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서 구조를 기다려 주세요.
폭발음, 침식체의 울음소리... 온갖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린 팔뚝으로 총을 꽉 잡고 지옥에서 올라오는 악마처럼 덤벼드는 침식체와 사투를 벌였다.
또다시 전장에 서게 되었다. 혼자서 말이다.
관제에서 임무 H24-65에 추가 지원 요청을 보냅니다. 지원 대상은 [player name]입니다. 격리 구역에 침식체 신호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단지 이번에는 지원받는 상대가 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이런 일은 일상이다. 하지만 점점... 조금씩 지쳐 갔다.
가장 가까운 구조대가 6분 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차징 팔콘 반즈, 구조 지점에 도착했다.
뒤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보니 반즈가 통신기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그레이 레이븐이랑은 연락이 돼?
위로 가자.
아니, 전혀.
반즈는 총을 장전하며 벽에 붙어 건물의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의 말투에는 졸음 따윈 없었다.
마지막으로 야근을 한 게... 아주 오래전이네.
반즈 앞으로 먼 바다의 차가움을 머금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 바다의 파도 같은 침울하고 차가운 공기가 바람에 뒤섞였고, 이물질은 그의 시야를 좁혀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몇 배나 확대되어 보였다.
공기에는 타오르는 금빛 먼지가 떠돌았고 반즈 눈동자 속의 빛은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눈부셨다. 속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았지만, 몸은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완벽하고 정밀한 창조물이다.
총은 마치 반즈의 열쇠 같았다. 총만 들면 돌변하니, 만약 수술용 칼을 들고 있었다면 그 모습은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35。
"탕"하는 소리와 함께 새들의 울음이 날개를 젓는 소리와 겹쳐 귓가에 울렸다.
하얀색과 초록색이 교차하는 표적지를 뚫고, 에덴의 훈련기지를 뚫고, 저격수와 침식체 사이의 경계를 뚫은 이 총알은 결국 목표로 삼은 기계 뇌를 명중해 공기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36。
...37. 해결됐어.
옥상의 마지막 침식체도 비명과 전술 권총 특유의 총소리 속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모든 게 조용해지고 차분해졌다.
단말기를 확인하니 안전 범위에서 반짝이던 마지막 침식체의 신호 출처도 없어졌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임무가 반즈의 존재로 특별해졌다.
오후의 바람은 전쟁의 냄새와 함께 부드럽게 불어왔다. 그러자 주위에 흩날리던 탁한 연기와 사방을 어지럽히던 총소리는 모두 바람 타고 사라졌다.
움직이지 마. 팔에 있는 상처 처료해야 해.
전투 중 부러진 철근이 팔이 찔리고 말았다. 계속 팔에 부상을 입으니 확실히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반즈는 내 팔을 가볍게 잡았고 난 뒤로 살짝 기댔다. 그에게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의사들이 다 가지고 있는 힘일지도 모르지만, 반즈 앞에서는 편안해졌고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낼 수 있었다.
반즈는 치료할 때면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 총을 잡을 때처럼 집중하는 모습이지만,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의 침착한 표정과 안정적인 자세는 깊은 바다와도 같던 과거를 엿볼 수 있었다.
522。
처치한 횟수가 아니야. 이건... 내가 누군가를 지킨 횟수야.
예전에는 수술을 했다가, 그 후에는 척후 작전, 방금은 지휘관이네.
감성은 이성적인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그렇게 훈련을 했건만... 아직도 이런 감정적인 방해 요소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
그렇지...
반즈는 의료 장비를 제자리에 놓고 바로 옆으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러니 하고 있는 말도 잠꼬대 같은 웅얼거림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라...
격리 구역의 침식체, 제거 완료...
...구조대 도착 12분 전...
...인간의 운명을 위한 전쟁은 관심 없어.
그냥...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을 치료하고 싶어.
————
반즈는 완전히 기체 휴면 상태에 빠졌는지 그 다음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
잠이 든 게 확실하다. 찌릿찌릿 저려오는 팔로 얼굴을 쳐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즈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드나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져 나도 모르게 거친 벽면에 기대어 긴장을 늦췄다.
마취약 때문인지, 반즈의 말이 너무 설득력이 있었던 원인인지, 안전감과 졸음이 밀려온다...
바람이 계속 불어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시야는 뿌옇게 흐렸다가 다시 빛으로 서서히 모양이 잡혔다.
어렴풋이 숙소임을 알아챘고 고개를 돌리니 옆 침대에 다양한 위로의 선물과 과일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리, 리더! 지휘관이 깨어났어!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가깝게 붙은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다행이야!
정말 안타깝지만 반즈는 임무 수행 중 우리의 곁을 떠났어...
옆에 있던 선물 더미에서 갑자기 손이 나타나 사과를 카무이한테로 던졌다.
헛소문 퍼뜨리지 마.
우왓! 시체가 일어났다!!
카무이는 점프를 하며 재빠르게 사과를 받고 자연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루시아가 그러는데 둘이 엎드려서 엄청 잘 잔다고 하더라고! 냠냠.
그래서 반즈 덕에 리더랑 같이 지휘관을 보러오게 된 거야.
반즈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낸다니 정말 다행이야!
반즈가 지휘관 침대가 엄청 편하다고 나도 한번 누워 보래서!
...흐암, 카무이, 당장 내 몸에서 떨어져...
적당히 해.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곧 돌아오니 지휘관님도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카무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쉬기 딱 좋은 곳이었는데. 그러니 좀 나가줄래, 카무이?
...정말 죄송합니다. 지휘관님. 반즈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지휘관님의 방이니...
누른다!
...적당히 해.
접수 완료!
더 세게 하라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내려... 가... 흐읍...
좋았어!
...지휘관님!
다시 잠이 들 것 같은 반즈는 저항을 포기했고,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얼굴도 카무이의 아머형 기체에 깔려 일그러지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운명을 위한 전쟁은 관심 없어."
"그래."
"그냥...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을 치료하고 싶어."
"...알겠어."
"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위한 전쟁이든,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든..."
"넌 다 잘하고 있어."