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와 함께하는 시간
리브의 메시지를 받고, 인간은 약속 장소인 쿠로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지휘관님, 오셨군요.
이건 생명의 별에서 특별히 개발한 생체 감지 시스템이에요. 기본적인 신체 데이터를 확인하고, 자동으로 생활 가이드까지 제시해 줘요.
아, 이건 아직 테스트 중인 모델이에요. 연산 부담을 줄이려고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했어요. 그리고 비상시에 접속이 끊겨도 문제없게, 분리 가능한 휴대용 생체공학 피부 링으로 만들었답니다.
오늘 지휘관님 생일 선물로 드리려고, 일부러 교수님께 부탁해서 체험 버전을 받아왔어요.
자... 손 주세요.
지, 지휘관님! 이러시면 어떻게 채워드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잠시 동안 인간이 손을 잡게 내버려뒀다.
일단 움직이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리브는 잡고 있던 손을 부드럽게 놓은 뒤, 반지 모양의 얇은 조각을 인간의 손목 안쪽에 능숙하게 붙였다.
그럼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까요? 예를 들어 지금처럼, 설탕이 든 음료와 건강 주스를 각각 마셔보는 거예요.
얇은 조각이 피부에 완전히 밀착되자, 따뜻했던 리브의 체온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까요? 예를 들어 지금처럼, 설탕이 든 음료와 건강 주스를 각각 마셔보는 거예요.
리브의 말대로 눈앞의 음료를 한 모금씩 마시자, 팔찌에 곧바로 수치가 나타났다.
뚜뚜뚜... 당분 섭취량이 감지되었습니다. 주의가 필요합니다. 열량 소모를 위한 신체 활동을 권장합니다.
당분 섭취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다니, 이제 몰래 간식 먹기도 글렀네...
음...
곁눈질로 리브를 보니, 그녀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팔찌를 보며 말을 하려다 마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같이 몸이라도 좀 움직여 볼까요?
리브와 함께 온실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영화관에 도착했다. 스크린 속 황금시대의 영화는 지금 봐도 여전히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생일날 연인과 이별했다.
마지막 순간, 서로를 붙잡으려고 돌아섰지만 타이밍이 엇갈려, 결국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혼자 빗속으로 걸어갔다.
서로 놓았던 그 두 손은 다시 맞잡지 못하게 되었다.
리브는 스크린 속 빗줄기를 한참 바라보며, 슬픈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player name] 님의 생일은 절대 이렇게 보내지 않을 거예요...
다음 동작을 하려던 순간, 리브의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휘관님의 생일은 절대 이렇게 보내지 않을 거예요...
마치 이야기 속 연인들을 안타까워하듯, 어둠 속에서 인간의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뚜뚜뚜...
앗!
장시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건강을 위해 즉시 가벼운 스트레칭을 시작해 주세요!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갑작스러운 시스템 음성 소리에 깨졌다. 리브는 황급히 팔찌를 감싸 쥐며 볼륨을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작동할 줄은 몰랐네요.
리브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자, 가까웠던 둘의 몸도 멀어졌다.
결국 팔찌의 운동 권고에 따라, 리브와 인간은 다시 걸음을 옮겨 공중 정원의 시뮬레이션 온실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온실에는 아무도 없어 조금 휑하기까지 했다.
축축하고 따뜻한 공기, 푸르고 여린 식물들, 그리고 나란히 걷는 둘 사이로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
마치 봄 속에 있는 듯, 몽환적인 장마철을 거닐고 있는 것 같았다.
지휘관님, 그거 아세요? 이런 식물은 특수 토양 810호가 필요하고, 영양액은...
좁은 길 위에서 둘의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워졌고, 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두 손은 마치 서로를 찾으려는 듯했다.
뚜뚜뚜뚜...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어김없이 또 울렸다.
비정상적인 심박수 상승이 감지되었습니다. 심호흡을 시작...
...
전원 끄는 중...
리브는 말없이 인간의 손을 들어 올려, 부드럽게 팔찌를 벗겨냈다.
역시 이럴 때 울릴 줄 알았어요...
리브는 어색하게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이 "생명 감지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생일 선물로 받은 걸 당일에 바로 뺏기게 생겼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player name] 님, 알고 계셨나요?
방금 끊겼던 말을 이으려는 듯, 리브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구역 식물은 특수 토양 810호가 필요하고, 24도에서 영양액이 약알칼리성이어야 해요.
저는 온실 아이들을 자주 돌봐서 잘 알아요. 지휘관님도 어쩔 땐 꼭 그 아이들 같으세요...
저, 저는 그런 뜻이...
자신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리브의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올랐다.
제 말은, 지휘관님도 식물들처럼... 제게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지휘관님은 그 식물들과는 달리, 항상 바쁘고 지쳐 계시고,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빌 때가 많잖아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온실이 되어 지휘관님을 지켜드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네... 사실은 지휘관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드린 건데, 이렇게 저희를 곤란하게 만들 줄은 몰랐네요.
리브가 인간의 생일에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팔찌가 아니라...
리브의 표정이 순간 놀란 듯 굳었다. 인간이 자기 속마음을 꿰뚫어 볼 줄은 예상치 못한 듯했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수치는 아니잖아요. 이 팔찌가 조금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모든 간식을 먹을 수 없거나, 매 순간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지휘관님은 작전 임무가 잦아서 열량 소모가 많으시잖아요.
음... 아무래도 그 팔찌는 저처럼 지휘관님과 오랫동안 함께 싸워온 것도 아니고, 상황에 맞게 조언할 줄도 모르니까요.
처음엔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역시 제가 직접 챙겨드리는 게 좋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따로 해줄 조언이 없대요.
저는 지휘관님이 얼마나 단 커피를 좋아하시는지, 언제 잠을 못 이루시는지, 그리고 어떤 날 늦잠을 즐기시는지 다 알고 있어요...
커피 당도는 제가 맞춰 드릴게요. 잠 못 드는 밤에는 좋아하시는 자장가를 불러 드리고, 늦잠 자고 싶어 하실 땐 제가 몰래 알람을 끄고 곁에서 같이 있어 드릴게요... 몸에 안 좋은 간식은 제가 숨겨 뒀다가, 비슷한 맛이 나는 건강한 요리를 해 드릴게요...
의사라면 조언이 아니라 바로 "치료"를 하겠죠.
리브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환자"를 바라보았다.
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온실이 되어 지휘관님을 지켜드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요.
...
리브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다가와 두 팔로 인간을 감싸안았다.
생일 축하해요, [player name]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