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이스마엘·환일·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

이스마엘·환일·그중 여섯

칼바람에 눈발이 휘날리며, 앞을 보기도 힘들고 주변의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파란빛이 번쩍이더니, 눈보라 속에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음... 여긴...

거센 눈보라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은 자연스럽게 옆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 사람의 존재가 늘 곁에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얀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전송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레이 레이븐"?

익숙한 목소리에 이스마엘의 긴장이 풀렸고,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주변의 눈보라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로 눈보라가 잦아들고 있었다.

눈발 사이로 붉은 기운이 이스마엘의 손끝을 스쳐 지나가며,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0호 물질 농도 상승 감지."

시간 여행 보조 장치에서도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찍!

마치 거울이 깨지듯 주변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그레이 레이븐", 내 손을 잡아!

이스마엘의 머릿속에 그날의 참혹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비명, 폭발음... 벽에 튄 피, 눈앞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동료들의 눈동자.

빨리 돌아가야 해!

이스마엘의 얼굴에 초조함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휘관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이기적이란 걸 알아.

그래도 부탁하고 싶어... 이스마엘을 도와줄 수 있을까?

붉은 기운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처벌을 내리는 자에 비하면 이곳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인간은 마음을 굳혔다.

혼자 막으려고?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 지난날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안 돼. 그럼 내가... 내가 남을 테니 먼저 돌아가.

이스마엘은 떨리는 손으로 "그레이 레이븐"의 손끝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고함에 이스마엘은 흠칫 놀랐다. "그레이 레이븐"이 이토록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이스마엘은 "그레이 레이븐"이 자기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는 것을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살펴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이것도 결국... 작별 인사인가?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 시간들과... 동료들을 너무 많이 봤어.

너마저... 이렇게 보낼 순 없어.

...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꼭 기다리고 있을게.

공간의 균열이 점점 더 벌어져 갔고, 어렴풋이 처벌을 내리는 자가 양손으로 그 틈을 넓히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눈밭에 파란빛이 스쳐 지나갔다.

처벌을 내리는 자가 이 눈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의 모습과 그 사람의 몸에서 붉은빛을 발하는 시간 여행 보조 장치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후 이 공간의 흔적은 복잡하게 뒤엉켜버려, 처벌을 내리는 자는 결코 "눈밭 속 발자국"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주변의 공간이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던 파편들이 어느새 책장으로 변해갔다.

책장 사이로 붉은빛 하나가 피어올라 허공을 떠다녔고, 그 궤적은 실처럼 가느다란 끈팔찌가 되어갔다.

누군가의 손이 그 끈팔찌를 붙잡았고, 흩어졌던 의식의 파편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라니우스" 연구소

"라니우스" 연구소.

이스마엘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에는 20면체의 나무 주사위가 조용히 놓여있었다.

이곳에는 눈보라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