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기념일 이벤트 스토리 / 운명의 실타래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눈앞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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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i>제가 처음 그것을 마주했을 때, 이끼와 말라붙은 나뭇가지가 온몸을 덮고 있었고,</i>

<i>햇살과 구름의 그림자는 그 얼룩진 몸 위에서 마치 서로를 끌어안듯 드리워져 있었어요.</i>

<i>...</i>

<i>무성한 잎사귀는 숲이 써 내려간 시처럼, 나뭇가지보다 길고, 그리움보다는 짧게 머물렀죠.</i>

<i>다시 만날 때 들려드리려고, 몰래 몇 편을 베껴 두었어요.</i>

<i>...</i>

<i>산안개는 텁텁한 매미 소리를 씻어 내고, 조각난 얼음은 여름의 열기를 달래주었어요.</i>

<i>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제야 여름에게 사실 다른 이름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i>

<i>당신이 없는 계절엔, 여름은 그저 "무더운 날씨"일 뿐이죠.</i>

<i>……</i>

연한 파란색 잉크가 마치 낮잠을 자듯, 편지지 위에 나른하게 퍼져 있었다. 흘러가는 문장들은 평소보다 덜 단정했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부드러웠다.

손끝으로 그 글을 따라 쓰다듬자, 상대가 펜을 들며 웃고 있었을 순간이 아련히 전해지는 듯했다.

편지 말미의 한마디가 마음속에 잔잔히 스며들자, 평범했던 날씨가 이상하게 버겁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니, 가이드 겸 운전사인 연락원이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출발까지는 아직 여유 시간이 있어 보였다.

지휘관은 편지를 고이 접어 넣고, 단말기를 꺼내 익숙한 아이콘을 눌렀다.

[player name]

원래는 편지로 답장을 보내려 했는데, 갑자기 외근이 생겨 이렇게 먼저 연락해.

잠시 후, 단말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세레나】

장기 파견인가요? 필요하시면 임무 끝내고 지원하러 갈게요.

[player name]

걱정 마. 일정만 좀 빠듯하지, 내용은 지금 네가 하는 거랑 비슷해. 위험하지 않아.

【세레나】

다행이네요. 얘기 나온 김에 말씀드리자면...

...

대화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준비를 마친 연락원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player name]

아... 이제 슬슬 출발할 때가 된 것 같네.

단말기 화면에 한참 동안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몇 차례 표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더니, 마침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세레나】

조심히 다녀오세요. 돌아오시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나눠요.

[player name]

그래.

지휘관은 단말기를 집어넣고, 연락원 쪽으로 향했다.

연락원

이제 출발하시죠. 죄송해요, 물자 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부대원들 요청이 워낙 다양해서요.

보급 때문에 보육 구역에 오는 일이 흔치 않다 보니, 올 때마다 자잘한 것들을 잔뜩 챙기게 되네요. 혹시 더 처리할 일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지휘관은 연락원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맨 뒤, 연락원은 바로 시동을 걸지 않고 핸들 너머 중앙 콘솔 위의 무언가를 조심스레 집었다.

연락원

특별 기념품이에요. 보육 구역에서 소비하거나 이벤트에 참여하면 받을 수 있어요.

이 지역은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소규모 상업 활동도 활발해졌어요. 덕분에 남아 있는 문화나 전통을 살펴볼 여유도 좀 생겼죠.

이틀 후면 이곳 지역 축제가 열려요. 어때요, 이거 꽤 귀엽죠?

연락원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살짝 손을 치워, 기념품이 잘 보이게끔 해주었다.

검은 여우와 흰 여우가 커다란 방울을 감싸고 있는 정교한 스프링 장식이었다.

연락원의 손짓에 따라 장식을 눌러 보자, 두 마리 여우가 방울 주변을 이리저리 흔들리며 익살스럽게 움직였다.

연락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난번 고고학 소대가 현지 문화유산을 조사하러 갔을 때 디자인해 준 거거든요.

연락원

저희 신조는 모든 예술을 되찾고, 복원하고, 계승한 뒤 발전시키는 거예요.

복원이라는 건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예술에 다시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이죠. 저희 신조는 모든 예술을 되찾고, 복원하고, 계승한 뒤 발전시키는 거예요.

결국 사람들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그 예술도 살아남거든요. 그게 없으면 조사만 하고 예술 협회 창고에 처박아 두는 꼴이죠…

말을 마친 연락원은 시동을 걸고, 무언가 생각난 듯 옆 가방을 뒤적였다.

