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휴일 아침, 드디어 통신 단말기를 옆으로 치워두고 이불 속에서 한가로운 하루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항상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일정표가 텅텅 비어버리니, 오히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지휘관은 이 시간이 자신만의 여가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 될 건 없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 평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근데... 밖에 나가도 할 게 없는데 뭘 하지?
할 일을 고민하고 있던 그때, 휴게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player name]!
처음 보는 코팅을 한 브리이타가 지휘관 앞에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네?
음?
브리이타는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미소였지만, "확실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눈치 없는 지휘관은 인기가 없다고.
방에 들어온 브리이타는 봉인된 파일철을 꺼냈다.
여기, 과학 이사회에서 보낸 거야. 마침, 지나가는 길이어서 가져왔어.
한 시간 전.
가스가 새어 나오는 소리와 함께 정비대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브리이타가 정비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체 검사가 끝났어요. 마모가 심한 부품은 전부 새것으로 교체했고, 기체 데이터도 모두 정상 범위예요. 지금은 아무 문제 없어요.
고마워.
브리이타가 정비대에서 나와 가볍게 몸을 풀던 그때, 정비원들의 대화 속에서 들려온 한 이름이 브리이타의 주의를 끌었다.
내일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님께 전달할 자료야. 근데 왜 전자 파일로 보내지 않는 걸까?
아, 그거? 전자 파일은 이미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께 보냈어. 종이 파일은 동기화 오류로 한 부 더 출력된 거야.
알잖아. 한쪽에선 출력 안 한다고 했는데, 다른 쪽에선 출력한다고 착각한 거지.
그 인턴인가?
맞아.
아카이브에 넣으면 되는데, 처리하는 쪽에서 저장 통지를 받지 못했대. 이 자료가 아카이브 전용 저장 파일에 넣을 만큼 중요하지 않다나. 사실, 그렇게 중요한 자료는 아니긴 해.
크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상황이 어떻든, 이 자료를 [player name] 지휘관님께 직접 가져다드려야 해.
여성 정비원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 인턴...
너무 신경 쓰지 마. 혹시 들었어? 교육 구역에서 축제를 연데. 오후 교대 끝나고 같이 가볼래?
좋아. 안 그래도 최근에 나가 놀지도 못했는데 잘됐네.
정비원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브리이타는 생각에 잠겼다.
(축제라...)
브리이타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 축제는 예술 협회 연합과 기초 교육 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였다.
처음에는 교육 구역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했으며, 정식 명칭은 황금시대 문화 축제였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축하하고 졸업생들에게 과거 황금시대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행사였다.
그러다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의 규모가 커졌고, 예술 협회와 행정원이 참여하면서 이제는 학생들만의 행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지원 부대에서도 오늘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휴가를 낸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저기... 그레이 레이븐 지휘관에게 갖다줘야 할 자료라고 했지? 마침, 나도 [player name] 지휘관에게 볼 일이 있는데, 가는 길에 전해줄까?
음... 규정상 좀 그렇긴 합니다만, 중요한 기밀 자료도 아니고...
여성 정비원이 그의 말을 끊었다.
괜찮을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자료를 들고 만족스러워하는 브리이타가 정비실에서 나오려는 순간, 복도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에 시선이 멈추었다.
브리이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과 파일의 이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브리이타는 결심했다.
(역시 코팅을 바꿔야겠어.)
정비실의 문이 다시 열리자, 브리이타가 문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두 정비원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안녕, 또 보네. 혹시 내 코팅 좀 바꿔줄 수 있어?
……
바로 그거야.
브리이타는 이마를 탁 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둔감하기는...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네.
당연히 축제 때문이지! 황금시대 문화 축제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어떤 게임은 둘이서 해야 더 재밌다고.
게다가 지휘관 요즘 계속 바빴잖아?
모처럼 쉬는 날인데, 휴게실에만 있지 말고 같이 놀러 나가면 좋지 않겠어?
이건 데이트라고, 데이트! 눈치 없는 지휘관은 인기가 없다고.
브리이타가 단호한 눈빛으로 인간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어. 많이.
맞아.
흠흠, 후회하지 않을 거야.
축제 구경이라는 이 임무를 도와주면, 잊지 않고 나중에 꼭 보답할게.
내가 지휘관에게 빚을 진다는 건 꽤 이득이 되는 거래일 텐데? 안 그래, [player name]?
게다가 이 축제 정말 재밌다고!
그러니까 같이 가자.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야.
요즘 임무가 계속돼서 힘들었는데, 모처럼 쉬는 날에 기분 전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지휘관이 문 쪽으로 가던 그때, 브리이타가 불러 세웠다.
잠깐, [player name].
설마 너 그 옷차림으로 놀러 가려는 건 아니지?
지휘관은 자기 옷을 살펴봤다. 단정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차림새였다.
그건 일할 때나 입는 제복이잖아. 그런 옷차림으로는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제대로 즐기려면 일과 휴식은 확실히 구분해야지. 어서 옷부터 갈아입어!
데일리 룩으로 갈아입어. 난 밖에서 기다릴게.
지휘관은 브리이타와 스타일 및 색감이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브리이타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턱을 괸 채 지휘관을 아래위로 살펴보았다.
으음, 나쁘지 않네.
지휘관, 패션 센스가 꽤 좋은데.
근데 뭔가 하나 부족해.
브리이타의 패션 센스는 공중 정원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스스로 일상 코팅 변경을 신청하기도 하는 그녀의 스타일은 유행을 선도할 정도였다.
이거 한번 써봐.
브리이타가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지휘관의 머리에 살짝 걸쳤다.
완벽해!
개막식이 곧 시작해.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