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중 정원의 과학 이사회.
공중 정원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은 과학 이사회의 명성을 들어봤다. 많은 과학자가 인간이 걸어온 긴 과학의 길을 밤낮없이 걸어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일반인들은 평생 "전설의 과학자"를 보지도 못할 것이었다.
대부분은 과학자들이 흰 가운을 입고, 커피를 든 채, 온화하게 어떤 난제를 토의하거나, 화이트보드에 빽빽하게 연산을 적고는 다시 모두 지워버리거나, 값비싼 정밀기기들을 조심스레 조작할 거라고 상상했다.
적어도 공중 정원의 과학 교과서엔 수천 년 전 욕조에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친 과학자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그때부터 과학자에 대한 훌륭한 첫인상이 심어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인상은 지속돼야 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응? 뭐야, 날 모르는 거야?
히포크라테스는 자신의 명패를 들어, 그녀를 막는 연구원의 앞에서 흔들었다.
생명의 별에서 오신 히포크라테스 의사이신가요?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누가 의사 선생님을 불렀어?
음식? 누가 음식을 시켰어?
모르겠어. 작동될 때까지 4단계부터 전부 다시 해!
커피... 커피 더 있어?
어? 이게 뭐야? 데이터 저장? 저장해야겠어. 어? 이게 뭐야...
의사라고! 생명의 별에서 오신 의사 선생님! 생명의 별에 연락한 적 없어?
너희들이 곧 의사가 필요할 것 같네.
히포크라테스는 고개를 저으며, 과학 이사회의 실험실로 들어갔지만, 그녀는 실험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잠시 망설였다.
있잖니, 번거롭겠지만 정비 부대의 대원들을 내게 데려와 줄 수 있겠니?
그게 무슨 뜻인지...
날 믿어. 난 의사야.
히포크라테스가 연구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실험실로 들어갔다.
뒤엉켜 있는 케이블은 넓은 실험실 바닥에 거대한 그물을 이뤘다. 그 그물엔 몇 발짝마다 반짝이는 단말기가 있었고, 옆엔 둘러앉은 연구원들과 그들이 까먹어버려 상한 커피가 널려있었다.
지금 실험실에서 밝게 빛나는 불빛은 오히려 창백하고 무서웠다. 깜박이는 푸른빛이 수면 부족으로 인해 초췌해진 연구원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핏줄이 가득 선 눈과 키보드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가락이 이 방의 모두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너희들의 안색이 얼마나 안 좋은지 거울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생명의 별의 병실도 다를 바 없지 않나?
익숙한 목소리도 당장 아시모프가 하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아시모프는 스크린의 수치를 여러 번 확인한 후에야 일어나서 히포크라테스를 맞이했다. 아시모프는 커피를 마시려고 손을 내밀어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네 손에 있잖아.
아, 깜빡했어.
넌 며칠 동안 못 잔 거야?
이틀이려나? 그래도 한두 시간 정도 잔 것 같아.
무슨 일인 건데? 이렇게 바빠 보이는 건 간만이네.
말해 뭐해. 커피는 또 왜 이래...
아시모프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뒤에 있는 푸른빛의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는 거대한 원형 장치가 있었다. 그 장치엔 각자 다른 굵기의 케이블이 가득 꽂혀있었고, 과학 이사회의 연구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게슈탈트? 오는 길에 뉴스에서 너희들이 점검하고 있다고는 들었어.
응. 점검이 아니지만, 점검이라고 이해해도 돼.
너희 쪽에선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진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지 않아?
이 일과 연관이 있다는 거야?
맞아. 하지만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해. 이렇고 저런 반인간적인 신경학 쪽 문제가 있거든.
히포크라테스는 그제야 아시모프의 책상 위에 펼쳐진 <계산 신경과학>이라는 두툼한 책을 봤다.
이런 일은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소용없어. 결국 게슈탈트의 문제야. 그게 해결되면 기절한 환자들도 괜찮아질 거야.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을게. 해결할 수만 있다면 돼. 이거 받아.
히포크라테스가 묵직한 선물을 아시모프의 손에 쥐여줬다.
무거워! 뭐야 이건?
새해 선물이야.
……
과학 이사회, 당신들이 정비 부대를 호출하셨나요? 이게 무슨 냄새야!?
실험실 입구에서 비명이 들렸고, 한 정비 부대의 구조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정비 부대가 왔네. 이곳의 공기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그러게요. 이 냄새는 진짜...
왜? 무슨 문제 있어?
십여 명이 이틀 동안 밤새 한방에 모여 있었고, 심지어는 환기도 안 했잖아. 어떨 것 같은데?
