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Reader / Affection / 테디베어·해영·그중 / Story

All of the stories in Punishing: Gray Raven, for your reading pleasure. Will contain all the stories that can be found in the archive in-game, together with all affec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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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해영·그중 일곱

혼돈의 먹빛이 의식 공간의 모든 형체를 휩쓸어 버리자, 칠흑 같은 공허만이 남았다.

허무한 정적 속에서, 아침 이슬처럼 맑은 수많은 기포가 부유하고 있었다. 이 아득하고 몽환적인 광경 너머로, 인간은 마침내 그 뒤에 선 구조체 소녀를 발견했다.

...

테디베어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눈을 떴다.

눈앞에는 만화경처럼 겹겹이 쌓인 영롱한 구체들이 가득했다. 투명한 외벽은 거울처럼 무지갯빛을 반사했고, 자연의 섭리조차 이토록 영롱한 수정을 빚어내긴 어려울 터였다.

소리 없는 운율에 맞춰 고동치며 맴도는 기포 하나하나 속에서, 여정의 소소한 기억들이 무성 영화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던 분홍빛 머리카락, 흔들리는 선루프 위에서 맞닿았던 새끼손가락, 달밤의 선율에 위로받으며 잠든 지친 얼굴, 한낮의 무지개, 빗속의 노을, 파도 치마를 수놓았던 해상 도로...

분명 이토록 행복한 기억들임에도, 행복으로 향하는 다리가 되기는커녕, 서로 회전하고 부딪치며 거부를 상징하는 높은 벽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지휘관? 내가... 깨어난 건가?

어지럽게 흩어졌던 기억의 조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

(스스로를 시뮬레이션 의식이라 믿는 한이 있어도, 감정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기 싫었던 건가...)

테디베어가 설계한 완벽한 운명 속에서, 사랑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변수이자, 이 견고한 보루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광기였다.

사랑은 테디베어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기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신은 그저 거짓된 허상이어야만 했고, 결코 진짜 자신일 수는 없었다.

이제 안정됐어. 그 녀석들, 아마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테디베어의 약속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이때의 인간은 이미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일으킨 이 소동도, 여정 내내 이어진 방황도, 서로를 가로막던 인격들도, 모두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침묵 속에 억눌려 갇혀버린 감정은 언젠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바다를 향해 힘차게 흘러가는 물길을 터줘야만, 비로소 진정한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

격변은 이미 시작됐어. 눈앞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익숙했던 세계를 다시 정의하고, 불안정한 미래가 닥쳐온다는 걸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어. 나는 경계 밖으로 나갈 거야.

성벽이 무너진 뒤의 새로운 세계로.

——크리스티나

테디베어

그때 그 순간은, 지금 이 순간과 닮아 있었다.

플랑크 시간은 우주 진화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그 척도 아래에서 인간이 이해하는 시공간의 개념이 의미를 잃는다. 그것은 물리적 인지의 절대적인 경계선이다.

경계 안의 세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계 밖은 알 수도, 정의할 수도, 닿을 수도 없다.

크리스티나는 "상관없어. 나는 경계 밖으로 나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테디베어는 우리를 벗어난 최초의 곰이 되었다.

난...

그때 그 순간은, 지금 이 순간과 너무 흡사했다.

의심과 저항이 싹튼 순간부터, 문은 이미 열렸고, 그 누구도 이 거대한 힘을 막을 수는 없다.

내면의 질서가 어떤 존재로 인해 흔들린다면, 그 존재 자체가 바로 해답이다.

(사랑 그 자체가 답이야.)

분홍 머리의 구조체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말에 따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인간은 손에 든 무기를 확인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몇 번 휘둘렀다. 그러자 영롱한 기포들이 아련한 환영처럼 소리 없이 터지며, 한숨처럼 흩어졌다.

무수한 무지갯빛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별과 오로라가 함께 부서지는 듯, 허공에 잠시 찬란한 궤적을 그렸고, 기포의 높은 벽은 마침내 하나의 통로를 드러냈다.

활짝 열린 문처럼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고, 테디베어는 그 빛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인간은 그 틈새로 걸어 들어가, 테디베어의 앞에 섰다.

테디베어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 했기에,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오로라의 환상적인 빛 조각들이 그녀의 몸에 닿지 않았다.

...

