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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속삭이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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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분주히 오가는 사람이 없어진 고요한 복도는 차가운 불빛 속에서 더 적막했다. 잠시 생각하고 나서야 왜 아무도 없는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는지가 떠올랐다.

수없이 다녔던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사무실 앞에 도착하게 됐다.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안에서 침착하고 힘찬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

들어와.

전자 잠금장치의 초록 불이 3번 깜빡이더니, 합금 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심플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앞에 있던 노인이 연산 중이던 전술 모형을 종료했다.

졸업 후 자네의 진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불렀다.

교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자네의 선택에 간섭하진 않겠지만, 교관으로서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겠다.

지휘부의 요청을 거절하고, 최전선의 집행 부대 지휘관을 신청한 이유가 뭐지?

교관의 눈빛은 매처럼 매서웠고, 강철처럼 차가웠다. 입학한 이래, 교관은 모든 사람을 이런 눈빛으로 지켜봐 왔다.

교관의 말투에서는 그 어떤 격려와 불만도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숙연함과 엄숙함이 묻어났다.

조금의 거짓말이나 변명을 한다면, 가차 없이 들통날 것이 틀림없었다.

말을 하려던 찰나,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

지, 지휘관님. 일...

의식이 어딘가로 당겨졌다가, 급격히 아래로 추락했다.

눈앞엔 익숙한 휴게실이 보였다. 지휘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리브가 한 손은 지휘관의 어깨에 걸치고, 다른 한 손은 검사용 의료기기를 든 채 서 있었다.

책상의 전광판에는 작성 중이던 보고서가 띄워져 있었다. 보고서의 앞부분은 정상이었지만, 뒷부분은 얼굴로 입력한 것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눌려서 피가 통하지 않은 얼굴을 문지른 후, 다시 리브를 바라봤다.

지휘관님, 왜 이곳에서 잠드신 거예요? 많이 힘드세요?

……

이런 말로는 분명 리브의 마음을 안심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리브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지휘관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두 손을 높이 들어 항복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면 머리를 뒤에 기대시고, 긴장을 푸세요.

능숙하게 정기 검사를 진행한 리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그래도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휘관님.

리브가 지휘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지휘관님이 건강관리 계획을 얼마나 잘 수행하시는지에 따라 달라져요. 예를 들면 지금 바로 쉬는 것처럼요.

리브는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의 "치료 요청"을 받아줬다.

그러면 제가 이후의 서류 작업을 도와드릴게요. 빨리 끝나면, 지휘관님도 일찍 쉴 수 있잖아요.

이미 완료했어요.

지휘관님이야말로 오늘 재활 훈련에 늦지 않으셨죠?

말을 마치자, 두 사람 모두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근육이 쇠퇴한 지휘관의 몸 상태뿐만 아니라, 리브가 자주 겪는 의식의 바다 은통 때문에 정상적인 전투를 할 수 없었다.

외골격의 도움을 받아, 몇 차례의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임무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외골격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었다.

불안한 전황이 계속되는 지금, 능력이 뛰어난 루시아와 리는 지휘관 그리고 리브와 함께 공중 정원에 머물 수 없었다.

소대 멤버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싸우고 싶었지만, 그들의 설득으로 결국 후방에 남아 재활하면서 서류 작업을 처리하기로 했다.

리와 루시아 쪽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전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리와 루시아는 주로 지상 거점에서 재정비할 때, 지휘관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이 있는 전투 구역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다고 했다.

네!

침울한 분위기를 환기한 뒤, 앞에 놓인 보고서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삭제 버튼을 길게 눌러 의미를 알 수 없는 긴 문자열을 삭제하면서, 옆에 있는 커피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지휘관님, 다른 걸로 드세요.

리브는 지휘관 손에 물컵을 쥐여 줬다. 컵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갈색 커피가 호박색을 띤 차로 교체됐다.

이건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예요. 지휘관님께서는 오늘 180mg이 넘는 카페인을 이미 섭취하셨어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섭취하시면 안 돼요.

