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 덜컹...
전차가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손잡이를 잘 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마에 가벼운 진동이 감지됐고, 이어서 어깨와 몸에 진동이 느껴졌다. 이는 공허한 어둠 속에서 다시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듯했다.
드디어 깨셨군요. 지휘관님.
차량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덜컹, 덜컹...
꿈이었나?
꿈에서도 전투를 치르다니. 심지어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전투였어. 차량에서 깜빡 잠든 걸 보니, 피로가 쌓이긴 했나 보네.
사실 지휘관님은 좀 더 주무셔도 돼요. 도착하면 저희가 깨워드릴게요.
루시아와 리도 방금 깨어났어요.
피곤한 게 정상이죠. 임무 보고를 하러 가는 길에서 잠깐 쉬어도 안 될 건 없잖아요.
맞아. 너무 피곤해서, 전차로 지휘부까지 가자고 했지.
하지만 이건 사령부로 가는 전차가 아니잖아요. 39호선은 휴식 구역으로 가는 노선이 아닌가요?
계속 침묵을 지켜왔던 리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차 안에서는 전차의 바퀴와 궤도 사이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만 맴돌았다.
리는 전차 안에서 깜박이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엔 "에덴-39호"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표시돼 있었고, 그 아래엔 전차 노선도 한 장이 있었다.
임무 보고를 하러 사령부에 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럼, 어떤 임무죠?
덜컹, 덜컹...
뭔가를 놓쳤거나, 잘못됐었다. 널널한 차량은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때맞지 않게 차량 앞쪽에서 이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그레이 레이븐의 모두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지휘관도 경계하며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총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휘관이 홀스터를 열기도 전에, 차량 안에서 총성이 울렸다.
지휘관님!
함부로 총을 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전자음과 함께, 낯선 그림자가 차량 앞쪽에 나타났다.
그는 공중 정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서비스형 로봇이었다. 물론, 로봇의 신분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이는 그 로봇이 리가 발사한 총알을 기계손으로 잡았다는 것이었다.
에덴-39호 급행 전차의 차장입니다. 저를... 전차장이라고 불러주세요.
공중 정원의 무인 전차에 차장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네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저 로봇은 방금 리의 총알을 잡은 건가요?
서비스 타입 로봇에게 이런 반응 속도가 있을 수 없어요.
리가 맞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서비스형 로봇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의 추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저는 로봇을 실체화한 것뿐입니다.
저는 게슈탈트 소속의 브랜치 모듈이 실체화된 프로그램이며,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전차장"이라고 부르는 로봇은 쥐고 있는 총알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놨다. 그 후, 다시 기계손을 벌려, 마술처럼 갑자기 허공에 스크린을 띄웠다.
스크린에 보이는 "지휘관 일행"은 예술 협회의 관객석에서 널브러진 채 자고 있었다.
여기는 예술 협회인가요?
생각났어요. 아이라가 오늘 새로 개봉된 연극에 초대했었잖아요.
지휘관은 스크린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보며, 한 폭의 완전한 그림처럼, 점차 기억이 맞춰졌다.
지휘관의 기억대로라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세 시간 전 아이라가 보낸 초대를 받았고, 함께 예술 협회에 가서 새해 연극을 봤다.
현실의 여러분은 관객석에 잘 누워 있습니다.
게슈탈트 저장 공간의 역사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종료되면 안전하게 여러분을 현실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전차장"은 보고 배운 대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럼, 우리가 게슈탈트의 가상 공간에 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데이터를 제 프로그램의 메모리에 로딩할 때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게슈탈트에 침입하려면 "파오스의 창"이 필요해요.
필요 없습니다. 그건 단지 게슈탈트의 데이터 프레임에 연결된 인터페이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게슈탈트는 가상 공간을 출력할 수 있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에 따르면, 게슈탈트는 하이재킹 공격으로 제어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신들이 접속 프로그램을 통해 게슈탈트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왠지 이 기괴한 로봇 "프로그램"은 믿음이 가지 않네요.
만약 우리가 지금 진짜 게슈탈트의 가상 공간에 있다면, 프로그램은 어떤 이미지든 선택하여 실체화할 수 있을 거예요.
기억 안 나세요? 전에 파오스의 창으로 게슈탈트에 침입했을 때도 그랬어요.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할까요?
저희가 지금 확실히 게슈탈트의 공간에 있는 거라면, 공중 정원도 모를 리가 없잖아요.
좋습니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게슈탈트의 역사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협조해달라고 했었죠?
네, 그건 제 사명이자 업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 업무를 완료할 수 있나요? 완료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 역사 데이터들을 재현할 겁니다. 그럼 여러분이 다음 역에서 내려, 역사 데이터의 앵커 포인트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 역사 데이터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것입니다.
덜컹, 덜컹...
전차가 곧 학원역에 도착합니다.
역사는 여러분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출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