테디베어는 한숨 같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반걸음의 오차로, 인간이 바라던 대로 환상적인 빛의 파편 하나가 그녀의 뺨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뺨에 몰래 입을 맞췄던 환상적인 별빛은, 인간의 손길을 따라 자유로 향하는 다리가 되었다.

사랑은 누군가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불완전함을 깨닫게 해줄 뿐이고...

안아주고 싶게 만든다.

팔 안에서 소녀의 이마가 인간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졌고, 안도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때는 폭풍우 치는 밤에 둥지를 잃은 아기 새처럼, 세상의 소음 속에 같혀 아무도 그의 소리없는 외침을 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기억해 주는 이가 생겼다.

이성은 수많은 위기에서 이 세계를 구했다.

하지만 때로는 모든 걸 내던지고, 끈질기게 매달리며, 죽음마저 불사하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이는 이성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격렬한 감정에 휩쓸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기어이 행하는 결단이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계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비이성적인 찰나를 위해, 평생을 기꺼이 바친다.

그 녀석들 말이야... 혹시 뭘 물어본 거야? 크리스, 또 다른 나 말이야.

테디베어가 인간의 품에 안겨든다.

팔 안에서 소녀의 이마가 인간의 어깨에 가볍게 기대졌고, 안도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폭풍우 치는 밤에 둥지를 잃은 아기 새처럼, 세상의 소음 속에서 아무도 그 조용한 도움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해 주는 이가 생겼다.

이성은 수많은 위기에서 이 세계를 구했다.

하지만 때로는 모든 걸 내던지고, 끈질기게 매달리며, 죽음마저 불사하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이는 이성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격렬한 감정에 휩쓸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기어이 행하는 결단이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계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비이성적인 찰나를 위해, 평생을 기꺼이 바친다.

그 녀석... 뭘 물어봤어? 크리스, 또 다른 나 말이야.

묻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어? [player name]

만약 언젠가, 내가 지금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것을 잃고, 나약하고, 맹목적이고, 평범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너는 그래도 나와 함께할 거야?

지휘관은 그녀가 모든 것을 잃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고, 테디베어는... 언제나 자신을 구할 능력과 용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금까지 인간과 함께 길을 걸어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테디베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둘은 서로를 믿는 파트너이자, 등을 맡기는 전우이며, 같은 이상을 위해 목숨을 불태우는 동료다. 어깨를 나란히 한 그 순간부터, 이미 끝까지 서로를 지탱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당연하지. 네가 한 말이잖아. 네가 한 말이라면, 나는 믿어.

아무런 이유도, 그 어떤 논리도 필요 없는 것. 감정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었나?

눈가가 간지러워 눈물이 흐르는 줄 알았지만, 손으로 더듬어 보고 나서야 그것이 상대방이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임을 깨달았다.

품에 안겨있던 테디베어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알겠어...

그럼, 후회하지 마.

무중력 상태처럼 떠돌던 영혼이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현실의 시간은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뭐? 하지만 컨스텔레이션 음악 축제는 이미 취소됐잖아... 너야말로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인간은 태양의 위치를 살핀 뒤 단말기로 날짜와 시간, 날씨를 확인하고는, 테디베어의 손을 잡고 수송차로 향했다.

더는 정해진 경로에 얽매이지 않았다.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길을 따라, 짙은 먹구름과 비의 기운을 모두 등 뒤로 남겨두고 달렸다.

몇 시간 동안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한 끝에, 수송차는 등 뒤의 지루한 도로와 황야를 떨쳐내고 외딴 절벽에 매달린 폐전망대 옆에 멈춰 섰다.

테디베어의 손을 잡고 황량한 산길을 걸었다. 비스듬히 선 녹슨 이정표가 오랫동안 인적이 끊겼던 쓸쓸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녀의 시선이 인간의 어깨너머, 아무런 방해 없이 펼쳐진 하늘을 향했을 때, 온 하늘의 구름이 현실의 거리를 뛰어넘어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토록 웅장하고 광활한 하늘은, 부드러운 분홍빛과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꼭 소녀의 눈동자 색 같았다.

한낮의 하늘은 멀고 아득했지만, 해질녘의 하늘은 둥지로 돌아가는 새처럼 눈앞의 여행자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모든 것이 쏟아져 내린 꿈결처럼, 짙고 섬세하며 아련했다.

