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썰렁했다. 하지만 구석에 있는 디지털 스크린의 불빛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디지털 스크린 앞으로 책상 앞에 엎드린 아시모프가 보인다. 그 옆에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와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샌드위치가 놓여있다.
구시대 동양 달력에 의하면 지금이 "설날"이었다.
아시모프의 커다란 호흡 소리가 아니었다면 적막한 분위기와 연구실의 모습은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아시모프.
아시모프, 일어나 보세요.
내가 왜...? 여기서 잠든 거지?
주무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이번 모의 작전 구역에서 획득한 데이터 수집 기록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레이 레이브 소대 멤버들은 아시모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미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는 걸 바라보았다. 아시모프가 잠시 조용해진 뒤에야 그들은 고개를 들었다.
이건 몇 번째 실험 데이터지? 이미 "수행 지원 유닛" 사용 방법을 완전히 익힌 건가? 아니면...
제47차 실험 데이터입니다. 이 기계의 사용 방법은 거의 파악한 상태입니다.
아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속성 적응성에 대해서는 저와 루시아의 전투 데이터를 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수행 지원 유닛"이라는 이름은 너무 긴데요.
기계의 기능에 따라 "보조기"라고 불러도 돼.
보조기요? 꽤 친근하게 들리네요. 나름 귀, 귀엽기도 하고요.
내가 얼마나 잔 거지...
아시모프는 스크린을 힐끗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75분. 전에 수집한 데이터와 작전 웨이브 예측을 가지고 분석한다면 이 시간 안에 적어도 4-5회 정도 모의 작전을 완료했어야 할 텐데.
수집 효율을 위해 작전 습관을 바꾼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 난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테스트 데이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시모프, 걱정하지 마세요. 지휘관님도 수집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너도 참여했군. [player name]... 그런데 테스트 항목 중 지휘관도 참여해야 하는 게 있었나?
아시모프는 의자를 돌리더니 두 손을 교차해 턱을 괴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인사할 필요 없어.
무의미한 부분에 주의를 돌리지 말라고!
아무튼 됐어. 여기까지 와줬으니 내가 찾아갈 필요는 없겠군. 다들 모인 자리에서 함께 설명하도록 하지.
아시모프는 한숨을 쉬며 사색에 잠겼다. 과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아마추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먼저 설명하지. 자네 몰래 자네 대원들 데리고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게 아니야... 이번 연구의 목적은 일반적인 드론을 개발하는 게 아니니까.
이 기계는 링크를 통해 의식의 바다에 접속할 거야. 구조체의 의식 파동을 판단해 작동하게 돼.
하지만 구조체의 통제를 온전히 받진 않아. 기계는 독립적인 AI 모듈을 가지고 있어. 구조체 소대가 작전을 함에 있어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어.
파트너... 요? 단순 병기가 아니었나요?
병기라면 전투 능력을 더 중요시했겠지만 이 기계는 달라. "수행 지원 유닛"이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킬 수 있는지 검증하는 게 이번 테스트의 목적이야. 그래서 생물과 비슷한 외형으로 디자인된 거고.
이런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도움이 될 거예요. 생물은... 작은 동물들은 인간들의 파트너잖아요! 곁에만 있어도 심적으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동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구룡의 고서에서 나오는 산신령이나 괴수라면 모를까.
이번 모델은 특별히 예술 협회의 장인 레오니가 디자인과 제작을 맡았어. 그녀의 개인적인 취향이 많이 담긴 기계지. 불만 있으면 직접 가서 말하도록.
아니요. 외형에는 딱히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번 "수행 지원 유닛"은 구조체에 협조하여 인류의 인지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테스트에 투입됐어... 안정감, 소속감, 보호 욕구.... 모두 효과적으로 의식의 바다를 안정시킬 수 있지.
역할은 같지. 하지만 모든 소대에 자네처럼 유능한 지휘관이 있는 게 아니라서... 게다가 지휘관의 육성 비용과 소모율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더 적합한 대체방안을 찾을 수밖에.
그러니 지휘관이 참여한 실험 데이터는 실험 효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공용 장비로 테스트를 진행할 땐 여러 모델의 구조체에 모두 적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중 정원의 모의 장치만으론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으로 "테스트 신청"을 제출했어. 시간을 보면 아마...