연락원

아, 깜빡할 뻔했네요. 이거, 더위 식히세요.

좋아하시는 맛 맞죠?

받아 든 음료를 내려다보니, 포장에 적힌 맛이 확실히 평소 즐겨 마시던 것이었다.

연락원

세레나가 개인 구매 목록에 써 놓은 걸 봤어요.

가능하다면 이 맛으로 부탁해요. [player name] 님이 좋아하는 맛이 어떤 건지 저도 한번 마셔 보고 싶어요.

연락원의 말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지휘관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레나가 돌 탁자에 엎드려 음료를 홀짝이며, 산바람에 몸을 맡긴 채 편지를 쓰는 모습.

… 산안개는 텁텁한 매미 소리를 씻어 내고, 조각난 얼음은 여름의 열기를 달래준다.

깊은 생각에 잠긴 지휘관은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감각이 목을 타고 가슴까지 내려와, 불편함을 씻어내고 잔잔한 평온을 남겼다.

지휘관은 고개를 들어 보육 구역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산맥을 바라봤다. 입가엔 어느새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23호 조사 지점 주둔지

357 보육 구역 교외

점심

점심, 357 보육 구역 교외, 23호 조사 지점 주둔지

푸른 숲, 그리고 잇따른 산등성이.

산맥 초입 공터엔 모듈형 자재로 만든 간이 막사들이 계곡 옆에 띄엄띄엄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엔 캠핑카 두 대가 멈춰 서 작은 주둔지를 이루었다.

엔진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차는 막사 두 채 앞에 멈춰 섰다.

오른쪽 막사는 비어 있었고, 왼쪽 막사엔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였다.손수 만든 처마에는 풍령이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창가엔 파란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다.

연락원

짐은 여기에 둘게요. 그리고…

연락원은 지휘관의 시선을 따라 문과 창가에 달린 장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더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연락원

세레나는 아직 지휘관님이 오시는 걸 몰라요. 대장이 모두에게 입조심 시켰거든요.

흠... 정말 낭만적이네요. 소설 보는 것 같아서, 살짝 질투가 나는데요?

연락원

하하, 농담이에요. 자, 여기 열쇠랑 카메라요.

이건 고고학 소대의 기본 장비예요. 보안 지원 때문에 오신 거지만, 이참에 저희 생활도 한번 체험해보세요. 꽤 재미있을거예요.

업무 일정과 지도 정보는 모두 지휘관님 단말기에 동기화해뒀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지휘관의 말에 연락원은 손을 한번 흔들고 경쾌하게 차에 올라탔다.

연락원

이제 진짜 갈게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의 중요한 임무를 방해할 수는 없죠.

지휘관은 피식 웃으며, 어쩐지 낯설지 않은 이 정원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단말기를 꺼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곧바로 녹색 읽음 표시가 떴다.

【세레나】

임무 지점에 도착하셨나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곧바로 녹색 읽음 표시가 떴다.

【세레나】

오늘 조사 대상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고 있었어요. 혹시 임무 지점에 도착하셨나요?

[player name]

응, 도착했어. 분위기도 좋고, 같이 지내게 될 사람들도 꽤 괜찮아 보여.

【세레나】

음, 제 숙소 옆 방은 아직 비어 있더라고요. 언제쯤 누가 들어올지 모르겠네요.

좋은 분이 왔으면 좋겠지만… 계속 빈 채로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player name]

그럼 내가 들어가면 되겠네?

【세레나】

좋아요. 그럼 [player name] 님의 임무가 제 임무보다 먼저 끝나길 바랄게요.

근데 이렇게 메시지 주고받아도 괜찮으세요? 지금 임무 중이시잖아요.

[player name]

응. 당연...

메시지를 반쯤 입력한 지휘관은, 옆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player name]

지금은 임무 대상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서 바쁘지 않아.

그보다, 혹시 풍경 사진 좀 보여줄 수 있어? 네 편지를 읽고 나서 왠지 궁금해졌어.

【세레나】

그럼요. 순서대로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player name] 님도 조금이나마 그 분위기를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요.

곧 순서대로 정리된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이 단말기로 전송됐다. 화면 너머로 촬영자가 셔터를 누를 때 느꼈을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편지처럼, 나른하고도 평온한 느낌이었다.

간단한 정비를 마친 지휘관은 지도의 안내를 따라 산맥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숲속을 지나던 중, 자연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돌길 하나를 발견했다.

