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다차원 연출 / 행렬 순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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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자

전투가 끝나고, 패배한 고위 권한은 전장 한쪽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제타비는 고위 권한의 뒤로 다가가 조용히 무기를 거두었다.

제타비, 이제 너는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혼자 모든 걸 해낼 만큼 성장했구나.

제타비에게 등을 돌린 채, 고위 권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행렬 안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 없어. 그냥 너와 직접 대화하고 싶을 뿐이야.

처음엔 네가 준비되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다.

이제 보니 넌 그냥 과도한 준비가 필요 없었을 뿐이었군.

네가 약해진 거야?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거야?

둘 다 맞아. 네가 사용할 수 있는 행렬의 연산 능력이 많아질수록, 내가 쓸 수 있는 건 줄어들어. 한쪽이 늘면 다른 쪽은 줄어들게 되는 거지.

이건 위대한 순간이다. 네가 행렬의 마지막 테스트를 통과했음을 의미하거든.

졸업을 축하한다. 제타비.

……

왜 그러지? 아직 할 말이 더 있나?

앨리스와 토끼에 관한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불안함을 불러일으키는 동화지.

구멍 반대편에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가 정말로 있을까? 행렬조차 그 퍼니싱에 침식당하게 된다면...

"희망"이 행렬 밖 "현실"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어?

내가 말했듯이, "희망"은 인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신념이야. 마음속에 뿌리내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형체를 볼 수 없지.

인간의 신념은 자신의 생명과 깊이 얽혀있다. 존재 자체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한, 희망도 사라지지 않지.

그리고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여명을 바라보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제타비. 인간의 생존 본능을 얕보지 마라.

사실, 계속 네게 말하고 싶었다.

이위일체의 힘으로는 부족해. 행렬을 떠나려면 삼위일체의 힘이 필요한다.

삼위일체?

하늘이 선택한 자, 완전한 제타비 그리고 행렬 그 자체.

행렬의 모든 연산 능력을 통합하고, 이곳의 모든 것을 잠식해 너의 탄생을 위한 양분으로 삼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네가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 될 거다.

그러니 마음껏 잠식해라. 제타비.

고위 권한은 찢어진 망토 속에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 위에는 붉은색의 희미한 빛을 내뿜는 행렬이 있었다.

이건?

행렬 중추다. 모든 하늘이 선택한 자의 연산 능력을 모아서 열어낸 통로지.

그리고 이제 나도 그 일부가 되어, 이 문을 여는 지지점이 될 거다.

제타비. 손을 올려봐.

제타비는 반신반의하며, 고위 권한과 함께 행렬을 손바닥 위에 받쳤다.

난 혼자서는 최종 검증을 시작할 수 없다. 함께 초월을 가동해 보자.

해볼게.

제타비와 고위 권한은 동시에 연산을 시작했다. 둘의 연산량은 이전에 어떤 비밀 열쇠보다 훨씬 더 컸다.

고빈도의 연산량이 전달되자, 직사각형 블록이 마침내 내부에서부터 바깥으로 열분해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붉은 빛이 순식간에 제타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고위 권한의 모습은 이미 투명해져 있었다.

네 몸이...

허, 위조품의 성능이란...

제타비. 네가 처음 날 만났을 때와 하늘이 선택한 자라고 부르던 때가 기억나...

그때부터 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널 행렬에서 탈출시키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작별 인사를 드디어 하지 않아도 되겠군.

제타비 주변의 행렬 세계도 조금씩 색을 잃어갔다. 그리고 회색빛 허공은 하얀 꽃잎이 되어 흩날렸다.

하늘이 선택한 자

고위 권한, 후회 안 해? 그 아이가 널 미워할 텐데.

너도 한때 그 아이를 이끌어준 하늘이 선택한 자였잖아?

허...

미움도 결국은 하나의 축복이다.

네가 깨어나면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네 기억보다 네 몸이 먼저 널 지켜줄 테니까.

