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꿈꾸는 이의 꿈속을 떠돌던 존재가 마침내 눈을 떴다.</i>
달콤한 향기가 의식을 깨웠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부드러운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익숙한 향기 덕분에 꿈과 현실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특별한 이질감 없이 잠에서 깰 수 있었다.
[player name], 깨어났네.
포근한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소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지휘관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 안 나?
이 말에 루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 거야?
"신의 마음"이 성숙해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은 탓에, [player name]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무리해서 떠나면 몸이 망가질 테니, 이번엔 그녀가 [player name]의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마도 이게 첼시아가 말했던 "대가"인 듯했다.
이상향의 영원한 밤이 끝난 후, 루나가 만든 달이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와, 첼시아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깨진 초상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후 신전이 원래 모습을 되찾았고, 초상화는 흐릿한 거울이 되어 아무것도 비추지 않게 되었다.
첼시아는 거울 속에서 이 거울이 [player name]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비춰줄 것이며, 그 답을 찾아야만 잃어버린 기억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부에는 다 연락했어. 지금 네가 무사하단 걸 모두 알고 있으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네 기억이 돌아오면 그때 떠나도 충분해.
오늘 꿈은 어땠어, 괜찮았어?
루나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향을 집어 살짝 맡아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지겹다면 다른 걸로 바꿔줄 수 있어.
부귀영화든 권력이든... 어떤 꿈이라도 내가 다 찾아다 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응.
루나는 새롭게 발견한 몇 가지 욕망을 향로에 담았다. 이것으로 향의 양분이 한층 더 풍부해질 터였다. 향이 타오르면, 그 속에 담긴 욕망이 은은한 향기가 되어, 이를 맡은 이들에게 달콤한 꿈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건 지금 루나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러 아름다운 꿈속의 삶을 경험하다 보면, [player name]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이번 여정에 대한 그녀 나름의 보답이기도 했다.
루나는 욕망이 만들어낸 달콤한 환상을 꿈으로 응집시켜, 그 사람이 고를 수 있게 모아두었다. 원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다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인간이 바라는 모든 욕망을 이걸로 이룰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밤에 네가 다시 잠들 때 해보자.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야.
말을 마친 루나가 손을 내밀자, 지휘관은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았다.
방을 나와 화려한 전당들을 지나갔다. 루나는 가장 안쪽 방 앞에서 멈춰 서서 문을 열었다. 안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진 긴 식탁이 보였다.
여기야.
앉아.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거든.
음식 향이 코끝을 스쳤다. 지금까지 맡아본 어떤 음식보다도 더 식욕을 자극하는 향이었다.
루나의 눈짓을 따라 지휘관은 가장 가까이 있는 케이크 조각을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생크림의 달콤함이 혀끝에서 녹아들어 뇌로 전해지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더니, 텅 비어 있던 식당이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이는 넓은 광장으로 변했다. 군중이 빼곡히 모여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의 승리를 축하하는 듯했고, 그 열광의 중심에는 지휘관이 있었다. 축복과 찬사가 귓가를 맴돌았고, 모든 이의 얼굴에는 기쁨과 광적인 경배의 빛이 가득했다.
이 기쁨과 찬사의 바다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케이크의 달콤한 맛이 옅어지면서 현실 같던 환상도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에는 다시 그 화려한 레스토랑이 들어왔다.
한 나라 군주의 기억이야. 여러 도시를 정복하고 평생 승리와 찬사를 누렸던 사람이지.
그가 "권력"과 "명예"를 욕망에 담아뒀고, 이제 내가 그걸 너에게 줄게.
말을 마친 루나는 앞에 있던 와인 잔을 건넸다.
이것도 한번 마셔봐.
향긋하고 달콤한 술을 받아 마시자, 눈앞이 끝없는 꽃밭으로 바뀌었다.
꽃들 사이를 거닐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주위를 감쌌다. 옆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웃음소리, 사탕보다도 달콤한 속삭임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달이 뜨고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밤하늘을 비추고, 이 자리에 봄이 내려앉았다."
이 기억의 주인은 양치기 소년이었어. 고향의 꽃밭에서 사랑하는 소녀를 만났지.
루나가 와인 잔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자, 마치 기억 속 끝없는 꽃밭에서 울려 퍼지던 목동의 피리 소리처럼 맑은소리가 퍼져나갔다.
지금,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
그동안 루나는 온갖 욕망이 담긴 꿈들을 모아왔다. 영광, 지위, 권력, 재산, 그리고 사랑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player name]을(를) 위해 찾아냈다.
하지만 왜인지 흐릿한 거울은 여전히 맑아지지 않았다.
괜찮아.
이건 전부 "신의 마음" 안에 있던 것들이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열매니까, 당연히 함께 나눠야지.