첫 번째 등불 기둥이 눈에 들어온 순간, 단말기에 세레나의 사진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세레나】

도리이의 상단부가 썩어 무너진 탓에, 문헌과 일부 석조 비문의 흔적을 통해 이 유적 정보를 확인했어요.

사실 팀에 정말 뛰어난 학자가 계셔서, 산길을 들어서자마자 등불 양식만 보고도 여기가 어떤 신사였는지 거의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지휘관은 조심스레 등불 기둥에 손을 얹었다. 거친 표면 위로 세월이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이는 마치 시간의 입맞춤이 울퉁불퉁한 돌 위를 스쳐간 듯했다.

지휘관은 단말기를 올려 세레나가 처음 보낸 사진을 찾은 뒤, 눈앞의 기둥과 나란히 비교했다. 그녀가 오늘 지나온 바로 그곳이 틀림없었다.

[player name]

[답장: 사진] 이 사진 말하는 거야?

【세레나】

네. 잘 찍었죠?

[player name]

장소 선택도 좋고, 구도도 독특하네. 빛이랑 그림자도 잘 어우러졌고... 근데...

【세레나】

음, 괜찮아요. [player name] 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player name]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이걸 찍는 네 모습이야.

【세레나】

그럼... 다음엔 제가 지휘자님의 풍경이 되어드릴게요.

[player name]

사진 찍을 때, 네 옆에 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세레나】

그럼, 다음엔 함께 가요. 같이 보고 싶은 곳이 정말 많거든요. 기회는 반드시 올 거예요.

그렇게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지휘관은 천천히 숲속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은 갈림길과 모퉁이로 가득했고, 지휘관은 계속해서 채팅 기록 속 사진과 비교하며 길을 찾아갔다.

엉뚱한 산길을 수차례 헤매던 끝에, 마침내…

마지막 사진 속 풍경과 눈앞의 숲이 완벽히 겹쳐졌다.

그녀는 저 나뭇잎들 너머에 있다. 단 한 걸음, 단 한 번의 부름으로 곧 만나게 된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세레나의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세레나】

오늘 오면서 찍은 사진들이에요.

혹시 더 보고 싶으시면, 오늘 일 끝나고 또 찍어드릴게요.

지휘관은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답장을 보냈다.

[player name]

혹시 내가 방해한 거 아니야?

【세레나】

전혀요. 지휘자님과 대화하는 게 제일 좋은 휴식이에요.

비... 비록 일은 별로 진전이 없긴 하지만...

[player name]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마지막으로 사진 한장 보낼게.

계속 너만 보내잖아. 나도 괜찮은 풍경 하나 발견했어.

【세레나】

좋아요. 지금 지휘자님 눈에 비친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저도 궁금해요. 함께 있지 않아도, 그걸 보면 왠지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그 담담한 문장 속에 깃든 따뜻함에, 지휘관은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player name]

좋아, 잠깐만 기다려. 어떻게 찍을지 생각 좀 해 볼게.

메세지를 보낸 지휘관은 곧바로 단말기를 집어넣고, 조용히 눈앞의 나뭇가지를 헤치며 카메라를 앞으로 내밀었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숲을 부드럽게 비추었고, 이끼는 석상 여우의 꼬리 끝까지 번져 있었다.

산 안개는 그녀의 머리카락 끝을 가볍게 감쌌고, 펜 끝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는 숲의 바람과 어우러져 잎새를 스치는 듯한 잔잔한 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평온한 장면에, 지휘관은 혹여나 이 고요를 깨트릴까봐 숨을 죽였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세레나

?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셔터음과 플래시가 렌즈 속 주인공의 주의를 끌었다.

세레나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상황을 파악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조용히 단말기를 꺼냈다.

【세레나】

제게 보내주실 사진, 잘 찍으셨나요?

[player name]

[사진]

【세레나】

다른 구조체와 임무 중이셨군요. 촬영 각도를 고민하신 이유가 바로 이거였네요.

[player name]

맞아. 워낙 아름다운 구조체라, 그 모습을 제대로 담으려면 신경 좀 써야 해.

【세레나】

[이모티콘: 서운]아마 이 말을 듣고, 지휘자님께 그렇게 웃어 보인거겠죠?

[player name]

[이모티콘: 억울]나도 잘 모르겠어. 그녀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너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세레나】

흠… 제 생각엔 말이죠—

지휘관은 덩굴을 헤치고 세레나 곁으로 다가갔다. 몸을 굽혀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대답은 더 이상 문자 속에 갇힌 단어가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아 있는 목소리였다.

세레나

지휘자님이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엄청 기뻐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