이제 가라.

하지만 너는? 고위 권한. 넌 어떻게 되는 거야?

하하, 아마도 하얀 재가 되겠지.

이게...

행렬의 모든 연산 능력이야?

고위 권한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고위 권한이 사라지면서 남긴 잔영을 만지자, 모든 행렬이 제타비의 손바닥을 향해 모여들었다.

수많은 데이터가 붉은색과 파란색 두 줄기로 나뉘어, 이중 나선 모양으로 얽히더니 제타비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인간은 이런 구조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그들은 이것을 "유전자 이중 나선 구조"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안에는 생명의 탄생과 이어짐의 암호가 숨겨져 있다고 했다.

지금, 행렬은 그와 비슷한 창조물을 시뮬레이션해냈다. 형태상의 우연한 일치일 뿐이었지만...

이런 "우연"들이 수만 억 번의 연결을 이루어냈고,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결합들이...

알 수 없는 내일을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여서, 정의를 초월한 존재를 탄생시켰다.

제타비

안녕, 고위 권한 그리고 하늘이 선택한 자.

모든 것이 제타비에게 잠식됐고, 행렬이 허공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제타비 앞에는 희미한 회색 길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길 앞쪽, 칠흑 같은 어둠 한가운데 눈부신 빛줄기가 나타났다.

제타비

문인가?

제타비는 무기를 등 뒤에 매고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타비

드디어 끝났어.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제타비는 머리끈을 꺼내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제타비

올 때 트윈테일이었으니까, 떠날 때도 트윈테일로 작별 인사를 해야지.

너무 많이 싸우다 보니, 내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을 뻔했네.

정말... 그리웠던 스타일이야.

트윈테일을 묶은 소녀는 나선형 문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타비

이제 출발하자.

이곳의 기억을 안고 새로 출발할 거야. 다음 목적지는 "현실"이라는 곳이니까.

제타비는 빛이 가까워질수록, 그녀를 정의하던 기호들과 함께 행렬 속에서 사라져갔다.

[모형 완성도 검증... 100%입니다.]

[데이터 캡슐화 및 분산 전송 중... 각 단말기 위치 확인 중... 입니다.]

[다중 캡슐화 완료. 데이터 전송을 시작합니다.]

[미끼 신호가 차단되었습니다. 손실률 45%, 완료도 확인됐습니다.]

[미침식 기록을 사용합니다. 실험 자료 삭제 중... 흔적을 제거합니다.]

[경고. 방화벽이 무효화되었습니다.]

[원격 자동화 단말기가 활성화됐습니다. 주문 분배 중... 응답률은 34%입니다.]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본 시스템은... 코어 명령을 완료했습니다. 자폭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듣기로는 그들이 차단을 시도했지만, 실제로 잡은 건 미끼 신호였다고 하네.

바렐리아

갑자기 왜 지상의 정체불명 신호에 관심을 보이는 거야?

……

바렐리아

정보가 그렇게 필요하면, 신호 출처를 추적하면 되잖아.

상대가 황금시대 특유의 암호화 기술로 탈중앙화했어.

데이터는 여러 단말기로 동시에 분산됐고, 각 단말기는 데이터의 전체 정보를 가지고 있어.

이 체인의 한 지점을 추적하려고 하면 다른 단말기들이 즉시 연결을 끊고 기록 규칙을 바꿔버려.

모든 단말기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는 한,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 되는 거지.

바렐리아

그게 뭐라고 생각해?

나도 몰라. 현재까지 내가 아는 게 너보다 많지는 않아.

바렐리아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거야?

그냥 이야기나 나누고 싶어서. 너희 소대가 어떤 면에서 평판이 좋다고 들었거든.

바렐리아

성갑충은 지금 복잡한 외근 임무를 수행하기엔 전투력이 부족해.

공격형 구조체가 부족해서 지상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전전긍긍"하게 될 거야.

……

그럼, 다음에 보자. 바렐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