리브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소대의 건강 관리는 리브가 줄곧 책임지고 있으므로, 지금은 전문가의 조언을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호박색 차를 한 모금 마시자, 따스한 향기가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면서, 조금씩 가슴 전체로 퍼졌다. 쉬지 않고 일하면서 쌓인 피로와 졸음이 많이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이때, 리브는 지휘관의 맞은편에 앉아, 남은 보고서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기 시작했다.

방 안엔 희미하게 빛나는 전광판, 조용히 울리는 타자 소리, 은은한 차의 향 그리고 진지한 리브만 있어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런 평온함을 느껴보지 못한 지 오래였다.

지휘관님, 이 보고서에 지휘관님이 확인해셔야 할 부분이 있어요.

이게 마지막 보고서예요.

리브가 정리한 서류를 받아 확인한 뒤, 보고서의 끝부분에 자신의 신분 ID를 입력했다. 원래라면 오후까지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서류 작업은 두 사람의 협력으로,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처리했다.

빈 잔에 다시 차를 따르며, 아직 닫지 않은 전 세계의 전투 지도를 본 리브는 약간 넋을 잃고 있었다.

루시아와 리의 위치를 찾고 있었어요.

어젯밤에 통신이 왔었는데, 받지 못했거든요.

어젯밤에 루시아, 리와 일상적인 통신을 하기 전, 리브의 은통 증상이 갑자기 발작하게 되면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의식의 바다를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었다.

때마침 항상 가지고 다니던 연결선으로, 심층 연결을 진행해 리브의 상태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외골격을 착용한 뒤, 리브를 안고 생명의 별로 뛰어갔다.

루시아, 리의 통신을 받았을 때, 리브는 계속 치료 중이었다.

손끝으로 지도상의 한 거점을 터치하자, 인원 배치, 물자 보급 그리고 교전 상황 등의 정보가 지휘관의 조작에 따라 나타났다.

인원 배치 화면에는 루시아와 리의 이름이 눈에 띄게 표시되어 있었고, 그들의 상태가 짧은 두 줄의 문자로 기재돼 있었다.

기체 손상도: 15.32%

침식률: 0.00%

전투 브리핑에 따르면, 루시아와 리는 보조형 구조체의 조기 경보가 없는 상황에서 그 둘의 힘만으로 적조의 지류 한곳을 찾은 듯했다.

이합 생물과의 격전 속에서 가이드 표식을 배치해, 거점 주둔군의 제한적이지만, 정확한 화력을 유도하여 이 지류를 차단시켰다.

저도 함께 했었다면...

리브의 시선이 브리핑의 첫 줄에서 멈췄다. 그곳엔 현재 거점의 고갈된 보급 물자를 간략하게 기술한 것 외에, 각 소대에서 보조형 구조체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비고가 따로 기재되어 있었다.

지휘관님은 원거리 심층 연결이 개선되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의식의 바다에 나타나는 은통 증상은 심층 연결을 통해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아시모프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선을 사용하지 않고, 원거리 전송 방식으로 심층 연결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이 기술적 난관만 해결된다면, 그레이 레이븐이 다시 같은 전장에서 협력 작전을 할 날도 멀지 않게 된다.

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소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참, 지휘관님. 교수님이 운동을 많이 하라고 권하긴 했지만, 다 낫기 전에는 지상 임무를 너무 많이 신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리브의 표정에서 약간의 "불신"이 보였다.

다행히 리브도 이 문제에 대해 크게 매달리지 않고, 이어서 질문했다.

이제 무엇을 하실 건가요?

리브는 원래 지휘관이 일찍 쉬기를 바랐지만, 자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오늘 재활 훈련은 오전에 끝났다. 만약 다시 하고 싶을 경우, 하루 전에 예약해야 했다.

한참 동안 이제 뭘 해야 할지 정말로 떠오르지 않았다.

음, 저요?

저도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데, 만약 지휘관님도 일정이 없다면...

휴게실에서 울린 통신 알림음이 둘의 대화를 끊었다. 통신을 연결하니 아시모프의 투영이 공중에 나타났다.

지금 어디에 있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우선 멈추고, 과학 이사회에 들어와.