사용자의 데이터 추측을 조정해서인지 통신 화면에 불꽃 이펙트 효과가 나타나더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귀가 눈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아시모프는 차갑게 무시하고 바로 통신에 접속했다.
통신에 접속합니다.
잠시 방해 좀 할게요——
여러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아시모프의 요청이라 저도 어쩔 수 없이 야근할 수밖에 없어요.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과학자는 제가 대놓고 이렇게 말해도 꿈쩍도 안 하시겠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인적인으로 휴가라는 개념은 과학 연구 분야에 존재해선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
네, 네——그레이 레이븐 소대 여러분, 부디 연구에 협조해 주세요. 그리고 제 말 듣지 않으실 거라는 걸 알지만... 아시모프, 가끔씩 쉬시면서 하시고요.
세리카, 이제 내 차롄가? 그레이 레이븐 소대의 각 대원들, 수고하도록.
오늘 아침 일찍 통신해서 토론한 결과, 그리고 아시모프의 요청에 따라 [player name], 이번엔 자네 단독 투입하기로 했다.
당연히 아니지. 말 그대로 혼자 가야 한다는 거야.
간단히 말하면——아시모프, 역시 자네가 [player name]에게 설명하도록 해. 자네 요청에 따라 결정된 일이니 구체적인 임무 내용에 대해서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수행 지원 유닛" 연구 지지의 수요에 따라 난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 그리고 내가 가장 원하지만 얻기 힘든 건 바로 구형 모델 기체에 대한 데이터야.
구형 모델이요? 제가 알기론 그런 모델들은 이미 도태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우린 "엄격"한 연구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단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그래. 전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망각자들과 교섭을 잘해 준 덕분에 사이가 더 악화되진 않았다.
아직 아니지. 안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아. 모든 건 그레이 레이븐이 제출한 임무 기록을 기준으로 진행될거야.
침묵을 유지하는 건 현명한 행동이지. 자네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난 이 점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어. 공중 정원의 결정권자 중 한 명으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엘리트 대표를 파견하여 다른 세력과 그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지 않을 거야--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지. 이 점은 아시모프가 설명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군.
내 요구는 아주 간단해. 망각자가 테스트한 뒤 데이터를 다시 전송하기만 하면 돼.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거든. 먼저 파견한 두 팀의 테스트 요원들 말고도... 지상의 기타 인원들까지.
데이터를 획득하는 구체적인 실행 수단으로는...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상대가 협력에 동의했다는 거야. 우리가 충분한 보급 물자와 회수 협의를 제공했거든. 겨울철의 보급은 아주 유혹적이니까. 적어도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지.
나쁜 소식은 지상으로 단 한 명만 파견할 수 있어. 말 그대로야. 단 한 사람이여야 해. 구조체도 따를 수 없고.
그래. 그래서 우린 망각자들과 접촉하고 데이터 회수를 맡을 인원이 필요해. 물론 [player name](이)가 이 임무의 적임자지.
이제 곧 연말이라 망각자들의 진영 상태도 평소와 같진 않아. 하지만 망각자들은 최선을 다해 [player name]의 신변을 보호할 거야.
잠깐... 그러니까... 지휘관님 혼자 이 임무를 수행하시겠다는 건가요?
너희들은 남아서 데이터 테스트를 계속해야 해. 하산 쪽은 너희들이 아마 나보다 더 잘 알겠지.
계획에 따라 이번 작전에는 전문적인 운송 장비가 배치될 거고 실시간 추적이 진행된다. 그리고 도중에 나타나는 초소에서 물자 교환을 진행하게 될 거고.
사전 통신 및 사후 접선을 맡은 소대는 이미 전부 배치되어 있어 자네를 해당 구역의 보급 수송팀에 잠입시켜 임무에 투입할 거야.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player name], 임무 준비 시간은 2시간, 2시간 뒤 함교에서 집합한다.
그래. 회의는 여기서 끝이다. 자네는 얼른 가서 준비부터 해. 그레이 레이븐 소대는 남아 테스트를 계속하고.
지휘관님... 조심하세요!
아시모프는 잠시 눈을 붙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더 헝클였다. 수면 부족으로 꽤 짜증스러운 상태인 듯했다.
그리고 [player name], 몸 건강히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