통풍구에 문제가 생겼어요. 사다리가 필요해요.
정말 그렇게 심해?
됐어. 난 리브에게 가봐야 하니 이만 가볼게.
네가 야근하는 이유는 관심 없지만,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건 의사의 지시야.
히포크라테스는 손을 흔들며, 망설임 없이 실험실을 떠났다.
히포크라테스의 모습이 문 앞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아시모프는 잠시 머뭇거리다 커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실험실을 나갔다.
아시모프가 복도의 맑은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자, 무감각했던 얼굴에도 생기가 생겨났다. 그러나 예민해진 후각으로 인해 곧이어 표정이 일그러졌다.
음...
아시모프도 히포크라테스처럼 실험실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고, 최선을 다해 탐구하는 거야말로 과학자의 정신이었다.
아시모프는 각오를 다진 후, 역한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로 다시 들어갔다.
크흠, 그래서 진행도는 어떻게 됐어?
아직 4단계에 멈춰있어요. 80% 이상의 연산 모듈이 전속력으로 작동되고 있어, 언더레이 쪽에 부가적인 연산력 단원을 추가하라고 긴급 통보했어요.
적어도 게슈탈트에 침입된 자들이 안전하게 나올 수 있는 게 보장돼야 해. 게슈탈트가 어떤 일을 벌이더라도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
참. 침입 데이터가 나왔나? 정화 프로그램은 연산 능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완료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계산해 봐.
여기 있어요. 실제로 침입된 인원의 명단과 간섭 범위까지 이미 의회 쪽에 공유했어요.
264명, 환산해 보면 10% 정도 남는데... 어? 그레이 레이븐 소대도 침입됐어?
맞아요.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 소대뿐만 아니라 니콜라 사령관님도 침입됐어요.
됐어.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게슈탈트의 중추에 연산 능력 모듈을 추가하고 모두 잠시 쉬자고.
아시모프의 말이 끝나자마자 실험실에 있는 모두가 동시에 손을 멈추고, 아시모프를 바라봤다.
다 완성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그들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지 않을까요?
맞는 것 같아요... 아닌가? 저도 모르겠네요...
……
게슈탈트의 중추 쪽에서 연산력 단원을 다 처리하기까진 우리는 도움이 안 될 거야.
정화의 진척이 어떨지는 게슈탈트에 침입된 인원들에게 달려있어.
모두 좀 쉬어.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아시모프의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이런 말투는 오히려 주변의 연구원들을 안심시켜 하던 일을 멈추게 했고, 팽팽했던 긴장의 끈도 점차 느슨해졌다.
아시모프는 히포크라테스가 준 그 무거운 선물을 뜯어봤다.
<의식의 바다 시스템 통용 원리(제3판)>
이 책은 아시모프가 제1 저자로 출판한 첫 번째 책이었다.
그래서 음식은?
무슨 음식?
몰라. 아직 늦지 않은 것 같은데.
롱 님이 주문하신 건 그저께 온 것 같더라고요. 여기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박스에서 아주 나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산의 사무실은 그의 개인 선실만큼 깔끔했다. 책상에 뒤집어져 있는 액자를 제외하면, 어떠한 개인 용품도 장식도 없었다.
그 사진은 아주 오래전 하산이 군대에 복무하고 있을 때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인물들은 세월이 지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심지어 하산도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젊지 않았다.
하산은 파일에서 시선을 돌렸다. 늦은 밤의 고요함으로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지각한 건가? 니콜라답지 않군.
의장님?
듣고 있네. 무슨 일인가?
과학 이사회 쪽에서 게슈탈트의 영향을 받은 인원의 명단을 받아, 의장님께 보내드렸어요.
지금까진 게슈탈트가 스스로 정화 프로그램을 완료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외부 데이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소규모의 침입이 발생하긴 했지만, 침입돼도 안전할 거라고 아시모프가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아시모프의 판단에 따르면, 약 1시간 후에 중복 데이터가 정화 완료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통신기 안의 세리카가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봤네. 니콜라, 그리고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 많은 이가 영향을 받았다지.
네. 그래서 전 지금 니콜라 사령관님의 선실로 가는 길이에요. 아시모프는 니콜라 사령관님이 오랫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 생명의 별에 모셔서 검사하는 게 좋겠다고 제게 말했어요.
그렇네. 그럼 이 일을 부탁하겠네. 수고가 많군, 세리카.
하산의 미간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럼, 그냥 생명의 별에 가서 기다리도록 하지.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없군. 이 정도면 충분해.
하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뒤에 있는 코트를 입은 후, 뒤집어져 있는 액자를 세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