아시모프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심지어 눈가의 다크서클이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통신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자세한 건 실험실에 오면 얘기하지. 그리고 잊지 말고 리브도 데려와.

네?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리브는 조금 놀랐다.

리브도 네 옆에 있어? 그럼, 같이 오도록 해.

아시모프는 대답을 들은 후, 통신을 종료했다.

아시모프 님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걸까요?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온몸의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재활 훈련과 영양 관리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지휘관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리브의 부축과 지팡이를 짚으며, 아시모프의 실험실로 이동했다.

리브, 이 사람에게 너무 잘해주지 마.

뜻밖에 그 안에서 낯설지 않은 다른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지팡이를 짚으면서 천천히 아시모프의 실험실로 걸어 들어갔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건 "이것도 일종의 재활"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리브는 뒤에서 따라오며, 지휘관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실험실의 대문이 열리자, 뜻밖에 그 안에서 다른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젊은 사람이라 회복이 잘 되는 것 같네요.

교수님?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지휘관과 리브의 치료를 책임지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였다.

히포크라테스의 뒤에는 아시모프가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고, 각종 복잡한 수치와 그래프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소속 부서가 달랐기에, 보통이라면 한곳에 모여서 업무를 볼 일이 없었다.

지휘관의 표정을 보니, 너희를 부른 이유에 대해 눈치챈 것 같네.

맞아. 백야 기체에 배치된 의식의 바다 측정 탐사침이 데이터를 보내왔어.

아시모프가 데이터를 시각화하고 있는데, 이 데이터들 말이야...

여기까지 말한 후, 잠시 멈칫한 히포크라테스의 시선이 지휘관과 리브 사이를 오갔다.

예사롭지 않아.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아.

하지만 백야 기체에 배치된, 의식의 바다 측정 탐사침이 데이터를 전송했어.

이 데이터는 심층 마인드 연결 기술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아시모프가 시각화 처리 중이야.

끝났어.

이때, 스크린 앞에서 고개를 든 아시모프가 스크린을 돌렸다. 그러자 무성한 숲의 조감도가 스크린에 띄워져 있었다.

처음부터 설명해 줄게. 우선 리브의 의식 조각을 되찾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때 당시 리브를 안치한 이후,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세히 설명했었다. 아무리 사소한 부분이라도, 리브의 의식의 바다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휘관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일곱 번째 의식 조각을 찾았었지.

식암 기체로 의식을 전이한 후, 우린 누락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해, 정기적으로 다른 주파수 신호를 사용해 백야 기체를 스캔했어.

맞아. 신호 피드백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약하지만, 확실히 리브의 일부분이야.

하지만, 탐사침이 보내온 데이터를 보면, 정보 전파가 정말 특별해. 뭐랄까...

아시모프는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은 내가 설명해 줄게.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면, 어제 재활센터를 지날 때 네가 몇 명 옆을 지나쳤는지 기억나?

맞아. 자신이 빵 몇 조각을 먹었는지 기억 안 나는 것과 같아.

음, 그걸 기억해? 그럼 널 자세히 연구해 봐야겠네.

인간의 의식은 수집된 모든 정보를 기록하지 않아.

어떤 일은 실제로 경험하거나 상상했지만, 기억에는 큰 흔적을 남기지 않아.

교수 말대로, 이 데이터도 비슷하게 의식에 의해서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하는 부분이야.

피드백 신호의 파형에 대한 분석으로, 이 숲에서 매핑된 의식 조각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어.

아시모프는 스크린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화면의 중심을 확대했다.

그러자 첨탑의 실루엣이 화면 정중앙에 나타났고, 진홍빛 식물이 첨탑을 에워싸고 있었다.

침식이 약하긴 하지만, 무시해서는 안 돼.

그러니 지휘관과 리브가 함께 오염을 제거하고, 조사 및 회수하는 걸 도와줬으면 해.

리브가 걱정돼서 바라봤다. 리브의 의식의 바다는 회복 중이기 때문에, 현재 이런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지휘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네가 뭘 걱정하고 있는지 나도 알아. 우린 언제나 너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어.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이 충분해.

