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이지스·그중 하나
>이 상황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황혼 무렵의 초원.
에피로스. 황금시대에 가장 위대한 자연 보호구역이라 불리던 이곳은, 이제 사람의 발길이 끊긴 황량한 벌판으로 전락해 있었다.
두 마리의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 더미에 코를 박고, 한 암사자의 사체를 뜯고 있었다. 털가죽은 이미 깔끔하게 벗겨져 있었고, 이빨이 닿지 않은 곳엔 매끄러운 절단면이 남아 있었다. 결코 자연의 포식자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이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온 동료의 울음소리는, 이주 중인 무리에서 뒤처지지 말라는 재촉이었다.
파직.
풀줄기가 꺾이는 소리였다. 단단한 금속 발굽이 짓누르자, 억센 잡초들은 속절없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가 꺾였다. 자연의 생명은 기계 창조물의 발굽 아래 엎드려, 힘없는 신음을 삼킬 뿐이었다.
하이에나의 몸이 순간 굳었다. 압도적인 위협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녀석들은 주저 없이 등을 돌려 달아났다.
...
그녀의 눈동자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 웅장한 풍광에도, 생과 사가 맞부딪치는 처절한 살육에도 어떤 감정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인류 문명이 퇴장한 적막의 땅에, 오랜만에 낯선 방문자가 발을 들였다.
에피로스 초원에 도착했어. 임무 통신이 침입으로 방해받고 있는 게 확인됐어. 네빌, 이 메시지를 듣고 있다면, 내가 임무를 계속해야 할지 알려줘...
(힘없이 꼬리를 떨었다.)
...
베로니카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차갑게 눈동자만 굴려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마른 풀잎 사이에서 가냘픈 꼬리 하나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싹 마른 새끼 사자가 모기와 파리떼에 둘러싸인 채, 죽음의 문턱에 반쯤 걸쳐 있었다.
(꼬리가 힘없이 떨린다.)
통신에서는 여전히 지직거리는 잡음만 흘러나왔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기울여 주파수 구간을 조정하며, 새끼 사자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으...
이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대로 죽는 편이 덜 고통스럽지 않나?
베로니카는 다시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시야의 끝에서, 새끼 사자가 힘겹게 눈을 뜨고 간절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낑낑...
그 울음은 귓가를 맴도는 모깃소리보다도 작았다. 멀어지는 베로니카의 발걸음을 붙잡기엔 턱없이 미약했다.
낑낑...
으... 낑낑...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새끼 사자는 베로니카의 뒷모습이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살아남기 위해 애처롭게 울었다.
살고 싶었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사라지고, 바람에 스치는 풀잎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무언가가 풀밭을 밟고 다가와, 새끼 사자 앞에 멈춰 섰다.
시끄러워.
으...
기억이 있는 한, 기계 생명체는 죽지 않아. 하지만 너희 같은 살덩이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리지.
그래서 그런 건가?
단 한 번뿐인 목숨이라서, 그렇게 필사적인 건가? 세라도, 알렉세이도... 그 죽기 직전의 발버둥은 정말이지...
베로니카는 드물게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으로 불쾌하군.
베로니카는 고개를 숙여, 발밑의 새끼 사자를 내려다보았다.
초원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공중 정원
생명의 별
48시간 전
공중 정원, 생명의 별, 48시간 전
대부분의 지표는 좋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고위험 임무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회복에 집중하신다면, 신체 깊숙이 누적된 손상까지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병원에만 계시려니 지루하시죠? 어제 전쟁 간호 훈련에도 참여하셨다던데, 무대에 올라가 시범까지 보이셨다면서요?
모르셨어요?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구경 왔더라고요.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이시잖아요. 여기서는 거의 "스타"나 다름없습니다.
의료진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심심하시다면... 여기 다른 강의나 훈련도 많아요. 지휘관님이 얼굴만 비추셔도 출석률이 폭발할 텐데 말이죠. 하하하하.
몸 잘 챙기세요, 지휘관님. 가끔은 평온하고 여유로운 생활도 즐기셔야죠.
그 평온함은 복도에서 다급하게 울리는 이송 카트 바퀴 소리에 금세 깨지고 말았다.
몇 대의 이송 침대가 복도를 급히 지나갔다. 그때 맨 뒤 침대에 누워 있던 부상자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너무 갑작스러워, 노련한 의료진조차 제지할 틈이 없었다.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
처음 뵙겠습니다! 와,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을 실물로 뵙다니 영광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저희 대장님이 "생명의 별"에 있으면 가끔 지휘관님을 뵐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하하하하, 진짜였네요!
대장의 이름이 나오자, 부상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대장님 귀에 벌써 들어갔을 텐데 무리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오후 지상 임무에서 한 명이 빠지게 됐으니... 아, 망했어요. 분명 죽도록 혼날 거 같아요.
그래도... 그냥 간단한 유적 회수 임무라, 그렇게까지 심하게 혼나진 않겠죠?
