지는 몸속으로 의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눈을 감자 희미해진 의식 속으로 바람 소리와 눈 위를 밟는 말발굽 소리만이 아득하게 흘러들었다.

……

…………

3일 전, "모세급" 쇄빙선 위.

네 말을 충분히 이해했어. 쇄빙선은 이미 정박했고, 극야가 다가오고 있으니, 눈보라가 완전히 길을 막기 전, 우린 차례로 상륙해서 새로운 임시 거처를 지어야 한다는 거잖아.

다만 네가 단독으로 처리하긴 어렵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알고 있으면서 왜...

타티아나, 국경 협회는 키아란타에서 쫓겨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그들이 여태 이곳에 머물러 살고 있는 건, 그만큼의 이유가 있지. 그건 바로 협회 내부에서는 서로에게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는 거라고.

네 의견이 일리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고, 자발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 배를 떠나, 망할 얼음과 눈보라의 세상을 직면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지.

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가 이 배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아. 과거 얼음바다에 있을 때와 똑같지,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나도 모든 걸 내려놓고 너와 함께 도끼를 들고 이 배를 떠나, 황무지에서 직접 터전을 일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만약 배가 정박한 뒤, 내가 그들에게 수년간 의지해 온 이 쇄빙선을 떠나자고 제안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수년 전, 그린바노스크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소피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경 협회를 조직해 광활한 동토와 황무지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했고, 북극 항로 연합이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극지로 몰려드는 난민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한정된 땅에서 더 이상의 식량 생산은 불가능했고, 결국 항로 연합은 이들을 키아란타 항구로 보내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키아란타의 집정관 바딤은 이 막중한 책임을 피하고자 했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의 규모에, 바딤도 북극 항로 연합처럼 냉정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국경 협회는 다시 얼음바다 끝으로 쫓겨났다.

국경 협회의 사람들은 낡은 쇄빙선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야 했다. 원자로에서 뿜어내는 열기만이 혹한의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지휘관이 키아란타에 나타나 국경 협회와 숲을 지키는 자들에게 새로운 정착지를 제안하기 전까지, 그들의 고단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아마도... 이곳을 제2의 "키아란타"라고 생각하겠지.

맞아.

안토노프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타티아나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모든 사람 앞에 놓인 차가운 "현실"을 냉정하게 설명할 뿐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미 생기를 잃어버린 것 같아. 메마른 황무지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채, 희망마저 부서져 버린 셈이지.

하지만, 너희에겐 이 차가운 벽을 녹일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 입장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을 너희라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후방 지원부는 완전히 독립된 조직이고, 명의상 소피아시의 구시대 유산으로만 취급받고 있지. 이런 특별한 위치 덕분에 너희가 어떤 행동을 취한다고 해도, 그들은 의심하지 않을 거야.

비록 위험한 도전이지만... 너희라면 우리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이는 쉬운 임무가 아니었고,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시련도 아니었다.

척박한 황무지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우는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어림없었다. 마치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한 가닥의 실을 훔쳐내려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웠다.

변덕스러운 날씨, 험악한 지형, 불현듯 나타나는 침식체들... 그들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안토노프의 말대로, 이는 시작부터 불공정한 일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알겠어. 그럼 내가 방법을 찾아서 해내도록 할게.

타티아나는 마음을 다잡고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녀는 낡은 사냥총을 어깨에 메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다음날, 얼음바다 근처의 국경 협회 후방 지원부.

부장님, 저도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타티아나의 결정을 듣자마자, 서리 맺힌 흰 머리카락이 빛나는 노인이 누구보다 먼저 지원자로 나섰다.

이 베테랑 협회원은 전투마와 쇄빙선의 이주 경로를 따라 수십 년을 누볐고, 협회의 대이동 때마다 선봉에서 길을 열었다.

타티아나는 그가 건장한 장년에서 백발의 노인으로 변해가는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끝없는 굶주림과 고된 노동은 한때 우람했던 그의 몸을 휘어놓았고, 마치 설산 아래 고개 숙인 푸른 소나무처럼 그의 등은 깊이 굽어 있었다.

타티아나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한숨과 함께 결심을 굳혔다.

발레리, 난 네가 용감한 전사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하지만 넌 이미 평생을 싸워왔잖아.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얼어붙은 땅이 아니라, 네 손주들 곁이야. 그들에게 네 영웅담을 들려줘야지.

이제는 우리가 그 책임을 맡을게.

이런 상황이기에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끝까지 싸워나가는 것, 그것이 사명입니다.

의견을 맞서는 목소리에는 젊은 날의 강단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난로 앞에서 보드카나 마시는 술고래는 자손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제가 젊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잊어버릴 만큼 늙지 않았습니다.

그린바노스크 설산 꼭대기의 삼나무가 아직 묘목이었을 때부터, 저희는 이 혹독한 겨울과 맞섰습니다. 이상을 위해 피와 땀을 바쳐 마침내 모든 이의 평화로운 보금자리, "천혜의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것을 잊고 얌전히 돌아가 늙은이 노릇이나 하라는 겁니까?

제 나이가 얼마가 되든, 저는 결코 현실에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다. 젊은 날의 투지로 이뤄냈던 것처럼, 앞으로도 후배들이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 힘이 되어주겠습니다.

오직 한 가지, 지금 제가 필요한가 하는 것만이 고민할 문제입니다.

타티아나는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출발하면 아마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노인의 얼굴에 두려움 없는 미소가 피어났다.

좋습니다.

타티아나의 헌신적인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다. "천혜의 도시"의 재건이라는 숭고한 이상에 감동한 이들, 그리고 발레리와 같은 오랜 협회원의 호소에 응답한 사람들이 모였다. 총 11명이 자원하여 후방 지원부의 일원이 되었다.

