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아·만가·그중 하나
>금일 저녁부터 내일 낮까지, 공중 정원 일부 구역의 기상 제어 시스템이 강우 모드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외출 시 우산을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지휘관은 마지막 결재 서류를 치우며 뻐근한 손목을 돌렸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자, 시선은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먹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듯 낮게 깔려있었고, 평소보다 이르게 어둠을 몰고 오고 있었다.
그때, 창가 횃대에서 금속 깃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랑 네티아 말이야. 둘 다 워크홀릭인 것 같아, 윤축과 바퀴통처럼, 한번 돌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잖아. 나도 드디어 경험해 보는구나.
창문을 닫고, 커피도 내리고, 조명까지 딱 맞춰준 게 누구게? 하, 보조기 지원 업무 시험 따위, 난 공부를 안 해도 프리패스라니까.
오, 우와~ 넌 참 친절하네, 보조기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는 인간은 진짜 드문데. 고맙긴, 별거 아니야!
잠깐, 이참에 시스템을 해킹해서 추가해 놓아야겠어.
전용 횃대까지 마련해 준 정성을 봐서, 시간 날 때마다 놀아줄게! 어차피 네티아는 회의 때마다 날 데려가지도 않거든. 그 지루한 회의는 언제 끝나려나...
야, 내가 어딜 봐서 말이 많다는 거야? 이게 바로 "동행감"인 거라고!
혹시 그 이야기를 알아? 어떤 현자가 제자더러 빈방을 가득 채우라고 한 그 이야기 말이야.
내가 봤을 때, 네티아가 상대하는 그 관료 놈들을 방에 몰아넣고 회의를 진행하면, 그 인간들 입에서 나오는 헛소리랑 탁상공론으로 방이 꽉 차다 못해 바로 터질걸?
불쌍한 네티아는 그 똑똑한 머리로 무장하고 혼자서 호랑이 굴에 들어간 셈이지. 덕분에 난 이렇게 농땡이 치는 거고.
주위를 둘러보니 스크린과 산더미처럼 쌓인 데이터 기억 장치뿐이었다. 이 평범한 집행 부대 휴게실에 몰리간이 좋아할 만한 오락거리라곤 없어 보였다.
넌 기계 까마귀가 아니니, 기계 까마귀의 낙을 알지 못할 거야.
감히 네티아 밑에 있는 날 스카우트하려고 하다니, 역시 배짱 한번 두둑하네!
이거 완전 네티아 취향인데? 네티아가 이걸 빌미로 너한테 뭘 할지 생각해 봐.
"쾅!"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정적을 갈랐고, 그와 동시에,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발성 장치를 제어 당한 듯, 몰리간의 말이 뚝 끊겼다.
몰리간의 눈에서 빛나던 파란 불빛이 갑자기 꺼졌고, 곧이어 눈부신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 빛은 마치 삼도천 위를 떠도는 배의 등불처럼 희미하고 섬뜩했다.
몰리간이 날개를 활짝 펴자, 청금석 빛깔의 깃털이 차가운 광택을 뿜어냈고, 이내 부리를 살짝 벌려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음성 메시지 1845, 지연 활성화. 우선순위: 최고. 재생 시작.
지휘관은 이상 징후를 감지하자마자 반사적으로 권총에 손을 올렸고, 시선을 몰리간에게 고정한 채, 단말기의 녹음 기능을 켰다.
이 메시지를 듣고 계실 때쯤이면, 저는 아마 네티아 님의 질문에 더 이상 답할 수 없는 상태일 것입니다.
이는 제가 생존 의지를 잃었다는 뜻이고, 이 신분으로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저는 과학 이사회 지원 기계 실험실의 연구원 리노르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이름을 걸고 연구팀장 월든 교수를 고발합니다. 월든 교수는 CUB-LN-129 실험 샘플에 규정을 위반한 위험 데이터를 은닉했습니다.