네. 옛 에피로스 자연 보호구역에 있는 연구소 유적에서 보육 및 연구 자료를 공중 정원으로 회수하는 겁니다. 난도는 낮은 편이고요.
아, 저도 연구원들에게 들었어요. 과학 이사회가 황금시대에 중단된 희귀병과 특효약 연구를 다시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관련 동식물 연구 자료를 수집 중이라네요.
맞습니다! 대장님도 그 자료들이 생태계 복원 연구는 물론, 식량 생산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듣고 보니 상당히 의미 있는 임무네요. 뭐, 그렇다고 혼나는 걸 피할 순 없겠지만요.
생태 보호구역, 이제는 너무나 아득하게 들리는 과거의 단어였다. 퍼니싱이 모든 것을 휩쓴 이후, 인간에게 생존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었고, 생태 보호 같은 사치는 정신문화와 함께 무기한 보류 목록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곳에 문명이 싹트는 법이다. 어떤 시대든 인간은 그 시대의 유전자가 새겨진 문화를 창조해 왔다. 그러나 생태계 자체가 무너진 곳에서, 생태 보존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휘관님이요???
요양 중에 위험도가 낮은 임무 수행이 가능하긴 하지만, 굳이 자원해서까지...
의료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눈앞의 이 지휘관이, 결코 안위를 위해 도전을 피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복 기간을 지루해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지휘관님... 정말 잠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는 분이군요.
어째 늘 일을 크게 만드는 비범한 재능이 있으신 것 같네요.
어차피 제가 말려도 소용없겠죠?
정말입니까?지휘관님께서 이번 임무에 대신 투입하신다고요?
좋습니다! 그럼... 임무 인계하겠습니다!
부상자가 붕대로 감은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붕대 감긴 주먹과 전투 장갑을 낀 주먹이 단단하게 부딪혔다.
초원의 따스한 바람이 자연 보호구역 연구소 앞 무성한 잡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은 유적 안에서 조심스럽게 연구 표본을 옮기는 임무 인원들 곁도 살며시 지나쳤다.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함께 지상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구 자료는 모두 백업을 마쳤습니다. 남은 표본 정리는 저희가 맡을 테니, 아직 회복 중이신 지휘관님께서는 먼저 공중 정원으로 복귀하시겠습니까?
역시 지휘관님이십니다. 책임감이 대단하시군요.
구조체 대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 소리에 놀란 푸른 찌르레기 몇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하며 하늘로 흩어졌다. 광활한 초원의 하늘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고, 지평선은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정말 좋지 않습니까? 이런 대자연 속에 있으니, 비로소 실감이 납니다. 이 대지야말로 우리의 고향이라는 걸요.
역시 지휘관님도 그리 느끼시는군요. 그렇다면, 저희가 정리하는 동안 주변 경계 임무를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대장의 목소리에는 유쾌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모처럼의 요양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순 없지 않습니까? 대자연이 주는 치유의 시간이라 생각해 주세요.
푸른 찌르레기 한 무리가 아카시아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석양에 물든 에피로스 초원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새들은 평화롭게 깃털을 고르며, 이따금 청아한 소리로 울었다.
어느새, 임시 주둔지에서 꽤 멀리 벗어나 있었다. 자연이 연주하는 소리에 이끌린 듯, 동력갑을 매만지며 걸음을 멈췄다. 이 고요한 평화를 잠시나마 만끽하고 싶었다.
아우...
금빛이 감도는 자귀나무 그늘 아래, 풀숲 속에 허약한 새끼 사자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산산조각 난 화강암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중 새끼 사자 곁에 놓인 조각 하나만이 억지로 파낸 듯 움푹 팬 채, 얕게 빗물을 담고 있었다. 수많은 실패 끝에 겨우 만들어낸, 유일한 "성공작"인 듯했다.
더 가관인 것은, 풀밭에 놓인 생고기 덩어리였다. 털가죽까지 벗겨내는 세심함을 보였지만, 아직 젖니도 채 나지 않은 새끼 사자가 먹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새끼 사자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귀 끝과 발바닥에 손을 대보니, 비정상적으로 차가웠다.
새끼 사자의 등 가죽을 살짝 잡아당기자, 탄력 없이 아주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싹 마른 코와 움푹 꺼진 눈은 오랜 시간 굶주렸다는 신호였다.
낑낑...
인간의 선의를 느꼈는지, 녀석은 칠흑같이 동그란 눈으로 인간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순하게 혀를 내밀어 손등을 핥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응을 살폈다. 이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안심하며 머리를 손바닥에 가볍게 비볐다.
혀끝의 감촉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다.
휴대용 보급팩에서 영양액을 꺼내 손바닥에 조금 부었다.
!!!!!!
새끼 사자는 조심스럽게 몇 번 핥아보더니, 이내 눈이 동그래져서는 더 달라는 듯 "아우, 아우!" 하고 보채기 시작했다.