루나는 지휘관에게 좀 쉬면서 꿈을 더 꿔보라고 권했다. 그러다 보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면서. 그러고는 거울이 있는 신전으로 가 흐릿한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머, 또 실패했나 보네? 혼자 와서 몰래 울려고?
첼시아가 거울 속에서 루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시끄러워.
모처럼의 평온한 시간이 첼시아에 의해 방해받자, 루나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참, 가지 마. 나랑 좀 얘기해. 여기 갇혀있다 보니 답답해 죽겠단 말이야.
음, 네가 좋아할 만한 얘기가 뭐가 있을까? 아, [player name]에 관한 얘기는 어때?
닥쳐.
루나가 떠나지 않자, 첼시아의 흥미가 더욱 커진 듯했다.
방금도 말했잖아, 난 그저 네 욕망의 집합체고, 루시퍼는 네가 기억 속에서 겪었던 악의일 뿐이야. 이제 네 기억이 돌아왔으니, 우리가 위협될 일은 없어. 그러니까 조금 더 얘기해 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나저나... 루시퍼는 확실히 사라졌지만, 나는 글쎄?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player name]이(가) 기억을 못 찾는 게 걱정되는 거잖아? 그럴 바에 그냥 여기 붙잡아두는 게 어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어? 지금 [player name]은(는) 네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텐데, 게다가 방해될 것도 하나도 없잖아. 너흰 얼마든지... 어머, 또 가버리네?!
루나는 거울 속 소녀의 말을 흘려듣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마침 들어오려던 사람과 마주쳤다.
여기는 웬일이야?
들어와.
굳이 거짓말을 지어내 숨기고 싶지 않았던 루나는, 차라리 함께 안으로 들어와 있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운이 좋아 거울이 제 기능을 되찾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player name]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나한테는 나쁜 일이 아니야.
난 그저 네가 "온전한"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해.
루나는 자신이 겪어봤기에, [player name]도 같은 아픔을 느끼길 원치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그때 [player name]의 심정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잊힌 과거 속에는 둘이 함께한 시간도 있었다. 그래서 [player name]이(가) 그 기억을 되찾기를 바랐다.
"신의 마음"...
다른 가능성은 모두 시도해 봤지만, 결국 진전이 없었다. 루나도 이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기억을 되찾으려면 "가장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해.
그건 분명 좋은 것이어야 하는데...
"신의 마음"에 담긴 것들은 좋은 기억이라고 할 수 없어.
루나는 [player name]이(가) 그 안에서 받았던 상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억을 잃었던 초기에 자신이 보였던 태도들까지... 누가 봐도 좋은 기억이라고 취급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
[player name]이(가) 이렇게 믿음을 보여줬으니, 루나도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황금 사과를 반으로 나눠 그와 함께 나눠 먹었다.
사과 속의 모든 것이 다시 기억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흐릿했던 거울이 드디어 선명해졌다. 거울 속에는 루나의 모습이 비쳤다. 과거 초상화 속 신의 모습이 아닌, 이미 악마가 되어버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이건...
루나는 눈앞의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답이었다.
루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답했다. 루나는 [player name]이(가) 사과를 삼킨 그 순간,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네가 원하던 거야?
"악마"가 되어버린 내 모습...
그럼... 나랑 여기 계속 있고 싶어?
루나는 첼시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코 지휘관에게 답을 강요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니 그녀도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됐다.
만약 떠나기로 한다면, 다음 만남은 언제가 될까?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언제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사과의 달콤함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억처럼 마음속에 맴돌았다.
따뜻한 둥지는 새들을 돌아오게 하지만, 때로는 더 넓은 하늘을 향한 꿈을 잠재우기도 한다.
하지만 발밑의 땅이 충분한 의미를 품고 있을 때, 그 "보금자리"야말로 머물러야 할 안식처가 되는 법이다.
보아하니, 우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네.
루나는 바닥의 초상화에 기대어, 이 세계가 천천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우리 모두 서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이곳을 우리의 자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난 네 시선이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꿈은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잖아.
내가 원했던 건, 손에 잡히는 진짜 온기였어. 바람에 흩어질 환상 같은 거 말고.
잘 생각해 봐. 그 반쪽 사과를 받아들이면, 여기서 있었던 모든 일이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우리의 의식은 떠나겠지만, 기억은 영원히 남게 되겠지.
정말로 이 기억을 네 삶에 새기고 싶어?
어쩌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의 끝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어떤 폭풍우도 이겨낼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럼,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자.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낙원에서 다시 만나자.
"신의 마음"이 완전히 흡수되자, 이 세계의 인멸도 서서히 끝을 향해 갔다.
핏빛 폭우가 쏟아져 내리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했다. 가장 낮은 땅부터 시작해, 돌덩이, 나무, 사원, 폐허까지. 마침내 모든 것이 끝없는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오직 누렇게 바랜 책 한 권만이 수면 위에 외롭게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