아시모프가 여러분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장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장치"를 가동해 너희들을 강제로 깨울 거야.

현장의 상황이 계속 조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너희들이 직접 "장치"를 사용할 수도 있어.

장치를 사용할 경우, 너희 의식에 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의식 조각은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당신들을 선택한 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이 의식 조각은 잠재의식과 유사해서, 모두 의식의 바다의 언더레이 일부를 이루고 있어요.

너희들이 함께 행동하는 동안 발생하는 데이터 피드백은 심층 마인드 연결 기술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아무래도 이런 의식 샘플은 매우 드무니까.

여기까지 말한 히포크라테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이런 샘플이 더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뭘 좀 여쭤봐도 될까요?

현장의 분위기가 다소 침울해지자, 리브가 먼저 질문했다.

어떤 질문인데?

제가 어떻게 해야 지휘관님과 함께 제 의식 조각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아시모프가 널 위해 전용 잠입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우선은 아시모프를 따라가 조정 받도록 해.

지휘관은 네 조정이 완료된 후, 그때 다시 잠입하게 될 거야.

네.

지휘관님, 잠시 후에 만나요.

지휘관을 향해 손을 흔든 리브는 아시모프를 따라 잠입에 사용될 선실의 근처로 이동했다. 지휘관도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억제당하며 의자에 앉게 됐다.

리브는 자신의 의식 조각 속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될 거야.

의식의 형상일 수도 있고, 성격일 수도 있어. 구체적인 건 이 의식 조각이 리브의 어느 부분인지를 봐야 해.

어떻게 보면, 이것도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그래서 리브를 보살피는 일을 당신에게 부탁할게.

히포크라테스가 지휘관의 어깨를 토닥였다.

무중력 상태가 사라지면서, 시력이 회복됐다. 거친 나무껍질이 등을 받쳤고, 흙과 풀의 싱그러움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햇볕이 따스하고 부드럽게 쓰다듬듯, 나무들의 사이로 스며들면서 얼굴에 비쳤다. 그리고 맑은 새소리가 숲 사이 빈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손에서 묵직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통통한 다람쥐 한 마리가 손등에 엎드려 있었다.

시선의 교란이 보이지 않는 타악기의 현을 튕긴 듯, 숲의 평온함을 깨뜨렸다.

다람쥐는 동그란 털 뭉치가 되어, 지휘관의 손등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몸을 일으킨 뒤, 한동안 혼란스러운 사고를 정리했다.

주위의 장면은 아시모프가 보여준 이미지와 똑같았다. 하지만 함께 잠입한 리브는 곁에 없었다.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서 너희들이 잠입하는 위치엔 어느 정도 편차가 발생할 수도 있어.

실험실에서의 대화를 잘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조사를 진행하기 전, 흩어지게 된 리브와의 합류가 먼저 일 것 같았다.

혼란스러운 그림을 보게 되면, 본능적으로 가장 익숙한 것을 찾게 되는 것과 같이, 지휘관과 구조체 사이에서도 어떠한 이끌림이 존재해.

눈을 감고, 그 알 수 없는 "이끌림"을 자세히 느껴보려 했다. 하지만 단편적인 메아리만 있을 뿐,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빛이 비치지 않는 적막한 심해에서 더듬거리며 찾는 것만 같았다. 상대방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정보가 부족해 정확한 방향을 알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희미한 빛이 어둠에 구멍을 뚫었다.

눈앞에 나타난 건 나비 한 마리였다. 두 쌍의 날개 중간에 있는 검은 줄무늬는 마치 형광이 도는 초록색을 자른 것 같았다.

나비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비는 지휘관을 두 바퀴 맴돈 뒤,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는 듯, 작은 루멘을 남겼다.

이 "익숙함"에 이끌린 지휘관은 나비의 궤적을 따라갔다.

드넓은 숲속을 누비고,

똑같은 경치를 수없이 지나치면서,

전방의 길은 조금씩 더 음산해져만 갔다. 오직 나비의 형광만이 길을 안내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전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누군가가 숲속의 잡초를 밟으며, 지휘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리브

지휘관님?