삼키는 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인간은, 손바닥에 영양액을 조금 더 부어주었다.
쉬익!
창끝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롭게 내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위협적인 울림이 인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기류의 변화가 먼저 경고를 보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옆으로 몸을 비틀며, 치명적인 일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웅" 하고 울리는 육중한 소리가 뒤따랐다. 즉시 몸을 돌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긴 창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사선으로 날아들었고, 긴급 가동한 아머가 팔을 뒤덮으며 그 맹렬한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챙!
격렬한 충돌의 여파로, 베로니카의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차갑게 굳은 얼굴에는 살기를 가득 머금은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얼굴은 낯설었지만, 얼어붙은 우주 도시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살기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 살기는 몸이 먼저 기억해 낼 만큼 선명했다.
정말 지겹도록 끈질기군. 이런 곳에서까지 마주치다니.
인간은 아카시아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기고, 급소가 노출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에야 "옛 친구"에게 입을 열었다.
왜? 지켜보는 이가 없으니, 네 마음대로 학대해도 될 거라 생각했어?
돌봤다고? 같잖은 소리. 저기 저 가죽 벗겨진 암사자도, 네놈이 "돌본" 결과인가?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발라내는 건 인간이나 할 짓이지. 그리고 이 근방의 인간은 너 한 명뿐이야.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흥, 네 실력이라면 내 탐지망을 피하는 것쯤은 가능했겠군.
나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왜 인간은 고통을 쾌락으로 삼는 거지? 기계 생명체든, 동물이든, 심지어 동족까지도... 너희에게는 모두 학대의 대상일 뿐이야.
공포, 두려움, 고통... 오직 그런 것들만이 너희를 흥분시키지.
그르렁!
둘의 팽팽한 대치 속에서, 새끼 사자는 어느새 풀숲에 떨어진 영양액 봉지를 찾아내, 정신없이 빨아먹고 있었다. 심지어 목구멍에서는 만족스러운 그르렁 소리까지 새어 나왔다.
...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새끼 사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끄윽...
베로니카가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새끼 사자가 갑자기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며 쓰러졌다.
불길한 예감에 지휘관이 아카시아 나무 뒤에서 나와 서둘러 다가가려 했지만, 바람을 가르는 창끝이 앞을 막아섰다.
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바로 새끼 사자 옆으로 다가갔다. 풀밭에 쓰러진 새끼 사자는 이미 호흡이 멎어, 외부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
인간은 순간 자책했다. 이 영양액은 본래 전투 인원의 비상식량이었다. 새끼 사자의 허약한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과한 영양분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심폐소생술 절차는 알고 있었지만, 동물을 상대로 한 응급처치는 배운 적이 없었다. 다행히 연구소에서 본 자료의 한 구절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새끼 사자를 옆으로 눕히고, 기억을 더듬어 흉부의 위치를 찾았다.
손을 얹으려는 바로 그 순간, 서늘한 냉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카로운 창끝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게 포유류의 심장이 있는 위치라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내 눈앞에서 숨통을 끊으려는 속셈이야?
베로니카가 인간의 목소리에서 이토록 냉정한 명령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머가 목을 감싸며 창끝을 막아섰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귀를 찔렀다.
새끼 사자는 아무런 감각 없이, 그저 인간의 손길에 따라 가슴이 들썩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베로니카에게 경고를 던진 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힘이나 권력으로 그녀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착각한 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그녀의 장창 아래 영원히 무릎 꿇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인간의 눈빛은... 단순한 폭력이나 오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창을 잠시 망설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멀리서 천둥이 울리고, 이내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인간은 필사적으로 새끼 사자의 흉부를 압박하고, 입으로 숨을 불어 넣고 있었다.
...
베로니카는 조용히 창을 내렸다.
의식 연결? 내가 다른 어리석은 동족들처럼, 네놈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목줄이라도 찰 것 같아?
네놈 따위에게 흥미 없어. 하던 일이나 마저 해.
콜록...
희미한 기침 소리와 함께, 새끼 사자가 기적적으로 호흡을 되찾았다. 베로니카의 응시 아래, 인간은 지체 없이 응급 키트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인간에게도?
베로니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약물이 천천히 새끼 사자의 몸속으로 주입되었다.
심폐소생술. 그건 뭐지?
새끼 사자의 호흡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인간은 비에 젖은 녀석의 귀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무언가에 홀린 듯, 베로니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새끼 사자가 고비를 넘겼음에도, 그녀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새끼 사자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인간의 품에 힘없이 몸을 기댄 채, 앞발을 까딱거렸다. 이내 코를 킁킁거리더니, 기어이 바닥에 남은 영양액을 찾아내 낑낑거리며 핥아먹기 시작했다.
너희 포유류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구나.
괜히 덩달아 미움받은 인간은 품에 안긴 새끼 사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수많은 포유류의 체면을 구긴 죄에 대한 작은 벌이었다.
아우...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초원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