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다차원 연출 / 행렬 순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허미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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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고요 속에서 평화롭지만 조금 쓸쓸한 꿈에 빠졌다.

몸은 감각을 잃었고, 두 눈은 뜨기가 어려웠으며, 마음마저 방황하고 있었다.

흐름을 따라 의식은 더 깊은 곳을 헤매며, 끊임없이 찾아가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텅 빈 허무 속, 멀고 먼 저 언덕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음표가 수면에 닿자, 잔물결이 작은 빛을 띠며, 어두운 물결이 세밀한 그물을 짜듯 퍼져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는 점차 심장 박동, 몸, 그리고 호흡을 갖추게 됐다.

이어서 만들어진 그림자는 설렘, 공포 그리고 방황이었다.

겹친 그물망이 교차하며 뛰어올랐고, 다가오는 노랫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마침내, 노랫소리가 사라졌고, 그것을 대체한 건 약한 고동 소리였다.

???

그 소녀와 함께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됐니?

오래된 시계의 애절한 울림처럼, 지나가는 시간이 꿈의 경계를 무겁게 두드렸다.

???

넌 결국 진실에 닿을 것이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의식은 조금씩 허무의 바다에서 빠져나왔고, 뜨거운 심장은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

이 여정의 의미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저 언덕에서 등불이 외로이 흔들렸고, 당신은 자신의 안정된 숨소리를 들었다.

???

선택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갔고, 칠흑 속에서는 별빛이 반짝였다.

잠에서 깨어나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핏빛 달처럼 붉은 눈동자였다.

낯선 소녀가 침대 앞에 서서, 악마 같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넓은 방 안에 더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뜬 소녀는, 흥미롭다는 듯 하늘이 선택한 자를 바라봤다.

정말 무례한 만남이네. 깨어났는데도 아직 꿈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야, 하늘이 선택한 자. 말해 봐. 달콤한 꿈에서 무엇을 봤어?

다 어린아이들이나 꿀 만한 환상 같은 것들이네. 뭐야, 설마 너 아직 애니?

나 말하는 거야? 나 어린아이 아니거든. 눈 크게 뜨고 잘 봐.

소녀는 어깨 부분의 미세한 봉합선을 보여줬다.

알겠지? 외모로 판단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고쳐!

아무튼, 꿈 이야기를 들은 답례로 내 소개를 하지.

난 제타비야. 어떤 이유로 너랑 이렇게 만나게 됐어.

뭐 어쩌겠어. 어차피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니까.

제타비

안녕. 하늘이 선택한 자.

제타비는 얌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우유 한 캔을 꺼냈다.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에 약간 무서운 표정이 떠올랐다.

제타비가 천천히 다가와, 말도 없이 우유 캔을 하늘이 선택한 자의 입에 밀어 넣고 우유를 부었다.

저항하지 마. 지금 넌 많이 약해져 있어. 우유를 많이 마시면 몸에 좋을 거야.

그래. 잘했어. 내 말 듣고 많이 마셔야 해. 버리면 아깝잖아.

하하하하. 뭐야. 완전 아기 같잖아. 표정은 나쁘지 않네.

조금 전부터 웃음을 참고 있던 제타비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믿기 힘들어. 이상한 곳에서 깨어났는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니.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인 거니? 아니면, 너무 둔감해서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거야?

어쨌든 냉정함도 재능 중 하나이긴 하지.

치마를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제타비의 모습은 방금 전의 거친 행동과는 전혀 다른 우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이 선택한 자야.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봐.

넌 정말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거니?

제타비의 안내에 따라 시야가 조금씩 방의 각 구석까지 확장되었다.

여기는 연한 색조를 기본으로 한 넓은 공간으로, 장식이나 가구 모두 간결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

연한 색조의 소파, 벽, 천장, 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불쾌감을 주는 거대한 검은 시계가 방 중앙에 걸려 있었다.

아, 반응을 보니 발견했나 봐. 그 시계가 눈에 띄지?

은발의 제타비는 어느새 하늘이 선택한 자의 곁으로 다가가 미간을 찌푸리고 함께 검은 시계를 바라봤다.

방의 디자인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꼭 필요해서 둔 거야. 시간이 얼마나 급박한지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야.

평범한 시계가 아니야. 모양만 시계 모양으로 만든 것일 뿐.

제타비가 손가락을 튕기자, 고풍스러운 시계가 즉시 적색 숫자가 표시된 스크린으로 변신했다.

이렇게 보면 훨씬 직관적이지?

카운트다운, 맞아.

제타비가 말하는 동안, 스크린의 숫자는 변하고 있었다.

봐. 이런 거야.

계속 줄어들다가 0이 되는 순간이 오게 될 거야.

0이 되면? 그 순간 세상은 끝나.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네? 끝난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끝난다는 건 말 그대로 끝난다는 거지. 이 바보야.

거품을 바늘로 찔러 "펑"하고 터뜨리는 것처럼, 공중으로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세상이 사라진다는 건, 너와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진다고.

그 이유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

아니.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해야겠지. 이 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알게 될 거야.

불행한 거품처럼 말이야.

검지를 입술에 댄 제타비는 거품을 불듯이 동작을 취했다.

하늘이 선택한 자야. 문밖의 세상은 네가 기대하는 그런 평화와 질서가 존재하지 않아.

이 방조차도 재앙의 폭풍 속에 임시로 지어진 피난처일 뿐이야.

곧 흔들리기 시작할 텐데, 그러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게 될 거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여기 더 머물다가는...

이 안전한 피난처도 너와 나의 무덤이 될 수 있어.

그러니, 여기서 나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야. 준비할 시간은 많지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어쨌든 난 네 곁에 있을 거야.

다시 말해서, 제타비는 너와 모든 여정을 함께 할 거야.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어. 하지만 동료라는 표현은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야. 그냥 곁에서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지.

당연히 카운트다운이 0이 되기 전 이 세계의 진실을 찾아내야지.

너에게 있어선, 과거의 너 그리고 미래의 너 모두 그래야 할 거야.

검은색 스크린의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은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제타비는, 다시 장난스럽게 악마 같은 웃음을 지으며 하늘이 선택한 자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자. 하늘이 선택한 자.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잠시 망설이다가, 하늘이 선택한 자는 제타비의 손을 잡았다.

흥, 흥. 그래. 이래야지.

이후에는 손을 쉽게 놓으면 안 돼.

하늘이 선택한 자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