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지각 시스템을 닫고, C3 우측 하단 3센티미터에 순환 증강제를 주입한 뒤, 10초 후에 지각 시스템을 다시 가동한다."
지각 시스템을 닫고, 주사기는 여기에 있다.
느껴지지 않아, C3 구역이 어디에 있지?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밤비나타, 뭐 하고 있는 거야?"
바네사 주인님이어서 기뻤지만, 주인님은 많이 의아해했다.
단말기에 있는 명령에 따라 기체 정비를 하고 있었다.
"전에 생명의 별에 예약해 놓은 그건가? 검사 보고서는 어디에 있지. 확인해 봐야겠어."
"음... 별문제 없네. 근데 뒷면에, 이건 누가 쓴 거야?"
모르겠다. 하지만 그 위에 이 명령을 지키라고 써있었다.
"쯧, 자세히 쓰긴 했지만, 정말 품위가 없는 글자군."
"됐고, 손에 있는 주사기를 넘겨주고 뒤돌아 서."
지각 시스템 재가동...
외장 기억 모듈 로딩...
"괜찮아졌어?"
기억이 많아졌지만, 어떤 부분은 없어졌다.
"음... 좀 더 최적화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player name] 님? 그레이 레이븐의 지휘관님? 왜 그 이름이 생각났지?
"[player name]? 왜 갑자기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낸 거야?"
인상이 있었다. 단순히 그 이름이 생각났다.
"쯧, 이 글씨, 설마..."
"됐어. 그건 신경 쓰지 말고 돌아서 봐. 그래. 그렇게."
주인님이 머리핀을 손으로 잡고 정리해 주었다. 주인님의 얼굴이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밤비나타. 너..."
주인님의 목소리는 좀 슬펐지만, 홀가분한 것 같기도 했다.
"준비해. 잠시 후 전투 회의가 있을 거야."
새로운 명령을 받았으니 실행하고 기억한다.
……
한 시간 뒤, 전투 회의실.
이상이다. 각 집행 부대는 즉시 준비하고 세 시간 뒤에 출발한다.
니콜라 사령관은 습관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회의 종료를 알리고 즉시 회의실을 떠났다. 이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각 소대 지휘관도 뒤에서 대기 중이던 대원들에게 임무를 배정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전투 회의실 구석에 있는 백로 소대는 오늘따라 더 쓸쓸해 보였다. 밤비나타는 여느 때처럼 바네사의 뒤를 따랐고,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바네사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바네사는 아직 대원 충원 신청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백로 소대가 배정받은 임무는 단둘이서 수행해야 했다.
바네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 지휘관을 느낀 것 같았다.
지휘관과 시선이 마주친 바네사는 일부러 지휘관을 피하는 것 같았지만, 지휘관이 보지 않을 때 지휘관을 훑어봤다.
그레이 레이븐 대원들에게 임무를 분배하고, 그레이 레이븐 대기실로 돌아가 준비하라고 했다. 이때, 밤비나타가 바네사의 뒤를 따라 지휘관을 향해 걸어왔다.
마지막에 네가 밤비나타를 데리고 가서 기체를 정비한 거야?
바네사는 지휘관이 이렇게 깨끗이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준비한 말이 목구멍에서 막힌 것 같았다.
음. 기체 정비 세부 사항도 네가 쓴 거야? 언제부터 그렇게 박식해졌지?
그제야 지휘관은 밤비나타와 진료실에서 돌아온 그날, 밤비나타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을까 봐, 리브에게 밤비나타의 기체 정비 방안에 관해 추가로 물어본 게 기억이 났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대원이었지만, 리브는 백로 소대에서 동료를 치료해 줬던 세부 사항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리브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안대를 하고 있었지만, 바네사 얼굴에 나타난 복잡한 표정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생각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는지, 바네사는 지휘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요 며칠 동안, 밤비나타를 만났지?
며칠 동안 밤비나타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어?
감시 같은 건 있었을 텐데. 아, 네 느낌으로는 모를지도 모르겠네.
밤비나타와 난 쿠로노가 손댄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어. 그러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너도 잘 알겠지.
그리고 테슈.
난 너와 달라. 난 그들이 내 물건에 손가락질하는 걸 참을 수 없어. 그러니 그들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나와 밤비나타의 기억 데이터로 충분할 거야.
바네사가 대답하는 대신 의미심장하게 지휘관을 힐끗 쳐다봤다.
그건, 바네사 혼자 밤비나타의 외장 기억 모듈을 가져가 쿠로노와 의회의 조사를 받은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바네사와 거의 연락되지 않는 이유도 조사받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큼... 말해두지만 감사 같은 건 기대하지 마.
남의 전투 대기실에 몰래 침입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잖아.
사과는 빠르게 하네.
됐어. 어차피 네가 진심으로 사과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
수석이 지나간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잖아?
밤비나타를 핑계로 삼을 생각이었어?
최소한의 사과도 없다면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어쨌든 네 일이나 잘해.
가자. 밤비나타.
바네사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조금 망설이다가 이내 몸을 돌려 멀리 걸어갔다.
말없이 바네사를 따라가던 밤비나타가 지휘관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슬며시 바네사의 손을 잡았다. 바네사는 밤비나타에게 잡힌 듯 지휘관을 등지고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
응.
밤비나타는 안정적으로 돌아서서 지휘관을 향해 우아하게 치마를 들어 올리며 인사를 했다.
밤비나타의 눈동자는 며칠 전 그녀를 만났을 때처럼 푸르고 맑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넓고 텅 빈 하늘 같지 않았다.
부드러운 파도가 자신을 끌어안은 뒤, 함께 평온하고 따뜻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것 같았다. 기억도 파도와 함께 더 깊은 곳으로 갔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얼음 같은 명령으로 형성된 암초를 뚫고 햇살이 비치는 바다 위에 남겨져 있었다.
더 이상 막막하지 않고, 더 이상 힘들지 않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고마워요."
두 눈이 지휘관에게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