익숙한 목소리가 수풀 뒤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잔디 밟는 소리가 급해지더니, 나무 그늘에서 리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기억과 조금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소녀의 아름다운 몸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검은색 옷차림은 장엄하고 정숙했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옅은 초록빛의 날개는 조심하지 않으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이 몽환적인 민첩함을 띠고 있었다.

지, 지휘관님. 너무 뚫어져라 보지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중했던 탓인지, 소녀는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눈앞에 예상 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아직 얼떨떨하던 그때, 지휘관을 안내했던 나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 있는 리브의 옷차림이 잠입 전과 확연히 달랐다.

제가 깨어났을 땐 이미 이런 상태였어요. 어떻게 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브 또한 자신을 살펴봤고, 심지어 등 뒤에 있는 나비 날개를 만져보기까지 했었다.

아시모프 님도 비슷한 말을 했었어요.

평소 리브의 옷차림은 주로 흰색과 연분홍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런 배색은 확실히 흔치 않았다.

지휘관님은 어떠신가요?

지휘관님.

수줍어하면서도 리브의 표정엔 기쁨의 비중이 더 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놀라움도 존재했다.

지휘관님도 저와 같은 영향을 받았는지 물어본 건데, 그래도 감사해요.

네?

리브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휘관님도 저와 같은 영향을 받았는지 물어본 건데, 그래도 감사해요.

지휘관님은 제 원래 모습이 더 좋으신 건가요? 알겠어요.

전 지휘관님도 저와 같은 영향을 받았는지 물어보려고 했던 거예요.

현실의 고통은 의식의 바다에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방면에서는…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휘관의 의혹스러운 표정을 보자, 리브는 세 번 손뼉을 쳤다.

고요한 숲속에서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한 무리의 다람쥐들이 사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풀숲 사이, 수관 위, 암석 뒤까지 다람쥐들의 형체가 어디서 건 존재했다.

새까맣고 작은 눈이 계속 지휘관과 리브를 번갈아 보며, 왜 이곳에 우리 둘이 나타난 건지 당혹스러워하는 듯했다.

괜찮아요.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리브의 말에 다람쥐들이 은신처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반응하기도 전에 지휘관과 리브는 따뜻한 "털 뭉치" 더미에 파묻혔다. 다람쥐들은 다정하게 볼과 손바닥을 비비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근감을 표현했다.

리브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손뼉을 세 번 쳐보았지만, 아무것도 불러올 수 없었다.

리브의 온화한 성격은 평소에도 동물을 매료시켰지만, 손뼉을 친다고 이렇게 많은 다람쥐를 불러들인다는 건, "동물과 친화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손의 흙을 털어내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다람쥐들이 나타났어요.

손뼉을 치는 리듬과 횟수를 바꿔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마법 소녀까지...

리브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어, 어쨌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불러오는 건 다람쥐뿐이었어요.

리브는 작은 "털 뭉치"를 능숙하게 쓰다듬으며, 다른 곳을 쳐다봤다.

어깨에서 실수로 떨어져 지휘관 상의 주머니에 매달린 채, 짧은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다람쥐 한 마리를 바닥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제가 깨어난 후에...

리브의 간결한 설명에서 잠입 시간은 서로 비슷했지만, 리브와 지휘관의 잠입 위치는 대략 1km 정도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식의 바다의 영향 때문인지, 등에는 백야 기체와 유사한 날개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날개는 리브에게 비행할 수 있는 기능은 주지 않았다.

공중에서 숲의 중앙으로 날아간다는 생각은 당분간 접어야 할 것 같다.

리브의 설명이 끝난 후, 지휘관도 자신이 겪은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나비 말인가요? 제가 깨어났을 땐, 지휘관님이 말씀한 나비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정밀 스캔을 진행할까요?

그 나비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걸 쫓는 것보다, 숲의 중앙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네, 지형 스캔과 경로 분석 진행 중입니다.

음...

범위 내에 장애물이 너무 많아서, 숲 중앙까지 가는 경로를 연산할 수 없어요.