이번 샘플은 이미 입고 등록을 마친 상태이며, 은닉된 데이터는 적 색출 알고리즘을 극단적으로 개조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데이터는 아직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의와 충언을 모두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검은 새여, 세상의 비바람이 당신을 덮쳐올 때, 부디 혼자 울지 마세요.
희미하지만 또렷한 소리가 울렸다. 탄식처럼 흘러나오던 여성의 목소리는 빗방울이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적막 속에서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며 유리창 위에 구불구불한 물길을 그려냈다.
몰리간은 넋이 나간 듯 제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방금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니야!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방금 내 기체를 제어할 수 없었다고, 로그도 안 남았어... 네티아한테 알려야...
검은 날개의 보조기가 혼비백산한 채 날아오더니, 지휘관의 어깨에 내려앉아 겁에 질린 듯 몸을 잔뜩 웅크렸다.
지휘관은 곧바로 인트라넷에서 "레노아"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몇 년 전 실험 규정 위반으로 과학 이사회로부터 파면되었다는 공문과 그 후 자살했다는 기록이 모니터에 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자의 고발, 그것도 안전 총감의 보조기를 해킹할 정도의 실력자가 남긴 메시지라니... 이 사건은 과학 이사회와 네티아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었으며, 지휘관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문을 열었더니, 붉은 수정 같은 눈동자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어머?
검푸른 머리의 여인이 칠흑 같은 옷을 걸치고, 검은 장우산을 짚은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살짝 놀란 듯한 기색이 스치더니,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서두르지 마, 레이븐. 내가 왔잖아.
방금 노크하려던 네티아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추더니, 자연스럽게 내려와 지휘관의 옷깃을 매만졌다.
그제야 지휘관은 열린 문 틈새로 둘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눈치챘다. 비 냄새, 그리고 네티아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감돌아,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몰리간에 대해서는 나도 너만큼 알고 있지. 안전 총감이 아무 준비도 없이 자기 까마귀를 날려 보냈을 리는 없잖아.
익숙한 이름, 그리고 숨겨진 고발장이라...
네티아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으며, 마치 어딘가의 영혼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카헤티 사건 이후, 오랫동안 파묻혀있던 또 한 건의 미제 사건이 우리 앞에 나타났네.
네티아는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지휘관의 목덜미로 잔뜩 움츠러든 몰리간을 받아 갔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당연하지. 게다가 너라면 안전 총감의 특별 보상도 받을 수 있어. 직접 원하는 보상을 골라봐.
안전 총감으로서 약속할게, 헛걸음하게 만들진 않을 거야.
함께 신고하러 가줘서 고마워. 나의 증인, 그리고 나의... 동행자.
네티아가 손을 내밀었다. 마치 밤과 미지의 세계로 초대하며, 춤을 청하는 것만 같았다.
회의실
과학 이사회
과학 이사회 회의실
우선 두 분의 신속한 처리에 감사드립니다. 네티아 총감님,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현재 총감님이 대표하시는 고발인 측과 피고발인인 월든 교수님 양측 모두 진술을 마치셨습니까?
오는 길에 네티아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동안, 그녀는 단말기 위에서 손가락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상황 보고와 소환, 그리고 회의 소집까지 마쳤다.
네티아는 수납 형태로 접힌 몰리간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 탁자 맞은편의 남자는 단말기의 시간을 힐끗 보더니, 미안한 듯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할까 봐서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 샘플들은 입고 전에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습니다.
샘플의 양이 워낙 많은 데다 보관된 실험 구역은 지난 습격으로 파손되어 봉쇄된 상태입니다. 저희의 한정된 인력과 물자를 이런 일에 낭비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물론 제 실험실이 세계 정부의 여러 프로젝트와 협력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여러분의 신중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양측이 합의했다면, 본 사건의 조사와 처리는 감사원에서 전권을 넘겨받아 즉시 착수하겠습니다.
지휘관의 옆에 앉아 있던 여성 구조체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고, 마치 지팡이에서 뽑아 든 서슬 퍼런 칼날과도 같았다.