숲을 지키는 자들과 연합한 스무 명의 원정대가 발걸음을 떼었다. 이들은 "모세급" 쇄빙선의 선봉대가 되어, 신소피아시가 새롭게 뿌리내릴 땅을 찾고자 했다.

원정대가 가진 것은 오직 한 번의 왕복 식량과 몇 주치의 난방 에너지뿐이었다. 한 번의 실수도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더 밝은 내일을 향한 그들의 신념 앞에서, 죽음마저도 두려워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에서, 기절했던 여행자의 차가운 몸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제야 의식을 되찾은 "자아"는 무거운 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움직이지 마. 상처가 이제 막 아물었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면 다시 벌어질 수 있어.

로제타의 경고에 그녀는 할 수 없이 동굴의 돌벽에 기대어 다시 앉았다.

여긴 어디야?

네가 알려준 방향으로 좀 더 가다 보니까 지평선 저 멀리 설산 꼭대기가 보이더라고. 아마 네가 말했던 자연 차단막으로 쓸 수 있는 곳이 이곳일 거라 생각했어.

설산에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좋은 곳이야. 임시 거처로 쓸 만한 눈굴도 많고, 몇백 미터 아래에는 옛 항구가 있어. 중간중간 숲도 우거져 있어서 이곳에 캠프를 설치하기로 했어.

건강한 소형 동물들이 서식하는 숲의 존재는 이곳이 퍼니싱의 영향권 밖임을 증명했고, 인근의 항구는 앞으로 더 많은 동료를 맞이할 수 있는 관문이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정착지의 시작점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을 것이다.

숲을 지키는 자들이 이 눈보라를 뚫고 임시 거처와 난방 시설을 설치할 거야. 완공될 때까진 너희가 이 눈굴에서 며칠간 버텨줘야 할 것 같아.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무리하지 말고, 여기서 우리가 가져온 식재료 손질하는 일을 도와주었으면 해.

난...

타티아나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동굴 밖에서 눈사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살, 살려주세요!

둘은 서로의 눈빛만으로 의중을 읽어냈다. 함께 눈굴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타티아나의 다리를 꿰뚫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녀는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쓰읍!

무리하지 마. 내가 확인해 볼게.

로제타는 한마디 위로의 말을 남기고 서둘러 눈사태가 발생한 곳으로 향했다.

임시 주둔지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협회원들이 텐트를 설치하는 도중 무너진 눈더미가 눈사태로 이어졌고, 현장에 있던 다수의 협회원이 쏟아진 눈 속에 갇히고 말았다.

로제타는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두꺼운 눈더미를 파냈다. 이어서 창을 깊숙이 땅에 박아 지지대로 삼았고, 매몰된 협회원들은 그것을 붙잡고 하나둘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큰... 큰일 났습니다. 눈굴 안에 아직 구조하지 못한 동료가 있는데, 통로가 너무 좁아서... 혹시라도 두 번째 눈사태가 일어날까 봐...

구조된 한 협회원이 그들 뒤에 있는 작은 산체 동굴을 가리켰다.

좁은 눈굴에 갇혔다고? 이건 좀 곤란한데...

구조체는 인간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상황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은 더 큰 규모의 연쇄 눈사태를 촉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맡을 테니까 넌 다른 사람들 도우러 가.

움직임이 느껴져 돌아보니 타티아나였다. 그녀는 다친 몸을 이끌고 와서는 도끼로 눈굴 입구의 단단한 눈을 파내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좁은 통로 속으로 몸을 숙여 들어갔다.

잠깐, 네 다리 상처가...

괜찮아, 이미 처치했으니까.

보드카를 거즈에 충분히 적셔서 상처에 덮어두었어. 이 추위에서는 알코올이 금방 얼어붙으면서 상처를 보호할 거야. 감염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타티아나는 말을 이어가면서도 쉼 없이 눈을 파냈고, 설명을 마치자 마침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낮춰 동굴 안쪽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쉿... 안에 있는 사람, 조용히 해. 쌓인 눈이 소리에 예민하니까 조심조심 기어 나와.

한 시간여의 구조 작업 끝에 눈 속에 갇혔던 모든 사람이 무사히 탈출했다. 타티아나는 생존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긴 불안정한 눈밭이야. 쇄빙선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니 조심해야 해. 아무리 작은 행동이라도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모두 이 점 잊지 말고 행동해 줘.

협회원들

알겠습니다, 대장님!

자, 이제 해도 저물었으니 빨리 캠프 세우고 쉬도록 하자.

협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구나... 조금 전 내 말은 잊어줘. 네가 보여준 능력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더라.

어느새 곁에 다가온 로제타가 타티아나에게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건넸다.

이거 받아. 이러면 네가 움직일 때 좀 더 편할 거야.

고마워.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우린 그저 서로 돕는 과정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야.

타티아나가 건네받은 것은 노송나무로 만든 지팡이였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손아귀에 쥐었을 때 전해지는 단단함이 믿음직스러웠다.

이제 우리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료"잖아. 그렇게 말을 조심할 필요 없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장신의 구조체를 바라보았다. 환한 미소와 함께 맞은편에 우뚝 선 설산을 가리켰다.

이제부터가 우리 "여정"의 진짜 시작이야.

"신소피아"의 시작점에 온 걸 환영해, 친구야.

로제타가 먼저 발걸음을 내디뎠다. 타티아나는 사냥총을 등에 멘 채 로제타와 나란히 하얀 절벽 가장자리를 향해 걸었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얼음 대지는 그녀들이 간절히 바라던 새로운 보금자리였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고 생명마저 삼켜버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녀들이 확고한 의지로 이곳에 새로운 길을 직접 개척해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