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어. 대전 안의 침식체들은 모두 제거했고, 나중에 이쪽으로 인원을 파견해서 도울 거야.
사원 청소, 도로 정리, 주거 구역 분할... 이제 막 첫 발을 뗐을 뿐인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반신반의하는 산조직원들과 달리, 유랑민들은 자신들이 믿기로 한 대장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고 우르르 달려 나왔다.
그들이 모여들어, "철두"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너무 대단하다느니 평생 따르고 싶다느니 하며 떠들어댔다.
하지만 세주가 빈정거리자 또다시 싸움이 날 뻔했다.
난 아직도 너희를 인정하지 않았어!
다행히 사리분별을 아는 이들도 있었기에 더 이상의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보니 앞으로도 힘든 날이 많겠지만, 그래도 여명의 서광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패목은 팔짱을 끼고 서서 여전히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돌이켜보니 그는 정말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 수도, 치밀한 계산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 그 진의를 살피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가 보여준 형에 대한 그리움이 진짜든 가짜든, 상황은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네 걱정이 많군.
위험을 통제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생존 수단일 뿐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는 속으로 다 알면서도 되묻고 있었다. 그럼,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년 남자의 교활한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내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네나 내 입장에서나, 이건 모두가 바라던 결과 아닌가?
걱정 말게. 산조직에는 원칙이 있다. 우리를 도와준 사람은 절대 잊지 않아.
인연이란 한 번뿐이니 소중히 여겨야 하네.
그는 마지막으로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도 언젠가는 헤어질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왠지 쓸쓸해졌다.
유랑민들이 말하는 "대장", 산조직이 인정한 "소주"는 고요함을 즐기는 성격이라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승방이 있는 뒷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대로 눈 위에 새겨진 바큇자국이 산 위로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두 발로 그 흔적을 따라갈 것이다.
날씨는 늘 예측하기 어렵지만, 정상에서 마주한 탁 트인 전경은 여전히 장엄하고 웅장했다. 지휘관은 그 광경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험준한 바위 사이에 간단한 의관총이 서 있었다. 비석에는 이름도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정성스레 쌓인 눈을 닦아낸 흔적이 있었다.
수년간 홀로 사원을 지켜온 주지를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무덤 앞에 섰다.
알파는 짐이 없었다. 그저 칼만 자신이 아끼는 차에 실어 두고는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파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방금 큰 전투를 치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장기말이 되었다는 것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알파가 어떻게 장기말이 될 수 있을까?
눈과 얼음이 햇빛 아래서 녹아내리듯, 그녀도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득 그녀를 칭찬하고 싶었다. "수고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충동을 참아냈다.
알파의 곁에 서서 함께 그 웅장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너무 오래 보지 마. 설맹증 걸릴 수 있으니까.
눈 속에서 모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알게 됐거든.
아무것도 잃지 않고, 동화처럼 순수한 모험. 이런 이야기라면 몇 번이고 들려주고 싶을 텐데...
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결국 끝이 있기 마련이다.
통신 채널에서 때마침 잡음이 새어 나왔고, 후속 지원 부대가 곧 도착할 것 같았다.
통신이 끊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설명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 계속 서 있는 다고 해서 좋을 게 없어.
됐어.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우리 사이에는 그런 가식적인 말 필요 없잖아.
게다가 넌 계속 전진할 거잖아?
알파는 역광을 받으며 눈부신 빛 속에서 살짝 미소 짓는 것 같았다.
넌 선택적으로 일부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넌 예전의 적과 공범이 된 거야.
죄목도 셀 수 없이 많지. 승격자와의 무단 접촉, 승격자와의 협력, 승격자와 같은 공간에서 밤을 보낸 것까지...
알파가 담담하게 이쪽을 힐끗 보았다.
어떤 면에선 너도 나름 빨리 성장했군.
다음에 만날 때 대립할 걸 생각하면, 지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예를 들면, 널 보내주지 않는다든가.
흥.
알파가 갑자기 손을 들어 도발하듯 [player name]의 목덜미를 향해 뻗었다가, 닿기 직전에 멈췄다.
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거란 걸 어떻게 확신하지?
알파의 눈빛은 진지했고, 깊이 고민한 듯했다. 그만큼 지휘관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대답해야 했다.
그럼, 각오는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거야.
!
건방지긴.
그 순간만큼은 알파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동요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알파는 잠시 침묵하다가 작별 인사 대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언젠가 네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널 배신한다면...
그때는 날 찾아와.
푸른 아크가 차체를 감싸며 희미하게 빛났다. 그러자 이온 흐름이 오가며 내는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 기온이 올라갔다.
그리고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데,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
지금의 난 참을 수 있지만,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어.
스승님이 예전에 그러셨어.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빼앗아서라도 가져야 한다고.
평소와 달리 경직된 표정근육을 풀면서 "미소"를 지어 보인 알파는 당황한 채 서 있는 지휘관을 찬란한 햇살 속에 남겨둔 채 떠나갔다.
햇살 아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본 알파는 이슬처럼 덧없고 번개처럼 강렬했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진실과 거짓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됐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도 없었다.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알파는 결심을 굳혔다. 자신이 인정한 인간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더 나은 안식처를 만들어낼 거라고 말이다.
그 여정의 끝까지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멀리서는 모든 것이 고요했고, 맑은 구름이 여명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갑작스레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