과학 이사회의 내부 고발에 대한 조사와 증거 수집은 안전 총감의 책임 범위에 속하잖아, 어째서 날 제외하는 거지?
제보의 음성 분석 결과는 일치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수년간 지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들의 자체 조사는 대중을 납득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미 확립된 안전 통제 시스템을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공신력에 대한 또 다른 타격이지.
게다가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는 보조기 전문 기술과 관련되어 있어. 최단 시간 내에 진실을 밝히려면, 내부 전문가가 증거를 수집해야 해.
실례지만 네티아 총감님, 총감님도 과학 이사회의 정규 고등 교육 과정을 밟으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엄밀히 말해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죠.
긴 탁자 상석 반대편, 줄곧 다른 일에 신경 쓰며 침묵하던 홀로그램 투영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네티아는 수행 지원 유닛 전문 분야의 졸업 요건을 확실히 충족했어.
직업 윤리에 관해서라면, 당시 레노아의 불법 실험을 적발하고 결과를 공시한 게 바로 그녀였지.
관계자는 단말기로 누군가와 잠시 교신하더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유감스럽지만 수석 연구원님, 감사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양보는 양측이 신뢰하는 제3의 감독관을 조사에 동행시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인이 어렵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저도 상부에 보고해야 하니까요.
상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네티아는 건틀릿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 정도의 힘이라면 손바닥에 자국을 남길 게 분명했다.
그 연구소와 관련된 기억들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눈앞의 구조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고 있었고, 또 직접 진실을 밝히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 깃털을 두른 구조체의 손끝이 살짝 떨리더니, 긴장으로 굳어있던 허리가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그녀는 몸을 돌려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거센 바람에 녹아내렸다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다시 빚어진 붉은 유리처럼, 지휘관의 눈동자에 찬란하게 비쳤다.
네티아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 자리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소리를 내는 대신 눈빛에 모든 말을 담아 보냈다.
그게...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라면 물론 각계의 깊은 신뢰를 받고 계시죠. 바쁘시겠지만 조사를 도와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의 없으십니까?
이의 없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원의 관계자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는 회의 종료를 선언하자마자 친근한 표정으로 돌아와 지휘관과 네티아의 결단을 칭찬하며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갔다. 월든도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지휘관과 네티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란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계속 날 관찰하고 있었구나, 레이븐.
음... 네 시선이 닿은 곳은 확실히 아프지 않네.
너도 참... 의외로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어쩌면 나도 정말 그런 적이 있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늘씬한 여인은 고개를 들어 어둑한 절전 등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지키고 싸워야 할 전장이야.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지만, 변하지 않는 "규칙"이 존재하지.
예를 들면, 약점은 반드시 숨겨야 한다는 것.
네티아는 지휘관 앞에서 손바닥을 펼쳤다.
이 흔적들은 무언가를 꽉 쥐고 있으면 약점이 되지 않아. 단말기든, 무기든... 누군가의 손이든.
지휘관이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옆에 있던 구조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네티아의 시선을 따라 앞을 보니, 월든이 현관 처마 밑에서 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교수가 몸을 돌렸다. 그의 손끝에 불빛이 깜박이더니, 지휘관과 네티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네티아 님, 늘 바쁘게 움직이시니,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었네요.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던 게 레노아의 장례식 때였죠. 그때도 멀리서 꽃을 안고 서 계셨고, 아무리 불러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셨잖아요.
...
제 실험실에 계셨을 때,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레노아였는데 말이죠.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조사 기간엔 피고발인과 얘기를 하지 않겠어.
오늘 처음으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비가 처마를 뚫고 들어와 새벽부터 밤까지 분주했던 검은 옷의 구조체를 흠뻑 적시는 것만 같았다.
지휘관은 검은 우산을 펼쳐 빗속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간 뒤, 처마 밑의 네티아 쪽으로 우산을 살짝 기울였다.
피곤한 기색 속에서도 고마움이 느껴진 듯, 네티아는 날개를 접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지휘관이 만들어준 작은 그늘 속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가자...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