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표지판은 거의 몇 미터마다 하나씩 나타났고, 그 위의 내용도 계속 바뀌었다.
'여기서는 좌회전을 해야 해. 절대 방향이 틀려선 안 돼.'
빨간 신호일 때는 멈추고, 녹색 신호일 때는 건너야 해... 바로 지금이야. 달려!'
'직진, 직진, 직진! 멈추지 마!'
과정 중에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힌트가 있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걸 환영해.'
2m 높이의 담장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청색 벽돌과 기와가 담장 위로 쌓여 있었다.
문은 흔히 볼 수 있는 철제문이 아니고,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두 짝의 원목 문이었다.
보니까 저희가 도착을 한 것 같네요.
예상과는 다르게 구룡 스타일의 집이네요.
오늘은 구룡의 전통 기념일 중 하나니, 이런 배치가 이상한 건 아닙니다.
이런 부적도 구룡의 전통인가요?
리브는 문 위에 수묵으로 그린 그림을 가리켰다. 필력이 간결하고 힘차고, 감정도 잘 표현되어 있었으며, 화풍은 기교에 국한되지 않아서 생동감이 넘쳤다.
네?
예전에 나나미한테서 자기의 초상화를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녀의 그림체 정도는 알고 있어.
저란... 말입니까?
…
그럼 남은 이분은 지휘관님이겠죠?
알아보기가 좀 어렵네요.
야옹~~
호호가 손바닥을 문질렀다.
야오옹!
호호가 가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공중에 떠서 커다란 눈으로 초상화를 조준했더니, 붉은빛으로 그림을 스캔했다.
'삐삐'
기계음과 함께 문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삐걱삐걱'하는 분필로 칠판 긁는 소리가 났다.
구룡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정원이 눈앞엔 펼쳐졌다.
정원은 널찍이 탁 트여 있었다. 주변에는 서로 독립된 집이 있었고, 그 사이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쌓아 올린 청색 돌과 녹색 기와가 장관을 이루었고, 정원 가운데에는 거대한 홰나무가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대리석 탁자가 유유히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 놓여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레이 레이븐의 장비와... 빗자루였다?
우리의 장비에요.
야옹~ 야옹~
호호,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거야?
야옹~ 야옹~
호호의 재촉에 모두 나무로 된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정원에 들어선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삐삐삐삐!
수많은 회색 구체가 구석, 벽돌 그리고 나무 그늘에서 쏟아져 나왔고, 정원의 절반 정도의 공간을 차지했다.
침식체인가요?
아니에요. 저것들에서 퍼니싱 반응이 나오지 않아요.
정원 밖에 레이더 신호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저들은 여기에만 나타나는 것 같아요.
루시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으로는 칼을 움켜쥔 채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수량이 계속 늘고는 있지만, 그들은 공격 의도가 없는 것 같아요.
이것도 나나미의 선물일까요?
아니에요. 주위를 보세요.
담장이... 노화되고 있어요.
저 나무도 점점 시들어 가고 있어요. 구체들이 많이 나타날수록 더 빨리 시들 것 같아요.
안전을 위해 우선 이곳을 벗어나죠.
… 이미 봉쇄된 건가요?
안개에 싸여있던 문은 열려있었지만, 만져보니 철벽과 같아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회색 구체가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그레이 레이븐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야옹!
좁아지는 활동 범위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호호는 그 구체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손발이 없는 호호는 자기의 가장 단단한 안면부 아머로 부딪혔고, 주변의 구체는 차례대로 사라졌다.
호호의 활약으로 회색 구체가 줄어들었고, 주위의 노화 현상도 점점 느려졌으며, 급기야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오래 쌓인 먼지를 깨끗이 청소한 것 같았다.
눈앞의 광경을 봤으니, 나나미가 말한 시련은 어떤 기준으로 준비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대청소요?
대청소는 구룡의 새해맞이는 전통 풍습 중 하나로, 새해 전에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다.
작년의 고초를 겪은 뒤, 취미로 찾아본 자료가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대청소... 이 구체들은 먼지를 의미하는 걸까요?
그럼 임무 내용이 명확해졌어요. 같이 이곳을 깨끗이 청소해 봐요.
루시아, 리브 그리고 리는 '전투'에 가입했다.
옆에 자신의 동반 총기가 없었지만, 한쪽 구석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 빗자루 한 개가 보였다.
빗자루를 들어 대청소 '전장'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