이별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눈치챈 듯, 몸에 매달려 있던 다람쥐들이 우르르 철수하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는 다람쥐들이 남긴 견과류, 열매, 씨앗, 꽃잎 등의 다양한 선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에 떠난 다람쥐 한 마리가 리브를 향해 작은 발을 흔든 후, 암석의 틈으로 숨어 들어갔다.

리브는 미소를 지으며, 다람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다, 다른 경로를 연산하고 있어요.

리브의 정찰 능력을 의지하면, 아무리 복잡한 지형이라도 문제없이 헤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숲의 복잡함을 과소평가했다.

어쩌면 리브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끝없는 상상력 때문일 수도 있었다.

출발한 후 얼마 지나서 사건이 일어났다.

숲속의 길은 지나가기 쉽지 않았고, 두꺼운 신발 밑창이 뾰족한 돌로부터 발바닥을 보호했다. 하지만 미끄러운 이끼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주위는 온통 같은 색깔, 같은 나무, 같은 잡초 그리고 같은 야생화뿐이었다.

사람이 찾아온 흔적은 없었으며, 벌레의 울음소리도 먼 것처럼 느껴졌다.

방향 감각이 완전히 흐트러지게 되면서, 리브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앞서가던 리브가 걸음을 멈췄다.

어?

이 다리는 제가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달라요.

리브는 다소 의아해하며, 말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길을 막는 암석을 넘은 뒤, 땅에서 시선을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말하려고 했던 말을 내뱉기도 전에 잊어버리게 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폭이 20미터에 달하는 깊은 골짜기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깊은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이 특별한 다리는 "원반"들을 엮어 만든 다리로, 수정 같은 윤기와 알록달록한 빛을 내뿜었다.

그 "다리"의 주위엔 동일한 "원반"들이 공중에 떠다니며,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환경 속에서 "원반"들은 가로등처럼,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원반"의 밑부분에는 치마끈 같은 반투명한 촉수들이 늘어져 있었다.

시선을 느낀 듯, "원반"이 뿌리 몇 가닥을 들어, 이쪽을 향해 흔들었다.

공중에 떠다니는 해파리에게 인사를 받은 셈이었다.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해파리들이 적대시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이상한 일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휘관도 잊고 있었다.

의식의 바다와 현실의 차이는 시간의 흐름뿐만이 아니었다.

리브가 손뼉을 치면, 장난스러운 다람쥐가 수없이 달려들 듯, 초현실적인 광경이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 "해파리 다리"가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지?

지휘관의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깊은 골짜기의 바닥에서 갑자기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다리를 구성하는 일부 해파리가 휩쓸려 흩어지게 됐다. 하지만, 곧 다른 해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연의 선물을 받자, 다리도 더욱 윤기나게 변했다.

제 생각에는 어쩌면 어렸을 때 들었던 "오작교"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리브의 얼굴에 확실치 않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오작교, 그건 구룡의 전설에 나오는 다리로, 특정 날짜에 까치가 몸을 이어서 붙여 만든 다리다.

눈앞의 "해파리 다리"도 같은 방법으로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공중에서 떠 있고 물에서 헤엄치는 차이일 뿐이었다.

네. 동화에 관한 기억일 수도 있어요.

어떤 일은 실제로 경험하거나 상상만하고, 기억에는 큰 흔적을 남기지 않아.

교수 말대로, 이 데이터도 이와 비슷하게 의식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거부"되는 부분이야.

히포크라테스와 아시모프가 이 조각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특징으로 봐선 부합하긴 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가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휘관님은 제가 아이 같다고 생각하실까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어린 시절을 느껴보는 건 낭만적인 일이었다.

온화하고 말수는 적지만, 항상 여러 방면에서 모두를 돌봐주는

리브는 성숙했다.

……

지휘관의 대답을 들은 리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지휘관님. 지금 다시 다른 경로를 찾을까요?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제 생각엔 신발부터 벗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리브는 고개를 숙여 어느 정도 살상력이 있는 하이힐 굽을 봤다.

의견을 하나로 모은 뒤, 행동을 시작했다. 반투명한 해파리의 갓을 밟자, 발밑에서 매끄럽고 탄력 있는 감촉이 전해져 왔다.

