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낯선 이에게:
우편함에서 이 낯선 편지를 보게 되면 조금은 당황스럽겠죠.
업무가 바쁘셔서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 그냥 편지를 버려주세요.
휴식 시간인데다, 심심하고, 할 일도 없다면 이 편지를 두 번째 페이지로 넘겨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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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개인 우편함에 낯선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기밀문서 외에는 펜과 편지지로 무언가를 적지 않는다.
자원 낭비이기도 하고 즉시 전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열 블루색 잉크, 부드럽고 매끈한 편지지, 수려한 필기체와 우드 톤에 파우더리한 느낌이 섞인 은은한 향기...
그러니 이 편지는 기밀문서 같은 게 아니다.
정성을 쏟아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편지 같았다.
"편지"라는 개념은 오늘날 통신으로 대체되어 이런 정식적인 편지는 지난 세기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누가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편지를 보낸 걸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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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는 건 이 편지는 아직 휴지통의 구겨진 종이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악의적인 장난 같은 건 절대 아닙니다.
사실은... "펜팔"을 찾고 있어요.
당신이 "펜팔"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얼마 전 공공 기초 교육 센터의 도서관에 있는 책에서 이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펜팔이란 편지로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하네요.
아주 오래전, 디지털 시대가 다가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장거리 소통을 했다죠.
당신은 이런 연락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가성비가 좋지 않으며 지루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런 방식은, 정말...
단어를 몇 번이나 썼던 지웠던 걸 보니 발신자가 단어 선택에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낭만.
네, 저는 이런 방식이 아주 로맨틱하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에는 없을 낭만이죠.
모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궁극의 효율을 추구하는 이런 시대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펜으로 자신의 감정을 적어 내려가는 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에요.
가끔은 글이 언어보다 본인의 뜻을 더 잘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에 있든 예의, 교양... 이런 것들이 제 어깨를 눌러 숨조차 쉴 수 없게 하죠.
글을 써 내려갈 때만이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진정한 제가 될 수 있거든요.
제가 말로는 표현 못하는 감정들, 그리고 쑥스러워서 안 하는 말들을 이제는 글로 대신 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을 필요도 없고, 부적절한 행동에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어요.
편지지에서 뛰어다니는 글들이 바로 진정한 저예요. 편지에는 무슨 말이든 적어 내려갈 수 있거든요.
너무 제 할 말만 한 것 같네요. 이런 사소한 일로 지나치게 흥분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려요.
아직도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멀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여기까지 읽으셨으니 짐작이 갈 거예요.
낯선 당신이 제 펜팔이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이런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점점 너무 인위적이고 어색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에덴의 어느 낯선 주소, 낯선 이에게 보낼 수는 없을까 생각했어요.
우리는 서로 정체를 밝힐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제일 간단하고 제일 원시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천천히 알아갔으면 해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다면 제 이름은 아이리스예요. 눈치채셨듯이 이건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에요.
저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하죠. 처음부터 낯선 이에게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다음 편지에서는 서로의 취미를 알려주고 좋아하는 일을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편지와 함께 새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준비했으니 답장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것 때문에 해야 할 일에 영향을 끼쳤다면 신경 쓰지 마세요. 꼭 답장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제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진심을 담은,
아이리스
편지 봉투에는 새 봉투와 편지지가 접혀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 책상 앞에 앉았다.
공중 정원의 다른 한 쪽.
소녀는 편지를 손에 꼭 쥐고 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진짜로 답장이 올 줄이야...
그녀는 갑자기 침대에 누워 머리를 베개에 파묻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손에 쥔 편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편지를 보낼 때 답장을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쑥스러울 정도로 기뻤다.
...후.
심호흡을 하고 세레나는 천천히 편지 봉투를 뜯었지만 역시나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한참이나 마음을 가다듬고서야 그녀는 눈을 가리고 손 틈새로 침대 위에 놓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아이리스...'
'안녕하세요. 편지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player name]입니다...'
그녀는 편지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소리 내 읽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편지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player name].
온화한 미소가 그녀 얼굴에 활짝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