금빛 비단을 펼친 듯한 천막 위로, 짙고 옅은 분홍과 보라색이 바람에 흩날리는 수채화 물감처럼 끝없이 번져나가, 시야의 끝에 위치한 먹빛 산의 실루엣 속으로 잠겨 들었다.

테디베어

이건 북쪽 환류의 상승 기류 영향으로 생긴 레일리 산란 현상이야. 이곳 구름 입자가 특이해서 미 산란이 일어나면서 이런 특별한 색이 나오는 것 같아.

분홍빛이 보라색과 어우러지고, 감성이 이성을 뒤쫓는다. 모든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천재와 평범한 자는 모두 항구에서 따스한 숨을 고를 수 있다.

인간은 테디베어를 이끌고 전망대 난간으로 다가가, 칭찬을 건넸다.

테디베어

그냥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검색한 것뿐이야. 이런 것까지 일일이 칭찬하면... 앞으로 꽤 피곤해질걸.

난 칭찬을 들을 때도 퀄리티를 따지는 편이거든, 방금 그런 말로는 어림도 없어.

테디베어는 미소 짓는 인간을 바라봤다.

테디베어

응? 어...

"사이버 독버섯"에 휘둘리던 동안의 이상 행동들이 의식의 바다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테디베어

젠장... 너한테 그런 꼴을 보이다니. 할 수 없지, 입막음이라도 해야겠어!

테디베어

목숨을 건지고 싶다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 아니, 세 개!

아니, 만 개로 하자.

테디베어

아무래도 누군가는 나랑 오랫동안 엮여야 할 것 같네.

테디베어는 예고 없이 몸을 돌려 난간에 등을 기댔다. 노을처럼 일렁이는 분홍빛과 보라색 눈동자가, 지휘관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테디베어

지휘관, 고마워. 정말 아름다워.

소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눈앞의 광경을 표현할 더 적절한 단어를 찾는 듯했다.

결국 그저, 더 나지막이, 더 진심을 담아 반복할 뿐이었다.

테디베어

아름다워.

마음을 뒤흔들고 하늘을 온통 분홍빛과 보라색 바다로 불태운 노을이 아니라, 눈앞에 선 소녀의 부드러운 눈동자였다.

타다닥...

가상에도 현실에도 없는 군고 소리였다. 황홀한 풍경 속에서, 테디베어는 군고를 두드리던 그 기묘한 인형을 다시 본 듯했다.

자기 자신에게 잘해줘야 해, 테디베어.

잘 있어.

디어베어를 옭아매던 규칙 또한 사라진 듯했다.

디어베어는 아마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동시에 영원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도파민, 호르몬, 옥시토신.

과학이 이런 감정을 분석하려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국 인간의 몸도 복잡한 화학 반응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스스로에게 허락한 감정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사랑은 호르몬의 설렘도, 도파민의 혼란도, 이성적 분석이나 과학적 해체도 아니다.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마음을 내보이며 치유해 달라거나, 결핍된 내가 너로 인해 채워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비록 결핍되어 있지만, 이 결핍된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이가 있다. 지금 비록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곁에 설 수 있다.

사랑이란, 규칙과 이론으로 가득한 안정된 세계에서, 해석할 수도, 관측할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휘관, 이제부터는... 네가 나의 플랑크 시간이야.

스스로에게 탐닉을 허락했다.

근데 좀 아쉽네.

아쉽게도 넌 모르겠지. 내가 낸 이 보잘것없는 용기를.

아무것도 아니야. 아, 저기 구름 좀 봐. 꼭 사슴 같아.

저... 저쪽에 있는 건, 꼭 내 그...

언제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던 친구.

내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거지. 네 두 번째 인격으로서, 난 널 속일 수 없어. 물론, 너도 날 속일 수 없고.

(디어... 내 마음이... 그랬구나. 이제야 깨닫다니.)

소녀는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이상하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눈물은 마음의 밀물과 썰물 같은 거기 때문이다.

타...

타닥...

그녀는 자제할 수 없이 오랫동안 인간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영원히 이렇게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마침내 무모하고, 뜨겁고, 저돌적인 찬란함이 폭발했다.

지휘관, 그 노래...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이제 알 것 같아.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온 적 없지만,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그 노래.

지금, 너에게 바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