중심을 낮추고, 이 리듬을 유지하기만 하면...

지휘관님, 어서 돌아오세요!

리브가 소리를 내며 지휘관의 왼손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발아래 해파리의 갓이 내려갔다가, 갑자기 움츠러든 뒤 위로 솟아올랐다.

그렇게 공중에 뜨게 된 지휘관과 리브는 분홍빛의 눈 없는 해파리와 마주치게 됐다.

떨어질 때의 무중력이 엄습할 무렵, 앞에 있던 해파리가 치마끈 같은 촉수를 신속하게 내밀어 리브와 지휘관을 감쌌다.

둘의 무게는 해파리의 적재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구멍 뚫린 낙하산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해파리가 이 상황을 발견하고, 촉수로 리브와 지휘관을 감쌌다. 그 두 해파리의 힘으로 리브와 지휘관은 무사히 떠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들게 떠오른 대신, 리브와 지휘관은 더 단단히 감겨버리게 됐다.

등에 비단처럼 부드러운 무언가를 느꼈다.

지휘관님, 제 날개가 깔렸어요.

등 뒤에서 리브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는데, 한마디 한마디에 온 힘을 다한 것 같았다. 둘은 등을 맞대고 꽉 묶여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뒤돌아볼 수도 없으니, 리브의 표정도 알 수가 없었다.

왠지 증기가 들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괜, 괜찮아요. 그래도 지금 이런 방식이 협곡을 건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리브의 말대로, 분홍빛 해파리들은 협력하여 두 사람을 깊은 협곡의 건너편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키며, 해파리가 느릿느릿 자신을 데리고 건너편으로 떠돌도록 내버려 두었다.

네. 지금 이런 방법으로 협곡을 건너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밟았던 해파리가 촉수로 이끼 한 조각을 감아 이슬을 묻힌 다음, 자신의 갓에 있는 흙을 닦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위에 있던 흙을 깨끗이 닦아 내자, 해파리가 한층 더 반짝거리게 된 것 같았다.

해파리들은 다리를 놓으려고 모인 것이 아니라, 기대어 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처음에 다리로 오해했던 해파리는 확실히 조금 더 탁해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기복이 있는 게 얕은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일종의 "잠투정"이었나 보네요.

별다른 위기가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리브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시야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더니, 발밑에 단단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러면서 몸의 속박도 풀려나게 됐다.

뒤돌아봤을 때, 해파리는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리브의 구겨진 날개를 바르게 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해파리는 고집스럽게 제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드러운 촉수는 당연하게도 구겨진 것을 펼 수 없었다.

네?! 왜 지휘관님도...

고개를 들어 아직도 헛수고하는 해파리를 봤다.

그, 그럼 부탁드릴게요.

해파리의 부드러운 빛 아래서 얇은 베일 같은 날개를 조금씩 펴주었다.

계속 공중에 떠 있는 해파리와 손에서 조금씩 제 모습을 되찾는 날개를 보며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현실이 아니니, 제약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중력의 구속에서 벗어나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듯이 구름을 돌파했다. 그리고 거리 제약을 깨고 언제 어디서나 통신하고, 자연의 위엄을 파악해, 하늘의 것이었던 천둥 번개를 다루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그럼, 지휘관님은... 이곳의 광경도 실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고개를 들자, 해파리의 다채로운 빛 속에서 주위의 광경은 꿈처럼 환상적이었다.

"이런 환상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광경을 동경하는 사람만 있다면, 분명 실제가 되는 날이 올 거야."

"현실적인 장애로 인해 이 환상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린 같은 동경을 가지고 있는 다음 꿈꾸는 자에게 맡겨줄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서 이 동경과 환상이 마음에서 지워지는 건 아니야. 완벽한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그 완벽을 향해 다가갈 수 있을 거야."

나비 날개의 마지막 주름을 펴줬다. 여전히 날 수 없고, 옅은 흔적이 남아 있지만, 마침내 날개는 펼쳐진 모습을 되찾았다.

산들바람이 나뭇가지 끝을 스치며, 가볍게 소리를 내는 게 숲이 똑같은 말을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